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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j19e2mRAmb4
본문 요한복음 8:12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6-02

요한복음 8:12  예수님의 정체성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

 

복음서에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별도로 제 4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공관복음과 다소 다른 관점에서 다른 순서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좋아하는 복음이 다르겠습니다만, 요한복음은 특히 높은 수준의 진리를 말해주는 책으로써 많은 성도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고 있음을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계 4:7) 상징적으로 나타난 네 가지 영물들(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이 있는데, 이 영물들의 특성과 복음서의 특징이 서로 유사하여 비교하여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은 사자로 비유하는데, 사자는 동물들의 왕으로서 권세를 가진 동물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부각된 예수님은 율법을 권세 있게 해석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높은 권세를 가진 왕으로, 메시야로서의 주님을 강조합니다.

 

<마가복음은> 소의 특징과 비슷하다 하여 <소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소는 인간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동물로서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은 후에도 그의 가죽과 뼈와 살은 인간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희생적 동물입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특성도 생명까지 희생하며 봉사하시는 주님으로 부각되어, 말씀보다는 행동위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누가는 의사였기에 그의 시각으로 예수님께서 소외된 자들, 특히 많은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신 점에 감명을 받아 사랑이 넘치는 인간적인 예수님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한복음>은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독수리는 높은 곳을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요한복음에서 강조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됨과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묘사하여 아주 높은 데로부터 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높은 곳에서 한 눈으로 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는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와 다른 특징이 있는지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공관복음이 예수님의 행적 중심의 기록이라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길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떤 사건에 대해서 해설이 많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건에 대해 저자 자신의 해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서 사건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이다> 일곱 가지도 들어 있습니다.

 

셋째, 공관복음은 주로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요한복음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건이 많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넷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에 대한 보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사도요한이 이미 기록된 공관복음을 보면서 거기에서 누락되거나 부족한 것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요한복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늘 주실 말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지난 주일에는 ‘나는 — 이다 / 에고 에이미’ 첫 번째로 <나는 생명의 떡이다>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자신을 오해하는 자들에게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두 가지 의미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둘째, 인간은 날마다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날마다 주님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분명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나는 — 이다” 두 번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본문 12절을 다시 보세요.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말은 이전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7장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요한복음 7장과 8장은 이스라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초막절(수장절, 장막절)>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올리브, 포도 등을 추수하여 저장한 후 유대력 7월 15일부터 8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계산하면 대략 10월 15일 경으로 보면 됩니다. 이 절기에는 <열두 살 이상의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 천막을 치고 일주일간 생활을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조상들이 40년 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매일 아침마다 제사장이 금으로 만든 물 단지를 가지고 가서,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제단에 부어 바쳤습니다. 의미는 <광야 생활 중에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생수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다음해 농사를 위해 이른 비를 내려달라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 더 하면 메시아가 오실 때에 성령님을 물처럼 부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등 놀이 행사>를 했습니다.

등 놀이 행사란, 예루살렘 성전 뜰에다가 커다란 등 4개를 달아 놓고, 그 밑에서 제사장과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게인 등, 종교지도자들이 춤을 추고, 일반 백성들은 빙 둘러 않아서 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이 행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빛으로 시작하셨음으로 빛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한 마음의 빛, 도덕의 빛으로 임하는 율법의 빛을 찬양하며,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 세상으로 향하여 빛이 되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행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초막절 행사를 하는 것을 보시면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연못의 물을 떠서 제단에 붓는 것을 보면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하셨습니다.

