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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tUOE3zdxFys
본문 사도행전 19:21-4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6-17

사도행전 19:21-41 에베소 선교(2)

 

지금 우리는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선교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에베소 선교에서 두 가지 내용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성령 세례를 베푼 사건

아볼로에게 배웠던 성도들이 성령에 대해서 몰랐는데, 그들에게 바울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안수기도 해 주었더니> 성령님이 임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이 열 두 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에베소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헌신된 소수, 성령 충만한 소수를 통해서 시작되었고, 확장되어 갔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이 시대와 우리교회의 경건한 소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두란노 서원의 제자훈련

에베소에서 3년 생활 중에 3개월은 회당에서 가르쳤고, 이후 2년은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론했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더워서 쉬는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을 이용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 받은 12명에서 나중에는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다 두란노 서원에 모여 말씀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절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①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고,

② 마술사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 책을 모아 불태워버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자 바울은 한 가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21-22절에 나옵니다.

“이 일이 있는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자, 이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바로 로마 때문이었습니다. “로마를 보고 싶다. 로마에 가고 싶다”며, 로마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왜 바울이 로마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세계의 중심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 바울이 목표한 선교의 종착점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선교의 종착점은 다른 곳이었습니다.

 

로마서 15장22-24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자, 이 말씀을 보시니 이해가 되십니까?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가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하고 난 후에 더 중요한 당시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당시 로마 영토의 서쪽 끝이었던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로마를 향한 꿈을 가졌고, 그후에는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성도들과 나누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가진 로마와 스페인까지 가려는 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며 꿈을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갔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의 꿈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은 무엇입니까?

-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은 월급이 올라가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 승진하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 월세,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작은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 자동차가 노후 된 사람들은 새 차를 구입하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 청년들은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과, 이상적인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꿈을 꾸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꿈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꿉니다.

 

그렇기에 성도라면 세상 사람들이 꾸는 그런 꿈 말고, <주님을 위해서 꿈을 꾸십시오.>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 청년들이라면 주님을 위해서 내 청춘과 내 몸을 드리려는 꿈

- 내가 은혜 받은 성도라면 주님을 위해 찬양대원이 되어 찬양하고,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

- 장년들이라면 선교 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꿈

- 우리 가정에서도 해외에 예배당을 봉헌하고 싶어 하는 꿈 등.

이런 믿음의 꿈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부인 로마로 가고자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로마를 거쳐서 로마 영토의 가장 서쪽에 있는 스페인까지 가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꿈을 가진 바울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다른 선교지와 같이 에베소에도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23절을 보세요.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는 소동이 있었으니”

에베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바울이 로마를 향한 꿈을 가질 그 무렵 <복음 때문에> 드디어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쓰신 책에 보니 <핍박이 일어나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1. 부흥이 있을 때

에베소의 핍박도 20절 말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는 말씀처럼, 사도바울과 12명의 남자 성도로 시작된 에베소교회가 2년 3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에베소를 전체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12명으로 시작된 교회가 2년이 넘어도 12명으로 그냥 있었다면 핍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흥의 역사가 있게 되니 핍박이 일어난 것입니다.

 

2. 복음의 절대성 때문에

기독교가 만약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나타났다면 핍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세상은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불교든, 가톨릭이든, 유교든, 이슬람교든, 조상 제사든, “우리는 당신들의 신앙과 종교를 인정합니다.”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장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로는, 다른 교주로는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사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전하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복음의 절대성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핍박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기독교인인 우리를 향하여 비난하고 핍박하는 말을 고깝게 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핍박은 기독교 초기부터 지금부터 있었습니다. 이유는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절대성 때문입니다.

 

3. 생명력 때문에

기독교는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누룩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기독교인이 몇 사람 있는데, 100년, 1,0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면 무엇 때문에 핍박을 하겠습니까? 기독교를 핍박하는 이유는 기독교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나라든, 어느 가정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순식간에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를 하면서 <종교 유형별 인구>를 파악한 결과

불 교 – 762만 명

기독교 – 968만 명

천주교 – 389만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처음 전래 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6월부터입니다. 벌써 1,65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반면에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1884년입니다. 불과 134년입니다.

그런데 134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종교인 수 가운데 1위는 기독교입니다.

이유는 <복음의 생명력 때문>입니다.

