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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NgSxabO8Z1I
본문 마태복음 18:1-1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5-07

마태복음 18:1-10 가정에서 작은 자는 누구인가?

 

프란시스 쉐퍼 박사 부부(Francis & Edith Schaeffer)는 1955년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기슭 위에모(Huemoz)란 동네에서 라브리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라브리"는 불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며, 이 공동체에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의 대답을 찾기 위해 누구나 잠시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영적 피난처의 역할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라브리 공동체를 창설한 프란시스 쉐퍼 박사도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청년 목사였을 때 굉장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인간이고, 영적, 정신적, 지식적인 능력이 제한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민을 안고 있던 쉐퍼 목사는 그때 모세가 들고 있었던 지팡이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당시 일반 목자들도 사용한 지팡이로 석자는 넘고(90cm) 여섯 자(180cm)는 못 되는 나무지팡이였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고 살았기에 다른 목자들처럼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나무 지팡이는 오랫동안 죽은 채로 그저 한 목자의 지팡이 노릇만 하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출애굽 계획을 알리면서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 있는 분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모세가 가진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합니다. 땅에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다시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들고 가서 애굽과 대항하여 바로를 대면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 서서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마술사들도 모세를 대항하기 위해서 뱀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모세의 지팡이가 변한 뱀이 바로의 술사가 만든 뱀을 삼켜버림으로 얼마나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분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 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켰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바로의 군사들을 심판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광야에서 물이 필요할 때, 바위 앞에 서서 지팡이로 바위를 치매 생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육십만의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에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였습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모세의 지팡이를 연구하다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 것 없고, 대단한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의 손에만 붙잡힌다면 나로 인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설교할 때마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사람도 없고, 낮은 자리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영성의 눈으로 보면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높은 자리, 낮은 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이런 영성의 눈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적은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같은 가정생활에서 살면서 그 공동체 안에는 <큰 자가 존재하고, 작은 자가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상반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하며 <작은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작은 자란? <힘이 없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 / 자기 홀로 노력한다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사회에서 작은 자는 누구일까요?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도 근무하다 사고를 당해 6명이 숨지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하청업체 직원들이 작은 자이겠지요.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이고, 미취업 상태로 빚만 늘어가는 청년들, 홀로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이 작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이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오늘 설교 제목인 <가정에서 작은 자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십시다. 가정에서 작은 자는 가정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작은 자가 누구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오늘 어린이축제 주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작은 자입니다.

세상이 양극화 현상으로 힘들어 하는 지금, 아이들의 문제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최고의 교육환경과 과잉 사랑으로 왕자병(공주병)에 걸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 방임과 매질, 급기야 살인에 희생되는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1월 인천에서는 장기결석 초등생이 아버지에게 학대받다 숨진 뒤 시신이 훼손된 상태로 냉동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월에는 부천 장기결석 여중생이 유학까지 다녀온 목사이며 교수인 아버지의

학대 끝에 숨진 뒤 백골 상태로 발견되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경남 창원에서는 큰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혐의로 친모가 구속되었고, 평택에서는 계모로부터 상습적으로 심한 학대를 받아 숨진 '원영이' 사건(당시 7세)으로 또다시 충격을 줬다.

 

부산에서는 지난달, 생후 6개월 된 아들에게 향불로 액운을 쫓는 의식을 하다가 아들이 숨지자 야산에서 시신을 불태운 뒤 유기한 사건이 7년 만에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 아이는 만약 살아있다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였습니다.

 

이런 아동학대를 보면 가해자는 주로 부모입니다. 가해 장소는 가정이 대부분이고, 학대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비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작은 자이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축복해 주었고, 아이들을 천국에 들어갈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강해설교로 한다면 설교제목을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 했을 때

1)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4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2) 어린아이라도 귀히 영접하는 자(5절)

3) 어린아이에게 본이 되는 자(6절)

4) 소자 하나라도 끝까지 보살피는 자(12-14절) 라고 설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어린이를 높였고, 어린 아이를 영접해주고, 어린 아이에게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어린 아이를 가정마다 선물로 주셨고, 돌보시고 있고, 그들을 앞으로 들어서 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10절에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문자대로 풀어보면 “작은 자의 천사들이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에게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각각의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자에만 수호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자에게도 수호천사가 있겠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작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천사들도 그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의 가치를 그동안 생각한 <나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께서 잠시 맡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아이지만 그 아이가 하나님의 손에만 들려지면 사사시대가 끝나고 영적인 암흑기를 밝힌 12살의 사무엘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교회는 물론이요 세상에서 크게 쓰임 받는 아이가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작은 자는 <늙으신 부모님>입니다.

어르신들은 연세가 들수록 점차 작은 자가 되어버립니다.

삶을 통해서 이루었던 것들을 하나씩 둘씩 잃고 능력 없이 집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슬픈 모습의 작은 자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 지난해 4월 인문학콘서트 강사로 오신 이철환작가의 책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철환 작가 아버지는 술을 즐기며, 폭력적인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술만 마시면 부부지간에 싸웠고, 어린 아이들에게 술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는 술로써 가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고 합니다.

