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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8P20hZZmrc
본문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행 12: 11-25절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110-05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행12:11-25)

 

강해설교는 매주 이어져야 이해하기 좋은데, 교회력이나 교회행사 때문에 건너뛸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로 사도행전을 살피지 못했고, 다음 두 주일은 총동원인도주일과 추수감사주일이라서 사도행전을 잠시 접어두고 그 주일에 해당하는 말씀을 생각할 예정입니다.

그 점을 성도님들이 이해하셔서 사도행전의 말씀을 생각할 때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신 채로 말씀을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11절부터 정했습니다만, 사실은 1절에서 –19절까지가 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베드로사도에 대해 만약 영화나 연극 작품으로 만든다면 세 장면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장면은, 감옥에서 아주 태평스럽게 잠자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제 밤만 지나면 자신도 야고보 사도처럼 헤롯에 의해 죽는 줄 알면서도 베드로는 단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그날 밤 베드로가 잘 수 있는 이유는 5절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그렇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가 잡히자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를 하나님의 들으시고 응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첫 번째 오는 현상은 <염려가 없어지고,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응답도 그렇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첫 번째 현상도 <마음이 평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 마음의 평안이 베드로에게 주어졌기에 베드로는 그날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평안이 여러분에게도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장면은, 감옥 밖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야고보사도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사도도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루살렘 성도들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예전처럼, 사도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지? 혹은 현실적인 문제인 베드로를 풀어달라고 기도했는지?> 성경에 기도내용이 없기에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밤을 세워가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교회라면 이렇게 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중 두 번 성전정화작업을 하실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

 

중요한 말씀입니다. 교회에는 기도 소리가 밤낮으로 나야 합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가 대외적으로 좋은 교회로 알려지는 것도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기도 소리가 간절하게 나야 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기도소리가 간절하게 나야 합니다. 구역모임에서도 선교기관의 모임 시에도 모이면 기도소리가 나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교회가 <기도 소리가 나지 않고, 성도들끼리 분쟁하는 소리>들이 너무 많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의 개혁과 회복은 기도에서 시작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교회만큼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찬양소리도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또 말씀을 공부하는 소리가 나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와 찬양과 말씀의 소리가 나도록 여러분이 힘써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장면은 천사가 내려와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는 장면입니다.

천사가 감옥에 나타나니 감옥 안이 환하게 빛이 났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치며 말합니다. “일어나라” / 천사가 베드로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자 베드로의 손을 묵었던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이 후에도 천사가 시키는 대로 베드로는 순종합니다.

천사를 따라서 첫 번째 보초, 두 번째 보초를 지나는데 그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내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자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최초의 <자동문>을 베드로가 통과한 것입니다.

 

이 세 장면이 지난시간에 생각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1-12절 함께 읽어보십시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천사의 안내로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환상인지 꿈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다가 천사가 떠나자, 그때야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헤롯왕의 손과 악한 유대인의 손에서 구출해 주셨구나?’ 깨닫고, 자신을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로 향한 것입니다.

 

12절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을 우리는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합니다. 이 집은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 이 집에서 예수님께서 생전에 성만찬 예식을 행하셨습니다.

- 이 집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 이 집이 예루살렘교회의 센터가 되어 밤낮으로 기도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이런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집도 주님이 사용하시는 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시골교회에는 전임교역자를 모실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주일만 와서 섬긴 전도사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토요일 오시면 전도사님이 묵을 숙소와 식사를 대접할 가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대부분 장로님 가정에서 교역자를 섬겼고, 때로는 안수집사님의 가정, 서리집사님의 가정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교역자를 대접하기 위해 힘쓴 가정들이 대부분 영적으로, 육적으로 복을 받았다는 것을 교회사로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꼭 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정이 존재하고, 우리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 일에 가정도 교회도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에도 섬기는 그 가정과 교회에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12절 말씀에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은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먼저 가지고 않고 제일 먼저 <기도하는 마가의 집>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왜 이곳으로 갔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잠시 마가의 다락방에 와서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성도들에게 말하고, 야고보와 사도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현재 상황은 비록 출옥은 했지만, 위기상황이 끝난 상태는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예루살렘이 대구처럼 넓거나 큰 성이 아닙니다. 이동거리가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헤롯이 베드로가 없는 것을 알면 순식간에 베드로를 잡으려고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베드로가 간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왜 그곳에 제일먼저 갔을까요? 그곳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 세워 교회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그곳에 가장 먼저 간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인의 아름다운 신앙 예절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가 집중해서 기도해 주는 자라면, 그 기도 대상자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응답이 있은 다음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응답을 말할 때는 무조건 자신의 뜻대로 되었을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도의 응답은 “알았다. 기다려라. 안 된다.”는 세 가지 응답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응답이 있어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자들에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병원에 입원한 자라면 – 퇴원할 때 퇴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목회자와 교회에 알려주는 것이 예의겠지요.

결혼식, 장례식을 마치면, 교회에 잘 마쳤다고 인사를 하면 좋겠지요.

수험생이나, 자녀문제로 교회가 기도하면 / 감사하다고 알려주면 좋겠지요.

