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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6VeOsVhbRxs
본문 사도행전 6장 1-7절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4-23

사도행전 6:1-7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원한다면

 

지난 두 주일(종려주일, 부활주일)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을 생각했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순서대로면 사도행전 5장을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은 6장의 말씀을 먼저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에 일꾼을 선택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십시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절에 좋은 소식과 좋지 않는 소식이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 제자가 더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처음 다락방에 모인 수가 남녀를 합해 120명 정도였습니다. 이 수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하루에 3,000명으로 바뀝니다.(2:41)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서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5,000명으로 바뀝니다.(4:4)

5장에 와서는 아예 수를 세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5:14)

그데 6:1에는 “그 때에 제자가 많아 졌는데”라고 합니다.

정확한 수는 알 없지만 최소 2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양적 증가입니다. 대단한 소식입니다.

 

더 재미난 표현은 그들을 일컬어 “제자”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라고 말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평신도를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강해설교의 대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제자란 말을 “배우는 자, 학자라는 뜻으로 학생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복음과,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싶은 열정이 있습니까? 설교시간에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제자인 것입니다.

그럼 좋지 않는 소식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좋지 않는 소식은 <교회 안에 원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출애굽은 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4가지 이유가 <우상숭배, 음행, 주를 시험, 원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원망이 초대교회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망이 자리 잡은 이유를 1절에 밝힙니다. “...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사실 초대교회의 구성원은 다양했습니다. 성령 받은 성도들이 방언으로 말했을 때,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다양한 민족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 다양한 민족을 본문에서는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 과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쉽게 이들을 설명하면

<히브리파 유대인 = 유대 땅에 살면서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아람어 사용)

<헬라파 유대인 = 유대 땅 밖으로 이민을 가서 살거나 그곳에서 태어난 소위 교포 교 인들이이었습니다.(헬라어사용) 헬라파 유대인 중에 어떤 이들은 연세가 들어 노후를 보내려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오순절을 지키려고 왔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토박이(히브리파 유대인과), 들어온 돌인(헬라파 유대인)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 받아야 하는 구제>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구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매일 구제’입니다. 말 그대로 매일 구제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간 구제’가 있었습니다. 주간 구제는 일주일 단위로 열네 끼에 해당하는 식량을 궁핍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였습니다.

 

이 <매일 구제>와 <주간 구제>는 받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주간 구제는 – 주로 히브리파 사람들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열네 끼에 해당하는 음식을 나누어 주고 필요한 재정을 교회가 돕곤 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본토 사람이었기에 매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면 매일 구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임시로 상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매일 필요한 것이 발생했고, 교회에서는 그들에게 알맞게 도움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보니 히브리파 유대인을 위하여는 주간 구제는 잘 하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을 위해 매일 구제하는 것이 신통찮았습니다. 그래서 <구제 문제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한 교회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싶은데 보세요. 그렇게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하고, 부흥하는 초대교회에도 <구제문제로 하나로 원망이 생긴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교회든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제가 보기에는 행복하고 은혜 충만한 교회이지만 사실은 저도 부족하고, 여러분들도 완벽하지 않기에 항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초대교회는 원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2-4절을 보십시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여러분!, 교회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여전도회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들리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교회는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매일 구제에 빠진다는 것으로 원망>하자 곧 바로 모든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성도들을 소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점검합니다.

그 점검 결과 첫 번째 이유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열두 사도들이 본질적 사역을 놓쳤다.> 는 것이었습니다. 2절 중반에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여러분!, 초대교회는 지금처럼 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교회 조직이나 행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 받은 주의 종들로 통해서 설교를 하니 지금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은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헌금을 가져왔습니다. 사도들은 그 헌금으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설교해야 할 목사가, 구제한다고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밥 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구제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데 헬라파 유대인을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도들이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어! 지금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하며 자신의 현재 서 있는 위치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하는 말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절)라며 고백하고, 4절에 본질회복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4절)

사도들이 말한 <기도사역, 말씀사역>에 대한 말씀은, 중요하고 다루어야 내용이 많기에, 다음에 다시 생각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4절 앞에, 뽑기를 할 때 동전으로 은색부분을 긁으면 잘 나오는 말 <다음 기회에>라고 적어 놓으세요.

