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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PxeK8X7nVHQ
본문 시편 32:1-1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2-10

시편 32:1-11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나는 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도 건강이 좋지 않아!

나는 예수님을 믿어도 돈이 잘 벌리지 않아!

나는 예수를 믿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라는 말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데 <건강, 돈, 평안한 마음>이 없어서 자신은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성도님들이 있을까요?

그분들의 경우에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직도 성도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유교>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자가 말한 생각들이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체계화한 서경(書經)에 보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오복(五福)>복이 나옵니다.

첫째, 수(壽) - 장수하는 것

둘째, 부(富) -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

셋째, 강녕(康寧) -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한 것

넷째,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웃이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것

다섯째, 고종명(考終命) - 재명대로 살다 자신의 집에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돈은 벌리지 않으면 “나는 예수를 믿어도 왜 이렇게 지지리 복이 없는지 몰라!”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런 분이 계시다면

지금부터는 공자가 체계화한 서경(書經)(×)을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聖經)(○)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십시다.

시편을 여는 열쇠가 되는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은”하면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시편 1편 1-2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 <범죄 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둘째 <율법을 사랑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우리가 그동안 복이라고 생각한 오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복은 세상의 것, 육신적인 것이라고 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영적인 것,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의 <범죄 하지 않은 자>의 복의 연장으로,

오늘 본문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은 자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시편 32편 1-2절을 보세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 있도다”

죄 사함을 받은 자, 죄가 가려진 자가 복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시편 32편 표제에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했습니다.

마스길 은 “교훈”이란 뜻입니다. 다윗이 사람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쓴 시라는 말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었고, 죄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쓴 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던 다윗이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까? 그 죄는 다윗의 인생에 단 한 번이지만 큰 오점을 남긴 죄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의도적으로 죽인 죄>입니다. 죄명은 <간음죄, 살인죄>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로 내려가 보면 그 정도의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군부 세력이 독재할 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지금부터 3,000년 전에 이스라엘을 통치한 다윗 왕에게 <유부녀를 취하고, 그 남편을 죽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문제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밧세바는 다윗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최소한 1년 넘는 세월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죄가 넘어가나 싶었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다윗의 지은 죄를 지적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야기를 하나 합니다.

왕이시여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이 새끼 양을 딸처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인이 부잣집에 왔는데 부자가 자기 집에 있는 소나 양을 잡자니 아까워서 가난한 집에 있던 양 새끼를 빼앗아서 잡아 대접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윗은 화를 내면서 이런 일을 행한 부자는 <마땅히 죽을 자라> 하면서 <그 양 새끼를 율법대로 네 배를 갚아 주라>고 나단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고 난 후 1년이 넘도록 아무 일이 없었는데, 자신의 죄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 통해서 당신이 죽을 죄인이라고 지적을 받는 순간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자 나단 선지자는 용서의 선언을 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 하)

 

사무엘하 12장에서는 다윗이 회개했다는 사실을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철저하게 회개를 합니다.

그 내용이 시편에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한 편은 유명한 참회시인 시편 51편이고, 또 한 편은 오늘 본문 시편 32편입니다.

차이라고 하면 시편 51편은 참회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시편 32편은 회개 후에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사죄의 기쁨을 간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하고 본문을 보면 <다윗의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중요한 몇 구절을 살펴보십시다.

3-4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몸에 가지고 있으면 괴롭다는 것입니다. 마치 독약을 마시면 위장이 괴로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죄란 우리의 몸에 있으면 무겁고, 괴로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죄로 너무 너무 괴로웠는데 회개했더니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새 가족을 위해서 본문 중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셀라>의 의미입니다. 4절 하반절에도 (셀라), 5절 하반절에도 (셀라), 7절 하반절에도 (셀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제가 성경을 봉독하면서 셀라라는 말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셀라의 정확한 뜻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셀라는 음악용어 중에 지시어로 ‘높임’, ‘중지’란 뜻으로 봅니다.

- 노래를 부를 때에는 음성을 높이라, 연주를 할 때 그 음을 높이라는 뜻,

- 노래하는 사람들이 악기가 연주되는 동안 잠시 침묵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읽을 때에는 읽지 않은 것입니다.

 

자, 본문 중 중요한 몇 구절을 더 보십시다.

8절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바르게 살도록 훈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10-11절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불러주시고, 의롭다고 칭함 받은 사람들은 죄를 용서해 준 하나님께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죄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생각해 보십시다.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두 가지 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원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려고 하면 아이들을 잘 살펴보시면 압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아직 세상의 때를 묻지 않았기에 어릴 때부터 천사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면 어떻습니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보면 어떻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하는 행동을 보면 겁날 정도로 죄 성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그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때문입니다.

 

그 원죄를 누가 해결해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순간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날 메시야를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할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서 내 죄 값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꼭 알아야 성경말씀을 두 곳 소개합니다.

먼저, 이사야 53장 4-6절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인인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로마서 5장 6-11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읽고, 읽고 또 읽어도 감격스러운 내용이 아닙니까? <연약한 우리, 죄인 된 우리,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나, 여러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지옥 갈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으니, 이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죄인 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돌아가셨고, 그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원죄는 -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는 – 회개기도를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니 우리야 말로 복 받은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1편의 기자도 깨달았습니다. 이 사실을 32편을 기록한 다윗도 깨달았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도 깨닫고 로마서 4장 7-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며 오늘 본문 1-2절을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이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자로 원죄와 자범죄가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십자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지옥 갈 우리가 이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복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복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8장 35-39절을 보세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저는 우리 성도들도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장모님 이야기입니다.

유목사의 장인은 종교교회 담임목사였다고 합니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유 목사님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편 목사님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사모님이 홀로 집에 돌아오자, 그제야 ‘아 나는 정말 혼자구나!’ 하는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 왔다고 합니다.

당시 맏딸은 고 3(후에 유 목사님과 결혼해 사모가 됨), 중간에 둘,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라고 하니 그 막막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사남매를 고스란히 남겨 둔 채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사택도 곧 비워 줘야 하니 집도 없고, 마땅히 먹고 살 방법도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염려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을 때, 하필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장로님이 찾아와서 “사례비와 퇴직금, 장례 때 들어온 조의금을 모두 담았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생활비입니다.”라고 하며 봉투를 하나 놓고 가시더랍니다. 그 밤에 사모님은 펑펑 울며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우리 어디 가서 살아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시키고, 어떻게 먹고 삽니까?” 그렇게 울며 밤새 기도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불러 가실 때에는 다 뜻이 있을 텐데, 하나님께서 나와 아이들을 능히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텐데, 내가 왜 이렇게 쓸데없이 걱정만 하고 있나?” 이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자 슬픔과 두려움의 기도가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먹을 것도 공부시킬 것도 다 마련해 주실 테니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보니 어느덧 새벽기도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가려고 일어나 방 안에 불을 켜 보니 방바닥에 봉투 하나가 보였습니다. 바로 어제 저녁 장로님이 두고 가신 봉투였습니다. 그때 유 목사님의 장모님은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에 봉투를 열어 보지 않은 그대로 감사헌금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이 어디서 올까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확실히 믿는 자에게 이런 믿음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어떤 역경과 환난이 오더라도 주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는 믿음,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성도여러분 말씀을 마치며 질문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까?” <아멘>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받지 못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에도, 그 어떤 환경에도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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