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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4VWmjUhrKgw
본문 갈라디아서 6:14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4-14

갈라디아서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갈라디아서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 성경 66권을 통틀어서 핵심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고,

신약성경 중에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바울서신을 포함한 서신서 들은 예수님을 재해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떤 곳을 보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3.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33pixel, 세로 200pixel

<그림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이 핵심을 알았던 주님의 제자들은 성경을 기록하면서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8장 중 여덟 장 / 마가복음 16장 여섯 장 / 누가복음 24장 중 여섯 장

요한복음 21장 중 열 장이 /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한걸음씩 다가가시는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당하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심으로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사실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십자가를 빼고는 기록할 말씀이 없었습니다.

아니? 십자가와 이외도 수 없이 기록할 말씀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사역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기록할 말씀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와 비교할 때, 다른 것은 가치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십자가만 집중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록할 때 손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록할 때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록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핍박 자 사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바울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자신을 구원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강퍅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믿을 것 같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교하다, 철학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뺀 채 설교를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만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최초로 선교를 하면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착한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심한 영적침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된 바울을 예수님이 환상가운데 만나주셨습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이 아덴에서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덴에서 실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절대로 다른 것은 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글로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석해 주었고, 우리가 쉽게 이해하도록 그림언어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여러분!

사 복음서의 저자가 가졌던 십자가에 대한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바울이 가졌던 십자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십자가에 대한 이해가 여러분에게는 있으십니까?

우리가 지금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있지만, 마치 8.15 광복의 기쁨처럼, 6.25 전쟁처럼 옛날이야기로, 막연하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하나의 사건 정도로 이해하시지는 않습니까?

저는 오늘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게 보낸 14절 말씀의 확신을 우리 모두가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7pixel, 세로 200pixel 우리도 바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려면, 십자가로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4가지 그림을 보여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그림 <속죄 제물>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그림은 제사장이 칼을 들고 양을 잡는 모습입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장면이지요.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나가는 자가, 죄를 가진 모습 그대로 나갈 수 없어서, 자신 대신 제물을 한 마리 가지고 갑니다. 그 제물을 제사장에 드리면 제사장은 칼로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깁니다. 내장을 다 끄집어냅니다. 부위별로 각을 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기를 번제로 바치는 것입니다. 당연히 양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아내셨겠지요.

이런 번거로운 제사를 구약시대 내내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번거로운 제사,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드렸던 제사를 단번에 해결하고, 영원히 해결하기 위하여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맞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 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5, 7)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셔야 했기에 그의 온 몸에 피를 쏟으셨습니다. 살은 갈기갈기 찢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과 제가 지은 죄 때문에 대신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만 알면, 우리에게 있는 무얼 자랑하겠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나의 자랑입니다. 고백할 것입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39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0pixel, 세로 900pixel

둘째 그림 <노예시장>

십자가의 복음에 관한 두 번째 그림 언어는 우리를 시장바닥으로 데려갑니다.

사람들은 매일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삽니다. 쌀, 고기, 야채, 과일 등 여러 가지를 사서 밥을 해 먹습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는 무게를 달고, 값을 치르고 내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을 가리켜 ‘물건을 산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를 성경 용어로 말하면 ‘구속 한다.’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장에서 과일 야채, 고기만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이 되는 동물들도 샀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노예도 물건에 속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기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이나 음식, 동물, 노예를 사고팔았습니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이 노예제도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난민들을 노예로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죄의 노예, 사단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가슴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와 사단의 노예 된 우리를 위해서 <종이 돈이나, 동전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디모데전서 2:5-6)

 

죄의 종,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이 바로 <십자가>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아! 예수님이 나를 사셨구나, 나는 예수의 것이구나, 이제 나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났구나.’ 하며 감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4.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09pixel

셋째 그림 <법정>

저는 아직까지 법정에 가 보지 못했습니다만, 우리는 쉽게 텔레비전을 통해서 법정의 그림을 봅니다. 전직대통령의 재판 모습, 경제인, 정치인들이 법정에 선 모습도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고발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고발하고 고소하는 일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 법정에 여러분도 저처럼 가 보지지 않았어도 사실은 우리 모두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피고 : 죄인 된 우리 모두

원고 :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고발해서 하나님의 법정에 세운 후 우리 모두에게 사형선고를 받도록 했습니다. 마귀의 근거는 분명합니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로마서 6:13)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죄가 없는 사람이 없으니 결과는 뻔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장 :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피고의 말도 들어보고, 피고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말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원고의 말을 들었습니다. 검사의 날카로운 죄의 지적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들고 나서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네게 무죄를 선언하겠다. 무죄”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죄를 선언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 나는 죄인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치르고,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죄 값을 완벽하게 치르셨기에>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무죄>라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 혹은 의인>라고 합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나를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에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칭해주고,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 말씀은 로마서 8장 1-2절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런데 성도님들이 여기에서 바르게 알아야 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칭의>가 <성화>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칭의는 –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네 죄를 사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무죄를 선언하고,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칭의>의 효력은 발생합니다.

하지만, 성화는 –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성화는 평생 걸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의 복을 받은 우리는 <성화>를 위해 주님 앞에 갈 때 까지 노력하여야 합니다. 노력에 따라 주님을 닮기도 하고, 수십 년 믿어도 예수의 향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나의 몫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의 공로로 사함 받아 우리에게 무죄가 선언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5.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88pixel, 세로 426pixel

넷째 그림 <화목한 가정>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7pixel, 세로 200pixel 이 그림을 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 그리고 요즈음 중요하게 여기는 <반려 견>까지 찬송을 부르며 화목한 가정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역이 바로 인류에게 화목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을 메시지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메시아께서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제 밖에 있던 이방인과 안에 있는 유대인 모두가 이 일에 함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서로 거리를 두기 위해 이용하던 벽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절정은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며, 운명하시자 성소와 지성소를 막았던 두꺼웠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둘러 찢어졌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갈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화목, 화해>의 복을 주셨습니다.

화해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작해 이웃과의 화해, 가족 간의 화해, 자신과의 화해, 자연과의 화해로 이루어집니다. 화해가 이루어지면 지금 보시는 것처럼, 거기에는 기쁨과 찬송과 감사만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십자가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전부 나를 위하여 달리신 십자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누리게 된 것을 네 가지 그림을 가지고 소개했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39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0pixel, 세로 900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4.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09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5.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88pixel, 세로 426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800003.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33pixel, 세로 200pixel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은

1) 나를 대신한 대속제물이고, 2) 죄와 사망에 노예에서 해방되었고,

3) 사형선고를 받아할 내가 무죄선언을 받았고,

4) 하나님과 나부터 피조물까지 화목하고 화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덴에서 십자가를 놓쳤다가 고린도에서 되찾고,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고, 자랑하겠다는 바울처럼,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온전히 믿고, 자랑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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