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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D8MmQC09FTo
본문 신자의 갈등(행15:22-41)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2-11

사도행전 15:22-41 신자의 갈등

 

우리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개최된 예루살렘 총회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 장 : 야고보

참석자 :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 안디옥교회 파송 대표들(바울, 바나바)

안 건 :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가?

 

이 안건을 가지고 몇 시간인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토론을 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에는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전도해 보았기에 자신의 경험으로 생생한 간증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지나 총회장 <야고보>는 결론을 내립니다.

 

결론이 지난주일 생각한 사도행전 15:19-20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 하는 것이 옳으니”

이 말씀에서 “내 의견에는”이라는 말은 <우리가 결의하기로는>이란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총회의 공식 결정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사항은 사람들의 결정만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과 함께 한 결정이라고 28절 상반 절에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하나님과 예루살렘 총회는 두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1.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은 명확하다.(십자가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 율법을 행하라는 말을 해서 그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2.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3가지 덕목도 결정했습니다.

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말라.

② 음행 하지 말라.

③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

 

그러면서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이 중요하니 괄호를 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예루살렘 총회 결의사항이 중요한 이유 4가지 말씀드리면

1.《2,000년 된 할례 종지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할례는 누가 누구에게 주신 제도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제도입니다.

창세기 17:10-12 에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 너희는 표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나의 백성이다>란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 할례 제도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지금 예루살렘 총회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대로 행하고 있었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는 이방인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방인은 예수님을 영접해도 그 뒤에 남자라면 할례를 행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60대 70대 이방인 남자가 예수를 믿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 할례를 행하라고 하면 그것이 쉬운 이야기 입니까?

 

여기에 대해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분명한데, 거기에 <할례를 행하라, 율법 지키라>며 “이방인 성도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부터 2,000년 넘게 지켜온 할례의 시대, 성기의 표피를 베므로 가졌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를 갖고 사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을 가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엄청난 결정인 것입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은 후에 “할례는 마음에 하라”(롬 2:29)고 권면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에는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으시는 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2.《한 민족에서 모든 민족으로, 경계를 넘어선 복음의 확장 사건》이다.

그 동안은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에게도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고,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졌지만 공식적인 결의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총회에서 결의함으로 명실상부하게 복음이 유대 민족을 넘어서 세상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되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놀라운 결의인 것입니다.

 

3.《공식적으로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 하는 결의》였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리면서 예루살렘 총회가 있기까지 초대교회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로 통해서 유대와 기독교는 뚜렷이 구별되었습니다.

유대교는 – 할례와 율법을 계속 중요시 여겼습니다.

기독교는 – 할례와, 율법을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 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구분하게 됩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는 중요한 것입니다.

 

4.《최초의 신약성경 기록된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었으되” 하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그 성경은 신약성경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약 성경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27권을 신약성경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에는 아직 신약 성경의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을 때이고, 경전으로 인정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저 사도바울이 13개의 편지를 보냈다. 요한사도가 5개의 편지를 써서 교회들에게 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 편지가 주후 397년 카르타고 에서 열린 공의회에 의해서 성경으로 인정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당시의 편지, 편지의 내용은 아주 중요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본문을 보면 <최초로 열린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을 편지로 써서 흩어진 이방 지역의 교회에 보내자고 결의합니다. 그러니 19-20절 결의사항은 보통 결의사항이 아닙니다. 보통 편지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사실은 최초의 기록된 신약성경이 되고, 이 말씀을 사도행전 안에 공식적으로 넣어 지금 우리는 성경의 내용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제가 이렇게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이 중요함을 4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니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가 되시지요?

 

이렇게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이 내려지자,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이들은 결정된 내용이 담긴 편지를 가지고 안디옥에 내려가 성도들과 그 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30-33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사항인 편지의 내용을 전해주었더니, 안디옥교회가 평안해졌습니다. 폭포수처럼 소란했던 교회가, 믿음이냐? 행위냐? 의 문제로 위기를 맞았던 교회가 순식간에 잠잠해진 것입니다.

 

자, 그럼 그 이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십시다.

35절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전파하니라.”

교회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협력해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섬겼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아름다운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36절은 관계가 깨어지게 된 원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안디옥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해지자 바울은 복음의 열정 때문에 그냥 거기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에게 1차 전도여행을 했던 지역으로 가 보자고 권했습니다. 요즈음 표현으로 말하면 양육을 위한 심방 하자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눈에 띠는 말씀은 “형제들이 어떠한가?”(36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그들의 신앙이 지금은 어떠한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 항존직, 구역장, 교사의 마음은 항상 이러해야 합니다.

