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38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6JV8dXdT3Go
본문 마가복음 1:3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9-09-29

마가복음 1:35 기도의 영성을 회복하라

 

내일부터 “신앙 선배들의 영성을 회복하라”(눅 22:42)는 주제로 가을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주제를 한 번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신앙 선배들의 영성을 회복하라> = <신앙 선배들의 영성을 회복하라>

 

주제에 ‘영성’이란 말이 나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영성(靈性)을 “신령스러운 품성이나 성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영성이란 말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타종교나 다른 곳에서도 사용합니다.

불교영성, 가톨릭영성, 교사영성, 노인영성, 순례영성 등 여러 곳에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영성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영성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나 현재 수도원에서 영성에 전념하는 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나는 영성을 이렇게 정의 한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씀합니다.

몇 사람을 소개하면

스티븐 바톤(Stephen C. Barton)은 “영성이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느낌과 그 임재의 빛 속에서 사는 것”

메조리 톰슨(Marjorie J. Thompson)은 “영성 생활이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안에 생명력이 충만해 가는 것”

은성수도원을 설립하시고 영성의 삶을 실천하신 엄두섭 목사님은 “영성 생활이란 유한한 인간이 초월적인 실재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을 회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하려는 생활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전문가들의 영성에 대해 정의했지만, 의미는 대동소이 합니다.

많은 분들의 영성의 정의를 보고 저는 영성을 이렇게 정의해 보았습니다.

<영성이란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과 교감하는 속성이다>

<영성이란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과 교감하는 속성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사람마다 영성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교감하는 속성이 있듯이, 성도님들은 성도님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느끼고 교감하는 속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영성의 속성을 벤 존슨(Ben C. Johnson)은 이미 6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벤 존슨의 영성의 6가지 속성>

① 복음주의 영성 –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것

② 카리스마 영성 – 기적적인 치유나 은사 체험을 강조하는 것

③ 성례전 영성 –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와 같이 장엄한 예전을 중시하는 것

④ 행동주의 영성 – 세속 사회나 공공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 구현을 위하여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것

⑤ 학문적인 영성 –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학문적인 탐구와 신학적인 작업을 중시하는 것

⑥ 금욕주의 영성 – 성도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도와 묵상, 금식, 고행, 자기부인, 청빈한 삶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것

 

여러분은 이 6가지 유형 중에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과 교감하는 영성>이 각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남들이 자신과 같은 영성을 가지지 않고 있다고 이상하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이분은 이런 영성을 추구하고 있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분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옆에 있는 성도들도 모두가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구체적으로 영성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제가 여러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영성이 있는 사람은?

-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 자기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 늘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

- 매일 성령에 이끌리어 그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

- 날마다 주님과 깊은 대화 가운데 그 정신대로 살아가는 사람

- 매일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 넘쳐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 그리스도를 호흡으로 간구하고 날마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

- 날마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

- 일분일초라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소원하는 사람

- 하나님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그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

- 매일 그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승리를 맛보는 사람

- 십자가의 보혈에 젖어 날마다 무릎으로 기어가는 사람

-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

- 위와 같은 삶과, 그런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이 영성의 사람이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영성의 사람입니까? / 저도, 여러분도 이런 것으로 점검해 보면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병원에서 정기검사를 해보고 좋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면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고, 혹은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으로 가꾸어 가듯이, 영성도 부족한 부분을 알았으면 영성회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에는 크게 두 가지 기초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초 위에 여러 가지 세부적인 영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기초는

하나는 <말씀묵상>이고,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도, 어떤 영성학자나 수도사들도 그들의 영성을 파고 들어가면 <말씀 묵상과 기도>가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을 봅니다.

