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3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kWGoaMhxCL0
본문 로마서 1:16-1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10-13

로마서 강해 ⑩ 로마서 1:16-17 복음, 하나님의 능력

 

세 주 만에 다시 로마서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앞부분에서 우리는 로마서 서론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살펴볼 16-17절은 <로마서 주제>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주제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로마서 전체 이해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오늘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16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일종의 이중부정으로 ‘매우 자랑스럽다’라는 뜻입니다.

어르신들이 잘 생긴 아기를 보고 '포동포동하게 생겼다'고 하거나 '예쁘게 생겼다' 하지 않고, '고놈 참 밉게 생겼다'고 이야기 하듯

바울도 그런 표현을 한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세상 그 무엇보다 복음이 좋았습니다. 복음이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복음이 좋아서 미치겠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요?

16절 계속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 = 능력

복음 = 하나님의 능력 이란 등식이 형성됩니다.

그럼 차근차근 하나씩 생각해 보십시다.

 

① 복음 – 원래, 복음은 해방과 승리의 소식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2000년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 통신시설이 발달되어서 국내는 물론이요 세계 어디에서도 문자하고, 통화나, 영상통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통신 수단은 <비둘기 / 봉화 불 / 마라톤>등이었습니다.

마라톤이 지금은 운동경기이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통신 수단의 목적으로 마라톤을 했습니다. 특히 군사적인 목적으로 어떤 소식을 전할 때 위험을 피해 가며 멀리, 빨리 뛰는 훈련을 하던 것이 마라톤 경기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옛날 전쟁이 일어나 아들과 남편이 전쟁에 나가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쟁에서 이겼는지 패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서너 달씩, 혹은 일 년씩 전쟁 소식을 전혀 모른 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전쟁에 승리하면 한 병사가 승전의 소식을 가지고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성위에 올라가 나팔을 붑니다. 그러면 온 성 안의 사람들은 성문으로 모입니다. 광장에 사람이 모이면 승전의 소식을 전합니다.

<어느 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말하면 모인 사람들은 <와! 하며 만세>를 부릅니다. 바로 이 때 전해지는 기쁨의 소식이 유앙겔리온(ευαγγέλιον:복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소화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았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설교에서 복음을 정리해 드렸지요.

<복음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지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다>

 

② 복음 = 능력,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헬라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뒤나미스(ύναμις / 능력 힘 권능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표현으로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라는 말입니다.

즉 세상의 다이너마이트는 터지는 곳에 깨지고 파괴하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③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

16절을 다시 보세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영접한 자에게는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져서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전도를 할 때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하는데, 그 구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구원을 살펴보십시다. (중요도에 따라 ★ 표를 붙여보았습니다.)

㉠ 병에서 낫는 구원 ★

㉡ 위험으로 부터 구원 ★

㉢ 세속화와 타락으로 부터 구원 ★★

㉣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 ★★★★★

㉤ 사망과 사탄으로부터의 구원 ★★★★★

㉥ 종말론적으로 구원 ★★★★★

 

이 많은 것 중에 우리는 구원을 이야기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구원은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다르게 표현할 때 <자유>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부터 자유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고, 심판으로부터 자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이야기를 해도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구약에 믿음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은 <아브라함>이지요.(로마서 4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겠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나안에 정착한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자식 하나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 사라의 나이가 89세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사라는 폐경이라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시며

1년 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 생물학적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둘 사이에 벌어진 것입니다. 사라가 임신하게 되었고 25년이나 기다린 약속의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죽은 가정이 → 살아 있는 가정으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가정이 →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축복의 가정으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그 가정에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정에 기쁜 소식, 구원의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린다는 부활신앙이 있었기에 나중에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도 거뜬하게 통과한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이런 예를 들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귀신이 떠난 자, 병에서 고침 받은 자, 눈이 떠진 자,

죄 사함을 받은 자 등

이런 사람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지금 로마서를 쓰고 있는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지금 예배하고 있는 이유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기 때문인 줄 저는 믿습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구원 받았다는 깊은 의미>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에는 세 가지 시제 <과거, 현재, 미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 칭의(죄책을 제거해줌)

현재 : 성화(현재의 삶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해 줌)

미래 : 영화(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주님과 더불어 누릴 영화)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것은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적인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자 톰 라이트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원 받았고, 구원 받고 있으며, 구원 받을 것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바울이 <복음을 자랑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이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꿈만 꾸지 않았습니다.

