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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3VYNQuRvJls
본문 디도서 3:4-7
설교자 권오진목사
설교일 2016-12-25

 

디도서 3:4-7 하나님이 나타내신 사랑의 능력

 

성탄축하예배와 한 해를 마감하는 결산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과 가정위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밤새 곡하고 누가 죽었느냐고 물어 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서 실컷 슬퍼하고 심지어 곡까지 하고는 정작 누가 죽었는지 몰라서 물어본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요?

속담이란 것이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으니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그리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면 괜찮은데,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그러했다면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런데 초상집은 몰라도 생일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밤새 축하하고는 누구 생일인지를 물어보는 날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요즈음은 많이 덜해졌지만 그래도 성탄절이 되면 화려한 장식의 트리가 세워집니다. 성탄이브가 되면 사랑하는 여인끼리 여행을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즐기면서 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탄절을 즐기면서도 <성탄절이 누구의 생일인지?>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성탄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우리의 삶에 성탄의 정신을 적용시키는 데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하는 디도목사에게 주신 목회서신입니다. 그레데 섬은 지중해상에서 네 번째 큰 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였습니다.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치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갈 때 미항에 머물렀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뵈닉스 항구로 가려다가 풍랑을 만나게 된 곳이 바로 그레데 섬입니다. 그 섬에서 디도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바닷가나, 섬은 목회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당시에도 섬 목회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디도서 1:12-13에 그레데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지금도 그레데 섬과 같은 데서 목회를 하라고 하면 많은 목회자는 힘들기에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도 해도, 짖어대는 개처럼 말이 많은 자라도 해도, 게으른 먹보와 같은 자라고 해도 분명한 사실은 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아야 할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에 디도 목사를 보냈고, 디도 목사가 그곳에서 목회를 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말씀이 오늘 읽은 디도서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성탄절을 맞은 우리가 꼭 들어야 할 <성탄절의 핵심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1. 성탄절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다.

4-5절을 보세요.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간단하게 기록한 이 말씀이 성탄의 사건과, 우리가 구원받은 근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절정의 사건이 <성탄절>이라는 말입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을 사랑이시라(요일4:8)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 너 사랑해’라고 해도 사랑한다는 흔적이 없다면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입술로 교회를 사랑한다고 해도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으면 그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는 부부지간에도,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속성을 <사랑>이라고 해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천국에 계신 하나님이 –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생명의 떡 되신 하나님이 – 마구간 구유에 뉘였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성탄절의 기도>가 있습니다. 성탄절의 기도 앞부분에서 성탄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높이시기 위해 친히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부유해지기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해,

우리를 당신의 영생에 참여시키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당신은 단지 하늘에만 거하려고 하시지 않고,

우리 곁으로, 이 땅으로 오길 원하셨습니다.

 

단지 높은 곳에서 크신 분으로서 존재하길 원하시지 않고

우리처럼 낮고 작은 자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단지 우리를 지배하길 원하시지 않고

우리를 섬기려고 하셨습니다.

 

단지 영원 속에서 하나님이길 원하시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인간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기를 원하셨습니다.】

 

신학자다운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성탄의 사건은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요 사랑 때문입니다. 그 성탄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주님의 공생애 모든 사역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 있지만,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서 오셨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역하셨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성령께서 믿음을 주셔서 믿게 해 주셨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너는 네 아들이라’하면서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그러니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예수님 탄생으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해하고,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 6-7절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이 부어 주사 ○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은혜의 완성을 향해 구별된 삶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 자녀들의 삶은 경건한 믿음, 사랑 실천의 믿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간호대학을 다니던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ger)는 대한민국 소록도에서 한센인 들의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는 순간 하나님이 “네가 가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설렜다고 합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을 얻은 뒤 수녀가 되어 한국의 버림받은 땅 소록도를 향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마가렛 피사레크도 같은 마음으로 소록도를 찾아왔고, 두 사람은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사진 1 – 의료진과 함께 찍은 사진 /(좌 – 마가렛, 우-마리안느))

 

이들이 도착했을 당시 소록도에는 6천여 명의 환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한센 병은 나균 때문에 살이 썩고 뼈가 녹아서 손발이나 코와 입이 뭉그러지거나 없어지는 병으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여겨질 만큼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고, 한센병 환자가 만졌던 물건만 만져도 병이 전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들조차 한센병 환자들을 집에서 내쫓거나 거리에 갖다 버렸고, 정부에서는 아예 법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소록도에 끌고 와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치료할 시설이나 물품 일손 따위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록도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한센 병에 걸릴까 봐 두려워 환자에게 가까기 가기를 꺼렸고, 치료 할 때도 모기나 파리에게 약을 치듯 환자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독약을 부려 댔습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수녀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은 몹시 충격적이었습니다.

두 수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환자들의 썩어 가는 부위를 맨손으로 만지고 손수 피고름을 짜주었습니다. 또 손으로 환자들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고 구멍이 뚫린 발바닥에 거즈를 밀어 넣어 주면서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한센 병은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기를 10년 20년 30년 40년이 지났습니다. 20대 후반에 한국에 온 그들이 일흔이 넘게 되었습니다. 소록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개친 두 수녀를 “큰 할매, 작은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사진 2. 큰 할매, 작은 할매 사진)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던 두 수녀가 이제는 자신이 오히려 소록도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고 2005년 겨울 아침에 “이제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소록도 사택 앞에는 마음에 평생 담아 두었던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여라”는 말이 또렷이 적여 있었습니다.

(사진 3,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여라’)

 

그들이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소록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겼고, 열흘 동안 수녀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두 수녀 할머니는 수도원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소록도가 그리워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 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한국에서도 붙여 놓았던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한국말로 써서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성탄의 감격을 아는 자의 삶이란 바로 이런 삶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작은 예수가 되어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돌아보는 삶,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성탄절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제가 앞부분을 소개한 칼 바르트 <성탄절을 위한 기도> 뒷부분에도 성탄의 감격을 가진 자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도하는 내용이 이어서 나옵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온갖 어두움과 고난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잘못들과 오해들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담하게 견디어야 하는

차가운 현실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위협하는 크나큰 위험들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이런 위험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를 엄청난 위험으로 몰아넣는 냉전과

상호위협의 어리석은 행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통치자들에게,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지혜와 인내와 결단력을 주소서.

당신의 선한 땅에서

모든 자들이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병든 사람들,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추방당한 사람들, 억압당하는 사람들,

불의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울 수 있고 돕도록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

재판관들, 공무원들, 교사들, 학자들과 언론인들,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생각합니다.

여러 교회와 모임에서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 모두에게 성탄의 빛이 이전보다 더 밝게 비추어,

우리 모두가 도움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결단하여야 할 것은 칼 바르트가 기도한 내용처럼,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의 삶의 주변을 볼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금년은 성탄예배가 한 해를 결산하는 예배가 되어버렸습니다.

금년 한 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셨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셨습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주신 말씀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하시고,

2017년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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