이철환작가가 이명, 어지럼증, 우울증,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도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었기에 낮에는 학원에서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5년 동안 글을 쓰면서 과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런 좋지 않는 상처가 있었지만 이철환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하나는 이철환 작가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철환작가는 어린 시절 단칸방에 살았는데 여름이면 방에 비가 샜다고 합니다. 한 번은 폭우가 내려서 어머니가 비가 새는 곳에 세숫대야와 양동이를 여기저기 받춰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입니다. 어머니나 아이들이나 아버지는 술을 마시려고 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술을 좋아했으니 비가 오니 술 마시려 가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자 온 가족이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참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자 온 식구가 빗속에서 아버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얼마 후 아버지는 지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빗물 새는 것을 막겠다고 깨진 기와지붕 위에 앉아 힘겹게 우산을 받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늙었을 때 이야기 하나를 더 해드립니다.

이철환작가가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 할 때, 아내가 우울증치료를 위해 밖으로 갈 때를 위해 중고차를 하나 샀다고 합니다. 그 중고차로 병원을 다니고 외출을 했는데 하루는 함박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눈이 내리자 늙으신 아버지가 낮부터 밤까지 거의 한두 시간 간격으로 차 위에 눈을 치우셨다고 합니다. 다음날이라도 아픈 아들을 태우고 어디든 갈 수 있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병든 아들의 손을 한 번도 잡아 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이제는 작은 자가 되어 아들의 손을 그렇게 잡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큰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작은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어린 아이가 십계명을 외웠습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제삼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나님에 대한 4계명까지 잘 외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오 계명을 외우는데 부모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기가 외운 오계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격하라 하더랍니다.

부모가 깜짝 놀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해야지, 공격이 원말이냐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대답하기를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시는 것을 보고 그게 맞는 걸로 알았어요.”하더랍니다.

 

씁쓸한 이야기 아닙니까? 어렸을 때 <아빠, 엄마> 하다가, 성장해서 <아버지, 어머니> 하다가 나중에 <아버님, 어머님> 할 때, 우리는 말로만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끝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공경과 경외로서 끝까지 섬겨야 할 대상이지, 결코 작은 자로 우리가 불쌍히 여겨야 할 존재가 될 수 없는 줄 알고, 연로한 부모님들을 작은 자에서 – 하나님의 대리자로 회복시키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 가족입니다.

진정으로 가정에서 작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님이심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남편이 될 수 있고, 아내가 될 수 있고, 자식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가족의 전도와 권고를 끝내 거부하는 자가 바로 가정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정우택장로의 장편소설 <슬픈 천국>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유혜민권사입니다. 그의 남편 이름은 김세상입니다.

이들은 처녀 총각 때 교제했습니다. 처녀 때에도 유혜민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었는데, 김세상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보통 예수를 믿지 않는 총각이 결혼하기 위해서 결혼하면 예수를 잘 믿겠다고 약속을 해서 결혼을 하고는 결혼 후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 애를 먹이는 남자들이 많듯이 이 가정도 그러했습니다.

 

유혜민권사는 교회 봉사와 전도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신앙의 삶이란 이런 것이야 보여주듯이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실패했습니다. 남편 김 세상을 끝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일입니다.

 

소설 속에 유혜민권사는 남편에게 중점적으로 들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5:24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아무리 이 말씀을 해도 남편은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결혼식 날, 아내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김세상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무려 40년 동안 교회 출석을 기피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유헤민권사는 병이 들게 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 극장에서 방영되고 있는 서서평선교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 처럼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유혜민권사는 하늘나라에서 심판대를 통과한 후에 천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남편이 오기를 10년을 기다립니다.

제가 <슬픈 천국>은 정우택장로의 장편소설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아시고 들으셔야 합니다.

아내가 떠나고 세상에 남아 있는 김세상은, 아내를 따라 천국에 갈 기대만 했을 뿐 믿음은 남편과 아내의 각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부인의 치맛자락을 잡고 가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김세상도 결국 죽음을 맛이 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는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쁘고 행복해야 할 천국이 유혜민권사에게는 <슬픈 천국>이 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세 가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각자의 것이라는 점,

둘째, 믿음은 때가 있다는 것

셋째, 세상에서는 돈과 명예, 학벌 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는 이런 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한 것을 본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정에서 가장 작은 자가 누구냐? 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가 가장 작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에서 가장 작은 자가 누구인지? 살펴보게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작은 자이고, 늙으신 부모님이 작은 자이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가족이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작은 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작은 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스스로 주님 앞에 올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그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지 않는 일, 작은 자 하나를 업신여기지 않는 일, 작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게 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 임을 알고 / 5월 한 달 동안 가정에서 작은 자를 발견하고 그들을 힘껏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과 모든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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