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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7월 26일
로마서 1:24-32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40일동안 가나안에 파송한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알아보고 오라고 한다면, 세계를 돌아보고 온 우리들은 어떤 보고를 할 것 같습니까? 아마 세상을 살피고 온 우리들 입에서 “세상은 지금 넓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보고 할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사람들은 넓은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종교다원주의)
기독교 국가라고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이젠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미국은 청교도들의 신앙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s나라입니다. 청교도 목회자들이 한 설교내용을 보면 얼마나 성경적인지 모릅니다. 그저 읽어보기만 하는 대도 은혜가 됩니다.
그렇게 말씀 안에서 이루어진 미국이란 나라가, 이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 안에도 <불교가 부흥하고, 마술 숭배자들이 있고, 이슬람교도 부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 사람은 교양도 없고, 폭이 좁은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성(性)적인 면에서도 넓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 9명 가운데 찬성 5명, 반대 4명으로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이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미 미국을 포함해서 20개 나라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제 동성결혼을 하는데 목사에게 주례를 부탁해서 거절하면 벌금을 내든지, 감옥에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결혼하겠다는데 교회를 빌려주지 않으면 그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을 더 넓은 사람이고, 더 넓은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동성애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6월 28일에는 서울광장에서, 그리고 7월 5일에는 대구 동성로에서 600여명이 참석하는 <퀴어 축제>가 열렸습니다.
퀴어입니다. 그런데 퀴어‘queer’라는 말에는 <괴상한>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여간 성적소수자들이 모여서 문화행사도 하고, 행진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적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반대하는 자들이 <속이 좁은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해서 한국교회를 바르게 이끌려고 노력하는 목사님들이 설교로, 혹은 SNS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근래에 밝혔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
높은 뜻 연합선교회 대표 김동호 목사님 - 내용을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하지만, 세 분의 목사님이 동성애에 대해서 소견을 발표했다가, 오히려 이런 저런 사람들이 그분들을 비판하는 것을 봅니다. <그냥 그분의 생각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인데, 무조건 비판해요. 나름의 생각이 있다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세상이 넓은 길로 걸어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까요?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라는 책을 쓴 <댄 킴볼> 목사님은 책 내용중에 이런 시대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우리는 선교사의 꿈을 꾸어야 한다. 우리는 선교사의 피를 흘려야 한다. 우리는 선교사의 기도를 해야 한다”(p. 87)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평신도가 아니라 선교사라는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교독한 말씀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큰 문을 통해서 넓은 길로 간다고 그것이 교양 있고, 멋있게 보일지라도 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 끝은 멸망이요 죽음이요,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될 때마다 <내가 넓은 길을 추구하는가? / 아니면 힘들지만 좁은 길을 추구하는가?>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원하는 길을 가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가기를 원하는가?> 물어보고 늘 좁은 길로 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 길 끝에 <생명이 있고, 영원한 천국이 예비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에는 인간들의 죄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20-21절에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그 만드신 만물들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깃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아예 성령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살아 숨 쉬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그 길을 포기합니다. 하나님 대신 사탄을 선택했습니다. 죄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버려두셨습니다. 24절 “내 버려 두사” 28절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두사” 하나님이 버려두셨더니 인간은 참으로 입에 담기 어려운 타락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적인 타락입니다. 여기에는 동성애가 포함됩니다.
26-27절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보세요, 동성애는 “그릇되었다고 말합니다.” 27절의 ‘그릇됨’ 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오류>라는 말입니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윤리적인 타락>입니다.
본문 29-31 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미한 자라”
이 말씀이 겉보기에는 윤리적인 문제이지만, 사실 그 뿌리는 영적으로 타락했기에 생기는 죄의 문제임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성애를 포함하여 성적으로 타락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기막힌 말을 합니다. 32절입니다.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분명히 그들은 - 그들의 종착점이 사형, 죽음, 영원한 지옥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도 행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옳다”>라고 격려하고 칭찬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형적인 속성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동성애문제, 그리고 현재 논란이 본격화 되는 동성결혼 문제를 말씀 안에서 분명하게 몇 가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동성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위배하는 죄다.
창세기 2:24에 하나님은 결혼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서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동성 간에 결혼을 하라고 하라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동성 간의 결혼은 분명한 죄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동성애 역시도 죄입니다.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을 우리가 아니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사사건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은혜의 주님이 용서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은혜로 처리하자, 은혜로 덮어주자는 말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은혜와 진리>는 항상 함께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 속에서 은혜를 찾아야 하고, 은혜는 진리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리이인 성경이 <죄>라고 하면 그것이 죄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쉽게 나와 다른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벌레 보듯 봅니다. 그래서 내가 재판관이 되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재판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대구 퀴어 축제를 할 때에 보수 단체서 반대 집회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그들에게 인분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누가 잘 했고 잘못했느냐? 제가 말할 성질은 아니지만

성경에는 판단의 못은 우리가 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로마서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러분, 모든 죄의 근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나, 동성애자들이 짓는 죄의 출처는 같습니다. 우리 역시 죄인이라는 것이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의인인양 동성애자를 보면서 혐오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오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태도를 취하여야 합니다.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2:47-48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 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는 자를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지막 날 예수님의 말씀을 어긴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동성애자들을 내가 심판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마지막 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혐오하거나 심판하여서는 안 됩니다.

3. 동성애자들이 거듭나도록, 변화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내 생각대로, 내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세상이 좋아서 허랑방탕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거듭남으로 인해서 오늘 우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변화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 ...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다면 그들이 이성애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의 창조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동성애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냐? 아니면 후천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가? 등등 여러 가지를 공부해 본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하나님이 변화시키면 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들 주변에 동성애자가 보인다면, 그들을 혐오하는 대신 그들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주님 안에서 변화된 몸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이 할 일입니다.

4. 우리는 박해를 받더라도 좁은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신앙의 길은 점차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성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박해를 받는 것은 내가 정상적인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기독교인 박해 받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9-22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여러분, 선교사가 대접받고 편하게 사역하려면 바른 선교사가 아닐 것입니다. 힘들어도 현지의 언어와 문화와 영적인 문제를 헤치고 그 백성들을 구원해 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선교사란 각오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많은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목사인 저의 경우 - 만에 하나 동성결혼 주례를 하지 않아 벌금을 내고, 감옥에 가야 한다면 벌금을 물고 감옥에 가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자 결혼 장소로 교회를 빌려주지 않아 교회가 벌금을 내어야 한다면 내어야 합니다.

성도들 개인도 그럴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에서 바르게 살려고 하면 핍박당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영혼구원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제자 된 우리들이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대제사장의 기도 중 <제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7:14-19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제자로서 거룩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짓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넓은 문을 통과하고, 넓은 길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사사시대처럼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처럼 그 길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이 시대를 내가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하셔서 - 힘들지만, 어렵지만 좁은 길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그 길 끝에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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