<형제들의 마음이 어떠한가?> <교인들의 마음이 어떠한가?> 이런 마음이 있다면 목사의 자격이 있습니다. <구역식구의 마음은 어떠한가?>라는 마음이 있다면 구역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은 어떠한가?>라는 마음이 있다면 교사의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찬양예배 때 구역장 헌신예배를 드립니다만, 구역장의 마음에 구역식구들의 신앙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구역식구가 주일예배에 출석했는지 결석했는지? 관심이 없고, 구역원의 가정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잠언 27:23절 에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교역자 전원, 23개 구역장, 교회학교 선생님들이여!

바울이 품은 “형제들이 어떠한가?”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저 말로서 관심이 아니라, 진짜 그들을 관심가지고 잘 돌봐서 교회학교가 살아나고, 구역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좋은 안건을 바울이 내고, 선교 팀을 구성하는데, 그만 바울과 바나바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37-41절까지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나 ○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양육을 위해 선교여행을 하자는 데에는 일치했지만,

선교 팀을 꾸리는 문제에는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 때 함께 했던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했습니다.

마가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이었기에 누구보다 마가요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1차 전도여행 시 여러 가지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중도포기하고 돌아왔지만,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고 회개하고 굳은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바나바에게 다음 선교 여행 시 함께 갈 수 있도록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 결심을 안 바나바는 바울에게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시 중도 포기한 마가요한을 다시 데려간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며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과 1:1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성도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칩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모르면, 아직 신앙생활의 초보에 불과합니다.

목사의 행동 하나 하나가... 전 교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항존 직의 행동 하나 하나가... 역시 전 교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교회전체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가요한이 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밤빌리아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은 마가요한 혼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교팀 모두의 사기를 꺾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시 데려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그 싸움을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은 바나바와 바울이 싸웠다는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선, 성경은 정직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브라함이라고, 바울이라고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또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실수와 약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사람입니까?

◉ 바울

-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베냐민 지파), 로마 시민, 가말리엘 수제자

- 확고한 신념으로 ‘예수를 증거 하는 스데반’ 처형에 동조한 사람

- 회당에 가서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사람

⇒ 그러나,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사도가 됨

1차 전도여행 기간 중 많이 맞고 죽음의 위기를 숱하게 겪음

◉ 바나바

- 구브로 섬의 자산가, 자신의 많은 재산을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부

- 사도 바울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만큼 월등한 실력을 갖춤

⇒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 기간 동안 많이 맞고 죽음의 위기를 숱하게 겪음

 

바울과 바나바 이렇듯 완벽한 신앙의 인물입니다. 그런 훌륭한 두 사람이 지금 <마가요한> 문제 때문에 “서로 심히 다투었다”(39절)고 말합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싸우고, 화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대인관계 기술개발>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 문제(목회자의 싸움과 화를 내는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화를 낼 수 있는가? 목회자가 다툴 수 있는가?

토론 결과 두 가지 주장이 나왔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화를 내고, 다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목회자는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를 내는 순간이 사임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절대 화를 내지 않는 목회를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화를 내었던 분들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지도했던 경기도 성남에서 목회하시는 K목사는 자신이 목회를 한 장로님 한 분이 너무 힘들에 해서 한 두 달 정도 장로님을 투명 인간 취급을 했다고 합니다. 시무장로님이 십 명 이상 되는데 그 장로님만 못 본 척 했다고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할 때도 장로님과는 악수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결국 그 장로님이 잘못했다고 시인했는데, 문제는 두 달 동안 목사님도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또 L목사의 경우에는 충신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전에 10년 정도 섬겼던 교회를 사임했을 때, 권사님이 <목사님은 다 좋은데... 왜 그때 한 번 교인들에게 화를 내셨습니까?>하면서 10년 목회를 하면서 딱 한 번 화를 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왜 화를 내셨냐고 하는 소리를 듣고, 화를 내는 것이 결국은 목회자에게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결론은 목회자도 때로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서 목사도 교인들도 인도 힘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요한 문제로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아 그 위대한 종들도 이런 마찰이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깊이 들어가 보면 둘의 싸움은 성품 차이 때문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일 중심의 – 바울과 / 사람 중심의 – 바나바> 차이임을 봅니다.

물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이 싸움으로 선교 팀이 한 팀에서 두 팀으로 분열되었고, 더 많은 선교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세월이 흘러 마지막에는 바울과 바나바도 서로 화해하고, 사도 바울도 마가요한을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십시다.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약점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누가 누구에게 큰 소리 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싸우며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된 모습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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