<등 놀이 행사를 보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 으리라”(8:12)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처음 들었던 자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 가운데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사람은 처음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빛으로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성부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빛으로 계시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부를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내셨습니다.(출 3:2)>

 

-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과 애굽을 구분하실 때, 애굽 땅에는 3일간이나 캄 캄한 흑암으로 덮이게 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도록 했습니다.(출 10:23)

 

-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 그들을 비춰주셨습니다. (출 13:21)

이 세 가지 사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빛으로 계시함을 말씀합니다.>

 

신약으로 와도 이런 증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의 탄생을 별로서 나타냈고,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주의 사자의 영광 의 빛이 양치는 목자들에게 임했습니다.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 예수님이 세 제자들과 더불어 변화 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그의 옷이 빛과 같았음을 제자들이 확인했습니다.(마 17:2)

 

- 성도를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려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 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췄습니다. 그 빛으로 사울은 3일 동안 시력을 잃었습니다.(행 9:3)

이 세 사건 역시 <성자 예수님이 빛으로 계시된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빛 되신 <하나님>을 모르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기에 우리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주님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본문은 두 가지 혜택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빛 되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혜택?>

1.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합니다.

여러분! 빛이 없는 캄캄한 밤을 생각해 보세요.

첫째, 거기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 어두운 가운데서도 도적이 와서 구멍을 뚫거나 살인자가 와서 사람을 헤쳐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있으면 이와 같은 위험 속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거기에는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빛이 없는 또 하나의 현상입니다. 요즈음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만, 전기 공급이 좋지 않을 때 밤에 정전이 되면 아이들은 무서워합니다. 자연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잠시 동안도 아니고 어두운 상태가 계속 된다고 가정해 보세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셋째, 거기에는 무지만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글자가 보여야 책을 읽고 지식을 얻을 것이 아닙니까? 또 상대방의 얼굴을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 세계 지도를 펴 놓고, 빛이신 예수님이 들어간 나라들과, 빛이신 예수님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해 보세요.

공산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예수님을 모르는 나라들이 어떻게 삽니까?

 

제가 가 본, 인도 사진을 몇 장 보세요.

<길거리 소 사진 – 2장 / 갠지스 강 사진 - 2장>

 

힌두교는 소를 신으로 섬깁니다. 사실은 소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이는 모든 것이 신이지요. 신이 2만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신이 소입니다.

길거리에 소가 활보합니다. 만약 차가 소를 치어죽이면, 사람들은 차를 불질러버린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을 죽였으니까요?

갠지스 강을 어머니의 강이라고 생각해서 강변에서는 매일 80구 이상의 시신을 화장합니다. 그리고 갠지스 강에 버립니다. 그러니 강에는 화장이 덜 된 시신들도 있습니다. 그런 더러운 강을 그들은 성스러운 강이라고 믿고 목욕을 합니다.

 

여러분! 13억 5천의 인도 사람이 <빛이신 예수를 믿고>,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구별할 줄 안다면 그들이 지금 이렇게 살겠습니까?

길거리에 다니는 소만 잡아먹어도, 먹는 걱정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화장해 강물에 버려 오염만 시키지 않아도, 깨끗한 물을 먹고 살 텐데, 지금은 물이 오염되어서 식당에서 파는 야채하나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빛이 없으니, 그들에게는 무지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하게 사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12절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46 에도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말씀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빛 가운데 있으므로, 절대로 어두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5:8-14 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4-8 에도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 두 곳 말씀은 빛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서 살아가야 할 구체적인 일을 지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빛 되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혜택?>

둘째,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했습니다.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하반절) 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명 그 자체가 되는 빛을 소유했다>는 말입니다.

식물과 동물은 물론 사람 역시 빛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빛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추가 말씀은 요한복음 9:5에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쳐줍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릅니다. 그리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말씀하셨습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자에게 –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고 – 실로암게 가서 씻으면, 눈이 보일까요? 상식적으로 보면 웃기는 소리,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웃기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체 빛이고, 세상에 빛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을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맹인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밝은 눈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시각장애자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명, 인간의 삶은 빛 가운데서서 보장됩니다.

말라기 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생명을 소유한 자이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의 기적을 영, 육간에 가져 생명을 갖게 됩니다.

빛 되신 예수로 말미암아 병자는 고침을 받습니다.

빛 되신 예수로 말미암아 어둠의 권세를 가진 마귀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 거하는 자들은 시편 기자의 말씀대로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 어두울 때에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91:5-6)의 혜택이 주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의 빛 되신 주님을 잘 따르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의 복을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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