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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K4qe8ptf4Z8
본문 사도행전 4:32-3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4-02

사도행전 4:32-37 꿈같은 공동체

 

우리는 지난시간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도내용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은 세 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했습니다.

(핍박을 겁내지 않는 용기를 주세요. / 벙어리 되지 않게 해주세요. / 표적을 보여주세요.) 그들의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인 곳이 진동했고, 모두가 성령의 충만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도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

33절을 먼저 읽어보십시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큰 무리가 은혜를 받아” 산헤드린 공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4:18)고 했지만, 사도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부활의 소식을 전했을 때, 무리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는 성령 안에서 담대히 전하고,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이 주신 크신 은혜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자 교회공동체가 꿈같은 공동체로 변화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는 꿈같은 공동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당연한 공동체일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혈연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반드시 아브라함의 자손만 받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시대에 이르러 야곱의 12아들로 12지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시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고, 지파별로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땅을 매매할 때도 아무에게나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지파 안에서만 매매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땅이 원래대로 보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혈연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혈연 중심적 사고체계>가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신부이고,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32절을 보세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라고 합니다.

여러분 얼마 좋은 표현입니까? 교회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 한 부분이 아프면, 모든 부문이 아픔을 느끼듯이 함께 기쁨을 느끼고, 함께 슬픔을 느끼고, 함께 아픔을 느끼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간에 ‘나와 너’ 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이러해야 합니다. 비록 혼자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혼자라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교회만 오면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들어가 보면 그렇지 못한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패밀리가 형성되어, 그 패밀리들이 모든 실권을 갖고 있는 양 착각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온 교우들이 <한마음과 한 뜻이>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질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32절 계속 “...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4-35절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 말씀처럼 놀라운 말씀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물건을 교회에 내놓아 통용했다. 밭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고 그 물질로 구제했더니 교인 중 가난 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가 초대교회 이런 역사가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성령 충만한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지 보면 알겠지요. 은사에는 이적적인 은사와 비이적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이적적 은사 –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통역

비이적적 은사 – 교회의 직분, 섬기는 것, 구제하는 것,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서로 돕는 것

이 은사들이 교회 안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교회가 물질을 어디에 쓰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예수님도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기뻐하는 곳에 물질이 쓰여 지고 있는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이 선교입니다. 선교사역을 위해서 물질이 쓰여 지고 있는가? 살펴보시면 됩니다.

 

주중에 인도에서 사역하는 원향희선교사님을 통해서 메일이 왔습니다.

메일의 내용은 우리교회 한 가정에서 드린 선교헌금으로 예배당이 건축되어 봉헌식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사진1) 헌당예배 진행과 세례식을 위해 가시는 <데벤더 목사 / 아시시 목사>입니다. 인도 라자스탄이란 지역에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델리에서 라자스탄까지 비행기로 가서, 버스로 7시간을 타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예배당을 무너뜨렸고 순교자 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인도 정부에서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도록 노력했던 곳이라는 것입니다.

사진2) 현지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전형적인 인도 여인이지요.

사진3) 쿤다교회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새로 지은 예배당이라고 해도 여러분이 보 시면 뭐 이래 할 수 있겠지만, 인도에서 이 정도 예배당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사진4) 쿤다교회 성도들이 예배당 밖에서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사진 뒤로 보면 헌당식을 한다고 현수막도 붙여놓았는데 현수막에는 헌당식을 한 날짜, 2017년 3월 15일 / 그리고 후원한 우리교회 <대구정동교회 권오진목사>이름과, 현지 원향희선교사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5) 벧엘성경교회 헌당식의 모습입니다. 모인 사람이 많아서 밖에서 예배를 드 린 것 같습니다. 그 옆에 있는 허술한 집이 목사님 댁이라고 합니다.

사진6) 벧엘성경교회 헌당식 후의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진7) 헌당예배 후에 세례식을 베푸는 장면입니다.

침례로 통해서 한 영혼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교회로 통해 보낸 헌금이 인도 오지 핍박이 심해 교회가 파괴되고 심지어 순교자가 나온 그곳에 다시 복음의 전초기지가 세워졌고, 구원 받는 성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물질이 귀하게 쓰였지 않습니까? 벌써 28개 예배당이 지어졌습니다.

 

또 하나 최근에 있었던 말씀을 또 드리겠습니다.

지난 3월 18일(토요일) 한 구역에서 목회심방을 했습니다. 목회심방 때 마다 간단한 기도제목을 나눴는데 그 구역도 역시 간략한 기도제목을 나눴습니다. 그 중 한 가정에서 <선교 헌금>을 하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보류해 두십시다.’ 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우리교회가 집중해서 사역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송광옥선교사님께 몇 번이나 건축할 곳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소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일을 보내고 지난 22일 수요성령기도회를 마치고 엘림관에서 쉬고 있는데, 밤 10시에 청송 주왕산교회 목사님께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주왕산 교회는 청년부에서 수련회를 한 적이 있기에 대충 알 것입니다.

 

목사님이 고민 고민하다 전화를 했다면서 고민거리를 말씀했습니다.

