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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NTcPFc1e4eQ
본문 로마서 8:18~2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8-18

로마서 8장 강해 ④ 로마서 8:18-25 성도의 부활, 피조물의 회복

 

오늘 본문은 로마서 8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바울의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오늘 본문을 로마서 8장 가운데에서도 가장 절정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절정의 말씀을 들을 때 은혜 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앞 단락에서 성도가 받는 고난을 잠깐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는데, 그 상속 중에 고난도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절)

 

보통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대상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어보세요 그러면 병든 자는 병은 고쳐집니다. 마음은 평안해 집니다. 하는 일은 더 잘 될 것입니다. 자식들도 잘 될 것이고, 죽으면 천국을 갑니다.’라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 빠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귀와 마귀의 자녀들(세상 사람들이)>공격을 하기에, 크고 작은 고난도 받게 된다는 말이 빠졌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들에게 핍박과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오순절 성령 받은 교회를 향해서 산헤드린 공회는 핍박을 가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베드로 사도는 감옥으로 잡아 들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을 우리에게 그대로 받으라하면 믿음을 포기할 자가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바울로 통해서 복음을 받았던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도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살전 1:6)

자연수명을 누리면서 끝까지 사역했던 사도요한도 밧모 섬에 유배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고난은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육체적 학대와 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아내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술자리에 함께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진급에서 밀려나는 믿음의 가장들이 있습니다.

세상 여자들은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릴 때 예수님을 믿는 나는 그럴 수 없다며 바르게 살다가 빠듯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주부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차고 시집은 가야 하겠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할 수 없다며 혼기를 놓친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현재>는 주님이 부활하신 때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기간 전체를 말합니다. 흔히 말세라고 부르는 시대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개인으로 <현재는>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간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는 예수 믿고, 죽을 때까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말이고, 종말론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받는 고난을 이야기하면서, 성도만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전체가 고난을 당한다.>고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본문 19, 20, 22절에 말하는 <피조물>은 = <비이성적인 자연 만물, 즉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 /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 / 땅에 피는 아름다운 화초와 나무들 / 바다에 있는 물고기 등 모든 자연 만물을 가리킵니다.>

 

22절을 보세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피조물이 탄식하고 고통을 겪기 시작한 것은 창세기 3장부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은 죄에 동참한 모든 이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뱀에게 –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는다.

- 여자와 원수가 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

하와에게 –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해준다. 힘들게 자식을 낳을 것이다.

-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아담에게 – 평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땅이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들어온 순간, 남자, 여자, 심지어 <피조물> 전체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사역을 베풀 때마다 사람을 포함하여 피조물인 <동물들>까지 구원해주셨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노아가 만든 방주에는 <노아의 여덟 식구는 물론이요 = 온갖 동물과 새 들도 한 쌍씩 다 태웠고, 그들도 구원해 주었습니다.>>

 

모세가 <장자의 죽음> 재앙을 내릴 때, 애굽 사람의 사람의 장자는 물론이요, 짐승의 첫 번째 새끼도 죽였습니다. 반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히브리인을 살릴 때에는 히브리인은 물론이요, 그 집의 동물들까지 살렸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 가셨을 때 그 혜택을 받은 자들은 사람에게 한정하지 않습ㄴ디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 모두가 은혜를 입었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성도들도 영적으로는 구원받았지만, 육신적으로는 아직 마귀가 공중권세 잡고 있는 세상에 살아가야 되기에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도 죄로 인해서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1. 플라스틱 빨대 거북이>

유명한 사진이지요. 2015년 8월 10일 코스타리카 해역에서 바다거북 연구팀이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잡아 올린 수컷 거북이 왼쪽 콧구멍에 이물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물질을 힘들게 제거했는데, 그 이물질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빨대였다고 합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플라스틱 소비량이 1인당 132.7kg으로 세계 3위였는데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고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 2. 해양쓰레기>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버린 쓰레기들이 바다에 섬을 이루고 있는 모습

 

<사진 3. 왜래 종 나무 때문에 벌목해야 하는 나무들>

 

<사진 4. 녹고 있는 빙하>

이런 자연의 신음소리를 우리의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고통소리와, 자연의 고통소리는 이렇게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나무에 12제자의 이름을 걸어 넣고 12제자의 삶을 묵상했다고 합니다.

