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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i11SsgxYG44
본문 고린도전서 15:12-26, 42-49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4-01

고린도전서 15:12-26, 42-49  놀라운 반전, 부활

 

1954년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정치 슬로건을 내 걸었습니다. 국가의 책임 하에 모든 국민들이 태어나면서 무덤에 갈 때까지 평등하게 복지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사실 목회자가 해야 할 사역의 범위도 됩니다.

목사는 아이가 태어나면 심방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돌 감사예배를 인도, 결혼식 주례, 후에는 고희감사예배, 팔순예배를 인도, 마지막에는 장례예배를 인도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면서 가장 힘든 예배가 있다면 <장례예배입니다.> 장례예배 중에서도 돌아가신 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예수를 믿어서 예배를 드릴 때가 힘듭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을 잘 믿다가 돌아가셨고, 가족들도 잘 믿을 경우에는 장례예배가 그렇게 슬프지 않습니다. 이유는 제가 믿음으로 사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를 겪어 보았고, 그때의 아픔과 영적으로 오는 기쁨을 느껴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례식 설교를 할 때 반복적으로 하는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제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면서 느꼈던 경험을 말씀해 드립니다.

그 때 저는 <눈에는 눈물이 났지만, 가슴에는 기쁨이 넘쳤다> 이유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돌아가심을 끝난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셨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또, 목사님 두 분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씀을 소개합니다.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본 회퍼의 말입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내 삶의 시작입니다.”

 

영국의 죠지 휘트필드(1714년∼1770년) 목사는, 1770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나는데, 하루 전인 9월 29일 설교를 하고 설교 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제 예비 된 나라로 갑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는 지금 석양처럼 지고 있지만, 저 나라에서는 아침 태양처럼 떠오를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의 죽음, 본 회퍼 목사, 죠지 휘트필드 목사님의 죽음도 ...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슬픈 이야기지만, 그들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고 마지막 날 예수님처럼 부활하실 것을 믿기에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기독교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려고 하면 에덴동산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인해 부끄러워 동산 나무 사이에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벌거벗었음을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그들의 하체를 가렸습니다. 이것을 본 하나님은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시기 위해서 가죽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짐승 한 마리가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로 가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430년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마지막 재앙으로 <장자의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장자의 죽음에서 히브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고기는 먹고, 그 피는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히브리인의 집은 들어가 죽이지 않고 넘어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인은 그 말씀대로 가족 수대로 흠 없고 1년 된 수컷 어린 양을 잡았습니다.

당시의 히브리의 가정 수를 약 23,000가정 쯤 되었다고 볼 때, 유월절 어린양으로 잡은 양의 수가 23,000마리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엄청난 것입니다. 그 양의 희생으로 죽음에서 구원받았습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약 1,500년을 짐승을 잡고, 그 피를 통한 제사를 드림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피의 제사가 ....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다 이루었다’ 며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피의 제사는 완전히 끝이 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우리는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진정으로 아는 자는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감격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란 찬양 가사를 들어보세요.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 세상 모든 것 위에 뛰어 나신 주님

세상이 측량 할 수 없는 지혜로 / 모든 만물 창조하셨네.

모든 나라와 모든 보좌 / 이 세상 모든 경이로움보다

이 세상 모든 값진 보물 보다 / 더욱 귀하신 나의 주님

(chorus) 십자가 고통 당하사

버림받고 외면 당하셨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네. 나의 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버림당하시고, 외면 당하셨습니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혀 계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도바울은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긴 했지만 부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12-19절에서 말씀합니다. 요약해서 정리하면

① 바울 자신이 전했던 복음은 헛것이 될 것입니다.(14절)

②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14b절)

③ 신앙을 지키다가 잠든(죽은) 성도들도 망한 것이 됩니다.(18절)

④ 기독교인이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됩니다.(19절)

그렇습니다. 기독교에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도 불쌍한 존재이고? 저도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요 십자가와 부활에 생명을 걸고, 우리의 삶 전체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세요. “그러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럴 것이라는 가정을 했던 바울은, 이제 이 모든 상황을 뒤집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 말씀이 “그러나”입니다. ..........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그러면서 부활에 대해서 확신에 차서 선포합니다. 그 선포한 말씀을 2가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20-23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그러나 각기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이 말씀에서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첫 열매>는 헬라어, ‘아파르케’라는 말로 “첫 소산물” 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과나무가 성장해서 3년쯤 지나면 드디어 사과가 하나 달립니다. 그것이 첫 소산물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첫 소산물을 통해서 최소 2가지는 확신합니다.

