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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kEN7cbshLUE
본문 광야로 나선 전도자(행 8: 26-4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7-30

사도행전 8:26-40 광야로 나선 전도자 

 

2013년 9월 8일, 오늘 본문으로 <영적 성숙자의 세 가지 규율>이란 제목으로 설교 했었습니다. 그때 설교의 핵심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세 가지를 본문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에 초점에 맞춰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는다.

둘째,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셋째, 영적인 안내자가 있었다.

 

오늘은 같은 본문말씀으로 전도자 빌립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빌립 –① 이름의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 = 타는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상적으로 입으로 하는 말을 말합니다, <말을 사랑하는 자 / 말 하는 것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② 헬라파 유대인 = 헬라파 유대인이란 유대 땅 밖으로 이민을 가서 살거나 그곳에서 태어난 소위 교포 교인들이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당시 국제어인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전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③ 예루살렘교회 평신도지도자 7명 중에 한 사람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 칭찬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빌립이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이 일어나자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중풍병자가 낳았습니다. 못 걷는 사람이 걸었습니다. 귀신들이 소리 지르며 쫓겨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은 물론이요, 마술사인 시몬까지도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안수 기도하니 믿는 사람들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예루살렘에 있었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빌립은 얼마나 흐뭇했을까요?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정신없이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쁨으로 사역하는 빌립에게 오늘 말씀에 보면 천사가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26절입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여러분 천사가 내린 명령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빌립으로 인해 사마리아 성이 복음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비효율적인 인력 배치로 보입니다. 빌립을 보내려면, 사람이 많은 시장으로, 군중집회를 하는 현장으로 보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사람이 가끔 지나다니는 광야 길로 가라고 한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천사의 명령에 빌립은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즉각적인 순종을 합니다. 27절 “일어나 가서 보니” <빌립은 즉각적인 순종을 합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이 아닙니까?

 

※ 여기에서 놀라운 신앙교훈을 하나를 발견합니다.

위대한 신앙인일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세요. -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니
떠납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니 번제로 드립니다.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도 – 하나님이 바로에게로 가라 하니 갑니다.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리키라 하니 가리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 하니, 반석을 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매 주일 마다 설교말씀으로 내립니다. 기도할 때 마음에의 감동으로 내립니다. 때로는 목회자와 교인들과 대화중에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잘 순종하지는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명령보다 내 뜻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나님보다 내가 더 똑똑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생각해 보고요. 그 것은 내 뜻이 아닌데요.”하며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빌립이 천사의 명령에 어떻게 그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지금까지의 삶이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도, 영접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평신도 지도자가 된 것도,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온 것도 자신의 결단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자신이 능력 있어서 놀라운 결과를 거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감을 알았기에, <사마리아 성에서 – 광야로 가라>는 천사의 명령에도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빌립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이 천사의 명령에 순종해 광야에 왔을 때 누가 있었습니까?

27-28절을 보세요.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아의 글을 읽더라”

 

광야 길에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려고 왔다가 본국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에디오피아 내시>라고 그를 호칭하겠습니다.

 

‘내시’라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내시를 생각합니다. 남자구실 못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그런데 본문의 내시는 그런 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제부총리급의 인물입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고위관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빌립을 그곳으로 파송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에디오피아 고위관리, 흑인이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려고 왔다가 돌아가고 있을까요?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조금 알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도행전의 역사는 주후 30-40년 어간이지요. 거기에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솔로몬시대로 가보십시다.

솔로몬은 주전 961-922년까지 40년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과 왕궁건축으로 유명합니다. 또 하나님께 지혜와 부귀영화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에 대한 소문이 아프리카까지 자자했습니다.

 

그때 스바 여왕이 많은 선물을 가지고 솔로몬의 지혜, 명성, 부귀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 이스라엘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진짜이고, 소문보다 더 대단함을 고백합니다.(왕상 10장 참고) 그리고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예배한 후 스바로 돌아갑니다.