베드로에서 가룟 유다까지, 그런데 재미난 것은 가룟 유다의 이름을 걸어 놓은 나무는 얼마 후 부터 시들시들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가룟 유다의 이름을 떼어, 베드로와 자리를 바꿔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웬걸 말라가던 나무는 살아나고, 멀쩡했는데 가룟 유다의 이름이 걸린 그 나무가 또 시들시들 말라가더랍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조사를 해 보았더니 12제자의 이름이 걸린 나무를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열한 제자에게는 축복의 말과, 축복의 기도를 했는데 <가룟 유다>이름이 걸려 있는 나무 앞에서는 저주의 말을 하더랍니다.(너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라!, 너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왜 태어났니?) 이런 저주의 말을 들은 나무는 그 말을 듣고 시들시들 말라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저주의 말이 나무도 시들게 하고 죽이는데, 죄가 들어온 피조세계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자, 그럼 정리를 해 보십시다.

<성령 받은 우리들 / 본문의 표현대로 23절에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들” - 예수 믿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게 되었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우리들과> /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도> 지금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너무 힘들어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탄식은 <근심이나 원망 따위로 한탄하여 숨을 내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일종의 기다림의 탄식 / 사모하는 탄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탄식을 자신은 남자라서 경험한 적이 없지만 <해산하는 산모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산부가 출산할 때가 되면 하늘이 노래지고, 지구가 반쪽으로 갈라지는 듯 한 고통(극심한 통증)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출산시 너무 힘들어 어떤 산모는 이런 고통을 준 신랑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어떤 산모는 신랑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기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힘든 고통이고 탄식이지만, <산모의 탄식>은 창조의 탄식, 희망의 탄식입니다.

 

이제 그 산고가 지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새 생명이 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맞기에 산모는 고통을 기쁨으로 참아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나, 피조물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19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여기에서 <고대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목을 빼고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성도들을 물론 무덤에 있는 자들도 살아나 부활체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19절, 21절, 23절, 24절, 25절 말씀은 <모두가 재림을 소망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이 부활체의 모습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이 재림하시는 순간 순식간에 우리도 부활체로 변화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한 피조물은 그 이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요한계시록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그리고 부활 후 우리가 누릴 영광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험과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영광의 삶을 살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성도의 고난과, 피조물의 탄식,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로마에 있는 교인들과, 우리에게 두 가지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첫째, <고난과 영광>을 항상 비교하며 살아라.

18절을 크게 읽어보십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 : 장차 받을 영광은 비교 불가하다 >

현재의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받는 현재의 고난이 잉크 한 방울 정도라면,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태평양바다 보다 넓고 양도 많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은 고난과 영광을 비교할 줄 알았기에 이 땅에서 고난을 기쁨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을 고린도후서 11:24-27절에 소개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엄청난 고난을 당해고도 바울은 그것은 작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난을 <가벼운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반대로 영광은 크고, 무거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당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남편의 박해입니까? 자녀의 무시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조롱입니까?> <경제적인 고통입니까?>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 / 장차 여러분이 받을 영광은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고난을 기쁨으로 견뎌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는 가나안 땅도, 모세와 여호수아로 통해서 주셨습니다.

창세기 3:15절에 약속하신 메시야의 초림도 그대로 예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재림>역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재림신앙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들도 가졌고>

재림 신앙은 <사도바울도 가졌습니다.>

사도요한도 <재림신앙은 분명히 가졌고>

로마치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지하공동묘지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던 성도들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믿음의 선배들도, 일제강점기 때 성도들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 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해방되고 5년 후 6.25전쟁을 겪었을 때, 폐허가 되어 먹을 것조차 없었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재림신앙은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손양원 목사님이 작사하신 <주님고대가>는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지금 연세 드신 분들은 그 가사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5, 6절 까지 계속되는 가사가 얼마나 진솔합니까?

 

그렇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렸는데,

지금 우리들은 그런 간절한 기대가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먹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주님 오시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바울은 말씀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참음으로 기다리라.>

 

성도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삶이 힘드십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비교하며 살아라.>

<모든 것을 완성하실 주님의 재림을 참음으로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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