첫째, 앞으로도 사과가 계속 열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동일한 사과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다음해는 배가 달리고, 그 다음해는 감이 달리지는 않습니다. 사과나무에는 수십 년이 지나도 사과가 달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과가 계속 열린다는 것은 <지속성>이고,

앞으로 동일한 과일 사과가 열린다는 것은 <동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도 <지속성>과 <동질성>의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속성에 대해서 22-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이 말씀에 따르면 부활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① 부활의 처음은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②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 속에 우리도 들어갑니다.

 

2.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동질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활할까요?> 우리의 무엇이 부활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몇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① 우리의 영혼만 부활한다.

② 우리의 육신(몸)만 부활한다.

③ 우리의 영혼, 육신(몸) 둘 다 부활한다.

몇 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42-44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몸도 부활합니다.

그러니 답은 <③ 우리의 영혼, 육신(몸) 둘 다 부활한다.>입니다. 이 몸과 영의 부활에 대해서 우리는 매주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 내용 중에 마지막 내용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이쯤 되면 고민스러운 분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 부활 시에 영혼과 육신이 부활 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까?

지난주일 찬양예배 때 – 생명 나눔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마 장기기증을 한다고 하니, 부담스러워서 집에 일찍 가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여간 찬양예배에 125명 참여했습니다. 그 중 서약에 동참한 분들이 71명 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서약하신 분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죽은 이후 내 여러 부분을 기증했는데 부활할 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부활하고 보니 ... 각막이 없어서 보지 못할까요? 장기가 없어서 사람 구실 못할까요? 걱정되지 않습니까?

 

<영혼과 더불어 몸의 부활에 대해 청년들에게 가르치면> 청년들 가운데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부활하면 쌍꺼풀이 없는 원래 눈으로 부활하나요? 아니면 수술한 눈으로 부활하나요?” 어떨 것 같습니까?

 

<영혼과 더불어 몸의 부활에 대해 어르신들에게 가르치면> 어르신 분들 중에는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 이렇게 허리가 구부러졌습니다. 또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상태로 부활하나요? 아니면 허리가 퍼지고 통증이 없는 몸으로 부활하나요?”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겠습니까? 저의 큰 어머니는 98세까지 사셨는데, 허리가 완전히 기억자입니다. 그러면 천국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부활할까요?

 

질문의 내용이 조금 우스운 질문이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런 질문을 한다는 말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분명히 있다는 말입니다.> 단지 부활체에 대한 모습이 궁금할 것뿐입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서 신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답은 무엇일까요? <죽을 당시의 몸으로 부활 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피크였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할까요?

정답은? 모릅니다. 여러분이 부활해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부활 후에 쌍꺼풀이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없어졌는지 확인해 보세요.

부활 후에 허리가 펴졌는지, 디스크가 없어졌는지 걸어보세요.

 

정답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성경과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웨인 그루뎀 박사>가 오늘 본문을 바탕으로 정리한 간접적인 답은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42b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부활하게 될 우리의 몸은 노화되거나 부패되어 사라지지 않는 몸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몸입니다.

 

둘째,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43a절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이 영광스러운 육체는 욕된 육체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빛나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강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43b절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질병에 시달리는 약한 육체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44a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신령한 몸은 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몸을 말합니다. 육신의 몸은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정욕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그분을 예배하는 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몸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자, 이정도 이해하면 나의 부활한 모습이 어떤지 확신이 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 요소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탁월한 설교가로 이름을 날린 R.C. 스프로울(Robert Charles Sproul) 목사(2017년 12월 14일 78세 일기로 별세)는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레이딕스(radix), 곧 뿌리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인간의 지혜를 말하는 진부한 이야기로 우리의 도덕의식을 고취하려는 또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필수 요소’다. 부활을 제거하면 기독교도 사라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핵심부분인 부활 신앙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예수님의 약속대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 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형상을 입고 영과 육이 완전한 존재로 부활해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명한 부활신앙을 갖고 이 땅에서부터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뒷부분의 말씀을 읽어드림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51-52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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