 

스바 여왕이 돌아간 후의 기록은 성경에 없는데, 지금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은 스바 여왕이 로몬의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스바”가 본문의 에티오피아(헬라어 뜻 : 검은 피부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에디오피아 왕족은 이미 900년 가까이 히브리 종교를 믿었고, 히브리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흑인이었던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하고 돌아가고 있다는 말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시는 마차를 타고 광야길 을 가면서 이사야서를 말씀을 소리내어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대인의 성경독서법을 알게 됩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소리를 내어서 낭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사람은 눈으로 읽어가고, 어떤 사람은 성우의 목소리를 따라 속도를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조정해 가면서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소리를 내면서 읽는 분도 있습니다만, 유대인의 성경독서법은 <반드시 소리를 내어서 읽었습니다.> 사실 이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자신의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귀로 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내시를 보고 있는데, 천사는 빌립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립니다.

29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갈수록 어려운 명령을 내립니다.

에디오피아 경제부총리급 내시라면 혼자 마차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행비서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부들도 있었을 것이고, 강도를 만나거나 피습당할 것을 대비해 수 십 명의 군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그 일행은 70명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무작정 접근하다가는 그들에게 도둑이나 암살범으로 낙인찍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순종합니다.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는 소리를 듣고는 “읽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물었었습니다. 내시는 말씀을 읽기는 일지만 이해하지 못했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해가 되겠습니까?”하며 빌립을 마차위로 초청합니다.

여러분! 빌립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에디오피아 경제부총리 옆자리에 영광스럽게 앉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 때에 이런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었던 말씀은 이사야 53장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53장에 나오는 ‘그가’ 이사야를 가리키는지, 제 3의 인물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유대 사람들은 아주 읽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에 말하는 ‘그가’ 자신들이 죽인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솔로몬 긴스버그】 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1867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교의 랍비였는데, 그는 아들 긴스버그도 랍비로 만들려고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율법 공부를 시켰습니다.

 

긴스버그가 열 몇 살쯤 되었을 해의 초막절 행사 때였습니다.

긴스버그가 성경을 들고 있다가 우연히 이사야 52장과 53장을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보다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가 그라고 한 사람이 누굴 말하나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긴스버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아들이 들고 있던 성경책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찰싹, 아들의 뺨을 때렸습니다.

긴스버그는 더 이상 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마음속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훗날 회고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긴스버그는, 영국 런던에서 일자리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안식일 오후였습니다. 긴스버그가 화이트채플이라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한 유대인이 그에게 다가 왔습니다.

“내가 오늘 당신을 미드웨이 선교회 예배에 초대하고 싶은데 오시겠습니까? 그곳에서 제가 이사야서 53장 말씀에 대해 설교할 예정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스버그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그때도 이사야 53장 때문에 뺨을 맞았었지!”

긴스버그는, 그날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그분이” 바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긴스버그는 왜 유대랍비인 아버지가 그렇게 자신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 했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긴스버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고, 기독교인이 되자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설득과, 협박받다가 결국 가문과 유대교 공동체에 영구제명을 당했습니다. 막대한 재산 상속권도 잃었습니다. 훗날 그는 브라질 선교사가 되어 192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시도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가지고 빌립에게 질문하자 빌립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합니다.

35절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이사야 53장에서 시작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사야 53장에 그분은 이사야선지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를 영접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 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빌립이 내시에게 전한 것 입니다. 내시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영접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기독교인의 의미> 하나를 발견합니다.

도대체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기독교인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런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으로 인해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믿게 된 내시는 뜨거움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성령님이 그 순간 임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빌립이 그때 시몬에게 대답한 말이 37절에 나옵니다.

37절, 우리 성경은 <없음>이라고 하고 내용이 없는데, 난하 주 (4)에 보면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4) <어떤 사본에, 37 “빌립이 이르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 가 있음>이라고 합니다. (사진 : 에디오피아 내시 세례터)

빌립은 예수 그리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한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지도 : 빌립의 행적) 세례식 후에는 성령하나님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빌립을 낚아채서 아소도로 옮깁니다. 그리고 빌립은 아소도,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전도하면서 가이샤라에 갔다고 합니다.

그럼 내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세례 받고 에디오피아로 내려가 에디오피아 첫 번째 교회를 설립합니다. 내시로 에디오피아 국가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가 변했고, 내시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내시로 통해 에디오피아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성도 한 사람의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고, 주님이 맡긴 사명에 충성한다면, 우리로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 우리교회로 통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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