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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FVWdNyEReVs
본문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행 9: 23-3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8-27

사도행전 9:23-31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

 

지금 우리는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와 예수님을 만난 후 180도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생각한 내용은 바울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이며, 기도하는 자, 그리고 칭찬 듣는 아나니아를 준비시켜 놓았던 것을 생각했고,

아나니아로 통해서 사울에게 두 가지 사명을 주셨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선교사의 사명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아야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받은 사울은 성령세례, 물세례를 받았고 음식을 먹음으로 육신도 건강을 회복해서 예수님을 만난 지 한 주일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회당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단락을 바꾸어 오늘 말씀이 시작됩니다.

23-25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이 말씀을 생각 없이 읽어나가면,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 의해 죽을 위기를 맞아 밤에 다메섹 성에서 광주리를 타고 내려와 탈출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마무리할 말씀이 아닙니다.

간단하지 않은 말씀이 23절 서두에 나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러 날이>도대체 얼마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이 <여러 날이 지나매>라는 말은 사울이 회심한 이후 그의 행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연대는 주후 63년경이고, 사울이 회심한 것은 주후 34년경입니다. 그러니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 30년 이후에 사도행전을 기록했기에 사울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이 시간대별로 치밀하게 기록하지 않았음을 봅니다. 누가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싶은 부분만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23절에 나오는 “여러 날이 지나매”라는 말이 얼마간의 기간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전혀 그 날을 알 수 없냐? 하면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해석 원칙 첫 번째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다른 성경에는 뭐라고 말씀하는지 찾아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사울 자신이 기록해 놓은 회심 이후의 사건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사울이 쓴 말씀 갈라디아서 1:17-18을 보십시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자, 오늘 말씀을 보고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면 정리가 되지요?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

-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낸다.

- 그 후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가 죽을 고비를 맞게 되고, 밤에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을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 예루살렘으로 가서 15일을 보내고, 자신의 고향 다소로 가서 침묵기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니 본문에서 말하는 “여러 날이 지나매”라는 말은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22절과 23절 사이에는 3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있는 것입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사울이 보낸 <아라비아에서 3년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아라비아 중에 어느 곳을 다녀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추정을 할 수는 있습니다.

우선 아라비아의 위치를 말씀드리면

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과 홍해 사이에 이르는 넓은 사막지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사막지역이었기에 사람들이 살지 않고 유목민만 간간히 지나다니는 아주 고적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울은 3년을 보냅니다. 무엇을 했을까요?

사울은 옛날에 자기 조상들이 40년 광야에서 방황하던 그 코스를 따라서 여행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모세처럼 호렙산 꼭대기에서 40주야를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면서 은혜받기를 갈망하고 능력 얻기를 갈망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곳에서 3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3년이 요즈음으로 말하면 신학대학원 3년 과정처럼 신학을 정리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동안 믿고 있었던 구약의 성부하나님,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고, 힘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정리를 하는 시간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3년의 기간이 있었기에 로마서와 같은 위대한 교리를 집약한 말씀을 쓸 수 있었고, 신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년의 기간을 보낸 결과 사울에게 남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는 <아라비아의 3년>은 사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울의 <아라비아의 3년의 침묵>기간을 보면서, 우리는 나에게도 이런 기간이 존재하는가? 물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정리하고, 확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사실 이 시간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오늘 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과 1:1의 시간, 예수님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 믿고 세례 받고, 1년, 2년, 10년이 지나다 보니 – 직분도 받아서 남들은 나에게 권사, 안수집사, 장로, 목사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아직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정리를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뭣이 된 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1:1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물어보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아라비아 광야 3년의 시간>은 있었습니까?

아니 지금 여러분은 <아라비아 광야>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냥 설교니까? 듣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평신도지도자인데 – 나에게 아라비아 광야는 있었는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가?

피택 받은 17분에게 질문합니다. - 여러분은 4월 23일 공동의회로 통해서 항존직으로 피택 받은 후에, 아라비아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1:1로 여러분의 받은 사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봉사하고, 어떻게 살겠다는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제 눈에는 잘 안보입니다.

피택 받기 전이나 받은 후에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지난 한 주간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 5일 동안에는 우리교회 장로님 두 가정과 함께

중국 심양과, 북간도 지방을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3월 인문학콘서트에서 김응교 교수로 부터 <윤동주와 십자가>란 제목으로 여러분도 강의를 들으셨던 곳입니다.

