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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1월 17일
고린도전서 12:1-11 하나님의 열정

<엄마의 하루>라는 글입니다.
집집마다 아침마다 / 변하지 않는 우리 / 가난한 민초들의 / 웃을 수 없는 모습.
책가방 챙겨 달라 / 아이들은 재촉 하고 / 엄마는 가장 도시락 / 아이 도시락 정신없고.
한바탕 전쟁 같은 / 아침이 지나가고 나면 / 엄마는 잠시도 쉴 틈 없이 / 아이들 방 구석구석 청소하고.
청소가 끝나면 세탁기 돌려 / 종류 별로 구분하여 빨래 널고 / 좀 쉴까 하면 여기 저기 전화오고 / 엄마의 하루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잠시 잠깐 쉰다고 눈 붙이면 /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와 문 두드리고 / 아차하며 허둥지둥 저녁 준비하려 시장가고 / 얇은 월급봉투 요리조리 쪼개 쓰는 재주 늘어 좋단다.
다른 것은 다 줄여도 아빠 좋아하는 / 생선찌개는 갖가지로 돌아가며 꼭 끓이고 / 아이들 좋다는 반찬종류는 나중으로 밀려나고 / 알뜰살뜰 살림꾸리는 엄마 보면 아빠는 재주꾼이란다.
세상에 주부들 모습 다들 / 비슷비슷한데 언제 저축하고 / 돈 모아서 아이들 방 있는 집으로 / 이사 갈까 온통 그 궁리만 하고 있다.

그래도 차근차근 저축하여 / 언젠가는 목표 이루어 / 아이들 방 따로 주고 /
가장 서재도 만든단다.
가난한 민초들 젊은 부부들의 /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날 / 온 가족은 벅찬 기쁨으로 / 얼싸 안을 것이다.
작은 소망 모두 이루어지기를 / 주변 사람들 함께 빌어주는 / 정 많은 내 고향 어르신들과 / 내 이웃사촌들이 좋단다.
엄마의 하루는 / 요술 같은 하루이고 / 전쟁 같은 하루인데 / 그래도 보람찬 하루란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가정과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던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들어서, 지금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도 성삼위 하나님께서 열정적으로 나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구로 교독한 이사야 62:1 에는 “나는 ....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합니다.
시편 121:3-4 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키시기 위해서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돌보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고형원씨가 작자 작곡한 <물이 바다 덮음 같이>라는 CCM 가사에는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사야서에도, 시편에도, CCM 가사에도 하나님을 <쉬지 않으시는 분, 졸지도 않고, 주부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많은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세위기 위해서 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 쉬지 않으시는 분을 다르게 표현하면 오늘 설교제목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정이 넘치는 하나님 / 하나님의 열정>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성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① 성부 하나님은 -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다스리게 해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매일 새롭게 재창조하고 계십니다.
② 성자 예수님은 -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세상을 통치함과 동시에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데리려고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것입니다

③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성령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님은 예수님을 잉태하게 했습니다.
- 마리아의 몸속에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 그분은 참 사람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일생 동안 늘 바르게 생각을 가지 게 했고, 항상 죄를 이기게 했습니다.
- 성령님은 또한 흠이 없이 살아온 그를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 을 내놓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 성령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성령의 사역이 우리를 위하여, 궁극적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한 것이 됩니다.

