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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dViXbRmZTj4
본문 요한복음 14:1-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7-14

요한복음 14:1~7 예수님의 정체성 ⑥ 나는(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고 싸우면 반드시 위태로워지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고 싸우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며’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싸우면 백 번 싸워서도 절대 위태로워지지 않는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실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나는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아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생각하기 전에,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는 피조물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어떤 의미와 목적, 위험도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죄인이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우리 중에는 멀쩡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같이 문제가 있고, 구원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성군, 다윗도 시편 51편을 읽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셋째, 나는 고통 받는 존재다.

로마서 8:22 을 보면 우리가 사는 타락한 세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아파서, 때로는 낙심해서, 때로는 짓눌려 고통스러움을 느끼고 탄식하고 살아갑니다.

 

넷째, 나는 성도다.

성도란 <신적 인품과 능력에 도달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도란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받은 은혜로 구원과 용서함을 받고 회복한 사람들”을 줄여서 성도라고 부릅니다.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진심으로 구주로 믿는 사람은 모두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나의 존재는 이렇게 4가지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피조물, 죄인, 고통 받는 존재, 성도>

이런 4가지 정체성을 가졌기에, 우리에는 예수님이 없다면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 모든 정체성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고, 예수님만 그 중심에 계시면> 그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끊임없이 바라보고(히 12:2)”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예수님의 정체성 6번째 《“나는(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위치한 요한복음 14장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6장을 <다락방 강화>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듯이 강의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다락방강화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산수훈>의 말씀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두 곳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특성이 잘 녹아 있습니다.

 

<산상수훈과 다락방강화를 비교> 해 보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

다락방강화(요한복음 14-16장)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설교

공생애 마지막 때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하신 설교 (산상수훈과 3년 공백이 있다.)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하신 설교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 비공개적으로 하신 설교

예수님의 삶의 본질과 원리를 보여줌

예수님의 죽음과 그 후 성령의 임재, 우리 삶에 대한 내면적 깊이를 보여줌

이 두 곳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다면, 예수님의 삶의 원리와 본질을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본문 1절을 보십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다락방강화는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 비공개적으로 하신 설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도,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알 수 있겠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슨 이유인지 근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슨 이유로 근심하고 있었을까요?>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심각한 대화를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를 하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 한 사람 씻어 주셨습니다. 그 후에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살과 피’라며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이상한 말씀과 돌발적인 행동에 근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가룟 유다가 자신(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하고 상징적인 존재인 베드로마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다락방의 전체 분위기가 썰렁해졌고, 제자들이 마음은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이지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시게 되지만, 3년 동안 그분을 따랐던 제자들, 더욱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장관 정도의 차지하려고 했던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이야기는 <쉽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근심에 빠진 것입니다.>

엄밀히 말씀드려서 지금 근심에 빠져야 하실 분은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그렇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비교한다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예수님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을 말씀으로도 얼굴로도 표현하시지 않고, 오히려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아들과 딸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러분, 장마철이라 비가 주중에도 내린 적이 있습니다만, 비가 올 때, 구름이 낄 때는 세상이 어둡습니다. 밤에는 더 어둡지요? 그렇지만, 세상이 어둡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지 것은 아닙니다.> 태양은 항상 떠서 빛을 비추고 있지만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때로 구름이 태양을 가리기 때문에 어두워지고, 캄캄해지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태양은 항상 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천국은 가공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작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음, 눈물, 슬픔, 애통,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부족함이 없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천국이 우리에게 있으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성도를 데리고 오시기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이렇게 천국에 대한 완벽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이야기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4-5절 보세요.

예수님 = 4절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 = 5절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정도쯤 되면 너희들이 천국 가는 길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심 많던 도마는 솔직하게 <아직 잘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고, 그러니 당연히 천국 가는 길도 모릅니다.>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한복음 8:23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도표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 + 성도)

 

 

          세

 

 

 

 

 

 

(우리)                                                                           (불신자)

 

예수님은 위에서 부터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하늘에서, 천국에서 오셨기에,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기에 어떻게 해야 천국으로 가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가본 사람보다 큰 소리치고, 잘 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서울 살아 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알고, 서울에 가 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기에, 천국이 어떤 곳인지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기에, 천국에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가 갈 수 있는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직 천국 가는 길을 모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여섯 번째 에고 에이미.‘나는 — 이다’입니다.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유명한 기독교 고전을 쓴 <토마스 아 켐피스>는

6절을 이렇게 은혜롭게 풀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니라. 길 없이 가는 것이 없고, 진리 없이 아는 것이 없고, 생명 없이 사는 것이 없느니라. 나는 너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이다.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다. 반드시 소망해야 할 생명이다. 나는 신성한 길이다. 나는 무오한 진리다. 나는 다함이 없는 생명이다. 나는 가장 빠른 길이요. 주권적 진리요, 참 생명, 복된 생명,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이니라.”

 

그렇습니다.

1. 예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란 말을 했습니다.

<아침에 도(道)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는 말입니다. 그 만큼 도를 듣고 깨닫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석가는 길(道)을 찾기 위해 출가하여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시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9-20 에 보면 주님의 길 되심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세상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며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진리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천국에서 살게 하는 유일한 생명입니다.

생명의 반대 개념은 사망이지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생명(조에: 영원한 생명)>이고, 반대로 사탄이 주는 것은 사망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19세기 부흥사 무디(D. L. Moody)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아마 얼마 남지 않아 여러분은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이 무디가 죽었다는 소문 말입니다. 혹 신문에도 나서 여러분이 보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런 소문 곧이듣지 마세요.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이 육신을 벗어 놓을 때가 지금 보다 더 분명히, 더 똑똑히, 더 깨끗이, 더 풍성하게, 더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이시게,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밝히신 후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종교다원주의자들, 그리고 나름 똑똑하고 교만한 자들이 이러쿵저러쿵해도 기독교를 폄하한다 해도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 아니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정체성 <피조물, 죄인, 고통 받는 존재, 성도>을 바로 알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아셔서,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천국의 삶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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