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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가복음 16:1-8
설교자 권오진목사
설교일 2016.9.11.

 

이그나티우스로욜라의환상1.jpg설교하는루터.jpg

 

마가복음 16:1-8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오늘은 성화 두 작품을 감사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 작품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환상>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루벤스의 이 그림은 가톨릭교회의 질서와 위계를 잘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예기를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림 중심에 있는 이 성자는 군중들이 보지 못하는 특별한 환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한 작품은 / 루카스 크라나흐 작, <설교하는 루터>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비텐베르크 세인트마리아 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설교하는 루터와 일반 신도들이 우리가 예배하는 것처럼 서로 마주보며 서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은 하나입니다. 루터가 설교단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사제인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신도들도 예배로 통해서 예수님을 보고, 설교자도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면서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그림은 굉장히 중요한 그림입니다.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성경이 성도들의 손에 들려지기 이전과 이후는 이처럼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전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볼 수 없었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제들이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교회는 달라졌습니다. 성도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었고,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신부가 낭독하는 말씀만 들었는데, 종교개혁 후에는 말씀을 두 눈으로 보고 묵상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차이입니다. 

제가 왜 이 그림으로 설교를 시작하는가? 하면 지금 우리가 한 자리에 예배하며 저는 설교를 하고, 여러분은 설교를 듣고 있지만 / 저나 여러분이 이 시간에 듣고 봐야 할 분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임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마다 예수님께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치유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 이런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우리가 집중할 예수님께로 집중해 보십시다. 
지난 두 주일 예수님 이름이 들어간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8월 28일 주일에는 - <사람이 되신 예수님>란 제목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는지?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밖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9월 4일 지난 주일에는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우리에게는 무슨 죄가 있는지? 죄의 대가는 무엇인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일반 사람들의 죽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를 생각했습니다. 잊어버린 분들은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꽃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상에 있는 종교 가운데 부활절이 있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사전에는 부활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은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일>을 말합니다. 

부활은 어쩌다가 생긴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여러 번 예고된 바 있습니다. 그 예고된 말씀 중 하나인 마가복음 10:33-34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부활에 대해서 예고한 곳이 적어도 성경에 일곱 번 가까이 나옵니다. 
여러분,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면 정말로 살아날 사람 외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그 후 어떻게 되셨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후의 사건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먼저 보십시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분명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왔던 여인들도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여인들이 한 것은 당시 유대인의 관습대로 귀한 분이 죽게 되면 육신이 썩는 것을 막고자 향료를 발랐듯이, 안식일이 지나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 온 것뿐입니다. 오면서 그들의 걱정은 <누가 무덤을 막은 큰 돌을 굴려주겠는가?>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을 안장한 무덤에 와 보니 무덤을 막은 큰 돌이 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무덤에 들어가니 그 안에 천사들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본문 4-5절을 보세요.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왔던 여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흰 옷 입은 청년, 천사를 말하지요, 천사가 무슨 말을 합니까? 
6-7절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합니다. 

천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무덤인 여기에 게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만날 것이라고 하며 이를 알려주라>고 합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여자들의 행동이 8절에 나옵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여러분 놀라운 소식이 아닙니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놀라운 소식인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신앙의 묘미입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을 믿는 종교가 우리기독교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7가지 증거
 제가 이렇게 흥분하면서 말씀드려도,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제가 부활의 확실한 7가지 증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믿고 있는 분들은 다시 확인하는 의미로 들어주시고, 믿겨지지 않은 분들은 더 집중하여서 들으셔서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증거 ? 부활은 성경에 예고된 사건이다. 
오늘 성구 교독한 고린도전서 15:3-4 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성경대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미 수 백 년 전부터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날 것을 성경이 기록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 죽으심 : 창 22장, 출 12장, 시 22편, 사 53장, 단 9:26, 슥 12:10
부 활 : 시 16:10-11, 사 53:10, 호 6:2, 욘 2:10 등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서 <계획된 사건이요, 확정된 사건>이기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거 ? 부활의 증인과 증거가 분명하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과, 그 사실을 기록한 증거들이 매우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언급하는데 대충 헤아려 보아도 527명이 넘습니다. 거기에다 그 수에 포함되지 않은 여자들까지 합하면 부활을 목격한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으니 부활은 분명한 것입니다. 

