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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n-hB41gnwZI
본문 함께 세워가는 교회(엡 2:19-22)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6-12-11

에베소서 2:19-22 함께 세워가는 교회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중 폴 틸리히(P. Tillich 1896-1965)목사님은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교회를 떠나서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다. 비록 교회가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기독교는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의 중요성 4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그래서 사랑을 주고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 험하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가 중요하다.

둘째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이다. 그런데 이 예 배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째는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선포되고 이 복음을 세상 사람들이 듣게 되기 때 문에 교회가 중요하다.

넷째는 교회가 성경을 바로 해석해 줌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바른 신앙에 서도 록 해 주기 때문에 교회는 아주 중요하다.

 

신학자답게 교회의 중요성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교회인데 지상에 있는 교회 중에는 완벽한 교회가 한 교회도 없습니다. 이유는 교회의 지체된 우리 중에 완벽한 성도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지상에 있는 교회 교인 중에 완벽한 교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사도행전을 보세요.

베드로사도가 완벽했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완벽했습니까?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이 완벽했습니까?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장,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혈기가 있어서 다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에 안에도 이런 저런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가 좋다’ 말해도 그 교회에 들어가 보면 인간의 냄새가 나고, 문제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완전한 곳으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교회생활에서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교회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22절 하반 절에 “지어져 가느니라.” 하셨습니다.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지상에 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든 완성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지어져 가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완성된 교회만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완성된 교회에만 임재하신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지어져 가는 중”이라고 라고 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교회된 우리 개개인을 보면 부족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분은 바울처럼 고집이 대단한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베드로처럼 혈기가 대단한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매사에 불평으로 가득 차있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자기자랑하고 싶어서 견지지 못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있는 분도 계십니다. 300명 성도 중에 300명 모두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의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으로 지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더디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조금씩 온전한 교회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에베소서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기록한 옥중서신으로, 에베소교회에게 <지상에 교회,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에베소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인 19절 말씀부터 먼저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 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너희들은 <외국인> <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강조하려는 것은 당시 에베소교인들이 이방인이라고 유대인들에게 차별을 당하며 멸시 당하였던 처지를 언급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한 가족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성별과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도 이런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모처럼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아이 어른 관계없이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남자와 여자, 성별 관계없이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1달된 성도나 45년 전 개척 때부터 오신 성도나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구별하셔서는 됩니다. 이런 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나라의 시민이교 하나님의 권속(하나님의 가족 일원)이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떤 국가에 살던지 그 국가의 일원이면 그 국가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우리나라의 차량은 우측통행을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에 항상 길을 건너려고 하면 우리의 시선은 먼저 좌측을 살핍니다. 이유는 혹시 차가 오지는 않을까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 영국, 호주의 경우에는 차량이 좌측으로 통행합니다. 그렇기에 좌측으로 차량이 운행하는 나라에 여행하면 처음에는 정신이 없습니다. 신호등을 건널 때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좌측을 봅니다. 그런데 차량이 좌측으로 통행을 하는 나라에서는 우측을 봐야 차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민이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나 자신이 불완전하지만, 성도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잘 알고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몇 가지 성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이 말씀은 두 가지를 말씀하는데 성도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위에 세워진 존재라고 말하고 있고, 이어서 성도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모퉁잇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건축양식과 이스라엘의 건축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퉁잇돌에 대한 이해를 잘 하지 못합니다.

모퉁이 돌은 집을 지을 때 <기준이 되는 돌>입니다. 설계도가 없던 시절에는 기준이 되는 돌을 4모퉁이에 놓고 벽돌을 쌓았습니다. 그렇기에 모퉁잇돌은 건물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벽과 벽을 연결하는 까닭에 건물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모퉁잇돌의 또 하나의 의미는 <모퉁이 돌에 건물의 소유주의 이름을 새겨 건물의 소유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퉁잇돌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교회의 기준이요, 예수님이 교회의 소유주>라는 말입니다.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 기준을 <기본이 되는 표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교회된 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하지?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어떻게 예배하면 되지?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어떻게 대인관계를 하지?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어떻게 대사회와의 관계를 맺지?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부정적으로 대답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인데.. 어떻게 따라하겠습니까?>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에 우리가 살아갈 힘도 주님께서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힘으로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1절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다시 생각해 보세요. 건물의 기준은 모퉁잇돌입니다. 문제는 모퉁잇돌이 놓여 지면, 그 사이에는 벽돌 한 장 한 장 놓여 져야 합니다. 이 벽돌 한 장 한 장이 성도된 저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혼자서 사역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십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어서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도와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가족이 중요한 이유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지기에 중요합니다.

교회도 절대로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나도 필요하고 옆에 있는 성도도 필요합니다.

 

혼자의 힘과 연합의 힘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쉽게 설명할 때 말을 이용해서 하지요. 말 한 마리가 끄는 힘은 1,100킬로그램인데. 그렇다면 두 마리가 끄는 힘은 어떤가? 무려 5,600킬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두 마리의 말이 연합 했을 때 산술적인 계산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을 끌더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류태영박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했습니다. 90분 강의였지만 많은 도전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류태영 박사님과 강의 전과 후에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전에 목양 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제가 궁금한 것을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청도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류 박사님의 말씀이 사실은 청도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가 아니고, 지금의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라는 것입니다. (당시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나 하는데 1967년 봄에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문성리에도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고추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그때 홍선표라는 젊은 이장이 마을 앞 하천을 동네 주민들과 힘을 합쳐 깊이 2m × 너비 가로 4m × 세로 200m를 팠다고 합니다. 거기에 물이 고였고,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30마력의 양수기를 구매해서 물을 퍼 올려 공급받으므로 풍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고추농사가 되지 않아서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을 했는데 문성리는 고추농사가 풍년이었고, 그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1970년부터 시작한 시범 새마을 가꾸기 운동,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이지요. 마을 안길 넓히기, 지붕개량, 공동우물개발 등을 잘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1년 9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각료, 전국 시․도지사, 시장, 군수를 대동하여 문성리을 방문하여 <한국의 농촌이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고 지시하였기에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가 문성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현재 경북 청도와 : 포항 문성리가 공동으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포항기계면 문성리 일화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홍선표 라는 젊은 이장과 동리 주민 모두가 하나 되어 하천을 팠을 때 물이 나왔고, 주민이 합력했을 때 전국에서 으뜸가는 새마을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교회도 바로 이런 곳입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받은 직분, 자신이 받은 은사, 자신이 받은 달란트로 협력하는 교회만 되면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섬김과 봉사는 중요한 것입니다.

 

3. 함께 지어져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보통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 1:1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성도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문화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오늘의 문화가 함께 밥을 먹어도 밥값은 더치페이(dutch+pay)로 합니다. 각자 따로 따로 내는 것입니다. 음식점에도 혼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집이 나옵니다. 따로 따로 문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도 개인적으로 예배하고, 믿음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우리의 몸에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머리를 뺀 <목 / 팔 다리 / 몸통 / 오장육부> 역할을 성도 각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그 역할을 다할 때에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성된 교회에 두지 않고, 예수님과 우리가 협력하여 교회를 지어져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회의하고, 합력해서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함께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1) 교회의 기준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는 성도는 서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3) 그리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직분, 은사, 달란트로 교회를 더 아름 답게 지어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는 매년 아름답게 성장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은혜이고, 다음이 성도 전체의 헌신과 섬김 때문입니다. 이제 다가오는 2017년에도 모든 성도가 합력해서 섬김으로 함께 아름답게 지어가는 우리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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