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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q6eyJA1gIU8
본문 요한복음 15:1-1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7-21

요한복음 15:1~17 예수님의 정체성 ⑦ 나는 참포도나무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사진 한 장을 보며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진 : 전북 고창군 화성농장 도덕현 대표>

지금 웃고 있는 도덕환 대표는 1994년 귀농한 25년차 농부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에는 총 24그루의 머루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머루 포도나무 24그루가 있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농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큰 나무 한 그루가 뒤 덮은 땅 둘레가 53m로 평수로 302평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이 나무에서 4,500 송이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당도도 보통 14블릭스(brix)인데 이 나무에서 난 포도는 당도가 20블릭스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덕현대표가 웃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설교를 들을 때 <도 대표가 포도송이를 보고 웃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맺힌 열매를 보고 웃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들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정체성 7번째 “나는 참포도나무이다.”는 것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다락방강화(요 14-16장)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세 가지 특산물이 있습니다. 감람(올리브), 무화과, 포도입니다.

그 중에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는 구절들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는 이르기를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사 5:1-7)라 했고,

예레미야 역시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가 너를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노라”

(렘 2:21)고 했습니다.

에스겔도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했고(겔 15:1-8, 19:10-14)

호세아도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호 10:1) 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심었는데 나무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타락함으로 극상품의 포도가 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심은 결과를>

이사야는 포도원의 황폐를 말했고,

예레미야는 “들 포도를 맺었다고”(사 5:2) 탄식하는가 하면,

호세아는 헛된 포도나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약의 역사를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며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1. 본문에 나오는 <농부, 포도나무, 가지>의 정의

1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① 성부 하나님은 : 농부입니다.

농부는 포도나무의 소유주로서 주권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처리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부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성도들의 활동 전체를 주장하시는 주(主)십니다. 농부가 포도원을 가꾸고 보살피듯, 하나님은 성도들의 상태에 매일 관심을 두고 주의하여 관찰하시고, 충실한 열매를 맺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② 성자 예수님 : 참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신 이유는

첫째로 들 포도가 맺혔던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대조하기 위함이요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의 백성에게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드러내며

셋째로 참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③ 제자(성도)들 :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열매>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열매>를 강조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 됨의 표식”(8절)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는 어떤 것인가?

고 옥한흠 목사님은 열매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과 그를 따르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해당되겠지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히브리서 13:15 에 말하는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의 삶>도 열매라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것>에는 <전도, 구제, 선교>같은 것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모든 것도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열매 맺는 방법은?

첫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0절까지 ‘내 안에 거한다.’는 말씀이 10번 정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4절, 7절입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지금 <다락방강화>의 관점에서 <예수님 안에 거하라>라는 의미는 <배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믿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과 관계성을 공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순종과 제자들 사이에 사랑을 의미한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너희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려고 하면, 어떻게든지 나를 배신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믿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과 관계를 공고히 하라는 것입니다.

 

7절에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두 가지 알려주셨습니다.

7절 다시 읽어 드릴 때 찾아보세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순교자였던 본 훼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님은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은 언제나 당신의 가슴에 울려야 하고 당신의 생활 속에 날마다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당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말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의 말은 따지고 분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에 마음을 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거나, 따지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열매들이 맺힐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7절 하반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묵상한 후 원하는 대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할 때에는 항상 <말씀 선포>후에 <기도>가 이어집니다.

새벽기도회도 그렇고, 수요성령기도회도 그렇습니다.

말씀과 연결된 기도가 왜 중요한가 하면? 말씀을 묵상한 뒤에 하는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 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을 묵상한 후에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망원경으로 수백만 마일 떨어진 우주 공간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망원경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망원경을 다 동원해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천상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도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다.”

