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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12월 20일
요한복음 1:14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요?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오신 예수님 깊이 생각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오늘이 대림절 마지막 주일이고, 오는 금요일 성탄절을 맞게 됩니다. 대림절 넷째 주일에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인간이 되셨을까요?
하나님이 계셨던 자리와, 예수님이 태어난 유대 땅 베들레헴은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었을까요?

저는 여러분의 기도 덕택에 열흘 동안 인도와 네팔 두 나라 선교지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인도와 네팔을 상징할 수 있는 그림 한 장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① 인도 - 혼돈스런 거리모습(소, 사람, 자동차, 인력거, 오토릭샤)
짧은 기간 인도를 방문하고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기간 동안 느낀 점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런 그림입니다. 혼돈스럽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② 네팔 -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
인도의 속국이라고 할 수 있는 네팔의 현 모습을 그림 하나로 표현하면 바로 이런 그림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습들, 이는 영적으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나라의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중요 선교지를 돌아보며
2개 예배당은 봉헌하였고, 2개 예배당의 건축소식을 자세히 듣고 왔습니다.
우리교회가 인도와 네팔을 선교하게 된 통로는 현지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한 부부 때문입니다.

③ 롭 미첼, 원향희 선교사 사진
1993년부터 인도선교를 시작해 지금까지 23년간 선교를 감당하시는 롭 미첼선교사, 원향희선교사를 제가 알고 있는 목사님을 통해서 소개받고 이 두 분을 통해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선교사님들을 만나봤지만 이 두 분만큼 열정이 있으시고, 검소하게 사역하시는 분을 처음 만나 뵈었습니다. 우리교회를 방문했을 때 30만원 여비를 드렸는데, 그 여비를 받았다고 영수증을 보내올 정도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양성을 위해서 23년을 헌신한 분들입니다.

④ 롭 미첼, 원향희 선교사의 많은 사역지 가운데 두 곳을 소개하면
㉠ 마약재활원 방문
인도가 아프가니스탄이나 마약 재배지에서 생산되는 마약을 운반하는 중간통로가 되어서 인도의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약을 접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부모님이 마약을 접하면 그 가정은 엉망이 되고, 자녀들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가정이 파괴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들을 살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함께 숙식하는 집을 방문하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교회에서 준비한 약품을 전달하였습니다. 지금 이들을 위해서 200명 정도를 수용하기 위해 공사 중인 건축하는 현장도 다녀왔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였습니다.

㉡ 기독교재단 학교 방문
힌두교가 국교인 인도에서 기독교학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원향희 선교사가 주중 3일 정도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는 기독교 학교를 아침에 방문했습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280명 모이는 학교였는데, 조회시간에 그들과 말씀을 나누고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 간 농구공과 3색 볼펜 하나씩을 전달했습니다.

⑤ 2개 교회 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더벤더 버르마 목사>를 델리에서 만나 식사를 하면서 건축에 대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버르마 목사님은 델리에서 600여명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면서, 인도 목회자를 위해서 많은 사역을 하시고, 복음이 전해지기 힘든 곳의 목회자를 후원하고, 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우리교회 <권주호집사, 김영이 권사> 가정의 후원으로 2개 교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건축되고 있는 지역은 - 델리에서 16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차로 5-6시간 가면 있는 <라자스탄>이란 곳인데, 지금 현재 두 개 교회를 건축하고 있습니다.
평면도를 가지고 설명하면
㉠ 규모가 큰 교회 (목회자 : 버르마 씽 목사)
지금 현재 이 교회는 교인이 150명 정도 모이고 있는데, 그동안 천막을 치고 예배했는데, 우리교회의 후원으로 건축되고 있습니다.
㉡ 규모가 작은 교회(목회자 : 깔루섬 뿌리야 목사)
지금 현재 80-90명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지금 라자스탄에서 2개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외국인이 들어가기 힘든 지역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도 외국인 목사가 들어와서 세례식을 베풀고, 기차역으로 가는 도중에 그동안 사진 찍은 것이 발각되어서 그대로 추방했다고 합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도 박해가 얼마나 심한지 특히 정치인들이 박해를 심하게 해서 천천히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마 내년 6월 정도면 완성된 건축모습을 보내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⑥ 인도 겟세마네 교회(목회자 : 아미 바샤 목사)
델리에서 기차로 8시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트고담> 지역에 건축되었습니다.
인도나 네팔의 예배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예배당처럼, 종탑이 높이 올라가고 그 위에 십자가를 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저 주변에 있는 집이나, 과거 그 자리에 있었던 건물 형태로 건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은 건축물이 예배당이었습니다.

겟세마네 교회에 외형을 보시면 우리교회처럼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그 주변에 비하면 굉장히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1층으로 튼튼하게 지었는데, 앞으로 2층을 증축할 것이라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예배당에 주방과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특별하나 싶지만, 우리교회가 그동안 지은 건축물에는 화장실을 별도로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교회주변 야외에서 볼 일을 보았고, 잘 한 곳이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서 화장실을 만들었을 뿐인데, 겟세마네 교회는 교인들을 위해서 화장실을 남녀 구별해서 만들었습니다.

