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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tSSr04Y9V8M
본문 요한복음 10:11-2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6-23

요한복음 10:11~21 예수님의 정체성 ④ 나는 선한 목자이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행동하는 신학자이자 행동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나치정권이 야만적인 폭력으로 유럽 전역과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을 때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가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베를린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4월 4일 39살의 젊은 나이로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고, 전해야 할 진리의 말씀도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암담한 시절,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디트리히트 본회퍼 1944년 7월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다정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한 연 생략)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에도 본회퍼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인지?’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나는 ... 이다” 라고 말씀한 7가지 가운데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48, 51)

둘째,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9:5)

셋째, “나는 문이다”(요 10:7, 9)

 

오늘은 네 번째로 “나는 선한 목자이다”(요 10:11, 14)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말씀의 시작은 요한복음 10장 1-5절 에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이고, 우리는(나는) 양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나는 문이다. /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는 정체성 두 가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는 선한 목자이다’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는 정체성에서 2가지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게 됩니다.

 

첫째, 선한목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

14절 “나는 선한 목자라 …” / 이 두 표현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보면, 이 역시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그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말에서 <형용사 선한(칼로스κάλός)>이라는 단어는> 아무에게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내용이 내용이 나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절)하며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절)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선하다는 말을 오직 하나님께만 한정해서 쓸 수 있는 단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면서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하며 ‘선한’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공개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신앙고백)

이렇게 저자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밝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선하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간접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는 정체성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선한목자의 3가지 특징

1)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b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절 a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18절 a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예수님의 진가를 알려면, 당시 일반 목자들은 어떠했는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 34장에 <목자 되신 하나님과. 삯군과 같은 삶을 살았던 당시 지도자를 비교하며 책망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삶>은 이러했습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 34:3-6)

 

반면 참 목자 하나님의 사역은 이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들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34:12-15)

 

에스겔 시대의 참 목자이신 하나님과, 당시 세상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차이가 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시대에도 똑 같았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삯군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양을 이용하다가, 자신에게 해가 되면 자기만 살려고 36계 줄행랑을 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 예수님> 양을 살려내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버림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스스로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시 한 편을 생각해 보십시다.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찧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재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드렸는디

 

무슨 내용인지 아시겠습니까? 버스기사는 정해진 노선에 따라 버스를 운행해야 하는데, 무릎이 아프신 노인을 위해 노선을 위반하고 태워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이제는 눈이 어두워, 자신을 태워드린 기사도 못 알아보자, 더 안타까워하는 기사의 마음을 표현한 시입니다. <기사가 어르신을 위해 노선을 위반해서 버스를 운행했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선한목자> 예수님도 <아름다운 위반>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노선 위반을 했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하는데, 죄인을 위해서 선한 목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우리의 영혼이 불쌍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그러셨습니다.

그것이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선한목자와 삯군을 비교하는 주님의 말씀에서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목자 되신 하나님과 당시의 양을 이용해서 배를 채웠던 삯군과 같은 당시 지도자를 보면서 ............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가슴이 찔려왔습니다. 선한 목자를 닮은 지도자는 되지 못하여 삯군이라 할지라도 삯이라도 다하는 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교역자,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들이여 — 영적 지도자 된 우리 모두 주님을 닮은 목자가 되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선한 목자는 양을 안다.

14-15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시는 것 같으니 …”

 

선한목자는 – 양의 이름, 특성, 기호, 성격, 소원, 잘못, 허물도 압니다.

알 뿐만 아니라 양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용납하며 참으십니다.

 

반대로 양도 – 선한 목자를 알아봅니다. 목자인지, 도적인지? 목자의 음성인지 지나가는 아저씨의 음성인지? 목자의 마음이 좋은 상태인지? 화가 난 상태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 앎에 대해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 성자 예수님>의 앎으로 승화시킵니다. 한 마디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는 그런 앎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렇다는 것을 아는 자는 이런 찬양을 부릅니다.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그렇습니다. 선한목자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모든 아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돕고 계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선한목자는 양을 인도한다.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우리 안에 들어온 양들만 위해서 일하시는 목자가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 양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 한 구절만 알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님의 바람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유대인만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먼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그들로 통해서 <온 유대>지역이 구원 받고, 나가가 <당시 개 취급 받고 살았던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 받고>, 더 나아가 <땅 끝> 이방 통치의 중심지인 로마, 더 멀리 스페인 사람들도 구원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선한목자인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선한목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안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해야 하지요. 그러면서 우리 밖의 양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구역은 구역예배에 잘 나오는 분들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구역예배에 오지 않는 분들도 중요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선교기관은 회비를 잘 내는 회원도 중요하지만,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회비를 내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전체적으로 – 주일에 출석하시는 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지만, 주일에 이런 저런 이유로 결석하신 분들을 위해서도 관심을 가집니다. 매주 300여 넘게 출석하지만 반대로 결석하시는 분들도 80명이 넘어요. 이분들도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교역자들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에도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이 많기에, 우리교회는 선교사님을 지원하고, 교회를 건축하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목자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두 주 동안 생각한 말씀을 정리해보십시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두 가지를 그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나는 너희들과 같은 삯군 목자가 아니라, 선한목자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둘로 나누어집니다.

19-21절 읽어보십시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을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유대인은 – 예수님이 귀신들렸다 인정하며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호의를 품고 있는 사람은 –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나는 선한 목자이다’는 주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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