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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wzTumE93ttk
본문 내가 받은 사명은(행 5:17-32)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06-04

사도행전 5:17-32 내가 받은 사명은

 

기독교에는 중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성탄절이고, 두 번째가 부활절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절기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부활절 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성령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날입니다.

이렇게 귀한 성령강림절이 오늘인데 우리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계속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생각한 사도행전의 말씀 속에서

- 성령을 받으려면 기도에 전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성령하나님이 임할 때라야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 그리고 성령 충만이 성령의 사로잡힘과 절대복종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여러분이 성령하나님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갈급하다면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교만하거나 기도하지 않거나 신앙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서 갈급한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성령강림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고, 사도행전을 강해하는 순서대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초대교회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정리하자 다시 부흥이 찾아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후하게 계산한다 하더라도 채 100년이 넘지 않습니다. 나머지 1,900년은 그저 평범한 시기였습니다. 또 영적인 암흑기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2,000년 교회역사 중에 찾아온 100년의 부흥의 역사는 어떨 때 찾아왔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고, 옥한흠목사님(서울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의 책을 보니 <부흥을 주시는 특별한 때 3가지>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부흥을 주시는 특별한 때>

1) 새 선교지를 개척할 때

어느 나라든 새 선교지가 개척될 때에는 부흥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고,

중국에 복음이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하셨고,

인디언 세계에도 그와 같은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셨고,

미국의 경우에도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복음이 처음 들어가 터를 닦는 지역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이 유형에 들어갑니다.

 

2) 한 세대가 영적으로 최악일 때

하나님은 한 세대를 영적인 타락에서 구원하시려고 하실 때, 대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00년 전에 있었던 종교개혁입니다. 중세의 영적인 암흑기에서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실 때 부흥을 주신 것입니다.

 

3) 교회에 큰 핍박이 닥칠 때

교회에 어떤 위기가 닥쳐 올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대 부흥을 먼저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놀라운 부흥이 있었을 때 그들은 앞으로 생각하겠지만 그 어떤 박해도 이겨내었고, 순교하면서까지 교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07년 평양에서 대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뒤에 숨은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910년대, 1920년대 불어 닥친 그 무서운 핍박, 일재의 잔인한 횡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아셨기에 특별한 부흥을 통해 한국교회를 사전에 준비시킨 것입니다.

 

한국교회 사학자요 선교사였던 블레어(W. N. Blair)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성령의 세례가 강대한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조선 기독교인들이 저 앞에 가로놓여 있는 시련의 나날들을 극복해 나갈 도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렇게 하나님은 <새 선교지를 개척할 때, 한 세대가 영적으로 최악일 때, 교회에 큰 핍박이 닥칠 때> 부흥을 허락하셨다고 옥한흠 목사님은 주장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경우에는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해당이 됩니다. <새 선교지를 개척할 때와, 교회에 큰 핍박이 닥칠 때>입니다.

사도행전 2장, 3장, 4장, 5장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초대교회에 임한 대 부흥운동은 우리에게 흥분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지난 시간 생각한 말씀만 해도,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고, 남녀의 무리가 믿고 주님께로 나와 왔습니다.(14절)

 

그런데 이어지는 오늘 말씀을 보면, 또 핍박이 찾아오는 것을 봅니다.

17-18절을 읽어보십시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있은 후 부흥과 축복이 초대교회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사탄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 핍박을 주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비밀을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신앙의 성숙은 축복을 통해서만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도 성숙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멀리 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건강하게만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아파가며 살아왔습니까? 옛날 어른들이 하신 말씀 중에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란다.>했습니다. 성장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축복과 고난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를 성장시키는 도구입니다. 이점을 안다면 축복의 시기는 물론이요, 고난의 시기도 거뜬히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도 축복의 시기 이후에 때로 고난이 오고, 고난의 시기가 지나면 축복의 시기가 오는 줄 믿고 <축복의 때이든, 고난의 때이든> 그 때가 나를 성장시키는 때임을 알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핍박은 먼 데서 오지 않고, 가까운 데서 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핍박은 불신자들에게서 올 것 같은데, 본문에 보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로부터 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일은 사도들과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 교회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를 가장 힘들게 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난 46년의 우리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 밖의 사람들이 핍박하고 성장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 방해하는 자는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자들, 엄밀하게 말하면 목사든지, 항존직 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부터 사탄이 사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특별히 저를 포함한 교회에 앞장 서 있다는 분들은 명심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탄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존재함으로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랍니다.

