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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9월 20일
요나 4:11 니느웨와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주일부터 오늘까지 총 8시간에 걸쳐서 요나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을특새 6일 동안은 매일 새벽 170여명의 성도님들이 나와 말씀을 들으셨지만, 참석하지 못한 다른 분들을 위해서 잠시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1장에서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은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페인으로 배를 타고 도망을 갑니다.
도망가는 요나를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지중해를 뒤집어서 풍랑이 일어나게 하고 결국 그를 바다에 빠트리고 큰 물고기가 삼키게 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풍랑으로 힘들게 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드디어 하나님과 독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나가 들어간 큰 물고기 뱃속은 숨을 쉬고 살아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닌 힘든 환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힘든 환경에서 요나가 드디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기도에는 회개의 기도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운 점이지만은 말입니다.
2장에 통해서 우리는 오늘 우리들도 건강문제로, 경제문제로, 자녀문제로, 사업문제로, 살아 있기는 하지만, 숨 쉬는 것조차 힘든 환경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과 1:1로 독대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3장에서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하나님이 두 번째로 사명을 맡기셨고, 그제야 순종하는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사흘 동안 걸어가야 하는 큰 니느웨를 하루를 걸어가면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고 선포했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 심지어 짐승까지도 금식하면서 회개를 하게 되었고 회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내리려는 심판을 취소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3장을 통해서는 어떤 사람이든 진실 된 회개를 하기만 하면 그가 지은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4장에서는, 회개하고 구원받은 니느웨 사람들을 보고 요나 선지자가 기뻐하지 않고 <싫어하고 화를 내었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요나를 교훈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박 넝쿨을 가지고, 너는 박 넝쿨 하나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데, 내가 니느웨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 질문합니다. 이것으로 요나서 4장이 마칩니다.

자, 이제 대충 이해가 되십니까?
요나서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요나서는 끝부분이 깔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가 구원받는 장면을 보고 괴로워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이 질문함으로 불쑥 끝납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11절 말씀이 불쑥 끝내고 있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비둘기’라는 이름을 가진 요나,
비둘기처럼 늘 평온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요나서를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당대의 위대한 예언자였지만, 요나서 1장에서도, 2장에서도, 3장에서도, 4장에서도 요나의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늘 불안했고, 불평불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에 걸 맞는 평안은 과연 언제 누려보았을까요?

오늘은 요나서 4장 11절 이후에 이야기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요나서 4장 11절 이후에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요나는 예언자로서 정신을 차렸을까요?
- 또 회개를 잘해서 심판을 면한 니느웨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흥미롭지 않습니까?

1. 먼저, 니느웨는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십시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니느웨는 악하기로 세계에서 으뜸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합니다. 회개를 해도 화끈하게 합니다.
앗수르 왕이 왕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재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회개를 합니다. 왕이 그렇게 회개하니 백성도 회개하고, 짐승까지도 베옷을 입히고 금식을 시켜서 회개를 시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동안 악하게 살아온 삶을 완전히 청산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회개한 이후 앗수르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최대한 넓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 됩니다. 그러니 앗수르 명성도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느웨는 <세계 건축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고, 앗수르는 군사 정복으로 인해 약탈 물이 많아져 더욱 부강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전 722년에는 앗수르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서 남쪽 이집트 심장부까지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나라가 됩니다.

하지만, 니느웨 성은 회개 후 140-150년이 흘렀을 때, 그들은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회개한 선조들의 본을 후손들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과거 하나님이 니느웨를 심판하려고 했을 때보다 더 악해졌습니다. 그들의 악함은 요나 .. 미가 ... 그 다음에 나오는 <나훔서에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나훔 3: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했습니다. 나훔서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니느웨가 정복한 많은 나라가 그들의 끊임없는 악행 때문에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나 선지자가 사역한 후 1세기가 지났을 때, 나훔 선지자로 통해서 또 다시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다시 교만해졌고, 깊은 죄악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니느웨는 주전 612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됩니다.
그 이후 니느웨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그야 말로 <니느웨 ........... 끝............>났습니다.

