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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100:1-5, 롬 5:1-1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11-18

시편 100:1-5, 롬 5:1-11 감사를 꽃피우려면 (금주는 컴퓨터의 문제로 영상녹화분이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 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표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이요, 하나는 감사입니다.

<기쁨과 감사> 이 두 가지 표징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성경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신약성경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 시편 100편에서 2절에 “기쁨으로”라고 하고 있고,

4절에 “감사함으로, … 감사하며”라고 하며 두 표징을 말씀합니다.

 

신약성경에도 기쁨의 서신이라 불리는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단어가 16번 나옵니다. 우리가 알듯이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 자신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한 구절만 소개한다면 빌립보서 4장 4절을 들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또 신약 곳곳에서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는 <기쁨과 감사>두 가지를 한꺼번에 언급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이 성도에게 바라시는 것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 제가 성경 말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지만 성도라면 꼭 갖고 있어야 할 표징 두 가지 <기쁨과, 감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기쁨과 감사>를 지금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얼굴에 <기쁨이>, 입술에는 <감사>가 묻어나고 있습니까?

<옆에 앉아 계시는 성도, 앞뒤에 앉아 계시는 성도님의 얼굴을 한 번 보십시오.> 옆의 성도에게 기쁨과 감사가 나타난다면 .... “기쁨과 감사가 보입니다.”라고 말씀한 번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성도라면 <기쁨과 감사>가 얼굴이 표현되어야 하는데....

어찌 어찌 살아가다 보니 <기쁨과 감사>는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처럼 <근심 걱정, 불평, 원망>이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 얼굴에서 탈피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쁨과 감사>의 얼굴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을 저는 <감사를 꽃피우려면>이란 주제로 3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감사를 꽃피우려면? <자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미국 스텐포드대학 필립 하터 교수는 “세계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압축했을 때의 모습을 발표한 것입니다.

 

100명중, 아시아인 57명 <유럽인 21명 미주인 14명 아프리카인 8명>

100명중, 남자 52명, 여자 48명

100명중, 유색인종 70명, 백인 30명

100명중, 비기독교인 70명, 기독교인 30명

100명중, 89명은 이성애자, 11명은 동성애자

100명중, 6명이 세계 부의 59% 차지하고 있고, 그 6명은 모두 미국 사람

100명중, 80명은 적정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100명중, 70명은 문맹

100명중, 50명은 영양부족

100명중, 1명은 죽기 직전

100명중, 1명은 임신 중

100명중, 1명은 대학교육을 받은 적이 있고,

100명중, 1명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필립 하터 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글도 읽을 수 있으며, 컴퓨터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상위 1%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을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때,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들어서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자족하는 신앙관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나와 가정, 사업장, 교회에게 주신 복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를 꽃피우려면? <나의 영적 신분>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는 특징을 <기쁨과 감사>라고 했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 상태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나의 영적인 상태를 알면, 세상의 것이 아무리 부족해도 늘 얼굴은 싱글벙글할 것이고, 입에는 감사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5장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상태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6절)

이는 영적으로 무력할 때, 즉 전적으로 부패하여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는 어떠한 의(義)도 이루지 못한 때를 가리킵니다.

②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절)

이는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 이래 그 죄책을 전가 받으므로 전적으로 부패한 죄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③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10절)

앞에서 말한 <연약하고, 죄인임>의 상태보다 더 강도 높은 표현으로,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원수’는 죄로 말미암아 절대 공의로우시므로 불의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신적 축복에서 소외된 상태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인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사단과 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연약했고, 죄인이었고, 나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탄의 자녀였습니다.>

이런 자를 그냥 두면 결과는 뻔합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그들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한 마디로 발하면 <불의 장소>입니다.

누가복음 16:24에서 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이 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마태복음 13:41-42에서 예수님은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태복음 25:41에서 예수님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요한계시록 20:15 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지옥을 <토마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년 3월 17일 - 1732년 5월 20일)목사>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지옥이라는 곳은 기진맥진한 사람에게 원기를 공급하는 음식도 전혀 없으며,

피곤을 씻어 주는 잠도 없으며, 슬픈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음악도 없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친구들도 전혀 없는 곳이다. 처절한 가난의 장소, 죽지 않는 영혼과 썩지 않는 몸 외에는 달리 위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처절한 장소이다.”

