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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6월 19일
마태복음 8:5-13 큰 믿음을 가진 사람

지난 화요일 대구동남노회 역사위원회에서 2개 교회를 탐방하였습니다.
영천에 있는 자천교회와 청송군 현서면에 있는 화목교회였습니다.
자천교회는 생략하고, 오늘은 청송 화목교회 엄주선강도사님의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엄주선강도사님은 대구제일교회 이상근목사님과 안동교회 김광현목사님과 절친한 친구셨다고 합니다.

엄주선강도사님은 목사고시를 합격한 후 1950년 가을, 32세의 나이게 화목교회에 담임교역자로 부임하여 목회를 하시는 중 1951년 2월 17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엄주선강도사님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고, 혼자 남아서 기도를 하시는데,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허리가 잘린 인민군이 퇴각하게 되었는데, 인민군 10사단 군인들이 따발총을 쏘면서 사택과 교회를 급습하여 들어왔습니다. 교회에서 혼자남아 기도하시던 엄주선 강도사님과 그 마을 청년 10명도 함께 끌고 인민군 주둔지로 갔다고 합니다. 청년 중에는 내복바람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엄주선 강도사님은 끌려가면서 내복을 입고 있는 <신중근>이란 청년에게 자신의 외투를 입으라고 벗어 주셨다고 합니다. 인민군 10사단장 김두봉 씨는 청년들을 협박하고 회유했다고 합니다. 엄주선강도사에게는 ‘당신은 좋은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예수만 믿지 않겠다고 말만하면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주선강도사는 오히려 자신을 회유하는 인민군 10사단장 김두봉 씨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살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결국 말이 통하지 않자, 인민재판을 한 후 인민군 총검으로 엄주선 강도사님을 19군데를 찔러 죽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33세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외투를 얻어 입은 <신중근>청년이 목격합니다. 그리고는 약간의 틈을 타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돌아와 사모님에게 강도사님의 순교소식과 강도사님의 외투를 돌려주었습니다. 그 당시 사모님은 삼칠이 체 지나지 않는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목사님의 순교 소식에 충격을 받았고, 아이도 얼마 있지 않아서 죽었다고 합니다.

강도사님이 순고했다는 소식을 들은 장로님들은 강도사님의 꽁꽁 얼어 있는 시신을 3주 만에 교회에서 12km 떨어진 <의성군 춘삼면 바랑골>에서 찾아, 수레에 시신을 싣고 와서 경북노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 엄주선강도사님의 신앙을 기리기 위해 현서면에는 태마공원을 만들었고, 12km 떨어진 의성군 춘삼면 바랑골에서는 <순교지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테마 공원에는 총 10분의 묘소가 있는데>가운데 순교하신 엄주선 강도사님과 사모님 묘소, / 바로 곁에는 강도사님의 시신을 발견한 화목교회 1, 2대 장로님 내외, 그리고 그 옆에는 시신을 수레에 모시고 운구한 1,2대 장로님의 아들인 3,4대 장로님 내외가 나란히 있습니다.

장로님들의 묘소가 순교한 강도사님과 함께 있는 것은, 장로님들의 유언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아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신 강도사님과 같을 수 없지만, 죽어서라도 그의 발치에 눕고 싶어서 가족들에게 무덤을 강도사님 곁에 써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엄주선강도사님, 그리고 강도사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셨던 장로님들이야 말로, <큰 믿음을 가진 신앙의 선배>임이 분명합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데, 그 믿음 의 크기는 얼마정도일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학생들을 평가하는 도구는 - 점수입니다. 아무리 아는 척하고 겉으로 대단한 것 같아 보여도 시험을 치러서 점수가 낮으면 그 학생은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평가 받지 못합니다. 학생은 점수로 평가받습니다.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는 - 실력입니다. 자신의 분야에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구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를 평가하는 도구는 - 기록입니다. 공인된 기록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신앙인의 평가는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요? - 신앙인은 <믿음>으로 평가합니다. 문제는 믿음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지>와 <모범 답안>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대략적으로 -
예배생활을 하는 모습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 없다>
헌금생활을 하는 모습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 없다>
봉사생활을 하는 모습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 없다>
언어생활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 없다>라고 평가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믿음이 있다 싶어서 <권사로, 안수집사로, 장로로> 선출해 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때 내가 잘못 알았구나!” 하며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정확하게 평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히 12:1)시기에, 우리의 믿음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점수를 정확하게 너는 10점, 너는 50점, 너는 80점, 너는 100점하면서 정확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정확하게 평가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큰 믿음>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성경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버나움에 있던 백부장>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빨간 글씨(예수님의 말씀) 부분을 보세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 말씀에서 <이만한 믿음>은 = “큰 믿음”을 말합니다.

또 한 사람은, 교독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 / 수로보니게 여인(막 7:26)>입니다. 마태복음 15:28절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은 “큰 믿음”을 말합니다.

