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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MK75n7j0WVU
본문 사도행전 27:1-26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10-14

사도행전 27:1-26 바울의 4차 전도 여행

 

3주 만에 다시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3번에 걸친 바울의 재판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24장 총독 벨릭스 앞에서 / 25장 총독 베스도 앞에서 / 26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한 상태이기에 로마를 향하여 가게 됩니다.

 

1-2절이 그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1,2,3차 전도 여행의 출발점은 <수리아 안디옥>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출발했습니다. 전도 여행길이 힘든 길이었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몸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로 가는 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유의 몸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묶인 채 출발했습니다. 로마로 도착해도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그 힘든 길에 동행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바울을 인솔하는 <백부장 율리오>와 <다른 죄수들>이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만, 그 사람 말고 동행한 자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의 동행자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 2절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입니다.

아리스다고가 어떤 사람입니까?

-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일하다가 가이오와 함께 투옥되었던 사람입니다(행 19:29).

-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 동행한 사람입니다(행 20:4).

- 바울이 로마로 갈 때에도 동행을 했습니다.(행 27:2)

학자들은 바울의 노예 혹은 몸종으로 특별히 자기의 이름을 올려놓고 바울과 함께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 골로새서에 보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골 4:10)라고 합니다.

바울과 함께 로마 옥에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종합하면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준 바울을 위해 스스로 자기를 던지고 몸종이 되어 로마 감옥을 향해 가는 주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또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이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이입니다.

1절을 다시 보세요. “우리가 배를 타고 .....”하면서 <우리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입니다.

-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복음을 영접했고, 바울의 2, 3차 전도여행에 동참했습니다.

- 그의 직업은 의사로서 병약한 바울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 번 투옥되었을 때에도 빠짐없이 동행했습니다.

- 바울은 그를 “사랑을 받은 의사 누가”(골 4:14)라고 평가합니다.

- 그는 우리가 가진 성경 중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입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하는 말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저는 바울의 4차 전도여행 동행자들을 생각하면서 바울이 그렇게 능력 있게 사역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 + 바울의 열정>과 더불어 <이렇게 헌신적으로 동역한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별 동역자>

구분

동역자

1차 전도여행

바나마, 마가요한

2차 전도여행

실라, 디모데, 누가(도중합류)

3차 전도여행

누가, 디모데

4차 로마여행

누가, 아리스다고

전도여행별로 대표적인 사람만 기록했지만 이 사람들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바울의 사역에 동역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위해 도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바울과 동역자들을 보면서, 오늘도 우리교회가 살아나고, 한국교회가 살아나려면 <목회자와 성도들이>동역할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주일 교회창립 47주년을 보냈습니다만, 47년의 교회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언제 부흥했습니까? 반대로 언제 어려웠고 부흥되지 않았습니까?

담임목사 + 중직자 + 성도가 한 마음으로 동역했을 때 부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담임목사 + 중직자 + 성도가 동역은 고사하고 서로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는 교회가 힘들었을 것이고, 있던 교인들도 교회를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바울과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도왔던 <누가와 아리스다고>처럼 목회자와 성도들이 동역하면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 + 중직자 + 성도가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때 우리교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흥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렇게 동역해서 사역함으로 계속해서 부흥을 이루어가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다시 들어가 보십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지도 참조>

출발지 : 가이샤라

인솔자 : 백부장 율리오 / 바울(누가, 아리스다고) + 죄수 몇 사람

목적지 : 로마

처음 탄 배 - <아드라뭇데노>, 아드라뭇데노는 배 이름이 아니라 지명입니다.

지도를 보면 지금의 터키 끝, 그리스도와 맞붙은 쪽 흑해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아드라뭇데노> 보이시지요?

이 배는 작은 배로서 지중해 연안과, 흑해 연안을 다니면서 사람과 화물을 수송했던 것 같습니다.

 

이 배를 타고 가다가

<시돈>에 정박합니다. - 시돈은 예수님이 공생애사역하실 때 들려서 수로보니게 여인에서 복음의 씨를 뿌린 곳입니다. 그 이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시돈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시돈에 잠시 정박한 틈을 이용해서 교인들을 심방했던 것 같습니다.

 

<무라>에서는 배를 갈아탑니다. 그 동안 타고 온 배는 <아드라뭇데도>로 가는 작은 배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로 가는 큰 무역선 <알렉산드리아호>로 옮겨 탑니다.

※ 무라는 성경에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잘 아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사역지가 무라 입니다.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무라 성읍의 감독이 <니콜라스>이었습니다. 그는 어린이와 뱃사람에게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東)지중해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은 니콜라스 이름 앞에 <성(seint) 자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니 <세인트 니콜라스>가 된 것입니다. 세인트 니콜라스가 – 발음하다보니 <산타클로스>가 된 것입니다. 성 니콜라스는 수호성인에서 → 크리스마스의 인물로 바뀐 곳입니다.

그 니콜라스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았던 곳이 바로 <무라>입니다.

