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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JgX3r26bbLE
본문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행 4:23-31)
설교자 권오진목사
설교일 2017-03-26

사도행전 4:23-31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도행전을 흔히 ‘성령행전’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도들을 고용하심으로 역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할수록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한 베드로를 성령하나님이 그에게 임하셔서 그를 고용하시니 그로 통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입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풀려난 후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3-24절을 읽어보십시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베드로와 요한은 석방된 후 동료에게 갔다고 했습니다. 저자 누가가 말하고 있는 ‘동료’는 가족은 아닌데 가족 이상의 관계를 형성한 그룹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을 쓴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니 그 동료라고 하면 성령을 받기 위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령체험을 한 그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본문에서 간 장소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이런 ‘동료’관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혈연적으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이상의 아름다운 신앙의 관계를 맺어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먼저 신앙의 동료들이 생각나고 쫓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동료들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던 자들은 모든 말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담대히 말했고, 그들이 꼼짝 못하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욱 영적인 기운이 충천했을 것입니다.

 

그 후 그들은 베드로 요한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기도의 모습을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24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합심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과 기도는 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든 좋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중에, 여러분이 본받고 싶어 하는 신앙의 인물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인물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다 기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바쁜 사역을 하시면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철야하면서 기도하셨고,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오면 특별히 합심기도를 소개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는 이미 합심기도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열흘 동안 합심해서 기도하는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재 한 것입니다.

이때 놀라운 경험을 한 교인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오늘 본문에 보면 또 합심해서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개인적으로도 기도하셔야 하겠지만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하는 자리에는 힘써 참석해야 합니다. 합심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마태복음 18:20 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말씀은 기도를 들어 주겠다는 말도 되지만, 예수님이 합심 기도하는 그 자리에 동참자가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에도 오는 4월 10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에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신 한 모두 나오셔서 합심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24절)

합심으로 기도하다 보면 자연적 소리를 높여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머리의 기도가 아니라 가슴의 기도이고, 성령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하는데 아무나 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를 내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하실 때 소리를 높여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다.

먼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부터 살펴보십시다.

24절 하반절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시요”

그들은 하나님을 “대주재여”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누가는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대주재’라는 낱말을 선택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눅 2:28) 하고 기도 했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주재여’

오늘 본문에서는 ‘대주재여’라며, 하나님을 호칭합니다.

 

본래 ‘대주재’는 헬라어 ‘데스포테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당시는 노예를 물건처럼 사고팔았습니다. 돈만 가지고 시장에 나가면 노예를 살 수 있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면, 이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 됩니다. 노예에게는 자신을 ‘값 주고 산 주인’이 ‘절대 군주’가 됩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이 있을 수 없고, 자기를 값 주고 산 절대 군주보다 더 높은 개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의 전 존재와 모든 목적과 지향점이 자기를 값 주고 산 주인에게 있게 됩니다. 그때 쓰는 단어가 <대주재>입니다.

지금 초대교인들이 산헤드린 공회의 협박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기운이 충천해서 합심해서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는데 그 첫 마디가 “데스포테스”(대주재여)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 명칭은 당시의 상황을 살짝 빗댄 것입니다. 우리의 절대군주는 로마도 산헤드린 공회도 아닌, 우리의 절대군주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그 (대주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24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시고, 지금도 우주의 주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창조주로 믿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 첫 구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고백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세상 을 통치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25-28절까지의 내용은 지금 현재 핍박상황의 성경적 근거를 말합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6 세상의 군왕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여러분!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성경에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사건도 요엘서에 예언된 사건이었다고 말씀했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사건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했고,

 

지금 박해 상황 때문에 기도하면서도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2:1-2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자신들이 핍박당하는 것이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박해하는 자들은 아무 쓸데없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 인적인 일이든, 교회나 국가적인 일이든>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말씀으로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자 그럼, 구체적인 그들의 기도제목을 살펴보십시다.

29-30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그들은 3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합니다.

①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소서.

②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③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들이 한 기도의 내용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씩 조금 더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소서.(29절)

쉽게 표현하면, <핍박을 겁내지 않는 용기를 주세요.>

여러분 같으면 산헤드린 공회의 핍박이 있고, 교회지도자가 투옥된 후에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하나님이여, 큰 능력을 더하사 우리가 핍박당하는 것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소멸 하옵소서. 우리가 핍박을 면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에는 그런 기도가 없습니다.

그들은 사건 자체에 변화가 있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달라지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없게 하여 주시고, 고난도 없게 하여 주시고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환경의 변화를 위하여 하는 기도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간혹 성도 중에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서

- 남편의 마음을 감동하사, 날 사랑하게 하여주옵소서.

- 아이들의 마음을 감동하사, 나에게 효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 우리 구역 식구들을 감동하사, 나를 존경하게 하옵소서.

-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을 감동하사, 나를 알아주게 하옵소서.

라며 기도합니다. 자신은 부동자세로 있고 주변의 환경만이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기도수준입니다.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변화고, 세상이 변해서 그저 나 하나 편하게 살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수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며 <이 환경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29절)

쉽게 말하면 <벙어리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미 핍박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큰 핍박이 있을 텐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입술이 벙어리가 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베드로와 초대교회 성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기를

에베소서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목회자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입술입니다.> 나가 불신영혼을 만났을 때, 담대히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담대히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목회자인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실 때에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성도들 눈치 보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30절)

한 마로 말하면 <표적을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표적을 구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대교회는 방언의 역사,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역사가 있었을 때 그 표적으로 인해 복음이 더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계속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기도하시면서 우리교회에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합심하여 소리 높여 기도를 마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첫째,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집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집이 흔들리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을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도 그런 지진으로 흔들렸습니다.

 

이 역사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똑 같습니다. 오순절 날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것도 진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기도한 모두에게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아지경’라든가, ‘종교적 절정 경험’이라든가, ‘환각’, ‘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의식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의식,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나아가 자아의식과, 사명의식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충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동체의식도 있었습니다.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 충만했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해, 자신에 대해,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게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셋째,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의 목적은 장사 잘 되고, 시험 합격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었습니다.

평생 사도행전을 연구한, 사도행전의 권위자 모리야 라는 학자가 쓴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 충만 자체를 위하여 기도한 흔적은 없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사도행전에는 ‘성령 충만하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더니 성령 충만을 선물로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의 기도와 지금 내가 하는 기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파악해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나를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하던 내 기도제목이 더 적극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도 좋고, 핍박을 받아도 좋고, 환난을 당해도 좋고, 가난해도 좋고, 질병도 좋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대주재 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성령 충만과 성령의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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