 

이 지옥을 일찌감치 확보해 놓았던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다같이 6절, 8절, 10절을 큰 목소리로 읽어보십시다.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십자가의 사랑을 누가 받았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받았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달리신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라 화목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 사탄의 자녀였고, 지옥행을 확정지었던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행 티켓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만 제대로 안다면 우리의 입술에는 <감사가 나오고> 얼굴에는 <기쁨이>넘치지 않겠습니까?

 

우리 옆 사람에게 인사하십시다. <천국행 티켓 확보를 축하드립니다.>

 

3. 감사를 꽃피우려면? <예배시간 마다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게 된 것은, 기독교 신앙으로 세워진 미국의 건국 초기부터 추수감사절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오랜만에 추수감사주일 유래를 다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600년대 초, 영국에서는 영국 국교회(英國國敎會 - 16세기 이후 로마 가톨릭교에서 분리하여 독립한 영국의 국가적 교회)가 왜곡된 신앙을 요구하며, 신앙의 자유를 빼앗아갔습니다.

더 나아가 청교도로 불린 개신교인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했습니다.

<사진 자료 : 메이플라워호>

1620년 9월,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항해를 합니다. 그들을 대서양을 항해하며 90인간의 사투를 벌입니다. 폭풍우도 만나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깁니다.

 

드디어 1620년 12월 20일 미국 동부 <플리머스>라는 작은 항구에 도착합니다. 그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지었고, 그 다음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어렵고 낯선 환경이지만 매일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마음껏 찬양하며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들이 함께 모일 때마다 암송했던 말씀이 바로 오늘 구약의 본문 시편 100편이었습니다. 그들은 시편 100편을 암송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풍토병과 겨울 추위로 50여 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원주민 인디언에게 씨앗을 받고, 파종하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들은 겨울을 굶지 않고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윌리엄 브래드퍼드는《플리머스 플랜테이션에 대해(Of Plymouth Plantation)》라는 책에서 초창기 청교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하루는 지도자인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질병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삶의 고통 때문에 힘이 듭니다. 우리가 한 주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침통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금식기도를 시작합니다.

며칠 동안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그때 한 농부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하나 건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서 여러 친구들을 잃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가 농사를 지어 추수까지 했습니다. 이제 금식기도는 그만하고, 하나님께 마음껏 찬양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시다.”

 

이 농부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고, 마을 중앙에 모두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때 감사했던 내용들이 아직까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다섯 가지의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첫째, 1년 동안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둘째, 우리의 죄를 사하셔서 구원해 주시고 천국 소망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

셋째,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넷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

마지막으로, 지난 한 해 우리의 가정과 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

 

이 다섯 가지 감사의 내용으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후에, 그들은 인디언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감사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공식선포된 것은 –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의해서였고, 추수감사절이 국경일로 선포된 것은 – 링컨 대통령 때였습니다.

이렇게 감사절을 지켰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복음 전함으로 한국교회도 오늘과 같이 자연스럽게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더 온전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옛날 처음 추수감사절을 지켰던 청교도들이 모일 때마다 암송했던 시편 100편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시는 – 누가 지었는지 모릅니다.(저자 미상의 시)

하지만 표제어는 붙어 있습니다. “감사의 시”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된 ‘감사 예배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청교도들처럼 이 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100편 말씀을 분해해 보면

3절이 핵심인 <찬양할 이유>가 나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잘 말씀합니다.

 

1, 2, 4절은 <하나님에 대한 우주적인 찬양을 할 것을 권고>합니다.

5절은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선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성실하심을 기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예배로 통해서 감사를 회복했고, 온전한 감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마다 감사를 회복하고 감사한 제목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기쁨과, 감사 이 두 가지는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할 표징입니다. 얼굴에는 기쁨이, 입술에는 감사가 항상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보실 때에도,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도 내가 가진 <기쁨, 감사>로 나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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