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4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권오진목사
설교일 6월 26일
마태복음 4:8-9 예배를 위한 존재

오늘 설교는 에이든 윌슨 토저(1897-1963) 목사님이 쓰신 <이것이 예배이다>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음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오랜 시간 목회를 하면서 크리스천들이 영적으로 타락해가는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타협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한 목사님이셨습니다. 토저 목사님의 묘비에는 담백하게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A. W. 토저”

토저 목사님이 쓰신 40여권의 저서 가운데 <이것이 예배이다>라는 책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우리들이 예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기독교인이 잊어서는 안 될 3가지 중요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첫째,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배보다 중요한 인생의 목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죽은 껍데기 예배를 청산하고, 살아 있는 참 예배를 드리라고 촉구합니다.
종교의 외피(외피)를 두른 변절된 예배를 중단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고 외칩니다.
셋째,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여 일 중심이 아니라, 예배 중심의 인생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이정도만 해도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부터 예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다.

이 책 앞부분에는 <기억상실증 환자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어디에선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 콘크리트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습니다. 그 순간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인지 모르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는 깨어질듯 아팠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갑과 휴대폰 그리고 모든 물품은 없어졌습니다. 도둑맞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고로 모든 기억을 상실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도 자신을 증명해 줄 것이 물품도 없습니다. 자신의 기억에도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 / 사는 곳은 어디인지?
결혼은 했는지? / 직업은 무엇인지?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기억이 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 순간의 사고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멍 하니 있던 그 청년이, 의자에 앉아있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의 사정을 말해 보았지만, 이름도 사는 곳도, 직업도 모르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알아보고 탄성을 지르면서 달려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붙잡고 악수를 하면서 “그동안 어디에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선생님, 미안합니다. 선생님은 나를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선생님을 모릅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그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교향악단에 함께 일하고 있으며, 나는 지휘자이고, 당신은 바이올린 주자이며, 우리는 사흘 전에 공연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이틀 전부터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려줬다고 합니다.

토저는 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그 기억상실증 환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오늘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의 콘크리트에 머리를 부딪쳤고, 정신을 차리고 서로를 쳐다보았을 때,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정체성을 망각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만드셨는지? 우리의 이름은 무엇인지? 왜 여기에 살고 있는지? 멍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아담의 후손들 역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진짜 그렇습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 우리가 왜 창조되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보내졌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학자요, 천문학자요, 위대한 이슬람교의 신비주의파 신도요, 탁월한 시인인 <오마르 칸(Omar kahn>은 14-15 세기경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나는 이 우주 안으로 들어왔노라. 왜 들어왔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른다. 정처 없이 흐르는 물처럼 그저 들어왔을 뿐이다.
이 우주 밖으로 나가노라.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황무지를 스친 후 사라지는 바람처럼 어디론가 가버린다”

기막히지 않습니까? 오마르는 자기가 우주 안에 있지만, 왜 우주 안에 있는지,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모른다고 탄식하는 모습에서 어리석은 인생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저는 그의 책 24-25쪽에 이렇게 말합니다.
“개가 사료를 먹고, 저기 있는 저 말이 먹이를 먹듯이, 나도 단지 먹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뒷골목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듯이 내가 단지 자식을 낳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말씀해 주신다.” 고 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한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구절 말씀드려볼까요?
오늘 교독한 이사야 43:21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시편 45:11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4:10 에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좋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를 보든, 이사야 6장을 보든, 신약성경 마지막 말씀 요한계시록을 보시던, 모두가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잘 요약한 교리 문답집인>
요리문답 1번이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1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예배하는 것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4가지 질문을 던질 테니, 여러분은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
-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
- 하나님이 나에게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
- 우리교회가 여기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서 태어났고, 예배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장 귀한 것 역시 <예배>입니다.

파리의 갈멜회 평수사로 입문하여 식당일을 한 <로렌스>란 수사이야기를 들어서 알 것입니다. 로렌스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죽어갈 때 한 사람이 그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로렌스는 “나는 내가 지난 40년간 했던 것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것을 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로렌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우리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멘”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명이기에, 머리에서, 몸에서, 삶에서 각인되어 있어야 할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 귀한 예배를 마귀는 어떻게든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가셨습니다.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몹시 시장하셨을 때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절) /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4절)

첫 번째 시험에 실패한 마귀는, 두 번째 시험을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너를 받아주기에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5-6절)
예수님은 마귀에 이렇게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7절)

