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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6월 5일
열왕기상 17:17-24 이제야 알았습니다.

대구에서 출생한 김보훈(1932-)씨가 작사 작곡한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성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가사를 읽어드리면 이 곡을 아시는 분이라면 가슴이 뛸 것입니다.
<1절>
갈멜산에서 쌓은 번제물을 불로써 태워버린 여호와여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나타나신 엘리야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
내가 지금 주 앞에 울부짖나이다 불로 응답하소서 응답하소서
주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2절>
그 많은 무리들이 모인 곳에 불로써 나타나신 여호와여
갈멜산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갈멜산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눈물로 울부짖는 엘리야의 기도에 불내려 응답하심은 여호와 하나님
주여 지금 이곳에 불을 내리소서 우리 몸과 마음을 불사르소서
주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아멘

우리는 이 성가를 통해 엘리야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엘리야의 신앙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부름받자 마자 처음부터 이런 대단한 믿음을 가졌을까요?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엘리야선지자에 대해서 <열왕기상 17-19장까지 세 장, 열왕기하 1-2장>에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씀을 대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엘리야에 대해서 열왕기 서에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 상하서는 <이스라엘의 왕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남 유다 왕들과, 북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열왕기에 선지자의 이야기가 길게 나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왕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통치했다면 선지자 이름이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기름 부어 세운 제사장들도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름 부어 세운 직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에 대한 부분이 열왕기서에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인물이 <엘리야선지자>입니다.
그러니 엘리야선지자가 나온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당시의 왕과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엘리야선지자가 등장했을 때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북 이스라엘 왕이 “아합”이었구나? 알 수 있고, 우리는 <아하> 그래서 엘리야가 등장하는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합은 북 이스라엘 7대 왕으로 가작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세벨은 철저한 바알 신 숭배자였습니다.
과거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 우상숭배를 했었지만, 아합 왕 통치시절에 가장 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발을 붙이고 살 수 없을 정도로 핍박했습니다. 백성들 대부분이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보신 하나님은 엘리야선지자의 입을 통해 아합 왕에게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왕상 17:1 중반에 “...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물 한 방울이 귀한 이스라엘 땅에 비도 오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는 다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그때부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주변국가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엘리야는 아합 왕을 피해 요단 동쪽 그릿시냇가에 숨어 지냈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바알신의 메카인 <시돈 땅 - 사르밧>으로 보냅니다. 하나님이 사르밧으로 보낸 것은 아합 왕에게서 엘리야를 보호해 주기 위함이었고, 또 사르밧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치밀하게 엘리야를 움직이도록 준비하셨고 명령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르밧으로 가면 한 과부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줘서 섬기게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연히 <사르밧 과부에게도 - 주의 종이 한 사람 올 테니 그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엘리야에게 음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외아들과 살아가는 과부의 집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바닥나지 않았습니다. /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이까지가 열왕기상 17:1-16절의 내용입니다.

자세한 말씀은 지난해 11월 8일 <사르밧 과부의 희생과 헌신>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 1부에 불과합니다. 이 1부 이야기는 설교를 통해서 많이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할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2부 내용은 성도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잘 생각하지 않은 2부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우리의 사고를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옮겨가 보십시다.
비와 풍요를 준다는 신 바알의 메카 시돈에도 엘리야선지자가 선포한 가뭄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도 이슬이 내리지 않아도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 엘리야선지자를 마지막 남은 한 움큼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 하나를 만들어 대접했더니 그때부터 자신의 집에 있는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기름병에도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밀가루를 퍼내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음 음식을 만들려도 통을 들여다보면 또 밀가루가 차 있어요. 기름을 부어서 음식을 만들고 조금 있으면 또 기름병에 기름이 차 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였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
그리고 그 기적의 가져온 장본인인 엘리야선지자에게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사르밧 과부는 감사한 마음으로 엘리야선지자를 자신의 집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야선지자를 다락(18절)에 모셨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다락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다락은 일반적으로 좁고, 어두컴컴한 곳을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다락은 가장 좋은 곳, 가장 넓은 곳을 의미합니다.
하여간 그렇게 엘리야선지자, 사르밧 과부, 과부의 아들이 세 명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대략 3년을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 집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내용은 엘리야가 그 집에 살게 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았을 때 생긴 일이라고 봅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이 들었습니다. 병세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있어서 아들은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제는 삶의 희망도, 목적도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살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아들이 죽자,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8절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 말씀 중에 중요한 부분을 생각해 보십시다.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시려고” 이 말은 고대인의 사고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미신적인 표현입니다. 인과응보적인 사고 이것은 고대인은 물론이요 오늘 우리들도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이 아이의 죽음은 나의 죄 때문이고, 죄의 결과로 아들이 죽었으니, 아들을 죽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 사르밧 과부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을까요?
아들이 죽기 전 까지 하나님은 가뭄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후 하나님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아들을 죽게 한 무시무시한 하나님>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퍼센트로 말하면 <은총의 하나님은 1% / 심판과 재앙을 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 99%>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은총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심판하시고, 재앙을 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십니까?>
-- 사르밧 과부가 믿은 하나님 문제는? 조금 뒤로 미뤄놓고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다.
사르밧 과부의 공궤를 받으면서 평안하게 살던 엘리야에게도 과부의 아들이 죽은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자신이 그 집에 왔기에 아들이 죽었다고 달려드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죽은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다. 과부의 품에서 죽은 아들을 받아 엘리야는 자신이 거처하는 다락방에 올라와서 자신의 침상에 눕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메시지역)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저에게 자기 집을 열어서 맞아 준 이 과부에게 어찌하여 이처럼 비참한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어찌하여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까?”(20절)