니느웨가 범죄하고, 회개하여 부흥하고, 다시 범죄 해서 멸망당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교훈은 간단합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사람들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8장을 보면 <토기장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냅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가보니,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데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대로 만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후에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으니라”(렘 18:6)

그렇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대통령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니느웨의 멸망과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어떤 나라든지 말씀 안에서 바로 서 있으면 그 백성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가차 없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요나서를 인용한 핵심은 <회개>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회개 많이 살 길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는 데도 너희들은 회개하지 않는가? 나중에 너희들이 받을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 많다면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시선을 항상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만이 복된 길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늘 깨어 회개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요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십시다.
요나서에 나오는 요나는
-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불순종의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물고기 뱃속에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 두 번째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지만 진정한 순종을 하지 않고 겉으로만 순종한 사람입니다.
- 니느웨에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부끄러울 정도로 편협하고 이 기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입니다.
- 요나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실물 교육을 시켰고, 부드러 운 하나님의 질문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요나가 요나서 이 후 어떻게 변하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첫째, 싸가지라고는 전혀 없던 요나를 하나님이 결국 포기하셨을 것이다.
둘째, 요나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섰을 것이다.

여러분은 요나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첫째 같습니까? 둘째 같습니까?
정답은, 정답은 <..... 모른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유추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 주일 동안 우리가 살펴본 <요나서>를 잘 파악하면 답이 보입니다.

자 우리가 요나서를 처음 읽는다고 생각하고 요나서를 생각해 보십시다.
① 요나서는 누가 기록했습니까? 당연히 요나 선지자이지요.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지만, 요나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입니다. 예수님도 인정하셨고, 열왕기하 14:25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② 그렇다면, 요나는 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기록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혹은 자서전을 쓸 때 자신의 잘못된 것은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도 자서전을 남긴 분들이 있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김대중 자서전 1,2권>을 남겼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의 시간>이란 자서전을 남겼습니다.

이 두 분이 쓴 자서전을 읽어보았습니다.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책을 읽어보면 이분들이 5년 재임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업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만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재임하면서 “이것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판단이었고, 실책이었다” 하는 면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을 미화시키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요나도 자신에 대해서 좋은 점만 기록하면 안 되었을까요?
나는 유대인이로서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물고기를 준비하셨다.
물고기 뱃속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내가 두 번째로 명령을 받고는 어쩔 수 없이 말씀을 전했지만, 내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왕부터 짐승까지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하나님께 화를 내었다.
<충분이 이렇게 자신을 미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기록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니느웨 사건 이후,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의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했다고 봅니다.
요나는 회개를 했고,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 후에 그는 용서함 받은 감격으로 자신의 삶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자신의 과거모습 그대로를 기록함으로서 ... 요나서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도 과거에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제 변화되었으니. 당신들도 온전히 변화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자신의 잘못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체험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을 보세요. 종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고, 축하예배 그를 드리는 그 자리에서 <나는 일제시대에 신사 참배한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죄를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듣고 누가 한경직 목사님께 비난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고백함으로 그를 더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항상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나가 회개하고 완전한 종으로 돌아왔기에 그의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요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나서의 핵심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장에는 요나를 위하여 물고기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2장에는 물고기로부터 마른 땅으로 구출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3장에는 니느웨 사람들까지도 아낀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4장에는 아이들과 가축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요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 사랑의 초점은 사실 <요나를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추격하면서 사랑해 오시는 사랑을 요나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뭐라고 ...
도망가는 요나를 추격하시고,
바다에 빠진 자신을 위해서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물고기 밥으로서 인생을 마쳐도 될 자신을 살려주시고
두 번의 기회를 주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자신의 입으로 통해서 전해진 말씀을 듣고, 그 악한 왕부터 회개하게 하시고,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니느웨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그가 완벽하게 깨닫게 되었기에 있는 그대로 요나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 요나서를 읽어보면 .... 요나는 자신이 바보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면 된다.
하나님만 드러나면 된다는 그런 마음으로 요나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고백한 같습니다.

자 이제, 여덟 번의 말씀을 결론 지어보십시다.
요나서의 주인공 요나는 .... 오늘의 바로 <요... 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내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1장의 단계
2)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다가 풍랑이 일어 힘들어진 1장 후반의 단계
3) 내 삶의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숨 쉬고 살고 있지만 사는 것이 아니며,
최악의 상황에 도착해서야 하나님과 독대하는 기도를 하는 2장의 단계
4)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억지로 순종하는 3장의 단계
5) 내 뜻대로 하나님이 움직여주지 않아 불평하고 화를 내는 4장의 단계
6) 진정한 회개 후에, 자신의 약점까지도 그대로 나타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4장 이후의 단계
............ 어느 지점에 여러분이 계십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도 요나처럼 온전한 사람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추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나처럼 힘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따르지 마시고. 지금 현재 삶의 자리에서 내 희망은 오직예수임을 아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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