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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8월 14일
히브리서 11:29-12:2 새로운 믿음의 각오로 힘차게 전진합시다.

지난 한 주간 잘 지냈습니까? ‘대구가 아프리카 날씨만큼 덥다’고 대구를 <대프리카>라고 한다는데 그 더위를 잘 견뎌내시고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오신 성도님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는 창세기 15:1-7절 말씀을 가지고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보너스로 믿음의 정의를 해 드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1.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태도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이기에, 내가 할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2. 믿음은, ‘진리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참된 믿음이다.
경험위에 믿음을 두고 있으면 언제 흔들리지 모른다.
3.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근거가 된다.

보너스로 말씀드린 ‘내가 믿는다.’는 단어 정의는 <믿음은 나의 마음을 예수님께 주어 예수님께 고정시켜 사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의해 드린 대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한 곳에 집중해서 소개한 곳이>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분류해 보면
4-7절 / 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조상들
8-22절 / 구약의 족장들
23-31절 / 모세로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믿음의 조상들
32-40절 / 사사시대 이후 믿음의 사람들 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는 / 모세시대부터 사사시대 이후의 사람들까지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 한 말씀, 한 말씀에 해당되는 자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29절에서 – 32절까지는 실명을 들어 말씀하기에,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33절부터는 실명을 들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는지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33절부터-37절까지 이 말씀대로 살았던 자들이 누구인지 집중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33절을 보세요.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 바락, 기드온, 입다, 다윗 등 전쟁에서 이긴 사건
의를 행하기도 하며, - 사무엘, 다윗은 공의를 행한 사람
약속을 받기도 하며, - 다윗은 왕권을 약속 받음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 사자 굴에서 건짐 받은 다니엘

34절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 다니엘의 세 친구(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 사울의 칼을 피한 다윗 / 아합의 칼날을 피한 엘리야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 히스기야 왕 15년 생명 연장 받음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기드온, 다윗

35절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 <사렙다 과부 아들은 – 엘리야에 의해서 다시 살아남 / 수넴 여인의 아들은 - 엘리사를 통해 살아남 /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 예수님에 의해 살아남>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셨으며” -
<예수님 재림 시에 있을 영생의 부활을 위해, 현실에서 심한 고문을 즐거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기독교사에 나오는 실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전 167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황제가 예루살렘을 짓밟았습니다. 그는 성전에 돼지고기를 올려놓고 유대인에게 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하라는 것과 같은 치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가 채포되어 왕에게 끌려왔습니다. 왕은 그들을 채찍과 가죽 끈으로 고문을 하면서,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돼지고기에게 절하라고 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맏아들이 황제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혀서 무엇을 하시려 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화나가서 <솥과 가마를 불에 달구라고 말했습니다.> 솥과 가마가 불에 달구어지자, 황제는 “이 자의 혀를 자르고, 머리털을 밀고, 사지를 자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맏아들은 동생과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엄청난 형벌을 받았습니다.
혀가 잘려지고, 머리털이 밀려지고, 사지가 잘려도 살아있는 그를 황제는 ‘뜨겁게 달군 솥에 넣어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뜨겁게 달궈진 솥에 들어가자 사람 타는 연기가 사방으로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을 본 어머니와 남은 6형제는 서로를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지켜보고 계시고, 측은하게 여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고상하게 죽음을 맞이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째, 3째, ... 6째 아들까지 차례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7째가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막내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어미를 불쌍히 생각하라. 나는 너를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고, 너에게 삼년간 젖을 먹였다. 아들아! 이 어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다오. 이 도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죽음을 맞이 하거라.”

결국 일곱째 아들도 순교를 했고, 어머니도 아들의 뒤를 따라서 순교를 했습니다. 35절 마지막 내용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36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 대표적인 사람이 구약에는 예레미야, 신약에는 바울입니다.

37절
“돌로 치는 것과 – 스가랴, 나봇, 그리고 예레미야도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함
톱으로 켜는 것과 – 이사야 선지자가 므낫세 왕에 의해 이러한 죽음을 당함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 사울시대 제사장과, 아합 시절 선지자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 엘리사, 세례요한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 대부분의 믿음의 선진들

자 어떻습니까?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들을 이토록 강하게 했습니까?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들을 그런 모진 핍박에서 이기게 했습니까?

이런 역사는 구약시대가 끝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도 이런 역사는 계속됩니다.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해 보신 분들은 로마가 볼 것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로마인의 광장이란 뜻을 가진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 가면 신전, 개선문, 원로원, 공화당, 콜로세움이 있고,
바티칸으로 가면 – 교황이 살고 있는 하늘을 찌르는 베드로 성당이 있고,
바티칸 미술관으로 가면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그림이 압도 합니다. 로마는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박물관입니다.

