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8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CpVR-dyknL8
본문 사도행전 5장 1-11절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5-21

사도행전 5:1-11 초대교회 불순물 제거 사건

 

삼 주 만에 다시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1-4장을 요약하면

1장에서 - 성령세례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맛디아를 보충했습니다.

2장에서 -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고, 베드로가 설교하자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3장에서 - 성전 미문에서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4장에서 -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풀려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성령 충만>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 이란 무엇입니까?

-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의 머리 위에 혀의 모습으로 임한 불의 역사가 성령 충만 입니까?

- 기도에 전부한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 입니까?

- 아니면 기도를 할 때 응답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성령 충만 입니까?

물론 그것도 성령 충만의 현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 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지금도 방언을 자유자재로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능력을 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성령 충만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그리고 성령 충만의 정의를 잘 내리십시오.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 규정해 보라고 한다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사로잡힘>과 <절대 복종>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과 교회를 일컬어 성령 충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과 교회를 성령 충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성령 충만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초대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고, 성령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교회공동체 역시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고 성령에 절대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일컬어 <성령 충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들이 설교하니 설교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니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으로 성도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성령 충만하니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교회에 헌금했고, 그것으로 교회 공 동체가 부족함 없이 나눠 쓰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성령 충만은 <성령에 사로잡힘> <성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러분 개인도, 우리교회도 성령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하니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니 날마다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니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공동체를 넘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사탄입니다.> 사탄이 볼 때는 성령이 지배하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미워도 그렇게 미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 아름다운 성령 충만한 공동체에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생각할 말씀입니다.

1-2절 을 읽어보십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여러분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우리가 본 적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한 절 앞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4:37 에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나옵니다. 성령 충만한 바나바가 밭을 팔아 사도들 앞에 가지고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5장의 말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부부도 바나바처럼 소유를 팔아 헌금했다고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름은 뜻이 너무 좋습니다.

아나니아는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 하나님의 은혜> 현대로 말하면 ‘하은’

삽비라는 - <아름답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보았을 때 삽비라는 대단한 미모의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부의 이름만 보아도 하나님을 잘 섬겼던 사람이었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4:37에 바나바를 소개하는 내용과 같은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소개하는 내용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2절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는 좋지 않은 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팔았습니다. 얼마였는지는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부부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받은 돈을 모두 헌금하려고 하니 노후대책도 생각이 났을 것이고, 자녀 공부시키는 것도 생각났을 것이고, 해외여행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땅을 판 돈에서 자신을 위해서 일정 부분을 감추고 나머지를 가지고 와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받은 사도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어떤 말을 했습니까?

3-4절을 보십시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여러분! 성령 충만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성령 충만은 <사로잡힘>과 <절대 복종>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은 모두가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성령님께 절대복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땅을 판 값을 감추고는 시치미 떼는 아나니아의 속을 그들은 훤히 드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절) 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에게 이런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흡족하게 여기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워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

즉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가차 없이 사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이라고 지적을 받아 본 베드로가, 지금은 성령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앞에 나와 행동하는 아나니아를 볼 때 그 행동은 <사탄의 행동이었고, 사탄이 주는 마음으로 가득해고, 하나님을 속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사탄아! …”하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부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헌금의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헌금하게 된 동기는 바나바처럼 성령 충만함으로 순수한 동기로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가 헌금하자 사도들과 교인들이 칭찬해주는 것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기가 나서 우리들도 그런 대접을 받아보자 하고 밭을 팔았고, 팔았더니 돈이 너무 많아서 그것의 일부를 감춘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헌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자의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을 칭찬하셨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렙돈 의 헌금을 기뻐 받으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아이의 도시락을 기뻐 받으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그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이 속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헌금 얼마를 감추면 하나님이 속아줄 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 줄 아십니까? 자기가 속이면 하나님이 속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39:1-4 에 보면 하나님의 속성을 시편기자는 말씀합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렇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눈을 우리가 피할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옴으로 성령하나님을 속이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4) 부부가 서로를 보완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5월 21일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가정에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으로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의 날은 1995년 5월 21일 세계 최초로 경상남도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념일 제정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제정 목적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부부가 좋은 부부입니까? 창세기에 있는 대로 부부는 ‘돕는 배필’ 될 때 좋은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부족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보충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어떤 부부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땅을 팔아 그 값의 얼마를 떼어 놓고 사도들에게 가려고 했을 때, 어느 쪽이었든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바르게 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똑같이 그런 행동을 한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조심해야 할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3절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아담과 하와에게 틈을 타고 들어와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사탄은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아간에게 들어와서 시날 산 외투 한 벌, 200세겔의 은덩이 하나, 50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몰래 훔치게 했습니다.