성경에 나오는 분들의 기도는 대체로 솔직한 기도를 합니다.
사무엘도, 다윗도, 신약의 바울도 솔직하게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도 있는 마음에 느껴지는 그대로 솔직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온 이 가정에, 나를 주의종이라고 이렇게 대접 잘 하는 가정에,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는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세 번 자신의 몸을 펴 엎드렸습니다. 이 행위는 의미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금 엘리야선지자 자신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아이에게 전달되어 아이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기원의 마음이 담겼다고 봅니다.>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째 엎드린 엘리야는 엎드린 채로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첫 번째와 달랐습니다. (메시지역)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아이의 숨이 다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21절)
간절히 부르짖는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었던 아이가 숨을 쉬며 살아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오늘 성구로 교독한 누가복음 7장의 말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나인이란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도 함께 나인 성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나인 성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성 안에서 장례행렬이 나왔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장례행렬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대상이고, 우선권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성문으로 들어가려던 예수님과 일행은 성 문에서 나오는 장례행렬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상주였습니다. 아들이 죽었던 것입니다. 모든 장례행렬이 슬프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장례행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이 죽어서 슬퍼하는 과부에게 다가가 불쌍히 여기시면서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어서 죽은 아들이 들어있는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대시니 관을 맨 자들이 멈춰 섰습니다. 예수님이 관 속에 있는 죽은 과부의 아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죽은 아들이 관에서 일어나서 앉았습니다. 말도 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난 청년을 아들이 죽었다고 울던 과부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모든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 소문이 유대와 온 사방에 두루 퍼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은 <죽은 자도 - 살아가게 하는 능력의 주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선지자도 능력의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를 들으신 능력의 하나님이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살아난 아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내려가 아들이 죽어 슬퍼하는 사르밧 과부에게 아들의 손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23절)

그러자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4절 전체를 보십시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 말씀 중에 “내가 이제야........”라는 표현은 귀한 표현입니다.
그동안도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사건 / 그것도 엘리야의 기도로 통해서 죽은 아들이 살아난 그 사건>을 통해서
- 엘리야선지가 진짜 하나님의 종이요,
-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말씀이요.
- 엘리야가 믿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야말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 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르밧 과부의 신앙이 <밀가루와 기름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것입니다.

그럼 엘리야의 신앙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 역시 <처음 격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저에게 자기 집을 열어서 맞아 준 이 과부에게 어찌하여 이처럼 비참한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어찌하여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까?”(20절) 하고 원망하는 투로 기도를 했었지만

결국은 자신이 간절히 드린 두 번째 기도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아이의 숨이 다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21절)를 들으시고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경험을 통해서, 그의 믿음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 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한 단계 한 단계의 훈련을 통해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엘리야선지자 하면 생각나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행동했고, 죽은 자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불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응답받은 것입니다.>
그 사건이 워낙 위대하니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성가곡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럼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느 단계인지 생각해보십시다.
1)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행복해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십니까?
2)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주의 종과 불편한 관계 속에 있습니까?
3) 아니면, 고통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제야 알았습니다.>라 고 고백하면서 큰 믿음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선지자가 큰 위기 속에서 더 큰 하나님을 체험하고 고백하고 담대하게 살았듯이, 오늘 우리도 이 단계에 올라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고,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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