세 번째 증거 ? 유대인들이 침묵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들이 그냥 있었을 리 없습니다. 요즈음 표현으로 하면 현장검증을 했을 것이고, 거짓임이 밝혀지면 ‘거짓이다’라고 분명히 밝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나라 장례법은 수의를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천으로 몸을 칭칭 감아 미라처럼 무덤에 안치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때 사용된 천의 길이가 60m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두루마리 화장지를 60m 풀어서 여러분을 감아놓아도 스스로 힘으로는 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60m통천으로 시신을 감아 안치했는데, 주님이 부활한 현장에 가 보니 그 세마포 천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누에고치처럼, 허물 벗은 매미 집처럼 세마포 천은 그대로 있고,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부활을 한 것입니다.(요한복음 20:5-7참조) 
이렇게 주님의 부활이 확실하니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부활이 확실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증거 ? 경비병들에게 준 뇌물 
 무덤을 지킨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상관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경비병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돈을 주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다섯째 증거 ? 부활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없다.
여섯째 증거 ? 지금까지 부활이 거짓이라고 역사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2,000년이 되었어도, 그 누구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증명하라고 노력한 사람들이 대부분 부활을 믿고 전하는 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일곱째 증거 ?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다. 
이것보다 명확한 증거가 없지요. 

이제 우리 모두, 중심에 우러나오는 고백을 하십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사셨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보십시다.
2.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얻을 축복은? 
1)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죽음이 임박해 오면 세상 사람들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는 임종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임종할 때가 되면, 자신이 죽음 이후에 갈 곳이 보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천국이 보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보이겠지요. 그러니 천국이 보이는 성도들은 임종 시에 들어갈 천국이 너무 황홀하고 좋으니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나고 평안하게 보이지만, 
반대로 지옥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것에 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니, 얼굴이 험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임종을 경험한 많은 목사님들의 말씀과 더불어서 저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교회를 섬겼던 장로님이 돌아가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천사처럼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였지만, 장로님은 천국으로 가신 것이 분명하다 느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을 보면서 분명히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2)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선 성경 두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영적 죽음, 육신의 죽음, 영원한 죽음>의 상태에서 살 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고, 거기에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도 마지막 날 예수님처럼 영성체의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이해하게 쉽게 제가 한 번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사진 3장 보여주며> (무슨 나무인지 아시겠습니까?(1, 2 번 나무 사진))
이 열매가 달리는 나무입니다. (3번 사진 도토리 사진) 보여 주며> 
무슨 나무일까요? 상수리나무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토리나무, 경상도 말로, 굴밤나무이지요 가을이 되면 도토리를 주어서 도토리묵을 해 먹지 않습니까? 여러분과 친밀한 나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큰 도토리나무 제일 아래로 내려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도토리하나가 있습니다. 도토리 하나가 땅에 묻혀 죽었습니다. 그 도토리의 시신위에 도토리 싹이 나서 이렇게 큰 도토리나무가 되었고, 하나의 도토리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는 한 나무에 몇 말의 도토리를 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지만, 그 파급효과는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고, 마지막 날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이 부활체가 되어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공간을 초월하셔서 다니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갈릴리 호숫가에, 의심 많은 도마에게 역사하셨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내 속에 들어와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주님을 믿는 내 안에 함께 살아계시게 된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내가 받게 된 복입니다. 

성도여러분! 부활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꽃입니다. 이 귀한 부활신앙에 조금도 흔들리지 마시고, 굳건히 가지셔서 부활로 인해 주어진 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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