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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12월 27일
고린도전서 4:1-5 하나님과의 연말 결산

유명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씨스티나 채플의 천장벽화(천지창조, 인간타락, 노아 이야기)를 거의 완성할 때인 1524년경의 일이이었습니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을 향하여 마무리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조수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하기를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 후 몇 달 더, 계속해서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하면서 그 장소를 맴도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오늘 우리는 한 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결산주일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 하반 절에 보시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오늘 본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을 설명해 드리면,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10절에서 시작된 고린도 교회의 분열에 대한 논의의 결론부분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지도자의 문제로 인해서 분열이 생겼습니다.
성도들마다 나는 <그리스도 파,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베드로)파>라고 하면서 파당을 형성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를 중심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되겠는데, 성도들마다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는 바른 지도자이지만, 다른 지도자는 바르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매듭지으면서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절 - 복음의 사역자는 누구든지(베드로, 바울, 아볼로든)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다.
3,4절 - 주의 종에 대한 일체의 세상적, 인간적인 판단은 배제해야 한다.
5절 - 주의 종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전체적인 흐름은 당시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대한 판단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이 말씀은 내 개인적인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영적 지도자에 대한 것을 <우리 자신, 스스로에 대한 판단> 문제로 적용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세 가지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관점에서 어떤 것이든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해를 살아오면서 자신을 평가할 때에 <자신의 관점으로 평가하면 그 결산은 올바른 평가와 결산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지렛대, 자기의 판단 기준,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면 극단적인 경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기준점이 돼서 자신을 평가하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학하고, 비관입니다. (병신같이 한 해 살아왔구나! 한 해 허송세월만 보냈구나! 하며 자학하고 비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교만해 질수 있습니다.(야! 내가 생각해도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3절 하반 절부터 4절 상반 절까지 보세요.
“...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훌륭한 랍비에게 지혜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먼저 그를 시험해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멓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깨끗했다. 그러면 둘 중 누가 먼저 얼굴을 씻으러 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제자는 당연히 더러운 사람이 씻으러 갈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그러니까 당신을 지도해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랍비의 설명은 <얼굴이 더러운 사람은 상대방이 깨끗하니까 자기도 깨끗한 줄 알고 씻지 않지만, 깨끗한 사람은 상대방이 더러우니까 자기도 더러운 줄 알고 씻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1차 시험에서 떨어진 제자는 돌아가서 공부를 많이 한 후, 다시 랍비를 찾아와 자기를 시험해달라고 했습니다. 랍비가 똑 같은 문제를 내었습니다. “두 사람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멓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깨끗했다. 그러면 둘 중 누가 먼저 얼굴을 씻으러 가겠느냐?”
제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으러 갑니다.>
그러자 랍비는 ‘그래서 당신을 제자로 삼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얼굴이 더러운 사람은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먼저 씻으러 가고,
깨끗한 사람은 일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나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판단해도 남이 볼 때는 그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살아오면서도 그렇습니다. “내 스스로 지난 한해를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고 자학하면서 비관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판단이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초 긍정적으로 자신을 평가해도 그 판단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관점에서 본 내 인생의 평가와 결산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둘째, 바울은 타인의 관점에서 본 평가와 결산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했습 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멘토[mentor]가 필요합니다.
목회자는 자신보다 훌륭하게 사역하는 연세든 목사님을 멘토로 삼을 수 있고,
사업가는 자신보다 사업을 잘 하는 분을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나 선생님을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멘토가 맨티의 성향, 기질, 은사 등을 파악해서 잘 지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멘토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듯이 알아야 할 것은 <그 멘토의 충고를 100%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참고로 해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온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그 멘토의 판단을 최종적 판단으로 받아들이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를 판단할 때에는 참으로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2에는 비판에 대한 부분을 예수님이 분명하게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떤 여 집사님이 한국에 있는 미국회사에 다니시는 분인데 상당히 출세해서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집사님은 비행기를 많이 타시는 분인데, 한 번은 해외 출장을 가면서 어느 공항에서 경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타야할 비행기가 지연된다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않았기에 .. 느긋한 마음으로 가방 의자에 올려놓고 책을 꺼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시장기가 있어서 좀 전에 탄 비행기에서 준 치즈 크래커를 준 것을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그것이 생각나 그것을 꺼내 먹고 싶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먹으려고 손을 뻗치려고 하는데, 바로 그 때 한 신사가 자신의 가방 옆에 와서 안더랍니다. 그리고는 앉자마자 자기 치즈 크래커 하나를 집어 먹더래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 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 그 다음 부터는 자꾸만 신경이 책으로 안가고 옆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더랍니다. 이상 사람이 <크래커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고 그냥 나두고, 그 다음에 자기가 두 번째 것을 먹었대요. 그러니까 남자가 세 번째 것을 먹더랍니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냥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네 번째 것을 먹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준 크래커는 작은 것이어서 다섯 개 밖에 안 들었는데 하나가 이제 남은 것입니다. 집사님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고 옆 사람을 힐긋 보는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째 것을 이 신사가 짚더래요. 그러더니 중간에 크림이 있는 두 개가 하나로 붙여 있는 것이었는데 ... <그 가운데 반을 뜯더니 반쪽은 나두고 자기가 반쪽을 먹더랍니다.>

