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조회 수 29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GgFaeqWUX_s
본문 믿음의 아들 디모데(행16:1-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2-18

사도행전 16:1-5 믿음의 아들 디모데

 

지난주일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를 했지만,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서로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선” 내용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

바울 바나바 마가(중도포기)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바나바의 2차 전도여행》

바나바 마가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도표를 만들어 설명하여 보겠습니다.

자, 한 눈으로 정리가 되시지요.

마가요한의 문제로 바울과 바울은 갈라서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우리는 그렇게 위대한 주의 종에게도 실수가 있었음을 봅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도바울의 판단이 잘못되었고, 바나바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마가요한이 나중에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가요한은 후에 마가복음의 기록자가 되고, 바울에게도 유익한 인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대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기만 하면 유익한 인물이 되는 줄 믿으시고 사람을 세워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였던 전도 팀이 둘이 되었습니다.(지도 참조)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 구브로로 갔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2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 교인이었고,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의 할례 문제로 결의하고 그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 안디옥교회로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울과 동행한 것입니다.

2차 선교여행의 방향을 바나바가 자신의 고향 구브로를 선택했듯,

바울도 자신의 고향이 있는 다소로 잡았습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 15:39-41에 말씀합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점 하나를 해결하게 됩니다.

<성경이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입니다. 왜 바나바도 마가요한과 함께 구브로로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바나바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교회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떠난 인상이 짙은 반면, 바울은 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39절 중반부터 40절을 다시 보세요.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나” 차이를 발견하겠습니까? 바나바는 개인적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났습니다.

 

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난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남기신 최고의 조직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역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이름으로 구제하고, 선교하고, 선한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내가 아무리 선교하고,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하더라도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더 중요하냐하면 교회를 통해서 하는 사역은 한 사람, 한 가정의 사역을 넘어 교회공동체가 함께 하는 사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사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사역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난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집중해 보십시다.

사도바울과 실라는 안디옥교회에서 육로로 자신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갔습니다. 다소에 이르러 예루살렘총회의 결정사항을 전하고는, 다소를 떠나 황소라는 뜻을 지닌 토로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그 산맥 넘어 있는 곳이 <더베>였습니다.

 

더베는 이미 우리가 한 번 살펴본 곳입니다. 1차 전도여행의 종착지이자 반환점이었다고 했습니다. 더베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제자로 만들었던 곳입니다. 1차 전도 여행시 바울은 더베에서 곧장 트로스 산맥을 넘어 자신의 고향 다소로 오지 않고 그동안 전도한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며 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했습니다. 그때 전한 핵심적인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에 도착했습니다.

루스드라 하면 여러분 무슨 생각이 납니까?

최소한 두 가지 사건은 머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입니다. 그래서 신(제우스 헤르메스) 대접을 받을 뻔 했지요.

또 하나는, 돌에 죽도록 맞은 사건입니다. 원정 박해단에 의해서 죽었다고 생각 될 정도로 돌에 맞아 죽음 직전까지 갔고, 죽음직전에서 살아났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루스드라는 다시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실라와 함께 다시 그곳에 왔습니다. 이유는? 1차 선교여행 때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의 신앙을 양육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다시 왔을 때 보석과 같은 신앙의 인물을 만납니다. 그가 바로 오늘 설교 제목에 있는 대로 <디모데>였습니다.

사도바울에 있어서 디모데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대해 표현한 몇 구절 성경만 보셔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17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디모데전서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후서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마치 모세에게 후계자 여호수아와 같습니다.

엘리야에게 후계자 엘리사와 같습니다.

바울에게도 디모데는 보통의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후계자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바울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바울의 삶은 죽음과 삶의 교차지점에 있었기에 늘 개인적인 종말을 염두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어도 그 복음사역을 이어갈 사람을 <디모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귀한 동역자이고 후계자인 설교제목처럼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루스드라에서 만난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이 말씀을 포함하여 성경을 통해 디모데가 어떤 사람? 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1. 디모데(헬라식 이름)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2. 감성적인 사람

디모데후서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디모데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지주도형 남자들은 평생 두 번 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태어날 때와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운다고 하는데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감정이 매 마른 사람보다 눈물이 있는 남자가 더 좋게 보이지 않습니까?

 

3. 심약한 사람(의지가 약한 사람)

디모데전서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고린도전서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디모데가 목사가 되었지만 약한 사람이었구나! 고린도교회에 가면 벌벌 떨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중에도 강대상에 한 번 서 보면 내가 심약한 사람인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몸이 약한 사람

디모데전서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디모데에게는 위장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중에는 이 말씀을 술을 마시는 근거 구절로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인용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으로 말하면 위장병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위장약을 먹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핑계 삼아 술(포도주, 맥주)한 잔 하려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누구 한 사람 실족하게 한다면 평생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5. 전승적 신앙의 사람(모태 신앙)

본문 1절에 보면 디모데 부모를 소개하는데 <아버지는 헬라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라고 합니다. 이 말씀으로 기본으로 하고 몇 구절 더 보십시다.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 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