 

누구든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느꼈고, 하나님과 교감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다니엘, 수많은 예언자들과 신약의 바울까지 그들의 중심에는 <말씀묵상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는 늘 말씀묵상과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말씀 묵상은 접어 두고 <기도 부분>에만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짧지만 예수님의 영성의 특징 3가지를 잘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은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습관이 좋은 습관이면 자신의 영성을 위해, 육신을 위해 유익하지만, 반대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면 영성을 위해, 육신을 위해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세기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흑사병을 만연시킨 것은 유대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은 흑사병에 별로 걸리지 않았고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왜 유럽인이 흑사병에 걸려서 3분의 1이 죽어갈 때, 유대인은 죽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생관념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알듯이 유대인들은 남의 집을 들어갈 때도, 자신의 집에 들어갈 때도 반드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과 후에도 손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목욕도 규칙적으로 잘 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 정결예식에 대해 많이 기록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정결하게 살 것을 요구하는지 보게 됩니다.

 

반면 당시 유럽인들은 위생관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손과 발을 제대로 씻지 않았고, 목욕을 하는 것은 좀처럼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교회가 성전을 건축한 선교지에 가보면 이런 곳이 많습니다.

한 교회를 예를 들면 중국 <조통교회>를 들 수 있습니다. 봉헌한지 3년이 되었는데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제가 가 본 선교지 중에 가장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해발 3,000미터 더 되는 고지에 사는 이들은, 언제 입은 옷인지 새까맣고 반질반질하고요, 모습은 언제 세수를 했는지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에요. 아직도 이가 득실득실 합니다. 반갑다고 성도들이 포옹을 하자고 하니 안할 수는 없고 힘들었습니다.

사람과 돼지 개가 함께 다닙니다. 봉헌예배 후 점심 대접을 한다고 교회 옆에 있는 여자 장로님의 집에 갔는데, 젓가락이 몇 십 년 사용했는지 새까맣습니다.

차라리 인도처럼 손으로 먹으라고 하면 좋겠는데 새까만 때 묻은 젓가락, 불결한 음식, 옆에서 곧 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환경은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그분들이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전염병이 돈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세시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손과 발, 몸을 씻는 유태인들은 자신에게 있었던 그 좋은 씻는 습관으로> 흑사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씻는 좋은 습관이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흑사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어떤 분은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담배를 한 대 피워야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쁜 습관이지요. 그들에게 운동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영성의 사람들은 모두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를 거룩한 습관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지금도 영성공동체를 탐방해 보면 그들은 종이 울리면 언제든지 예배당으로 가서, 혹은 일터에서 기도합니다. 또 예배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 거룩한 습관이 모여서 그들의 깊은 영성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보세요. 본문을 순서대로 보면 예수님은 오늘 본문이 있기 전 많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고쳤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몰려 왔는데,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굉장히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새벽 주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기에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습관은 본문 외에도 여러 곳에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5장 16절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22장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은 하루에 3번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루에 7번씩 찬양하며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기도가 습관입니까? 아니면 죽지 못해 억지로 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성도님 모두 예수님처럼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우선순위란 <어떤 것을 먼저 차지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차례나 위치>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세 가지의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는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티칭(Teaching)사역, 프리칭(Preaching)사역, 힐링(Healing)사역을 했습니다. 그 세 가지 사역을 잘 하시기 위해서 <영성 사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은 3가지 사역을 하시기 전에 <새벽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도 평상시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세요.

<학생 – 밀린 숙제한다. 등교한다. 오전수업, 오후 수업한다. 수업 후 학원 간다.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직장인 – 출근한다. 정상 근무한다. 퇴근 후 자기 개발을 위해서 노력한다.>

<가정주부 – 운동한다. 청소한다. 빨래한다. 등>

여러분이 늘 하는 것에다 <새벽기도나 일반 기도를 포함시켜 보세요.>. 그러고 나서 우선순위를 정해 보세요.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우선순위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새벽)기도하고, 학교 간다. / (새벽)기도하고 출근 한다. / (새벽)기도하고 집안 청소 한다. 정해 질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새벽기도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시편 46편 5절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편 57편 8절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와,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119편 147절 “내가 새벽(날이 밝기)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 우선순위에는 새벽이 있었고,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선 순위였습니다.

 

여러분 새벽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네비게이토 선교회 론 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벽기도는 마치 정찰기를 타고 전장 위를 비행하며 정찰하듯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시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금도 간증하는 사람 대부분은 새벽기도를 한다는 말씀을 꼭 합니다.