북간도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지닌 김약연목사 한 분을 시작으로 만들었던 기독교 이상 공동체였던 <명동촌>을 돌아보았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생가와 그가 다녔던 교회와 학교를 돌아보았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의 역사적인 현장과 그들의 무덤에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심양에서 연길까지 오는 고속열차에서는 단동에서 목회하시는 조선족 목사님과 사모님이 제 옆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의 신앙과 목회에 대해서도 들어보았고, 여려 교회를 탐방했고, 여러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것을 느꼈지만 제가 4박 5일 동안 느낀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자들로 통해서 이루어졌던 역사,

그리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자가 필요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교회에 나오는 자도 필요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아라비아 광야 3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밤낮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깊은 진리를 깨닫고 영적으로 무장해서> 일평생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자, 다시 본문을 보십시다.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을 보낸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지만, 죽을 고비를 겪게 되고, 밤에 광주리를 타고 탈출을 합니다.

다메섹 탈 출 후 사울이 향한 곳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26-30절 말씀을 보십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서 출입하며 ◌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이 버선발로 나와 환영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사울을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사울이 예루살렘교회의 박해의 주동자였기 때문입니다. 3년이 지나도 아직도 그 후유증(트라우마)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도들의 마음도 이해는 못할 바 아니지만, 사울은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때 서먹서먹한 사울과 사도들을 연결시키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나바입니다.

이미 우리는 바나바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습니다.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자였고, 사람들을 그를 <권면하고 위로의 아들>(행 4:35)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1:24절에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사도도 아니요, 평신도지도자도 아니었지만 사도나, 평신도 지도자 못지않은 훌륭한 자였습니다.

 

그 훌륭한 바나바가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사울을 위해 결정적인 일을 합니다.

= 사도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이야기, 그리고 복음을 증거 한 이야기를 대 신 말씀해 줍니다.

= 그래서 바나바의 중재로 사울은 사도들과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가 잘 되려면 교회 안에 바나바와 같은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성도들도 보면, “생”하고 찬바람 부는 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사를 해도 안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멀리 보이면 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몇 년 만에 교회를 찾아왔는데도, 모른 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물론 “내 성격이 그래서”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격이 그렇다면 고쳐야 합니다.

신앙인은 바나바와 같은 자여야 합니다.

바나바가 한 손으로는 사도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과거 예루살렘교회를 핍박했지만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의 손을 잡고 화해시켜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양쪽에 있는 성도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십시다.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하시면 됩니다.

<저의 바나바가 되어 주십시오.> / <저의 바나바가 되어 주십시오.>

말을 바꿔서 다시 한 번 옆 사람에게 말씀하겠습니다.

<제가 바나바가 되겠습니다.> / <제가 바나바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계심으로 온 성도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과 교제하게 된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사명을 감당합니다.

29절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 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이 말씀을 보면 지금 사울이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말씀을 전한 결과 사울에게 온 것은 죽음의 위기입니다.

다메섹에서도 - 23절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예루살렘에서도 – 29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울이 받은 사명 두 번째가 예수 이름으로 고난당하는 것이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받은 사명의 길도 이런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죽음의 위기를 맞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그를 자신의 고향 다소로 보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마지막 한 절이 남았습니다.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 1:8절의 주님의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동안 있었던 내용을 정리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말에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것을 내포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이렇게 까지 확장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고통스런 위기와 고난과 환난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전체 교회를 보든, 개 교회를 보든 교회의 성장에는 – 위기와 고난, 환난이 항상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도 46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 고난,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났기에 오늘의 우리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하고 있는데

지금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의 특징을 정리하면?

① 오늘과 같은 건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였다.

②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며, 말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③ 교회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④ 서로 교재하며 떡을 떼는 공동체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단히 닮으려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아름다우니 교회에 어떤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까?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① 평안해졌습니다.

평안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교회와 성도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개인도, 교회공동체도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오늘처럼 계속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②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 모셔야 할 것은 <든든히 섰다>라고 하지 않고, <서 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지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개인도 그렇고, 우리교회도 그렇고 세계교회가 그렇습니다. 짓고 있는 건물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먼지가 나고, 지저분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설계도대로 완성되면 화려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집으로 변할 것입니다.

 

③ 수가 많아졌습니다.

성도의 수가 많아지는 조건은 성도들이 <주를 경외해야 하고, 성령의 위로(성령이 주시는 힘과 지혜로 살아가는 것)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도 31절 말씀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저와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잘 섬겨서 이런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보며 힘차게 믿음생활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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