사탄은 나답과 아비후에게 틈을 타고 들어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불을 바치게 했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 죽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알았기에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에베소서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예수님의 동생이 쓴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사탄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틈을 타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사탄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아니아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교회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높임 받고 싶은 욕구로 틈 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직분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게 함으로 틈 탈 수 있습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하루를 넘기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했는데,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도 계속 화를 낸다면 마귀가 틈 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울한 마음으로 살기 원치 않는데, 내가 늘 우울하다면 마귀가 틈타고 있는 것입니다.

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비방하고 있다면 이미 사탄에게 틈을 내어 준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사탄에게 여러분 마음을 내어 주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역사할 틈이 없도록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다시 가서 베드로의 책망을 받은 아나니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다.

5-6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아나니아의 성품을 많이 닮은 우리들, 거짓말에 익숙한 문화속에 사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어떻게 헌금을 조금 삥땅했다고 헌금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냐?> <아이쿠, 겁나서 우리는 신앙생활 못하겠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이 우리 속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보다 아나니아의 성품을 닮았다는 표징입니다.

 

이 말씀을 성령 안에서, 성령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불순물이 들어온 아나니아를 죽인 이유는? 지금 초대교회가 사람으로 말하면 유아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는 말이 있듯이, 교회의 유아기인 지금 사탄의 역사를 묵인하면 교회 공동체는 순식간에 부패할 것을 아셨기에 일벌백계(一罰百戒)하기 위해서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초대교회에서 처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러하셨고, 가나안 정복시 아간에게도 그러하셨고,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불순물을 강력하게 제거 했습니다.

이렇게 아나니아가 죽고 3시간 후 삽비라도 같은 죄로 죽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초대교회 불순물 제거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십시다.

5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11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 가지 면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첫째, 성령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교회에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굉장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존재가 교회 안에 계시다는 것을 똑똑히 체험했습니다.

 

둘째,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도들에게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비록 초라한 경력을 가진 사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 들어 사용하셨기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베드로의 말 한 마디에 주검으로 변했습니다.

 

셋째, 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지은 죄, 숨은 죄까지도 아시고 심판하신 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세 가지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 사탄이란 불순물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들어오자, 하나님은 그 부부를 죽임으로 교회를 지켰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어떤지? 우리 자신은 어떤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나와 교회에 들어와 교묘하게 속이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고, 만약 사탄의 역사가 나타고 있다면 영적으로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우리교회는 늘 성령 충만 (사로잡힘과 절대 복종)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불순물 제거 사건(행5:1-1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99 감사함으로 살아가리 (출 23:16, 마 14:13-21) 2021.07.04 558
398 로마서 강해 56. 심판대(審判臺) 앞에 서리라 (롬 14:7-12) 2021.06.27 202
397 로마서 강해 55. 형제를 포용하라 (롬 14:1-6) 2021.06.20 214
396 로마서 강해 54. 자는 자여, 깨라! (롬 13:11-14) 2021.06.13 302
395 로마서 강해 53. 사랑 이야기 (롬 13:8-10) 2021.06.06 199
394 로마서 강해 52. 국가에 대한 성도의 자세 (롬 13:1-7) 2021.05.30 168
393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시 51:10-12, 살전 5:19) 2021.05.23 324
392 로마서 강해 51. 적대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4-21) 2021.05.16 229
39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6:9) 2021.05.10 218
390 의인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시 37:23-31) 2021.05.02 514
389 로마서 강해 50. 교회 봉사의 원리 (롬 12:9-13) 2021.04.25 354
388 로마서 강해 49. 교회에서 이렇게 봉사하라(롬 12:3-8) 2021.04.18 219
387 로마서 강해 48.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롬 12:1-2) 2021.04.11 412
386 죽음을 넘어 부활을 살다 (막 16:14-20) 2021.04.06 178
385 왕이 오신다 (요 12:12-19) 2021.03.28 185
384 신앙의 고비를 만났을 때 (히 10:19-25) 2021.03.23 343
383 진리에 관한 문제 (요 1:35-51) 2021.03.14 170
382 로마서 강해 47. 기독교 세계관 (롬 11:33-36) 2021.03.07 212
381 로마서 강해 46. 구원의 신비 (롬 11:25-32) 2021.03.02 600
380 로마서 강해 45. 능력 주께 있네 (롬 11:13-24) 2021.02.23 283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