 

<니도> -- 무라에서 배가 더디어 간신히 니도까지 왔다.

<미항> -- “아름다운 항구”라는 뜻입니다.

미항에서 바울은 예언적인 말씀을 합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9-10절)

 

여러분! 바울은 그동안 3번에 걸친 선교여행을 하면서 배를 타고 지중해 여러 번 여행해 본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면서 고행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에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고후 11:25)

“바다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6)

 

여러분!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하지 못합니다.

저는 울릉도에 한 번 가 보았습니다. 20년 가까이 되지만 울릉도는 다시가고 싶지 않습니다. 포항에서 4시간 정도 배타고 울릉도에 도착하니 가만히 서 있는데도 육지가 울릉, 바다가 울릉 울릉해요! -- 그래서 울릉도구나! 생각할 정도로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바울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지중해를 수차례 여행하면서 지중해 바다 전문가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시기상으로 <금식하는 절기> 즉 대 속죄일(7월 10일) 우리 달력으로 말하면 9월 하순 정도 되었기에, 더 이상 항해 하면 풍랑 때문에 위험하니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고 .... 봄에 로마로 출발하자고 한 것입니다. 더 이상 가면 <하물, 배, 우리 모두의 생명>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11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배의 총책임을 졌던 백부장은 – 바울의 말은 무시하고, 바다의 경험이 바울보다 더 많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어 버립니다.

 

그래서 미항을 떠나 <뵈닉스> 항구로 향해 떠납니다.

뵈닉스가 큰 항구 도시였기에, 유흥가도 있었을 것이고, 겨울 나는데 지겹지 않을 것 같아서 뵈닉스로 가게 됩니다.

문제는 ..... 처음에는 순풍이 불어와 자신들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우리는 유라굴로를 태풍의 이름처럼 생각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영덕에 큰 피해를 주었던 <콩레이>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라굴로는 태풍이름이 아닙니다.

유라굴로는 두 말이 합성된 말인데 <동풍>을 가리키는 헬라어 ‘유로스’

+ <북동풍>을 가리키는 라틴어 ‘아퀼로’

의 합성어입니다. <유로스 + 아퀼로 = 유라굴로>

그래서 유라굴로는 <동북풍>을 말합니다.

당시 초겨울에 불어오는 무서운 계절풍을 말합니다.

 

이 무서운 유라굴로가 불어오자 ........... 결국은 알렉산드리아 배에 탄 사람들은 고생 고생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다음주일에 이어서 생각할 <멜리데 섬>에 도착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유라굴로 때문에 점점 힘들어 가는 내용을 본문에서 찾아보면 재미있습니다.

1.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15절)

2.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17절)

3.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18절)

4.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19절)

5.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20절)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여행한 결과가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주의 종이 권면한 말씀을 떠난 결과는 요나 선지자처럼 풍랑이 심해 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든 주님 가까이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마지막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탄 사람 모두 실낱같은 희망도 없을 때 ..... 바울이 그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다.

 

21-26절 말씀입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여러분 주의 종의 중요성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평안할 때 저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심방을 가려 해도 청소하기 힘드니까 안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가정에 다급한 일이 생겨보십시오.

그런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어야 하겠지만 <식구 중 누가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누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러면 새벽 2시, 3시도 좋습니다. 제게 전화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며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장례절차는 이렇게 하십시오. 지도해 주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에게 목회자가 가장 필요한 때는 <장례식>때 입니다.

 

바울도 보십시오.

미항을 떠나고자 할 때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번 항해 위험하다. 하물은 물론 배, 그리고 우리의 생명도 위하니 미항에서 머물라>고 했지만 <선장, 선주, 백부장>은 — 바울의 말을 무시합니다.

그 결과 .............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제 바다에 수장되기 직전에 ...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서 말합니다.

 

이제는 바울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합니다. 왜요? 바울이 말한 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바울이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살펴보십시다.

 

1. 그들의 잘못을 꾸짖었습니다.

21절 “…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들에게 왜 나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꾸짖습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성도들이 이런 저런 일로 저와 상담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기는 하지만 결정은 자신의 뜻대로 할 때가 많지요. 왜요? 자신들이 더 사회의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담을 해서 목회자의 뜻은 이런데?> 알면서도 결정은 자신의 뜻대로 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이 있으면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기도하고, 목회자와 상담을 하면서 물어보시고 그 결정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2. 두려워하는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은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배는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정확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그 사실을 알았을까요? 천사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한 말이 24절에 나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천사의 말을 들어보면 바울도 풍랑으로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 너는 가이사 앞에 설 사람이다 ... 여기 탄 276명의 생명도 너에게 맡긴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 환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고, 천사를 만나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말씀 때문에 바울은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3. 바울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임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주일에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 말씀에서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인생에도 풍랑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성경에서, 설교에서, 기도로 통해)

② 내가 받은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사명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③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에게 닥치는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손잡고 담대히 일어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평상시는 물론이요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일어서고, 나아가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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