여기에서 “어려서부터”라는 말은 <젖을 땐 때부터 학령 이전까지 시기>를 말합니다. 최소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성경공부를 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로 통해서 말입니까?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율법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인의 상식으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남자가 이방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이방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방 남자가 이스라엘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이스라엘 아이로 인정합니다. 특별하지요? 종교적으로 모계(母系)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신앙은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절대적이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버지도 물론 미치겠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더 큽니다. 대부분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신앙의 유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의 신앙에 영향을 준 사람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저는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된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신앙생활과 자녀를 향한 신앙교육이 자녀에게 절대적임을 알고 제대로 믿고, 제대로 자녀를 교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의 경우도 보세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아마 디모데가 어렸을 때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유니게)에게 신앙의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는 외할머니(로이스)에게 신앙교육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온 3대 신앙인 모두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루스드라에서 전도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디모데의 신앙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바울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아마 디모데가 있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스데반의 죽음이 바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바울이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 나가는 모습이 디모데에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가능한 추측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디모데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6. 칭찬 받는 사람

2절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루스드라에 들렸을 때 디모데는 이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성도들에게 <칭찬 받는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은 직선거리로 33km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도시에 있는 성도들이 디모데를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집사의 선택기준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만, 지도자의 자격 중에 꼭 들어가는 것이 <칭찬 받는 사람(행6:3)>이었습니다.

여러분 칭찬 받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고향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루스드라는 물론이요 이고니온에 있는 교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내가 신앙인으로>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성도들에게, 나아가 지역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신앙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받는 성도가 되도록 평소에 자기 신앙 관리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종의 심성을 가진 사람(섬김의 자세가 분명한 사람)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참하여 바울이 하는 말에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같이 가자고 하면 갔고, 어느 곳에 머물러 있으라 하면 머물러 있었고, 편지를 주고 전달하라고 하면 전달했습니다. 일체 <아니요>라든가? 반문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디모데가 뒷바라지를 해 줍니다.

 

정리해 보십시다. 사도바울의 후계자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가?>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2. 감성적인 사람

3. 심약한 사람(의지가 약한 사람)

4. 몸이 약한 사람

5. 전승적 신앙의 사람(모태 신앙)

6. 칭찬 받는 사람

7. 종의 심성을 가진 사람(섬김의 자세가 분명한 사람)

 

여러분? 왜 디모데가 바울의 후계자가 되어 큰일을 하게 되고, 후에 에베소교회 목회자로서 그렇게 쓰임 받은 이유를 알게 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신앙생활 이왕 하시는 것, 그냥 저냥 대충 대충하지 마시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어지는 3절 말씀을 보십시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앎이러라”

이 구절에서 여러분은 조금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이유는? 할례 문제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종결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을 때,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제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멍에를 지우지 말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도여행에 동참하기 전에 할례를 행합니다.

디모데가 받은 할례는 구원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중인격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답은 3절에 이미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즉 유대인을 전도하는데 할례 받지 못한 자가 전도하면 걸림돌이 되니, 유대인을 전도하기 위해 일부로 할례를 시킨 것입니다. 조금 고급스럽게 말하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 전도의 문을 넓히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항상 나보다 믿음 없는 자를 배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바울, 실라, 디모데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해 가자 나타난 결과를 4-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바울이 여러 성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 한 결과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여 갔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행전의 교회의 한 특징을 보게 됩니다.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5절)

교회는 이러해야 합니다. 계속 전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성장이 멈춘 이유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계속 전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로서, 10년 전이나 지금 같은 모습이면 안 됩니다. 우리 각자는 주님 만날 때까지 계속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성장을 위해서 몸부림 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장을 위해 함께 몸부림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을 성령님이 도와주실 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57 복음이 유럽으로 넘어가다(행 16:11-18) 2018.03.04 207
656 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16:6-10) 2018.02.25 207
» 믿음의 아들 디모데(행16:1-5) 2018.02.20 293
654 신자의 갈등(행15:22-41) 2018.02.13 270
653 교회의 위기: 믿음이냐 행위냐? (행 15:1-21) 2018.02.06 233
65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행 14:19-28) 2018.01.30 365
651 그 능력의 비밀(행 14:8-18) 2018.01.21 325
650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행 14:1-7) 2018.01.15 317
649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 (창 12:3, 마 9:35) 2018.01.09 231
648 감사로 마무리하는 한 해 (시편 103:1-5) 2018.01.01 193
647 아브라함의 성탄(창 18:1-15) 2017.12.26 175
646 바울의 설교에 대한 반응과 결과(행 13:42-52) 2017.12.26 367
645 선교사 바울의 전도설교(행 13:13-41) 2017.12.10 454
644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 파송(행 13:4-12) 2017.12.05 336
643 안디옥교회 임직식(행13:1-13) 2017.11.26 516
642 감사하며 성전에 올라가자 (시132:13-18) 2017.11.20 217
641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들(고린도후서5:17) 2017.11.12 380
640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행12:11-25) 2017.11.05 338
639 '나부터'의 선언(수 24:14-18) 2017.10.30 383
638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사람들(행12:1-10) 2017.10.24 33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8길 26
대표전화 053)764-3927
Copyright(c)2016 정동교회 All right reserved. Designed by (주)스데반정보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8길 26
대표전화 053)764-3927
Copyright(c)2016 정동교회 All right reserved.
Designed by (주)스데반정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