헌당식에는 약 120여명이 참석한 것 같은데, 앞으로 이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주변 공장이나 다른 지역의 성도들이 예배하고 교육을 받게 되는 선교 센터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⑦ 인도에서 네팔로
카트고담에서 네팔 국경까지는 차로 약 3시간정도 걸렸습니다. 국경 통과도 차를 타고 이동한 것이 아니라 걸어서 국경을 이어놓은 다리를 통과했는데, 다리 길이만 800M였습니다. 그 거리를 거의 뛰다 시피 해서 통과를 했는데,
그때 든 느낌은 <마치 탈북자가 야밤에 탈북 할 때 뛰는 것과 같은 그런 음산한 느낌이었습니다.>

인도도 못사는 나라인데, 네팔은 인도의 속국이다 시피 하니까 경제적으로 못 사는 구나? 하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국경을 잇는 그 길이 아직 완전하게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포장과 비포장이 반복된 그 길에 마차가 다니고,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얼마나 어려운 나라인가? 아실 것입니다.
인도 네팔 출입국사무소에는 아직도 손으로 출국자 이름, 입국자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런 출입국 과정을 통해서 거의 5시간이 걸려 네팔의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호텔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호텔을 연상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여관보다 못한 수준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고장이 나있었고 추운 날씨에 온수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오락가락하는 열악한 곳입니다.

네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 공휴일이 <주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일요일, 주일>을 쉬는데, 네팔은 <토요일>을 쉰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인 피해를 입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⑧ 네팔 <아누그라 교회>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12월 13일(주), 네팔로 말하면 모두가 일하는 월요일 낮 12시에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네팔 교회를 건축하게 된 이유는?
롭 미첼 선교사, 원향희 선교사 부부가 그동안 제자훈련을 시킨 <비노드(Binod) 목사> 때문입니다.
비노드 목사님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네팔교회를 위해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호텔에서 아침을 같이 하면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직 젊은 목회자였지만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아직도 건축해야 할 교회가 5개 이상 있다고 했습니다.

㉡ 아누그라 교회를 이야기하려면, 그 교회를 담임하는 <켐 목사> 부부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600만원부터 1,000만까지 송금을 하면 그 돈으로 <땅을 구입하고, 자재를 사고, 인부를 동원해서 건축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헌금으로 하면 그 배 이상은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도 건축되는 이유는?
땅을 대부분 교회 목회자가 성도, 혹은 마을 주민들이 기증을 합니다.
자재를 구입하여, 건축을 할 때에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헌신을 해서 건축에 동참하기 때문에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헌금과 그들의 정성과 헌신이 합쳐져서 건축된다고 보면 됩니다.

아누그라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켐 목사 부부>가 전적으로 헌신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부지를 재공하고, 교인들이 헌신해서 건축되었습니다.

예배당의 모습을 보시면 아름답지 않습니까?
반경 10km 근방에는 벽돌로 이렇게 지은 집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는 15개 마을에서 예배하러 온다고 하며, 이미 세례교인이 80명 이상이 모인 다고 합니다.
헌당예배에는 지역 정치인, 마을 대표, 지역목회자, 교인들 포함해서 150여명 넘게 참석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그렇지, 만약 아이들이 함께 했다면 더욱 많은 수가 모였을 것입니다. 약 3시간에 걸쳐서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꼼짝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자, 제가 열흘 동안 방문한 인도와 네팔 선교지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성도 중에 제게 <목사님, 또 건축하고 헌당식하려고 가면 기꺼이 가겠습니까?>묻는다면 .............. 주저함 없이 <예>하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삶의 환경과 ..... 제가 방문한 인도와 네팔의 삶의 환경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조금 범위를 넓혀서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되셨나?>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보다 나은 곳에서 살고 싶고, 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 유럽 여행을 기꺼이 가려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 미국도 가려고 합니다. 미국의 시골 중 어떤 곳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고 ........ 아프가니스탄에 가시지요? / 아프리카에 가시지요? 라고 말하면, 웬만한 사람은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고생을 사서 합니까? 거기에 가면 무슨 질병에 걸릴지 모르는데, 먹을 음식도 없는데 .. 왜 갑니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늘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런 마음이 없었을까요?>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을까요?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은 요한복음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1-18절중에서 핵심구절이고, 또한 기독교의 핵심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1절과 연관시켜서 읽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절로 가 보십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지금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정의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말씀,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하지요. 사도요한이 예수님을 말씀<로고스>라고 정의하고 시작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면 ... 한 시간의 설교로는 부족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당시 헬라사람들이 가진 말씀 <로고스>라는 사상을 기독교 안으로 끄집어 들여서 ... 예수님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로고스<말씀>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말씀이란 개념 설명을 제쳐두고, 이 말씀에서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지?> 만 몇 가지 간략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에덴동산에 처음 창조될 때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복되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된 것입니다. 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했습니다.

2.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덴마크 철학자 케에르케골은 이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멋진 비유 하나를 들었습니다.
어느 나라의 왕자가 시골로 사냥을 나갔다가 예쁜 시골처녀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 처녀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온 왕자는 신하를 시켜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했습니다. 그러나 처녀는 거절을 합니다. 신분이 달라서 결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어느 날 왕궁을 떠납니다. 시골마을로 내려와 평민이 되어 물레방앗간을 사서 경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아를 찧으러 오는 시골처녀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결국 시골처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처녀는 물레방앗간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시골 처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궁을 버린 왕자는 곧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키에르케골은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왕자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런 비유를 통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우리를 사랑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표현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말로 짧게 설명했습니다.

3.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신, 구약에서 수 없이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현세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 위험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현세적인 의미를 넘어 더 발전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150번 이상 사용되는 ‘구원’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죄와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오심으로 죄로 인해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이르는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하늘보좌 버리시고 인간이 되심으로 인해서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낮은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 낮은 자리가 선교지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의 어려운 곳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가서 주님으로 인해서 일어났던 사랑, 함께하심, 구원의 역사가 우리로 통해서도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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