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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AIcH1GscasQ
본문 사도행전 20:28-38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7-15

사도행전 20:28-38  에베소교회 지도자를 향한 바울의 권면

 

  지난 주일에는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초청해 그들에게 한 <고별설교>를 생각했었습니다. 오늘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부분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2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교회에 대한 정의>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세상에서 부름 받은 거룩한 공동체”라고 정의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흔히 건물을 보고 대구제일교회다, 동부교회다 하는데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또 교회는 조직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인 저와 여러분이 교회인 것입니다.

본문에 바울은 교회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28절)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셨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인류를 위해, 교회된 우리를 위해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얼마의 값을 지불했는가에 따라 값어치가 매겨지는 것입니다. 100만원 주고 산 제품과 1,000만원 주고 산 제품, 1억 원을 주고 산 제품과는 우리가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입니다. 만약 전 재산을 털어서 어떤 보석을 샀다면 그 보석만큼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귀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살 때 “자신의 피를 다 흘리시고 사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교회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이런 고백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사셨기에, 우리는 모일 때마다 나를 사기 위해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문제는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모여서,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이야기, 남을 헐뜯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마음이 아파하실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된 우리들은 어떤 자리든 모이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하나님, 나를 위해서 피 흘리신 예수님,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힘주시는 성령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교회를 섬기도록 세운 지도자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여러분이 자동차를 5천만 원 정도 주고 새로 샀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 차를 운전면허증을 금방 딴 아들이나 딸에게 운전하라고 줄 수 있겠습니까?  주기 힘들 것입니다. 언제 사고 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줍니까? 못 주지요.

그런 관점으로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정의했는데, 하나님이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다 쏟으시면서 우리를 사셨는데, 그렇게 귀하게 산 교회를, 아무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겠습니까? 맡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맡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28절)
<성령님이 — 에베소교회를 섬기도록 여러분을 감독자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평신도지도자를 세운 것은 에베소교회가 처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할 때부터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 후 떠날 때에 그 교회를 책임질 감독자를 선임하고 그들에게 그 교회를 맡겼습니다.  그런 전통에 따라 에베소교회에도 감독자로 세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감독자는> 지금 교회의 직제로 말하면
<교역자 : 목사 ,전도자>를 말하고, 범위를 더 넓히면 <항존직 :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이 해당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을 교회를 위해서 성령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 안에는 교역자와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교회에 부임한 전도사님을 주님 대하듯이 대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하면 무조건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영적인 권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회중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또 반대로 과거에 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교회지도자들을 보는 눈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위해서  지금도 세울 만 한 자를 세우지 대충 세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세웠고, 세웠으면 그에 걸 맞는 능력도 하나님이 분명 주시게 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이런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성령기도회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통해서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심을 느낍니다.
그 예로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김정숙 증경 전도사님의 경우입니다.
지난 7월 3일 화요일 저녁 9시경 전도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혈압이 떨어지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죄송합니다.”

문자를 받자마자 전도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화를 해 보니 전도사님이 지금 혈압이 올라가서 180이라는 것입니다. 병원에 계시기에 의사들이 혈압에 대한 처방을 하고 약을 드셔도 혈압이 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전도사님이 너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전도사님이 지금 전화상으로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전도사님이 너무 혈압이 높아 힘들어하니,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혈압이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6시 57분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혈압이 떨어지지 않아 힘들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하신 후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측정했는데 170으로 떨어졌고, 또 30분 후에 160으로 떨어졌고, 자정에는 140에 90으로 떨어졌어요. 오늘 아침에는 130에 80으로 떨어졌습니다.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로 회복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뼈도 잘 붙도록 기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여러분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의 자랑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제가 부족한 종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교회 지도자로 저를 세워주셨기에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일하시고 있음을 작은 간증을 통해서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를 포함한 교역자, 그리고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들이여!
저와 여러분들은 성령님이 우리교회를 위해서 세운 지도자임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성령님이 세운 지도자? 라면 <그로 통해 선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이 세우시지 않는 지도자에게는 선한 열매가 맺혀지지 않습니다. 이제 영적인 지도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바로 알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론으로 생각할 바울이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에게 어떤 권면>을 했는지 살펴보십시다.
첫째, 양 떼를 잘 섬기라 했습니다.
  오늘 교회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중직자도, 성도 모두 동일한 임무입니다. 이런 예배의 임무를 잘 감당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를 잘 돌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0-11)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양들을 위해 죽고, 양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1-2)