우리교회 인문학콘서트 강사로 오셨던 공병호 박사님도 예수를 만난 뒤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는 새벽은 공부하기도 아까운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오셨던 조서환 회장님도 중국에서 삶이 힘들 때 새벽기도회에 은혜를 받고 기도생활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믿음의 선배들처럼 삶의 우선순위, 하루의 우선순위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으로 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3. 예수님은 고독한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루가 얼마나 빠른지요? 한 달이 얼마나 빠른지요? 일 년은 얼마나 빠릅니까? 벌써 이제 금년도 석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굉장히 빨리 먹지요? 20대 30대는 나이를 더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40이 넘고, 50이 넘으면 옛날 어르신들의 말대로 속도도 굉장히 빠릅니다. 나이 계산하기 바쁩니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바른 영성을 가지려고 하면, 예수님에게서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쁜 일과 속에서도 자주 <고독한 홀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영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 수도원과 관련된 책을 네 권 읽었습니다.

<유시민 저 – 유럽 도시 기행 1권>

<공지영 저 – 수도원 기행 1, 2권>

<승효상 저 – 묵상>

새 권의 책 공통점은, 지금 세상의 영성의 흐름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던, 안 믿는 사람이던 <조용한 곳인 수도원이나 /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같은 곳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깊어지려면 수도원이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가지 못해도 일상에서도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바쁜 일정 속에서 –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사람이 없는 곳, 주님의 임재만이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고독한 시간>이 그들의 영성을 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어디에서 그 고독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새벽기도 시간입니다. <새벽기도하면서 사람과는 대화는 아끼시고,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영성은 점점 깊어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일 새벽부터 가을 특새가 시작됩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번 특새가 여러분의 영성에 도움이 되는 특새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특새가 주님이 가지셨던 <거룩한 습관을 형성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주님과 대면하는 고독한 시간>이 되셔서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과 교감하는> 기도의 영성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79 마가복음 강해 36. 서기관들을 공격하시다. (마가복음 12:35~40) 2023.11.05 71
478 교회 개혁, 내 책임입니다. (사도행전 11:25~26) 2023.10.29 66
477 믿음의 경주에 동참하라 (히브리서 12:1~2) file 2023.10.22 97
476 성탄의 색깔(히브리서 10:9~10) file 2022.12.25 356
47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마태복음 1:18~25) file 2022.12.18 153
474 마가복음 강해 35. 메시아의 마음(마가복음 8:1~10) file 2022.12.11 212
473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십시오.(사도행전 16:6~10) file 2022.12.04 171
472 마가복음 강해 34. 강림절을 어떤 자세로 지내야 할까?(마가복음 13:28~37) 2022.11.27 170
471 감사의 재발견(신명기 8:1~10) 2022.11.20 265
470 마가복음 강해 33. 닫힌 인생, 열린 인생(마가복음 7:31~37) file 2022.11.13 237
469 마가복음 강해 32. 여기 놀라운 여인을 보라(마가복음 7:24~30) file 2022.11.06 151
468 예수의 피 밖에 없네!(요한1서 1:5~10) file 2022.10.30 177
467 마가복음 강해 31. 바른 신앙의 자세(마가복음 7:1~23) 2022.10.23 156
466 마가복음 강해 30. 사랑의 실현(마가복음 6:53~56) file 2022.10.16 156
465 마가복음 강해 29. 갈릴리 바다에서(마가복음 6:45~52) 2022.10.09 112
464 예수님이 바라시는 교회(요한복음 17:13~26) 2022.10.02 154
463 바울, 내적 치열함의 영성(로마서 7:22~25) file 2022.09.25 158
462 아브라함, 길 위의 영성(창세기 12:1~5) file 2022.09.18 168
461 마가복음 강해 28. 예수님의 사랑법(마가복음 6:30~44) file 2022.09.11 156
460 마가복음 강해 27. 세례자 요한의 순교 이야기(마가복음 6:14~29) file 2022.09.04 15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