임직 자들의 경우에도 / 임직을 받은 후면 교회에게 인사를 하면 좋겠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꼭 <떡을 내던가? 고기를 내던지?> 물질적으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곳에 방문해서 자신의 안부를 말해주는 것이 신앙인의 아름다운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 이런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어지는 13-17절을 까지 계속 보십시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서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이 말씀에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 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열릴 때까지 16절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여러분! 베드로가 어떤 인물입니까? 방금 천사와 함께 자동문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가의 집에 들어가지 못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신앙적인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놀라운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의 삶에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둘째, 기도는 하면서 응답은 안 믿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풀려나와 문 앞에 있는 지금까지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로데>란 이름의 여종이 나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베드로사도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로데가 흥분하여 문을 열어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안으로 들어와서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습니다.>며 외쳤습니다.(복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자 기도하는 사람들이 “네가 미쳤구나.” 로데가 더 큰 소리로 아니라고, 참말이라고 하자 그럼 베드로의 “수호천사인가 보구나!” 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은 기도의 응답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 그때야 진짜 기도의 응답이었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응답될 줄 믿습니까?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기도응답을 기대하지 않지는 않습니까? 이 말씀 속에서 발견하는 더 재미난 사실 하나는 <기도의 응답을 믿지 못한 그들의 기도도 하나님은 들어주셨고, 응답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응답해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기도생활에도 이런 놀라운 체험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라지는 베드로입니다.

다락방으로 들어온 베드로는 지난 밤 있었던 놀라운 일을 성도들에게 말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사도들에게 알려달라고 하고는> 어딘지 모르지만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아마 헤롯의 손에서 피신도 하고, 전도를 하려고 떠나겠지요.

 

이렇게 베드로가 슬며시 사라지고 – 13장에서부터는 사울이 중심이 된 선교의 역사를 성경은 기록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베드로사도가 사라지고, 사울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날고 긴다 해도 5년이 지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겨울이 되면 그 많던 메뚜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줄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사라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헌신하고 충성, 봉사하는 것은 지금 할 수 있을 때에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18-23절은 어리석은 헤롯왕의 최후를 말합니다.

제가 지난 번 설교시간에 본문에서 말하는 헤롯왕은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정치적으로는 뛰어난 감격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제로(0)였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모른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지금까지 총 3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행 4:3 – 전도하다가 하룻밤 감옥신세를 집니다. 가둔 사람이 풀어줍니다.

행 5:18 – 종교지도자들의 미음과 시기를 받아 감옥에 들어간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는 천사가 옥문을 열어줘서 나오게 됩니다.

오늘 12장이 세 번째입니다. 이정도 되면 헤롯이 영적인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베드로 뒤에는 예수와 천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당시의 법대로 죄수를 잃어버린 16명에게 죄를 물어 그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가이샤라에 내려가 연설을 할 때 자신을 향해 <신의 소리>라고 아부하는 그 말을 듣고 거부했어야 하는데, 수용하였다가 결국 주의 사자가 쳐서 벌레에 먹혀 생이 마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19. 8. 2)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전 유대를 3년간 통치한 후 과거 스토라토 망대라고 불린 가이사랴로 왔다. 왕은 가이사의 행복을 위한 일종의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가이사의 영예를 기념하는 축제를 거행했다. 두 번째 날에 아그립바 왕은 순은으로 짠 참으로 멋진 의복을 입고 새벽에 원형극장으로 들어갔다. 태양 광선이 찬란하게 비추자 은으로 짜인 그 옷은 신비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그 반짝임에 의해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기묘한 두려움과 경이를 느꼈다.

아첨꾼들은 왕에게는 유익하지 않았지만 아그립바 왕을 신이라고 부르면서 사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당신을 존경해 왔으나 앞으로는 당신이 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라는 데 동의합니다.”했다.

 

왕은 그들을 꾸짖지도 않았고, 그들의 아첨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일 직후에 왕은 고개를 쳐들고 그의 머리 위 줄 위에 올빼미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그립바 왕은 올빼미가 전에는 좋은 소식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재난의 전조임을 인식하면서 마음속을 비수로 찔리는 듯 한 아픔을 느꼈다. 왕은 갑자기 엄습한 강한 고통으로 인하여 복부를 움켜잡았다. 왕은 그의 친구들에게로 뛰어가면서 말했다.

“그대들의 눈에 신으로 비친 나의 운명이, 조금 전에 나에게 부과된 말에 즉각적으로 반박하여 생명을 내던지라는 명령을 받았네. 그대들에 의해 불멸의 존재로 불린 나는 이제 죽음의 판결을 받았네. 이제 나는 신이 원하신 것과 같이 나의 몫을 받아야만 하네. 사실상 나는 평범한 방식으로 살지 않았고 참된 기쁨으로 환호하는 커다란 명성으로 살았네.”

 

이 말을 할 때에도 왕은 더욱 강한 고통에 휩싸이게 되었다. 왕은 높은 곳에 위치한 침상에 누워서 엎드려 있는 백성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5일간의 복부의 진통으로 탈진한 후 그의 나이 54세에 그리고 그가 즉위한 지 7년이 되는 때에 이 세상을 떠났다.】기막힌 헤롯의 죽음이지요.

 

그럼 12장 전체를 정리해 보십시다. 12장은 헤롯의 박해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2장 끝은 베드로의 순교가 아니라, 박해자 헤롯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면서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박해자 헤롯은 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 흥왕하였다고 결론짓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곳에도 궁극적인 승리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25절은 다음 시간에 생각하겠습니다.

 

두 주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저 현실에 당면한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거대한 하나님의 손이 어디로 움직이시는 지 아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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