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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TiP0DRFU3ZY
본문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사람들(행 12:1-1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7-10-22

사도행전 12:1-10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사람들

 

지난주일 우리는 안디옥교회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헬라파유대인에 대한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 중 일부가 로마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이 확장되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자연인격과 신앙인격이 훌륭한 바나바가 사역하자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혼자서 사역하지 않고 다소에 있던 사울을 데려와 함께 1년 사역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부흥했고, 교인들이 안디옥시민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해서 보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도 안디옥교회를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복음이 확장되고 있을 때, 예루살렘교회에는 또 다시 매서운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2절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우리는 앞부분에서 평신도지도자 스데반이 순교당하고, 교회가 핍박받았다는 내용을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핍박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핍박이었고, 헬라파 유대인을 핍박한 것이라면, 오늘 닥친 핍박은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핍박이고, 히브리파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헤롯 왕이 작정을 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첫 번째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였습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말하는 <헤롯 왕>이 누구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헤롯이란 이름이 다섯 사람 나타납니다.

첫째, <헤롯 대왕> -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베들레헴에 있는 2살 이하 사내 아이를 다 죽인 자입니다.

둘째, <헤롯 아켈라오> - 헤롯을 이어 왕이 되었지만 주후 4년부터 6년에 걸쳐 서만 왕 노릇 한 사람입니다.

셋째, <헤롯 안티파스> - 세례요한의 목을 벤 사람입니다.

넷째, <헤롯 아그립바 1세> -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헤롯이 바로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이 사람은 헤롯대왕의 손자로서, 본래 갈릴리 근방의 분봉 왕이었는데 정치적인 수완이 좋아서 헤롯 안티파스를 몰아내고 이제는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통치하는 권한을 로마로부터 받아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사람한테 잘 보이고 유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서 자기 왕권을 굳건하게 하려고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전히 정치적인 욕망에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헤롯 아그립바 2세> - 사도행전 26:28에 나오는데, 가이사랴에서 사도 바울을 재판한 사람입니다.

 

재미난 것은 <헤롯으로 불리는 다섯 왕 모두> 기독교를 박해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기독교인들은 ‘헤롯’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섬뜩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본문으로 가 보십시다. 1절에 “그 때에 헤롯 왕이”라고 했을 때, 그가 <헤롯 아그립바 1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로마사람한테 잘 보이고, 유대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히브리파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수긍하면서도, 속에는 무엇인가 모르게 꿈틀꿈틀 하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한 도전적인 질문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왜!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하도록 했습니까?”

“야고보 사도가 무슨 죄가 있어서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까?”

“도대체 왜?”

<요즈음 우리교회에서 독서대회를 하고 있는데, 엔도 슈사쿠 저 <침묵>이란 책을 읽어 보신 분은, 왜 일본선교를 위해 헌신하던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당하고, 그 많은 성도들이 순교 당했을까? 그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고 왜 침묵하고 계셨을까? 라는 질문을 저자가 하는 것을 보고, 함께 공감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 왜! .................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왜! <야고보사도는 순교하도록 내 버려두시고? / 베드로사도는 순교직전에 감옥에서 구출해 내셨는가? 하는 의문도 생길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나름대로 깊이 생각을 한다고 말하고,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중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날씨는 맑은 것이 좋다. 비가 오는 것은 좋지 않다.

바다가 잔잔한 것이 좋다. 바다에 폭풍이 얼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살아있는 것은 좋다. 죽는 것은 생각해도 끔찍하다.

건강한 것은 좋다. 아픈 것은 좋지 않다.

오래 사는 것은 좋다. 일찍 죽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예를 제가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금년 1월 1일부터 오늘 10월 22일까지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좋으니’ 금년은 물론이요 앞으로 한 50년 정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환경이 좋아질까요? 어림없는 소리이지요. 앞으로 50년간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사막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로 좋겠다는 것만 연장되면, 오히려 삶의 환경은 더 피폐해 질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악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깊이 생각하다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속에 있구나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모든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①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었고 – ② 가정적으로도

③ 교회도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 ④ 국가적으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움직였기에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사를 내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를 통해 <야고보 사도>를 순교하게 하도록 하신 것도, 헤롯에 의해서 움직여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인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 사도 중에 첫 번째 순교자 <야고보 사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 보십시다.

야고보사도는 예수님이 열두제자 가운데 특별히 사랑했던 세 제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형될 때, 이 세 제자와 함께 했습니다. 그 정도로 야고보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살펴보면 야곱에게 특별한 사명에 관해 말씀을 하신 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대부분 놓쳐버립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합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 야고보와 요한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이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마 20:23)라고 하시며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예비하셨는데 그들이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마시려는 잔>은 = 십자가를 말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는 말에서 잔은? 포도주 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의 순교의 잔>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 <야고보의 순교>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묘한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또, 제가 지난주일 설교하면서, 안디옥교회에 사도들이 직접 가지 않고, 평신도 바나바를 파송하는 것을 보면서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직도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려고 가지 않으려는 그들을 정신 차리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헤롯의 손을 통해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하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야고보의 순교사건으로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흩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열 두 제자】란 책에 보면 <사도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함으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순교의 피로 인해서 이 땅의 교회는 물론, 천국에 지어진 새 예루살렘 성곽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계 21: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살아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해 우리는 안타깝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순교의 피로인해 이 땅의 교회가 세워졌음은 물론이고, 천국에 새워진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머릿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 야고보를 <하나님의 경륜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가면 지금 나 자신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주님의 경륜 속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이유는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가려고 성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임을 알고, 성화와 사명을 위해서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초점을 야고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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