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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ILFf9AxkSp4
본문 유비무환 (有備無患) (히 9:27)
설교자 권오진목사
설교일 2016-11-06

히브리서 9:27 유비무환(有備無患)

 

경주에 있는 유물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첨성대 사진>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첨성대입니다. 경주하면 <불국사 / 첨성대> 할 만큼 유명합니다. 그런데 첨성대에 가 보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게 별 것 아니잖아!’ 하며 무시하고 사진 한 컷 찍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입니다.

 

저는 부교역자 시절, 첨성대에서 도보로 700미터 지점에 있었던 경주남부교회에서 7년 2개월을 사역했습니다. 첨성대를 많이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첨성대는 신라인의 우주관이 들어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뿐 그 이상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나오는 설명을 보고 나서는 첨성대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책 내용을 그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몸체는 모두 27단으로 되었는데, 맨 위에 마감한 정자석(井字石)과 합치면 28,

기본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 여기에 기단석을 합치면 29. 한 달의 길이를 상징한다. 몸체 남쪽 중앙에는 네모난 창이 있는데 그 위로 12단, 아래로 12단이니 이는 1년 12달과 24절기를 상징하며 여기에 사용된 돌의 숫자는 어디까지 세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362개 즉 1년의 날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첨성대는 태양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기준이 되는 일정한 기능도 했다. 기단석은 동서남북 4방위에 맞추고 맨 위 정자석은 그 중앙을 갈라 8방위에 맞추었으며 창문은 정남이다. 정남으로 향한 창은 춘분과 추분, 태양이 남중(南中)할 때 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치게 되어 있고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광선이 사라지므로 춘하추동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 측정의 역할을 한다.】

 

자 어떻습니까? 제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나오는 첨성대의 원리를 읽는데 몇 분이 걸렸습니까? 5분도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머릿속에서도 첨성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똑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범위를 넓혀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사람의 성장 과정과 일생]을 소개하면

1. 엄마의 뱃속: 엄마의 뱃속에서 10달 동안 자란 후 태어난다.

2. 생후 2주: 기어 다니거나 걸을 수 없다. 눈도 잘 뜨지 못하고 누워만 있으며, 젖이나 우유를 먹는다.

3. 생후 2~7개월: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혼자 앉아일 수 있습니다.

4. 생후 7~9개월: 기어 다닐 수 있고, 물건을 잡고 일어설 수 있다.

5. 1세: 일어서고 걷을 수 있다. 말을 할 수 있고, 이가 나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6. 1~3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7. 6~12세: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닌다.

8. 12~20세: 남녀의 특징이 나타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숙이 이루어진다.

9. 20~60세: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서 가족을 이룬다.

10. 60세 이후: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며, 주름이 많아진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도 ‘인생은 이렇다’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세 사람이 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다윗 - 시편 39:5에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하면서 인생의 길이가 <한 뼘 길이만큼>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손을 내밀어 한 뼘 재어보세요.

20-25cm밖에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짧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모세 - 시편 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했습니다. 인생은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 야고보서 4:14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손 넓이만하다, 날아간다, 안개 같다.>는 말이 공감되십니까? 공감하든 하지 않던 인생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순간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의식하지 않고 살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사자성어입니다.

<유비무환>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에, 이 말은 상당한 진리구나 하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젊어서부터 노후생활을 원만히 준비한 사람은 세상 살기가 좀 쉽습니다. 하지만 젊어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노후가 되었을 때 세상 살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이슈인 <환경>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 태풍문제도, 미리 준비하고 대비를 잘 하면 최소한의 피해를 보지만, 일기예보를 통해서 경고를 하는데도 준비하지 않게 될 때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게 된 것을 뉴스를 통해서 접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가 지금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 문제를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27절)

“누구나 한 번은 죽으며, 그 후에는 자기 삶의 결과와 마주해야 합니다.”(메시지 역)

 

