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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3M8xBrbEyMk
본문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행 2:14-36)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2-15

사도행전 2:14-36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

 

사도행전에는 스물 네 편의 짧고 긴 설교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베드로의 설교, 야고보의 설교, 바울의 설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분량으로 보면 사도행전의 내용 중에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거기에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까지 포함하면 스물다섯 편의 설교가 나오고, 분량으로 보면 사도행전의 25퍼센트가 설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물다섯 편의 설교 중에 첫 번째 설교인 베드로의 설교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설교를 하게 된 배경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을 기다렸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오순절에 성령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면서 그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령하나님이 불의 혀처럼 갈라져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하나씩 임했습니다.

성령하나님이 그들의 온 몸을 장악하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언어를 장악했습니다. 방언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방언을 받은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자 사람들은 3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믿은 사람, 의심하는 사람,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성령 하나님에 이끌려 설교를 시작합니다.

14-15절을 읽어보십시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에서 유심히 보셔야 할 것은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라는 말입니다. 지금 설교는 베드로가 하지만 그 옆에는 열 한 사도와 함께 서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의 권위로 사도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를 기울여서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때가 제 삼시”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인데 .... 지금 시간에 누가 술에 취해서 정신없는 말을 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녁 9시라면 거리에 술 취한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아침 출근하는 시간대인 오전 9시에 어떻게 120명의 사람이 술 취해 있겠느냐? 술 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역사를 두 가지 주제로 설교를 합니다.

 

첫째, 지금 목격한 성령강림의 역사는 요엘서에 예언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16절에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며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본문 17-21절까지는 요엘서 2:28-32 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제가 요엘서를 읽을 테니 여러분은 본문 17-21절을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두 말씀 간에 약간 차이는 있지만, 베드로는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설교합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생각하면

(1) <말세>라는 말입니다. -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라고 하며 <말세>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세라는 말은 믿는 사람도 사용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용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말세의 의미를 <너무 협소한 의미로, 자기중심적으로 풀이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세라는 말로 성이 차지 않는지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말세 중에 말세라는 말입니다. 또 대부분 젊을 때는 말세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다가고 늙었을 때에 말세라는 말을 더 사용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는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해서 말하는데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어 십자가를 통해 그 중심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오심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말세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어 십자가를 통해 그 중심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오심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의 역사가 있었을 때도 말세요. 지금도 말세인 것입니다.

 

말세에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2)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하나님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성령을 기다린 모든 자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임재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요즈음 영적으로 갈한 상태야!

나는 요즈음 설교시간에 설교가 들리지 않아! 설교시간만 되면 잠이 와서 죽겠어!

나는 찬송할 마음이 없고, 기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이런 분들이 있지요.

 

이런 분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이 183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입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이,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이 찬송이 굉장히 좋은 찬송 같지만 사실은 별로 좋은 찬송이 아닙니다.

성령하나님은 이미 오순절에 교회에 임하셔서 한 번도 교회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지금도 언제든지 성령 충만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심령이 시들어서 ... 가물어 메마른 밭과 같으니 – 성령을 기다린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이 이미 우리교회에 충만히 임재 한 상태에서 예배하고 있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갈급함을 느끼고, 내가 말씀이 안 들리고, 내가 기도할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문제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영혼의 교만함을 회개하시고,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시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옆에 계시는 성령 충만한 성도처럼 여러분들도 성령 충만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이렇게 성령은 모든 사람이 체험하는데

요엘 선지자는 세 부류 나눠 구체적인 특징을 말씀해 줍니다.

자녀들은 – 예언한다. / 젊은이는 – 환상을 본다. / 늙은이(어르신은) -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부연해서 설명하면

 

자녀들은 – “예언한다.”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예언자들만 예언을 했지만, 성령을 받은 자녀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젊은이는 – “환상을 본다”는 말은 일반 보통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 취직해서, 결혼하는 그런 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환상은 내 인생과 젊음을 투자해서 <영원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도전하고 싶은 그 환상>을 말합니다. 우리 젊은 청년들은 이런 환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늙은이(어르신은) -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외로움입니다. 또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 돈이 있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어르신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마치 갈렙이 85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에 나아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면서 하나님이 사명만 맡겨주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 성령 충만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눈에 보이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받아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이,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요엘서에 약속한 성령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역사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진짜 그러했습니다. 성령 받은 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 충만하셔서 이 세상의 목표에 매달려 있던 우리들이 주님이 주신 꿈과 목표를 보고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베드로의 설교 두 번째 핵심은 성령강림의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 22-35절까지 내용이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을 3가지로 정리해서 말씀합니다.

(1) <예수님의 삶>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22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권능, 기사 표적”의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 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 이야기를 말씀합니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씀합니다.

23절에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신 성부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빌라도, 헤롯왕,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3) 그 다음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길게 언급합니다.

24절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활에 대한 증거 말씀의 근거로 시편 두 편을 인용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먼저 시편 16:8-11을 인용했습니다. 제가 시편을 읽어 드릴 때 여러분은 본문 25- 28절까지를 눈으로 보십시오. 약간 다른 부분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시편 16:8-11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또 한 편은 시편 110:1 절을 인용했습니다. 역시 제가 읽어드릴 때

여러분은 본문 34-35절을 보십시오.

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두 편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시를 썼던 다윗에게 부활신앙이 분명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서 성경의 인물에게서 이런 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부활신앙이 분명했기 때문임을 알아야하고, 성경에서 부활신앙이 분명하게 기록된 한 말씀이 보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쓴 시편을 읽으면서 내용 중에 예수님의 삶, 십자가에 죽으심, 무덤에 묻히심, 예수님의 부활하심, 예수님의 승귀 하심, 예수님의 재림이 들어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다윗이 쓴 두 편의 시(시편 16:8-11 / 시편 110:1)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에 다윗이 예언한대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옆에 있는 사도들 모두가 부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32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자 이렇게 베드로는 성령강림의 사건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33절을 보십시오. 33절이 어쩌면 오늘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시 읽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한 구절에 삼위하나님이 이름이 다 나옵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베드로는 성령강림의 역사를 보고 의심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성부하나님께 받아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설교의 결론으로 3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기까지가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베드로의 설교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매 주일 설교하는 자로서 안수 받은 지 20년 된 목사로서 베드로의 설교를 보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멍하고 ... 어안이 벙벙합니다.”

 

지금 베드로의 설교에는 정치, 경제, 철학, 문학이야기가 없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설교에는 유머 한마디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에는 핵심이 있습니다.

성령임재에 대한 구약의 인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부활의 증인이라는 증명도 들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 “우리의 주님이요, 우리의 구원자”임을 말하며, 구원으로 초청하기까지 합니다. 완벽한 설교를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 설교 잘 한다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보다 베드로의 설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합니다.

어떻게 베드로는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첫 번째 설교를 하면서 말입니다.

이유는 <성령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자, 성령님이 그의 몸을 장악하셔서 성령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서 설교하시기 시작하니 이런 명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설교의 결론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또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이미 임하신 성령님을 외면하지 마시고, 간절히 기도하고 찾아서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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