 

3) 핍박이 오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는 신앙적인 이유로, 교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자신의 정당성을 말하면서 자신은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속으로 들어가면 <시기와 질투>가 문제의 근원일 때가 많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은 이유도 자신도 바나바처럼 인기를 얻고 싶은 시기심 질투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도들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롭고, 자신들의 인기가 사도들에 비해 추락하니 그것이 화근이 되어 사도들에게 핍박을 가한 것입니다.

17절 하반 절에 “…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라고 하며 <시기 때문에> 사도들을 잡아서 가두었다고 말합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시기, 질투>는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찾아올 수 있고, 장로님, 안수집사, 권사님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너만 인기를 얻어서 되겠냐? 너보다 내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미 사탄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1차 투옥 때는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었는데 오늘 본문에는 2차 투옥을 언급하면서는 몇 명이 갇혔는지 인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1차 때보다 더 많은 사도들이 갇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혔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천사가 밤중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출옥시켜준 것입니다. 여러분 천사가 나타나 사도들을 옥에서 구출해 내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도 있지만, 설명되지 않는 일이 더 많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지창조 –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됩니까?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도 그렇습니다. 출애굽시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신약으로 와서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난 일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죽은 자가 세 사람이 살아났고, 귀신 들린 자, 중풍병자가 말씀 한마디로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도, 성령 받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 수많은 병자가 나은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합니까?

그저 우리는 믿음으로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내 생명이 끝나면 영원한 세계가 있음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천사가 밤에 옥에 갇혀 있는 사도들을 옥문을 열어서 끌어내었습니다. 왜 출옥시켜 주었습니까? 이유가 있었습니다.

20절에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해 보면

19절은 – 소명 받은 내용이고, 20절은 구원해 주신 이유? 사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을 천사가 출옥시켰는가? 이유는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함인데 그 사명은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를 읽어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몰살당할 위기 속에 있을 때,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하나님이 모르드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 그러자 에스가 회답하기를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아서 자신을 위해 금식기도를 하는데 삼일 밤낮을 기도해 주라고 부탁합니다. 자신과 시내들도 금식기도를 같이하여 유대인을 구원해 달라고 왕에게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한 유명한 말이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에스더도 왕후의 소명을 받았는데, 이유는 그 백성을 구하는 사명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제가 물어보겠습니까?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 받으신 줄 믿습니까?(아멘이십니까?) 분명 사도들이 감옥에서 구출되어 나온 것처럼 우리도 죄의 감옥에서 구출되어 나옴을 믿습니다.

그럼 또 하나 질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왜 구원해 주셨습니까? 무엇을 하라고 구원해 주셨습니까? 다시 말해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사도들은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 곤란합니까?

죄송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만 주시면 주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아픈 사람들은 ‘건강만 주시면 주님 위해서 살겠습니다.’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부유함만 주시면 주님의 영광위해서 물질을 쓰겠습니다.’

직분을 받는 분들은 ‘직분만 맡겨주시면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살려주면, 건강하게 해 주면, 부자가 되게 해 주면, 직분을 주시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살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 오늘 이 시간 그 사명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가 보십시다. 사도들은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20절) 는 사명 받고 즉시 순종합니다.

21절 상반절에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

사도들은 사명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즉시 순종해서 성전에 달려갔습니다. 간 시간을 성경은 ‘새벽에’ 라고 말합니다. 새벽부터 최선을 다해서 가르칩니다.

 

여기서 새벽이라는 시간을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유대 지방은 날씨가 더운 지역입니다. 그래서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이른 아침 새벽 시간부터 나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출옥시켜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사실 당시 정황을 보면 이렇게 순종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요? 성전은 공개적인 장소입니다. 그들이 솔로몬 행각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잡혀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다보면 또 잡힐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순종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21-28절까지)

재판하기 위해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잡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나, 감옥에 가보니 사도들이 없어서 당황해 하는 대제사장과 경비대장의 이야기가 나오고,

또 어떤 사람이 달려와 사도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에게 가르치더라는 보고가 나옵니다.

그래서 경비대장이 사도들을 다시 잡아와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사도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가르치느냐? 왜 예수를 죽인 죄를 우리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느냐?>며 심문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사도들의 대답이 29절부터 나옵니다. 32절까지 읽어보십시다.

29-32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29절 – 우리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30절 - “우리 주님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다”- 십자가의 예수 전파

30절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 부활하신 예수 전파

31절 - “이 예수는 너희를 구원하기 위하여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는 임금과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도다.” - 구원자 예수를 소개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 부활하신 예수 → 구원자 예수>

이것이 바로 사도들이 받은 <생명의 말씀(20절)>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32절에 – 이 모든 일에 우리가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공통의 목적, 공통의 사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각자 직분도 사명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사명을 다시 확인하시고 그 사명의 길을 순종하면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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