 

쉴 새 없이 연구하는 물리학자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기도로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주님 안에 거함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말씀과 기도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면 첫 번째 이유는 <영적 게으름>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귀가 여러 가지 수단을 다 동원해서 우리가 말씀과 기도생활을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과감히 제거하시고 말씀을 보고 기도함으로 주님 안에 늘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매 맺는 방법? 둘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였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뜻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뼈를 깎는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뜻에 순종합니다. 죽음까지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그대로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열매 맺는 방법? 셋째,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 구약 성경 전체를 녹여서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가 나올 까요?

<사랑>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가 십자가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 <계명을 지키라>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12절 보세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3:34-35 에도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우리도 거할 수 있게 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책에 보니 <김요석 목사님>을 형제사랑의 샘플로 들었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의 유명한 튀빙겐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돌아오셔서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강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나이 많으신 어느 목사님이 김요석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당신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소?”

 

그 목사님 말씀에 충격을 받았어요. 당황해서 이 교수님이 목사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학문적으로는 훌륭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소. 그러니 당신 목회를 해야 됩니다. 목회를 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가 힘드니 목회하시오.”

그리고는 주소를 하나 적어 주었는데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영호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인지도 모르고 주소를 보고 찾아갔더니 거기는 나환자들이 수용된 곳이었고, 나환자교회였습니다.

부임하고 첫 주일 설교하려고 강단에 섰는데 앉아 있는 성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교인들 중에는 코도 없고, 눈도 퍽 들어가 있고, 귀도 없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손가락도 없고 주먹만 쥐고 앉아있으니

그냥 놀래가지고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목사님 자신도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모를 정도로 황망하게 설교를 마쳤습니다.

 

설교 후 교회소식 시간에 너무 미안에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부임했으니 여러분들과 인사할 수 있도록 예배 후에 기다리십시오.”

그렇데 축도를 하고 후주를 마친 뒤에 눈을 떠 보니 예배당 안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속으로 <잘 됐어. 잘못하면 나환자의 손을 잡아야 하는데 성도들이 다 가고 없으니 너무 잘 됐어> 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고, 예배당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성도들 전부 일렬종대로 서서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맨 처음 악수한 사람은 본당 제일 앞에 앉은 얼굴에 구멍 다섯 개 있는 성도였고, 두 번째로 어떤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 역시 손이 없어서 손목을 가지고 악수를 하는데, 거기에는 만지면 터질 것 같은 고름 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무척 망설여졌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머니의 손을 안 잡아 주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 라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의 손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너무나 좋으셨던지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내가 16살 때에 문둥병이 걸려서 수용소에 들어왔는데, 여기서 산 60년 동안 한 번도 성한 사람 손을 잡고 악수를 해본 일이 없었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손을 잡아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하면서 감격에 겨워 목사님의 손을 두 손목으로 비벼대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때 목사님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불이 내린 것처럼 가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때 그에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 손이 바로 예수님의 손이구나! 독일에서 공부할 때 어떤 교수가 날 보고 ‘하나님 본 적이 있냐? 하나님이 황인종이던가? 백인종이던가? 하나님의 손을 잡아 보았나? 차던가? 덥던가? 놀리며 질문했을 때 내가 한 마디도 대답을 못했는데, 하나님의 손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바로 이 할머니가 예수님이시구나.” 하면서 성령의 불을 받은 것입니다.

그 이후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신학교의 교수제안도 거절하시고> 나병환자들을 위해 국내와 해외에서 전념하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나병에 걸린 성도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악수하는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사랑>일 것입니다. 목회자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 부족합니다.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부족한데,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삶을 통해, 주님이 기뻐하는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상태가 잎만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열매인데> 열매는 보이지 않고, 잎만 무성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이다>라는 정체성을 밝히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기대하고 계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의 열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많은 열매>을 맺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 <포도박사 도덕현 대표가 포도송이를 보고 미소 짓듯>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동안 생각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나는 …이다’ 주장들】을 정리해 보십시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48, 51)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③ “나는 문이다”(10:7, 9)

④ “나는 선한목자이다”(10:11, 14)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⑥ “나는(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⑦ “나는 참포도나무이다”((15:1)

7가지 예수님의 정체성을 잘 아셔서,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아시고,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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