‘크다’는 말의 헬라어는 <메가스μέγας>입니다. 메가스에서 영어 접두어 <메가(Meg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명사 앞에 메가를 붙이는데, 메가바이트(Megabyte), 메가톤(Megaton)처럼, 단위를 나타나는 메가는 <“큰” “백 만 배”>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할 때 그 “큰 믿음”이라는 말은 = <네 믿음이 메가톤급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궁금해져야 합니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칭찬했는지? 그 비밀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1) 먼저, <가나안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을 생각해보십시다.
이 여인에게는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딸에게 귀신이 들렸다”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마시고, 내 딸에게 귀신들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고 3 여학생이 수능을 치고 그 날 저녁부터 귀신들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여 청년 하나가 귀신들려 자신의 방문을 두 손으로 쫙쫙 찢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수년 동안 방에 처박혀서 귀신처럼 살아가는 처녀도 본 적이 있습니다.) 기막힙니다. .... 이들은 세상 의학도 고칠 방법이 없어요.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병에 걸린 자도, 어떤 귀신 들린 자도 고쳐주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부탁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15:22)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 하고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들은 채도 하지 않으시고, 무시하시면서 한 마디도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개 취급하면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느니라.”(마 15:26) 하셨습니다.
여러분! 해도 해도 예수님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딸을 고쳐달라는 이 여인의 간절한 부탁에 ‘침묵’하고, ‘무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를 <개 취급> 하면서 ‘모욕’을 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처음 나왔는데 목사와 성도가 <침묵하고, 무시하고, 모욕하면> 교회 나오시겠습니까? 뭐 이런 교회가 다 있어 하면서 예배 중에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 주님께 오히려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이 말은, <예, 제가 개와 같은 존재가 되어도 좋으니, 제 딸만큼은 고쳐주세요>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면서 예수님은 감격합니다. 그제야 예수님이 선포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예수님은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을 <큰 믿음>이라 칭찬하셨고, 주님이 칭찬하는 순간 귀신들린 그의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2) 그럼 <큰 믿음>이라 칭찬받은 또 한 사람인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도 살펴보십시다.
백부장은 로마사람입니다. 군대가 통치하는 시대에는 백부장의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그 백부장의 집에 종 한 사람이 중풍 병에 걸렸습니다. 중풍 병은 현대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완치가 잘 되지 않는 병입니다. 게다가 병이 걸린 사람은 종입니다. 당시 종은 <말하는 짐승>취급받았기에 존재 가치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중풍 병으로 고통당하는 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종의 중풍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체면 따지지 않고, 유대청년 예수님에게 나와서 간절히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간청에 흔쾌히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7절) 예수님은 내가 너희 집에 가서 종을 고쳐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백부장은 “예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같이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 자신의 집에 직접 가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저 여기에서, 이 자리에서 말씀만 하셔도, 집에 있는 종의 병이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군인의 생명은 상명하복이지 않습니까? 로마 황제의 말 한마디면, 이스라엘에 있는 로마 군인들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따르는 것을 알고 있는 백부장에게, 로마 황제보다 더 위대하신 주님이, 자신의 집에 오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8절에 있는 대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주님은 놀라워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백부장에 말하기를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13절) 선언하셨습니다. 결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순간 집에 있던 중풍 병에 걸린 종이 치유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큰 믿음’이라고 칭찬들을 만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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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반대로 그럼 성경에 “작은 믿음”이라고 인정받은 자도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작은 믿음이라고 책망 받은 자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3)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마태복음 8:23-27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셨던지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풍랑이 높이입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는 물에 가라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말씀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절)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26절에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함께 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경험해 놓고도 제자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아” 꾸짖었고, 이어서 풍랑과 바다를 꾸짖었더니 잠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 믿음이 작다고 책망 받은 예를 하나 더 들면,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신 후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 밤 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 4경 <우리시간으로 새벽 3-6시 사이>이 될 때가지,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바다를 다 건너가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밤 새워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이, 밤 4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유령인줄 알고 겁을 내었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서 갑니다. 그러다가 베드로의 시선이 바람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두려워서 바다로 빠져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
예수님은 즉시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마 14:31)

자, 여러분 “큰 믿음”이라 칭찬 받은 사람과, “작은 믿음”이라고 책망 받은 자의 공통점을 찾으셨습니까?
<큰 믿음>이라 칭찬 받은 자는 - 둘 다 이방인이었습니다.
<작은 믿음>이라 책망 받은 자는 - 둘 다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평가한 기준, 사람의 기준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의 평가 기준>이 무엇입니까? 이 사실을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큰 믿음 / 작은 믿음>이라고 평가하시는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만 든다면,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만드느냐?>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만드느냐? /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 에 따라 믿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②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예수님을 그저 그런 존재이고, 능력도 별로이고, 나를 향한 사랑도 그저 그렇다고 믿는다면 -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③ 반면에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 전지전능하신 존재로 믿는다면 그는 -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십시다.
큰 믿음이라 칭찬받은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자신의 집에 있는 중풍 병 걸린 종도, 귀신 들린 딸도 고침 받는 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크게 봅니까? 그러니 그들을 향해 큰 믿음이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반대로, 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고, 예수님을 눈앞에 보면서도 풍랑 때문에 겁을 내고 무서워했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작게 본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십시다.
믿음의 평가는 <내 마음에서 믿고 있는 예수님의 크기>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마음에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기에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백부장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큰 믿음입니까? -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큰 믿음을 가지고 가시기를 바랍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작은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작은 믿음을 가졌다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꾸짖기는 하셨지만 버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의 바람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면 못하실 것이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고, 여러분도 <백부장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큰 믿음을 가진 자로 주님께 칭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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