그런데 로마에는 또 하나의 로마가 있습니다. 바로 카타콤입니다. (카타콤 그림)
지하 12미터 내려가면, 우리 앞에 거대한 지하도시가 반지의 제왕처럼 펼쳐집니다. 카타콤은 안내인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혼자 들어갈 수도 없지만, 거기서 길을 잃으면 우리도 순교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카타콤은 원래 이교도들의 무덤이었는데, 3세기 중반부터 4세기 중반까지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의 무덤임과 동시에, 살아있는 기독교인들의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카타콤은 <단순한 무덤>이란 개념을 넘어섭니다. 카타콤은 죽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았으며, 죽은 자들은 또한 산 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카타콤에 오래 살면 누가죽고, 누가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카타콤에 들어가면, 밀랍으로 만든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습니다.
(세바스티안 밀랍 그림)
성 세바스티안 입니다. 세바스티안은 본래 귀족출신으로 서기 283년경에는 로마 경비대에 근무하는 장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우연히 예수님을 알게 되고 비밀리에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동료들이 발각돼 잔인하게 처형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도 사형장 앞에 섰습니다. 사형장 앞에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아 마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티안 그림>
이에 분개한 황제(디오클레티안 Diocletian)는 그를 결박해 숨이 끊어질 때까지 화살을 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세바스티안은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화가 치민 황제는 세바스티안을 죽을 때까지 때리도록 했고, 그 시신은 로마의 하수구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그가 죽자 몇몇 사람들이 하수구에서 그의 시신을 찾아 베드로와 바울이 핍박당한 장소 부근에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세바스티안은 귀족, 군인 출신이며 예수를 믿었다는 점,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점, 화살을 맞아도 죽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를 그 시대의 대표적인 순교자로 추앙받게 했습니다.

카타콤에 모셔진 성도의 시신 중에 이런 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며,
- 하나님은 자신을 돌보시는 분이시며,
- 하나님은 죽음 너머의 세계도 통치하심을 분명히 믿었기에,
-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었기에,
세상의 박해자들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들입니다. (질문 – ppt)
우리교회 / 기독교인들이 믿음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우리의 믿음생활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교회/ 기독교인들이 믿음 생활을 못하는 이유들
1. 가난이 없어서입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기독교가 들어가서 부흥할 때는 백성들이 가난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해지자 신앙생활이 시들시들해 졌습니다. 이는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여러분 자신을 보시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난할 때 믿음생활을 더 잘 했을 것입니다. 그때 기도도 더 열심히 했고, 그 때 예배생활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먹고 살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셔도 별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임신하면 태아보험, 출산하면 교육보험, 종신보험, 생명보험, 실비보험 .. 등을 가입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보험회사에 연락만하면 문제를 해결해 주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점차적으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난이 없어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기독교인들이 믿음 생활을 못하는 이유들
2. 고난이 없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삶에서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보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하고, 3,0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그 다음 주일 그동안 교회를 찾지 않던 성도들이 교회로 몰렸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난이 있을 때에 성도들의 믿음이 더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6.25 동란 시절, 그리고 독재정권으로 인해서 탄압이 있을 고난의 시기가 믿음이 더 좋았고, 복음이 활성화 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고난이 없어요.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니,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무고난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기독교인들이 믿음 생활을 못하는 이유들
3. 하나님의 믿음이 없어서 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종교다원주의가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고,
교회적으로는 대형교회의 문제와 목회자의 타락
가정적으로는 자녀의 신앙교육에 무감각한 부모로 인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시들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도 믿음이 시들시들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세 가지 영향으로 인해, 우리교회를 포함한 성도들이 믿음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럴 때 일수록 믿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십시다.
39절을 보세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하늘 상급은 아직 받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였을 뿐입니다.(3절)

40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
이 부분을 유의하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더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힌트는 <우리를 위하여>라는 구절 속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 구약의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구약의 유대인들이 받지 못하고, 신약의 성도가 누리고 받았던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가장 최고의 선물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으로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구약시대 사람들은 생전에 이런 구원함을 맛보지 못했는데, 신약 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통해서 그 구원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한 히브리서 기자는 12장에 드디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오는 믿음의 선배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12장에의 초점은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두 가지를 분명히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생활으 모습을 보고 있는 증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 브라질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를 하는 한국선수들을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고 응원하고 있듯이, 하늘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의 믿음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힘내라고 응원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일 ‘내가 믿는다.’는 끄레도(credo)의 어원적인 정의를 하면서 믿음은 <믿음은 나의 마음을 예수님께 주어 예수님께 고정시켜 사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주님께 내 마음을 고정시키고 드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힘들었지만 인내하시며 가셨고, 결국은 승리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영광을 얻은 것처럼 인내하고 참고 믿음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즈음 더위가 우리의 육신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때 우리의 믿음은 어떤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아니 우리는 그들이 받지 못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 받은 자로서, 새로운 믿음의 각오로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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