이런 생명력 때문에 중국이나, 북한은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 전하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합니다. 복음이 들어오는 순간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부흥이 있을 때, 복음의 절대성 때문에, 생명력 때문에>에 핍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 개인에게도 그럴 수 있고, 가정도 그럴 수 있고, 국가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렇습니다. 내가 신앙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할 때, 핍박이 있음을 항상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에베소에 임한 박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십시다.

지금 우리는 <사도바울의 선교의 관점에서 에베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 에베소 하면? 가장 먼저 신전이 생각난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데미 신전>입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사실은 여러분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번 생각한 아테네 있었던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 <그림 1 참조> -- 직접 가보시면 감탄합니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보다 에베소에 있었던 <아데미 신전(그림 2참조>는 4배가 컸습니다.> 지금은 무너져서 돌 밖에 볼 수 없지만, <가상으로 복원한 아데미 신전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큽니다. 엄청나지요.

 

여기에서 <아데미 신>을 섬겼습니다. <그림 자료 3, 아데미 은신상>

지금 여러분은 <은으로 만들어 놓은 아데미 신상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제우스에게는 쌍둥이 남매가 있었는데

쌍둥이 오빠는 아폴로(아폴론) / 쌍둥이 동생이 아데미라고 합니다.

아폴로는 강한 힘을 상징하는 신이고

아데미는 건강과 풍요를 주는 여신입니다. 그래서 아데미 신을 섬기게 되면 건강과 물질의 복, 풍요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데미 신을 보세요. 수십 개의 유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풍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특별히 아데미 신을 섬기게 된 것은, 아데미가 에베소에서 태어났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아데미 신전을 건축하고 신을 받들어 섬기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한 해 중 5월 한 달 동안은, 에베소에서는 아데미 숭상하는 제사가 열립니다. 그러면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로마 제국 식민지 국가에 해당하는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아데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에베소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때 한 몫 잡는 사람들은 <아데미 신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 그리고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본문 24절에 “은장색”이라고 합니다.

은장색(銀匠色/ 은은, 장인 장, 빛 색) = 은으로 수공품(신상)을 만드는 장인(기술자)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 까지 에베소는 <아데미 신>의 천국이었습니다.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주후 53년 어느 날 바울이 에베소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합니다. 2년 3개월 정도 지났는데 에베소는 옛날 에베소가 아니었습니다.

에베소는 물론이요 에베소 주변에 살았던 소아시아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술을 행하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면서 살았던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해서 마술 책을 불태웁니다.

 

그러니 예년 같으면 에베소 신전에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어야 하고,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상을 사려는 사람으로 줄을 서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도 별로 없고, 신상을 사려는 사람들도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러니 <신상을 만드는 업계 수장이었던 데메드리오가>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중 중요한 두 구절만 보십시다.

 

26절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 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문제의 원인은 – 바울이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27절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은으로 아데미 여신상을 만드는 것 / 아데미 신전의 권위 / 아데미 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핍박이 일어나는 두 번째 이유가 복음의 절대성 때문이라고 했는데 지금 아데미 신전과 관련된 모든 업종의 사람들이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말을 들어보니, 그 업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바울 때문에,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껏 누려왔던 것을 한 순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아데미 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28절)

공동번역 성경에는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만세!!”

에베소 온 지역에서 이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왔을 때 공항에 나온 북한 주민이 손을 흔들면서 열렬히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과 함께 다녔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을 붙들어서 연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원래 바울을 잡고 싶었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권 자였기에 붙잡지 않고, 그를 따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는 두 시간 동안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만세” 라고 외칩니다.

 

그림 자료 한 더 보세요. <그림 자료 4, 에베소 전경>

두란노 서원에서 1,000m 떨어진 곳에 2만 5천명이 들어갈 연극장이 있었는데 여기에 모여서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만세”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따른 사람들이 잡혀 갔기에 바울도 가려고 했으나, 제자들이 말려서 가지 못합니다. 바울을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군중들은 2시간 동안 미친 듯 외쳤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죄를 정죄하려고 했습니다만, 35절에 보면 <이성적이고 분별력이 있는 서기관> 등장해서 지금 예수를 믿는 이들이 <신전의 물건도 도둑질하지 않았고, 여신을 비방하지도 않았는데>(37절),우리가 이렇게 소동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니 만약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정식으로 총독에게 고발해 재판을 받아보자고 논리적으로 설득하자, 군중들이 안정을 되찾고 해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정리하십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바른 신앙의 길에는 반드시 핍박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우리도 복음 때문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 피하려고 하지 말고 담대히 맞서 싸워서 복음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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