 

원망의 문제 1차 해결 방법은 <사도들이 본질적 사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2차 해결 방법을 말하는데 3절에 나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구제 문제는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라, 제자들 중에서 사람을 뽑아서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 구제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을 말하면서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 일곱 명을 선택해서 이 일을 맡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구제의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사도들은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기준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일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이를 일곱 집사의 선택기준이라고 말하지만, 말씀을 잘 읽어 보면 <집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6절에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 기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집사의 기준도 당연히 되고, 장로의 기준도 되고, 권사의 기준도 되는 것입니다.> 모든 항존 직분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준, 성령 충만 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준은 세상과 분명 다릅니다. 세상은 학력, 재력, 경력을 보지만,

교회는 개인의 기능이나 능력, 학력과 경력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영적 성숙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고,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고,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하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적,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의 직분자가 되면, 그 교회는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 번째 기준, 지혜 충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순수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지만 지혜가 없어서 할 말,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때 그 사람의 성령 충만과 열심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분별력이 있는 사람,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사람, 조직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 앞뒤를 가릴 줄 아는 사람, 할 말과 안할 말을 아는 사람, 그리고 화해자입니다.>

자기 것만 주장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얘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지혜로운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문제가 없어져서 조용하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많이 지적합니다. 누가 문제를 모르나요?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해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를 없앨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곧 조직을 잘 관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기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칭찬을 들을 정도면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람입니다. 빛은 숨길 수 없습니다. 다 드러납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타나려 하지 않겠지만 그가 가는 곳에는 빛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3가지 조건 <성령 충만, 지혜 충만, 칭찬 듣는 사람>을 말하면서 이런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이런 사람이 일꾼으로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일곱을 택하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전해지는 학설을 소개해 드리면

① 당시 예루살렘이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 었기에 한 구역씩 맡도록 하기 위해서 일 곱 명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② 일곱이란 숫자가 거룩한 숫자이므로 일 곱 명을 세웠다.

③ 실제적으로 초대교회 안에 있는 구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곱 명 정도만 필요했기에 일곱 명을 세웠다.

어떤 학설을 믿든지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 지혜 충만, 칭찬 받는 사람> 중 일곱 명을 세우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일곱 명을 세웠습니다.

5-6절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온 무리가 사도들의 말을 기쁘게 여기면서 일 곱 명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봐서는 이 사람이 히브리파 유대인인지, 헬라파 유대인인지 잘 구분이 안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일곱 명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선택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예루살렘교회는 다수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그 모든 전권을 헬라파 유대인에게 준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일곱 번째 뽑힌 <니골라>는 유대인도 아닙니다.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5절)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니골라는 지중해 헬라 문화권에서 온 안디옥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유대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의 개방성, 포용성>을 보게 됩니다.

보통 교회에서 항존직 선택을 할 때가 되면 성도들 가운데는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속으로는 “나는 거기에 관심이 많아!”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되면 괜찮지만, 남들이 선택되면 배 아파하고, 내가 안 되었으니 너도 되면 안 되지! 하며 밀어주지도 않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교회는 문제가 있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는 남을 세워주는 교회입니다. 나 보다 부족한 사람 같이 보여도 세워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남을 세워주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6절에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일곱 명을 공식적으로 세우는 방법입니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일곱 명을 세우니 그들에게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알 것이고 안수의 의미만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 드린다.> - “하나님 이 사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니 이 사람 을 하나님이 사용하옵소서.”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② <직분을 그 사람에게 맡긴다.> -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맡 긴다. 위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곱 명을 선택하자 초대교회에는 세 부류의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첫째는 열두 명의 사도들입니다. 이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합니다.

둘째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일곱 명의 안수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구제사역을 전담합니다.

지금의 교회로 말하면 <목사, 항존직, 성도>가 있는 온전한 조직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조직을 갖추어서 각자의 사역에 충실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했더니 교회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마지막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절에 “그 때에 제자가 많아 졌는데” → 7절에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라고 표현으로 바뀝니다. 교회가 더욱 부흥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부흥의 샘플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성전에서 제사 일을 돌아보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제사장들은 돈에 눈이 멀었던 사람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가장 예수 믿기 힘든 계층의 사람이 무리지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리가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교회도 오늘 오후에 세워질 직분자로 통해서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할 일은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기준은 <성령 충만, 지혜 충만,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잘 선택되어서 목회자와 지금 현재의 교회가 하나 되어 잘 섬김으로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다운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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