교회에 화장실 시설이 좋지 않아 겨울이면 교인들이 손 씻을 때가 없고, 여름에는 수련회를 여러 교회에서 와서 해도 샤워시설이 없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화장실과 샤워실을 건축하기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드디어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건축은 시작했는데, 출신교인 들에게 연락하고 현재 교인들이 건축을 했는데, 다 합쳐서 3,000만원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건축비용은 4,400만원으로 계약을 했는데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합니다. 그 걱정을 안동에 있는 한 목사님께 말씀했더니 목사님이 섬기는 성로원교회도 대구 정동교회에서 페인트를 칠하고 수리를 해 주었다면서, 한 번 연락해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수요일 밤 10시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건축 중인 화장실과 샤워실 사진을 한 장 보내왔습니다.

(사진8 – 최초 사진 / 사진9 – 답사 후 사진 )

전화를 받는 순간 주왕산교회 화장실 문제가 ... 저의 문제로 넘어왔습니다.

다음날 선교헌금을 하신다는 집사님에게 문자를 드렸습니다.

<집사님은 선교헌금 하시려고 해서 제가 보류해 놓았는데, 혹시 주왕산교회에서 이런 문제로 어제 밤에 연락 왔는데, 국내선교지를 도와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속마음을 알려주세요.> 했더니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일 당회에 알리고, 지난 월요일 손태규 장로님과 주왕산교회 건축현장에 가서 건축에 문제가 없는지, 손 장로님이 전문가로서 조언할 것을 해 드렸고, 선교헌금 1,000만원을 송금해 드렸습니다.

 

여러분! 제가 정동교회 담임목사이지만 이런 일을 통해 느끼는 것은 참으로 우리교회 성도들이 대단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렇게 좋은 성도들과 함께 목회하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교회가 성령 충만한 것을 확인하려면, 그 교회가 선교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가? 확인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더욱 놀라운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제사역>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세요. 32절 “...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도다.”

 

여러분, 분명히 내 물건이고 내 소유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후에 자신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만약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그것을 기쁘게 내놓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강요하거나 시킨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보면 입술로는 예수를 말하고, 충성을 말하고, 헌신을 열심히 말하는데, 선교헌금, 장학헌금을 하는데 있어서는 못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은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이 돈이 아까워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헌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시간, 생명, 재능,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잠깐 동안 그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청지기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주인인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음이 이러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역사들이 스스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셋째, 헌금하는 방법을 살펴보십시다.

34-35절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 요를 따라 나눠 줌이라”

37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1) 교인 중에 <밭과 집>을 팔아 구제 헌금하는 자가 생겼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이 부분을 생각 없이 들으면 ‘오늘 교회 갔더니 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라고 하더라.’하면서 기독교를 욕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사도들이 밭을 팔아 바치라고 설교를 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니 그들이 가진 것을 팔아서 헌금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 일반적인 사고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혈연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안 먹고 안 쓰고 돈을 벌어서,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많이 물려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식들도 자신의 노력으로 살려고 하기보다, 부모님들이 나에게 남겨줄 유산은 없나? 하면서 국물만 기다리는 자식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정신이 들어간 미국과 같은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평생 사용하고 남은 재산의 경우에는 교회나 학교에 기부하는 기부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이 주님이 기뻐하는 곳에 쓰이도록 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 36절-37절에는 그 대표로 바나바를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난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구브로에 땅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은퇴하고서 말년에 쓰려고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땅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령을 체험하고 기도하다가 땅을 판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기 위해서, 나눠 주기 위해서 팔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바나바는 참으로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사역에 뛰어난 인물이라면, 바나바는 인격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에도 바나바와 같은 성도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 헌금을 사도들을 발 앞에 가져왔습니다.

35절 상반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37절 하반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헌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왔다는 것은 오늘로 말하면 교회 앞에 헌금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적 헌금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헌금은 구제하기 위한 헌금입니다. 그렇다면 이 헌금을 교회에 바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구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직접 구제하면, 자신이 칭찬받게 되니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로 통해서 구제하지 않고, 개인이 구제를 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은 구제하는 사람을 칭찬할 것입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은 항상 어떤 헌금이든 <교회>앞에 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 가끔 <십일조헌금>을 본 교회에 해야 합니까? 그 십일조헌금을 어려운 교회에 내가 보내면 안 됩니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섬기는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으면 헌금은 당연히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힘든 교회를 보고 도와주고 싶으면 십일조 헌금을 드릴 때 (어느 교회가 힘든데, 이 십일조헌금으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면 어떤 교회든 당회를 열어서 보내드릴 것입니다.

 

특별헌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선교헌금도, 구제헌금도 교회 앞에 드린 후에 교회가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보내는 선교헌금 중에는 성도 가정에서 후원하고 싶은 교회와 선교지가 있습니다. 그들의 원하는 대로 우리교회 이름으로 송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도님들이 드린 귀한 헌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올바르게 보내드릴 막중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분문 중에 제 눈에 가장 크게 뛴 말씀은 33절 하반절의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라는 말이었습니다. 성령 받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온 무리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주일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 받았기에 기쁨으로 십일조헌금을 드리고

은혜 받았기에 기쁨으로 선교헌금을 드리고

은혜 받았기에 기쁨으로 구제헌금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안과 우리 주변에 34절 “그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니”라는 말씀처럼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모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겨가는 우리 교회와 이 지역을 만들어 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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