성령님이 나를 위하여 하신 일도 있습니다.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십시다.
(불의의 세력과 싸워 이기도록 / 전도할 때 담대히 복음을 전하도록 /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등)
성령님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날마다 성도를 새롭게 하고, 성도들의 성품을 변화시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제가 간략하게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나를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과거에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셨고,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열심히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마시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성삼위 하나님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신령한 것>은 성령하나님의 활동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린 아이의 몸으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33년간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활하셨을 때에도 부활체의 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몸을 만져 보라고도 하셨고, 음식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대해서는 의심할 것이 없었습니다. 분명 눈으로 봤으니까요.
지금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가 주후 55-56년 어간이니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대다수 살아있었을 때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살아있었고, 바울사도도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부하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면서 성부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말씀하셨기에 의심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어떤 형제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령하나님이 임재 하셨다는 증거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는 “맹렬한 기세의 바람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 120명의 성도들 머리 위에 들불이 번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 그러자 그들이 갑자기 나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즉 성령 하나님이 임재 한 현상은 나타나 있는데, 성령하나님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많은 성도들이 성령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는데, 아직 정확하게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일하시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를 바울이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을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성령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지금 시대가 성령님의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 나와 함께하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본문에서는 2가지를 제시합니다.
1.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는 성령이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반 유대정책을 썼습니다. 집요하게 유대인들을 괴롭혔습니다. 주후 45년경 로마에 있던 유대인 중에 고린도로 이주한 유대인이 2만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문화와 문명이 찬란하게 꽃핀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를 누리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엄청난 신전이 있었습니다. 최소 12개의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전에는 수 천 명의 신전매춘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린도는 우상이 들끓는 도시였고,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고린도에 사도바울이 들어가서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을 중심으로 1년 반 동안 이방인에게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전에는 이방사람이었고, 당연히 우상숭배를 하였던 사람인데, 바울의 전도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서 그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고 있습니다.

옛날 1세기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생활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금지했습니다. 오히려 노예처럼 낮아져서 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믿지 않았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저주 할 자’ 이였습니다.

그런 시대 복음을 영접한 교인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온전한 주님이시다.>
황제를 숭배하고 있던 그 시대에 교인들이 담대하게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을 성도들이 입을 열어서 했는데, 그 고백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하나님>이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는 성령이 함께 하고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시대, 우리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도 성령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병도 고치고, 방언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공통적으로 임한 증거를 말할 때에는 <예수님이야 말로 나의 주님>임을 믿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 받은 자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혜경스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영천 죽림사의 주지스님이셨고, 어릴 때부터 독경소리와 범종소리를 듣고 절에서 자라 나중에 스님이 되신 <김성화 스님>의 <극락의 불나비> 란 책이나 간증을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불교대학을 만들어서 불교가 왕성한 나라를 꿈꾸면서 일했는데, 결국 뭐가 잘 못되어 감옥에 가게 되고 감옥에서 불경을 넣어달라고 했는데, 불경대신에 교도관이 성경을 넣어주어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죽은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예수님이 살려주는 내용을 보고, 이와 비슷한 내용이 불경에도 나오는데 부처는 죽은 사람을 고치지 못하고 삶의 이치만 깨닫게 해 주었는데, 예수님은 죽은 아들을 살려주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진짜 신임을 고백하고, 나중에 개종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한국의 석학이라고 하는 이어령 교수의 경우가 딸의 질병으로 인해서 예수님께 기도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을 만나고 지성의 세계 넘어 영성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 역시 <성령이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서 나 같은 사람(방탕했고, 고집 셌고, 병들었고, 나이 많고 등)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통해
내가 성령의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면 먼저 본인도 유익하고, 교회도 유익하고, 세상에 유익을 있도록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이 그동안 봐온 초점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성령으로 인해서 주어진 은사 중에 무슨 은사를 받았는가?
왜 나에게는 이런 은사가 없을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에 있는 은사가 있는 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반대로 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주눅이 들어 신앙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바라는 메시지의 핵심은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그 은사가 <나에게도 유익하고, 교회도 그 은사로 인해서 유익이 되고, 세상도 그 은사로 통해서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은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9가지 은사가 나오는데 바울이 강조하는 은사는 <지성의 은사>이고, 감성적 희열의 은사는 나중에 언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는 당시 고린도 교회와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방언의 은사를 치중했고, 방언의 은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지성적인 부분,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을 더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2:28 에도 “하나님의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서 세운 첫째, 둘째, 셋째 직분인 <사도, 선지자, 교사>는 모두 거룩한 지성의 사역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거룩한 지성이 먼저임을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14:19 에도 지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쐐기를 박습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가 지금 말씀하려는 의도는 성령님이 임재한 자는 자신이 받은 은사가 <자신은 물론이요, 교회와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성령님이 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 오늘 말씀의 결론을 지어보십시다.
오늘 설교 서론에서 저는 <엄마의 하루>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가정을 위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이 없는 엄마가 있기에 가정이 꾸려가듯이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열심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려는 말씀은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오늘의 너희가 존재한다면 <너로 인해> 너 자신은 물론, 교회와 세상을 유익을 주는 성령 충만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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