두 번 실패한 마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9절)
마귀는 자신이 천하만국의 주인인 것처럼, 자기에게 통치권이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경배하지 말고,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답변합니까?
10절 말씀에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절) 고 하시면서 당당하게 시험을 이겼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하지 못한 마귀가,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기도시 한국인이 관심가지는 세 가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첫째는 돈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 관심은 돈입니다.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라도 합니다.
둘째는 운명에 관심을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운명에 관심이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많은 편입니다. <사주팔자를 보고, 점을 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조상의 묘 자리를 어디에 쓰면 대통령이 될까? 아직도 그러고 있습니다.
셋째는 건강입니다.
나를 개발하는 데는 돈을 쓰지 않지만, 건강을 위한 일이라면 엄청난 돈을 사용합니다. 용하다는 의사, 혹은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말하면 너나없이 따라하고, 좋지 않다면 금방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고등어를 집에서 굽게 되면 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27배 수준이라고 하니, 고등어가 팔리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정도로 현대인의 관심이 건강에 많이 있습니다.
그 뒤로 <다이어트> <미용> 순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지금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닙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돈 / 권력 / 우상 / 명예 / 건강/ 인기>를 내세우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마귀에게 선포해야 할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대로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마귀가 유혹할 때마다
돈보다 더 귀한 것이 -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야
운명이 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 예배가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야
건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예배가 나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이야! 선포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지금까지 두 가지 큰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사탄은 우리를 세상의 것을 예배하게 하지만,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 나님뿐이시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자가 예배하면 어떻게 예배할까요.
여기에서 세 번째 다룰 주제가 나옵니다.
셋째, 그런 자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껍데기뿐인 예배, 형식뿐인 예배, 의미도 없는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는 예배의 행위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나의 존재목적이고, 내가 경배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 밖에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예배시간에 놀라운 체험을 하셨다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금요기도회 시간에 제가 찬양을 인도를 하면,
성도님 가운데 한 분이 <강대상 뒤로 안개 같기도 하고, 구름 같은 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신 분이 있습니다.> 이 성도님은 자기가 잘 못 봐서 그런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는데도 안개와 구름 같은 것이 자꾸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한 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음 금요기도회 때 또 와서 그 장면을 똑 같이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님에게 우리가 드리는 찬양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제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저의 모습이 <천사와 같이 보였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예배의 체험은 성경에도, 기독교 역사에도 많이 나타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경험입니다. 그가 어느 날 밤 하나님을 만나고, 그 날 밤의 체험을 작은 종이에 간단히 메모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그 종이를 곱게 접어서 심장에 가까운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날 밤의 체험을 거듭 상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작은 종이에 쓰여 진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10시 30분 무렵부터 12시 30분 까지” (2시간의 시간 체험)
“불” (자신의 체험을 한 마디로 불같은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 철학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안전, 안전, 감정, 기쁨, 평안”
(무아지경에서 나온 경외심과 감탄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세상을 다 잊어라,
복음서가 가르치는 방법으로만 알 수 있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을 잊어 라. 오. 의로우신 아버지시여!”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압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아멘”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 종이를 그는 죽을 때까지 주머니에 넣어 간직했다고 합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 자가 경험하는 체험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전반기 6개월을 마감하면서 ... 지난 6개월 동안 드린 예배생활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6번의 주일낮예배에 성공하셨습니까? 26번의 찬양예배는 어떻습니까? 26번의 수요성령기도회에는 성공했습니까?
아니면, 예배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해서 실패하셨습니까?
다음주일부터 시작되는 하반기에도 지금처럼 예배하시렵니까?

토저 목사는 예배에 대해서 3가지 분명하게 알고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첫째,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둘째, 마귀는 우리를 자신에게 예배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참 예배,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셋째, 일 중심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예배중심으로 살도록 결단을 촉구합니다.

성도여러분, 다시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79 로마서 강해 44. 은혜로 남은 자들(롬 11:1-12) 2021.02.14 375
378 로마서 강해 43.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롬 10:14-21) 2021.02.07 357
377 로마서 강해 42. 예수 잘 믿으세요 (롬 10:5-13) 2021.01.31 292
376 로마서 강해 41. 삶의 모든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롬 10:1-4) 2021.01.24 258
375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0-24) 2021.01.17 996
374 거룩한 염려로의 초대 (마 6:25-34) 2021.01.10 256
373 희년(禧年, Jubilee)을 구현하는 교회 (눅 4:16-21) 2021.01.03 179
372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잠 16:1-9) 2020.12.27 434
371 동방박사들의 세 가지 선물 (마 2:1-12) - 성탄축하예배 2020.12.25 1501
370 다시 오실 그분 (계 22:10-21) 2020.12.20 201
369 그가 오신 이유? (히 2:14-18) 2020.12.13 723
36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막 8:27-38) 2020.12.06 260
367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행 11:19-26) 2020.11.29 313
366 로마서 강해 40.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롬 9:30-33) 2020.11.22 295
365 고통중에도 찬양하다 (합 3:16-19) 2020.11.15 329
364 로마서 강해 39. 내가 너를 빚었단다.(롬 9:19-29) 2020.11.10 421
363 로마서 강해 38. 주권은 하나님께 (롬 9:14-18) 2020.11.01 281
362 로마서 강해 37. 출발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라 (로마서 9:6~13, 사도행전 11:19~26) 2020.10.25 208
361 로마서 강해 36. 동족에 대한 바울의 고통 (롬 9:1-5) 2020.10.18 294
360 로마서 강해 34. 그리스도인의 승리 (롬 8:1-39) 2020.10.11 234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25 Next
/ 2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