여러분 교회는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풍성한 곳으로 인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공동체를 맡은 지도자가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제가 존재하는 목적도, 장로님이 존재하는 목적도, 안수집사, 권사님이 존재하는 목적도 성도를 섬기기 위합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직분을 주신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교역자 여러분, 그리고 항존직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양떼인 성도님들을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을 잘 섬기기 위해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 자기 성찰입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관리하며, 자신을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목회자가 목회자의 일을 하지 못하고, 항존직이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어디에 가도 이 점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어느 교회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직분에만 최선을 다하면 그 교회는 지금도 부흥한다고 말입니다.
목사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충성하고>
장로가 <목사를 도와 성도들의 신앙을 잘 살피고 지도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세         워주기 위해 식사대접하고 신앙적으로 권면하고>
안수집사가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고, 어려운 성도들이 누가 있는가? 살피고 도             와주고>
권사가 <목회자를 도와서, 목회자가 힘이 나도록 하고 어려운 성도를 심방하고          교우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 교회가 왜 부흥이 안 되겠습니까?
문제 있는 교회, 부흥이 안 되는 교회는? 자신이 받은 사명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남의 말 만 하고 있으니 교회가 될 일이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교역자와 항존직 여러분! 남이 어떻게 하나? 보지 마시고, 자신을 성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양 떼를 위해서 삼가 해야 할 것을 삼가 하시고, 해야 할 일에는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잘 섬기기 위해서 <지도자가 해야 할 일 두 번째 >
② 영적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양떼를 위해 우리교회는 어떤 질서를 주셨는지 바로 알고, 그 질서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그런 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에베소교회가 당면할 문제를 제기 합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교회에 “사나운 이리”가 달려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29-30절 보십시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아노라” 

본문에서 말하는 “사나운 이리”는 절대로 자기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양의 가죽을 쓰고 있어서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이리들이 교회 밖과 교회 안에서 호시탐탐 교인들을 물어가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밖에는 이단들이 여러분을 노리고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있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늘 주의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단은 아니어도 여러분의 신앙을 망가뜨리려는 자가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라 하면서 양을 돌보지 않고 굶기는 자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을 양들이 병이 들어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또 지도자라 하면서 <분열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조심할 일입니다. 참 된 지도자는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지도자를 따르게 합니다.  반면 잘못된 지도자는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지도자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그러니 그런 자가 여러분 옆에 만약 있다면 그들의 곁에서 빨리 떠나야 합니다.

바울은 이단을 막아내는 방법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31-32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사나운 이리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씀에 든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 39권 중 최소 9개의 말씀은 이단 때문에, 이단을 막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후서,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 일․이․ 삼서, 유다서>가 전부 교회에 들어온 이단 때문에 쓴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나운 이리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바울이 3년 동안 가르친 말씀과 +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와, 항존직은 양떼를 이리떼에서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고자 하면 우리가 먼저 말씀 안에서 든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이점을 명심하시고 억지로 말씀을 보라고 해서 보는 것이 습관적으로 말씀 안에 거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베푸는 삶을 살아라.
  33-35절을 보세요.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자고로 지도자라면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장로, 안수집사, 권사님들이여 주는 삶을, 베푸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장로님들을 보면서 이런 점에서는 훌륭하신 분임을 인정합니다. 늘 베푸시는데 앞장 서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 모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살아생전에는 보지 못할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에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하고, 사랑의 권면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사심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설교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권면한 것입니다. 이 설교와 권면을 오늘 우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설교와 권면을 한 후 바울은 그들과 헤어집니다. 그 헤어지는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영적으로 하나 된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37-38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이 말씀을 보는데 경주남부교회에서 7년 2개월 사역하고 이사한 날이 생각났습니다. 100명이 훨씬 넘는 성도들이 이사하는 날 나와 송별 예배를 드리는데, 담임목사님도 울고, 저도 울고, 성도들도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헤어지는데 경주에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내당교회까지 따라와서 예배하고, 이사하는 집까지 와서 본 후 헤어졌습니다. 정이 없다면 이런 송별은 없었겠지요.
지금 바울을 전송하는 에베소교회 장로님, 밀레도의 교인들이 울음, 안고, 입 맞추고, 배에까지 전송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사랑의 눈물이 있고,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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