이 말씀은 별로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심판이 다라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먼저 <죽음>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죽음은 그다지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초읽기가 시작되는 시한부인생을 살아갑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하루 동안 사망하는 자가 10여 년 전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146,132명이었습니다. 그럼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까? 작은 도시 하나가 매일 쓸려가듯 죽어 나갑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갑니다. 우리도 역시 한 사람도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고 했는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누가 결정했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너는 흙이야, 결국 너는 흙으로 돌아갈 거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선언 이후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피한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숨을 쉬고 사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시급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데 준비할 필요가 있나요?” 세상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으면 끝....”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기가 막힌 사실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 따라오는 게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27절)

죽음 이후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죄 값을 물어서 그 죄의 값을 영원토록 치르게 하는 게 심판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심판을 놓고 <지옥, 저주, 멸망 / 죽음>이라는 다른 용어로도 표현합니다.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우리가 살면서 범한 모든 죄 값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물으시는 심판이 죽음 이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을 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겁주지 말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수 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를 부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될 뿐입니다.

 

요한복음 5:29절에는 심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대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이 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이것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갑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한 일>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악한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는 일입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부모로부터 간섭받는 게 싫어 집을 나갔다고 합시다. 그리고 몇 년간 제 맘대로 살면서, 나쁜 짓은 안했다고 합시다. 알코올 중독에도 빠지지 않았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기를 치거나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집 나간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자랑스러운 자식입니까? 어떻습니까? 그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도 그는 부모에게 죄인인 것입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서 성공을 했어도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면 그 아들은 죄인인 것처럼,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작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아예 제쳐놓고 살았습니다. 머리가 커질수록 하나님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냐며 무시하고 내가 하나님이 되어 살았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영락없이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죽음을, 그리고 그 후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맞이할지 대책이 없습니다.

사실 죽음문제, 죽음 후에 오는 심판의 문제는 .... 내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대책을 세운들 어떻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심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문제, 심판 문제를 위해서 대책을 다 세워놓으셨습니다.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인 요한복음 3:16에 그 대책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서 ‘세상’이란 말을 빼고 <나>를 넣어 읽어보십시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구절만 더 보십시다. 로마서 10:9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 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세상에 오셔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으셨고, 죽으신 다음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이제는 나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구원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혹시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직 성경도 잘 모르고, 이렇게 몇 마디 듣는 것으로 어디 믿겠습니까? 좀 더 연구한 다음에 믿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아무리 알고 싶어도 다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전해드리는 이 말씀 정도만 알아도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군요. 이제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늘 고백하며 살겠습니다. 절대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하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나를 하나님처럼 받들고 살았던 모든 죄도 용서해 주십니다. 못된 근성과 모든 마음의 죄악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모두 한 순간에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도 부를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실화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이 친구 따라 교회에 갔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매일의 삶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믿지 않는 아빠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빠만 보면 예수 믿으라고 졸라댔습니다. 그러면 아빠는 그런 아들이 귀여워 적당히 둘려댔습니다. “너나 먼저 잘 믿어라. 나중에 시간 있으면 나도 언제든지 믿을 테니까?”

 

그런데 얼마 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 아들이 쓰던 방에 아빠 혼자 들어가 책가방도 만져보고, 노트도 만져보고, 앉았던 의자도 만져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서랍을 열다가 노트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이 쓴 일기장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다가 다음 문장에 눈길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 꼭 예수 믿게 해 주세요. 만약 내가 죽어야 아빠가 예수 믿을 수 있다면, 내가 죽어서라도 아빠가 꼭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걸 읽는 순간, 아버지는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먹먹해졌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이기에 자기 생명을 걸고 기도했을까? 나를 예수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가신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쏟아지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더러운 죄인, 아들만도 못한 놈, 어린애가 발견한 진리를 나이가 들어서도 발견하지 못한 이 어리석은 놈, 지금이라도 예수 믿겠사오니 불쌍히 여기고 받아주세요.” 아버지는 그렇게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믿지 않는 친구들을 붙들고 전도하다가 나중에 직업도 포기하고 전도만을 전문으로 하는 국제대학생선교회(CCC)에 들어갔습니다. 그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부총재까지 올랐습니다.

이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데 큰 공헌을 한 김준곤 박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오늘 초대받아 오신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심판을 피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놀라운 기쁜 소식을 듣고도 마음을 닫으면 안 됩니다. 마음을 열고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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