로마서를 써서 보낸 3, 4년 후 바울은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주후 61년 초 정도가 됩니다. 그 후 그는 로마에 3년 가까이 머물면서 감옥에서 지내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하면서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바울 혼자만 전도 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로마교회가 거두게 된 전도의 열매였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을 보면 네로 황제가 핍박을 시작해서 바울을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일 당시에(주후 67-68년경) 로마 시에는 유대인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만도 2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 중에 예수를 믿는 숫자는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역사가들이 그들을 ‘거대한 군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 수가 대단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울과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믿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의 감격과 복음의 능력을 회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 안에 왜 그렇게 싸움이 많습니까?

왜 그렇게 중생 받지 못한 주일 신자들이 많이 드나듭니까?

왜 구원의 감격이 식어버렸습니까?

왜 서로 용서하지 못합니까?

왜 성격이 바뀌지 않습니까?

왜 교회 밖에만 나가면 안 믿는 사람들과 똑 같습니까?

왜 죄를 범합니까?

왜 회개할 줄 모릅니까?

왜 변명만 늘어놓습니까?

왜 복음을 부끄러워합니까?

 

이유는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면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복음을 듣고, 복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복음’이란 단어를 6번이나 언급합니다. 복음이 얼마나 좋으면, 얼마나 대단했으면 여섯 번이나 언급할까요?

 

제가 복음이 무엇이라고 정의 했습니까?

<복음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지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다>

그렇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만이 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가정을 살려 낼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만이 한국교회를 살려 낼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나라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바울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확신을 자신 있게 고백해 보십시다.

16절을 큰 소리로 고백합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런 복음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럼 17절로 가 보십시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쉬운 말씀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리 쉽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동번역 성경을 소개해 드립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금 쉽지요.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 방법은 =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솔라 피데(sola fide))>를 외치며 교회개혁을 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은 구약부터 신약을 관통하여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임을 봅니다.

창세기 15:6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박국 2:4 (하박국)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할 시대는 신흥 바벨론 제국이 등장하여 세력을 확장할 때였습니다. 바벨론제국의 침략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 사람들을 악한 행동을 일삼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시기에도 의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7 (사도바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517년, 루터의 교회 개혁(개신교 탄생)

종교개혁의 5대 정신 중 <오직 믿음> 주장함

 

이렇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합니다.

‘써 이以’ / ‘믿을 신信’ / ‘일컬을 칭稱’ / ‘의로울 의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도 중에는 자신의 의를 드려내려는 자들이 가끔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과 하나님의 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태양과 촛불의 차이 / 공기와 산소호흡기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비하면 자신이 나타내려는 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의 주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신칭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로마서를 이해할 수 없고, 성경을 이해할 수 없으며, 복음이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에 이신칭의를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로마서 말씀으로 이신칭의를 바르게 깨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주제 성구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6절 말씀에서 바울이 그토록 자랑했던 복음의 능력을 우리도 확실히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복음을 바울처럼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7절 말씀에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아시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온전히 믿으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 로마서 강해 ⑩ 복음, 하나님의 능력 (롬 1:16-17) 2019.10.13 364
307 요셉의 비전 - 주님 나라 이루게 하소서 (시 105:16-22) 2019.10.10 682
306 기도의 영성을 회복하라(막 1:35) 2019.09.30 386
305 로마서 강해 ⑨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 (롬 1:8-15) 2019.09.24 317
304 로마서 강해 ⑧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롬 1:1-7) 2019.09.15 508
303 로마서 강해 ⑦ 구원의 확신 (롬 8:31-39) 2019.09.08 546
302 로마서 8장 강해 ⑥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30) 2019.09.01 1060
301 로마서 8장 강해 ⑤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성령님 (롬 8:26-27) 2019.08.27 1072
300 로마서 8장 강해 ④ 성도의 부활, 피조물의 회복 (롬 8:18~25) 2019.08.18 700
299 로마서 8장 강해 ③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2019.08.13 707
298 로마서 8장 강해 ② 육신을 쫓는 사람 vs 성령을 쫓는 사람 (로마서 8:5-11) 2019.08.04 746
297 로마서 8장 강해 ①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4) 2019.07.28 2801
296 예수님의 정체성 ⑦ 나는 참포도나무이다 (요 15:1-17) 2019.07.21 626
295 예수님의 정체성 ⑥ 나는(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1-7) 2019.07.14 675
294 예수님의 감사 (마 11:25~26) 2019.07.07 449
293 예수님의 정체성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17-27) 2019.07.02 725
292 예수님의 정체성 ④ 나는 선한 목자이다(요 10:11-21) 2019.06.23 437
291 예수님의 정체성 ③ 나는 문이다 (요 10:7-10) 2019.06.16 413
290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삿 16:28-31, 행 2:1-4) 2019.06.09 269
289 예수님의 정체성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2019.06.04 899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26 Next
/ 2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