여 집사가 .. 그 순간 열이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고 해서 불쾌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 반쪽 남은 크래커를 바닥에다 탁 팽개쳐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이제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방송을 듣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를 타서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음이 안정 되서 무엇을 찾으려고 집사님의 가방을 딱 열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어찌된 샘인지 <자기 치즈 크래커가 그 대로 가방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여 집사님은,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열 받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옆 자리에서 자신의 크래커를 먹어도 그냥 보고 있고, 마지만 하나 남은 것도 반을 떼서 준 그 신사가 <얼마나 멋있는 신사였던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순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대할 때 너무 쉽게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록 나쁘게 평가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고 결산하라’고 했습니다.
4절 하반 절부터 5절 말씀을 보십시오. “...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한 해를 점점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성삼위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이야 말로 가장 잘 아시기에 <나를 가장 완벽하고, 나를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나를 가장 공정하게 평가하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그분에게 시선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인도와 네팔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롭 미첼, 원향희 선교사님에게 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국제결혼을 한 것도 아닙니다. 선교사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는 집도 물품도 아닙니다. 제가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반한 것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선교여행을 하면 선교사님들에게 대단하다는 평가 합니다.
어려운 선교지에서 사는 것, 많은 선교의 열매가 맺는 것 등 대단합니다. 칭찬합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은 인간적인 말을 압니다. “뭐요,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원향희 선교사님이 말하기를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칭찬해주실까?” 하는 것에 늘 주의하면서 사역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정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고, 마지막에도 하나님이 나를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교독문으로 읽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에 맞도록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고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하게 됩니다. 그 결과 ...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배를 남겼고, 하나님께 칭찬을 듣고 자신들이 남긴 것을 다시 선물로 받았습니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를 숨겨두었다가 결국 그 한 달란트를 빼앗기고, 어두운 대로 쫓겨나 이를 갈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예수님이 하시는 의도와,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하는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평가하고 판단하실 때, 그 의도는 처벌에 있지 않 다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모두가 5, 2 달란트 받은 자처럼 칭찬받고 상급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11에 보면 예수님은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서 주님은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긍휼과 자비의 목소리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 해 주셨습니다.

바울도 고린도교회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5절 하반 절에
“...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고 결산하는 이유는?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칭찬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한 “파괴적인 판단 , 파괴적인 비판>은 없어졌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분이 계신 분은 로마서 8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십시오.
로마서 8장 1-2 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오늘 결산주일을 맞아 .....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나름 부담을 가지고 오셨을 것입니다.
금년을 돌아보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데....
충성하지 못했는데 .....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자학하면서, 채찍질 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부 성도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을 판단하면서 <나는 열심히 했는데... 목사님은 다른 직분 자들은 너무 게을러!> 하면서 정죄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두 가지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모두는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한 숨 쉴 때도 많았고, 좌절 할 때도, 눈물 흘렸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오늘 결산주일예배까지 저희들이 함께 와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힘든 여정을 살아온 우리에게 채찍을 드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한 해 동안 수고 했지? 한 해 동안 많이 힘들었지?> 위로하면서 /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보라고 격려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금년 한 해 하나님은 우리교회에도, 성도님의 가정과 성도님에게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감사하면서 한 해 마지막 주일 <서로 격려하고, 칭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6에는 주님 뜻대로 더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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