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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R1Bw0UMPR0A
본문 사도행전 1:1-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1-08

사도행전 1:1-5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지난 주일에는 금년 우리교회의 표어 “다시 거룩한 교회로!”란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사도행전 말씀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으며,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기적과 역사들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고,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어떻게 힘차게 성장하며 계속 확장 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부터 시작되는 사도행전 공부를 통해 우리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능력과 기적을 사도행전에서처럼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을 여는 말씀으로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있어야 될 3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사도행전의 사건이 있기 위해서는 누가복음의 사건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1-2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먼저 자신이 먼저 쓴 누가복음 회상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사도들에게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탄생, 공생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기 직전까지의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내용으로부터 인간의 역사 속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하늘의 역사, 성령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이 탄생된 것입니다.

 

그럼 사도행전에 앞서 기록된 누가복음은 어떤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누구에게 쓴 글이었을까요? 그 점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1-4 을 보십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 <누가>이고, 그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신약성서 기자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가 쓴 누가복음에 보면 (여자들, 목자들, 사마리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당시 소외계층이었던 그들을 예수님이 어떻게 끌어안아 주셨고,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안으로 포함시켜 주셨는지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이방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 <데오빌로>였습니다.

데오빌로(Theophilus)는 ‘데오스’ 라는 말과 ‘필로’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전자는 ‘하나님’을, 후자는 ‘사랑’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뜻이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 각하”라고 호칭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아서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위관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관료인 그가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에 대해 목마른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기록에 따르면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위관료이고, 로마 황제의 사촌이라고 합니다.

 

누가는 이제 막 복음의 걸음마를 뗀 데오빌로에게 서신을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 첫 번째 편지가 누가복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서 보셔야 할 것은, 오늘 내 삶에, 오늘 우리교회에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누가복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삶 /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 예수님의 부활하심 ...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사도행전의 말씀을 차례로 강해하며 알아보겠지만,

사도행전 2장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의 역사,

사도행전 11장의 고넬료의 가정의 성령의 역사를 포함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곳에는 항상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사건>에 대한 설교와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회복하셔야 할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셔서 누가복음의 기록들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소외되고 어려운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위해서 말씀을 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음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자에게 사도행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2. 부활 후 사십일 동안의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 속에 나타난 것을 보면서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거처는 어디였을까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은 어디에 머물고 계셨을까요?

공중을 배회하고 다니셨을까요? 아니면 지구 어느 모퉁이에 혼자 계시다가 나타나셔야 할 때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 부활하심 – 40일 동안 땅에 머무심 – 승천하심 – 하나님의 우편의 영광의 자리>로 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요. 아마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한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정확한 이해는 <십자가 ⇒ 부활 ⇒ 승천(하나님의 우편의 영광)>으로 바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곧장 영광을 받으셨지, 40일이 지나 승천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성경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다고 하고 있을까요?>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예수님의 생활은> <하늘의 시간과 땅의 시간이 공존했던 것을 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범한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습니다. 변화산위에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형될 때처럼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음식도 드셨습니다. 갈릴리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을 찾아가 아침을 준비해주셨습니다. 떡과 고기를 제자들에게 주셨고,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평범한 모습이지요.

 

하지만 또 다른 모습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문이 닫혀있는데도 예수님은 그 곳을 들어가셨고,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신 다음에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신학적으로 정의할 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 .... 이 두 모습을 40일 동안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순간 바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에 앉으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자리에서 계시다가, 40일 동안 이 땅에 있는 제자들에게 해야 할 사역들을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해한 예수님의 승천장면 (두 천사가 양쪽에서 예수님을 호위했고, 조금 후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건)은 예수님의 지상의 사역이 완전히 종결되었음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지상 사역을 끝내고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시각적으로 분명히 각인시켜 준 것입니다. 이것이 승천사건의 본질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부활하시고도 40일 동안 더 <사역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보에 나오는 주간 성경공부를 하신 분은 이 문제가 나왔으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첫째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를 명백하게 남겨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계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 자세히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사역을 이어간 이유 첫째 것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첫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명백하다는 증거를 남겨놓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세요. 성경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명백하게 말씀합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24:10 을 보세요.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건은 가상의 사건이거나, 상상의 산물이거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는 부활의 사건과 관련하여 독특한 기사를 하나 삽입시키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걸으면서도 처음에는 예수님인줄 모르다가, 나중에야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정적으로 엠마오에 가서 음식을 잡수실 때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을 알아보는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라져 버립니다.

 

자 보세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몸을 <제자들에게 / 여인들에게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을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3-8 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정리해 보십시다. 우리에게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부활하신 몸을 보여준 이유에서 힌트를 하나 얻어야 합니다.

누가는 그 힌트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사도행전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이 좋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해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기적을 이해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선교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 유명했던 사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때, 전도자 바울, 순교자 바울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3.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4-5 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에는 3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된다.

둘째, 그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다.

셋째, 그것은 성령이다.

세 가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 큰 일 납니다. 성령 받지 못한 목회자, 성령 받지 못한 중직 자가 있다면 그로 통해서 교회는 힘들기만 할 것입니다.

 

사실 성령님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처음 역사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부터 성령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도 성령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님과 함께 했습니다.

잉태하실 때도, 세례 받으실 때도, 공생애 사역 때도,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도 성령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성령님의 사역은, 성부하나님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부터는 <성령님이 주인 되기 위해서 내려진 수단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예를 들면 우주선을 만들어 놓고 그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카운트다운을 해서 불이 붙어, 그 무거운 우주선을 대기권 밖으로 보내는 힘이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이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역사를 전 세계만방에 퍼지도록 하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 성령님의 임재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예루살렘 밖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령님을 체험하셨습니까? 체험하지 못했다면 체험하기까지 절대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을 체험한 후에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우리교회에게 사도행전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금년 한 해 주님이 주실 변화를 기대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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