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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VvL9icDn1rU
본문 빌립보에서 거둔 세 가지 열매 (행 16:19-4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3-11

사도행전 16:19-40 빌립보에서 거둔 세 가지 열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세 가지 큰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지난주일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루디아와 그의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친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오늘 생각하겠습니다.

 

19-21절을 보십시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귀신 들린 여종>을 통해서 돈을 벌었던 주인들이, 여인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고침 받자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게 됩니다.

고발 이유는 19절에 있는 대로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사람의 관심은 돈에 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도 그러했습니다. 점치면서 돈을 짭짤하게 벌어오던 여종이 이제 귀신이 나가 점칠 수 없게 되자, 여종을 고쳐준 바울과 실라를 고발한 것입니다.

 

고발한 내용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은 쏙 빼고, 대신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다 / 빌립보 성을 요란하게 한다. / 우리들에게 이상한 풍속을 전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말합니다.

 

여종의 주인의 고발 내용을 들은 다음 일어난 일에 대하여

22-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여주인의 고발을 듣자, 빌립보 장터(아고라-토론하는 광장, 넓은 공터)에 나와 있던 무리들이 합세합니다. 군중심리가 발동된 것입니다. 아마 ‘바울 죽여라. 실라 죽여라’고 했겠지요. 그러자 군중들의 움직임에 놀란 상관들이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옷을 찢어 벗기라 / 매로 치라>

아마 사도바울과 실라는 이때에도 39대의 태형을 맞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후11:24)고 했는데 그 중 한 번은 빌립보가 해당될 것입니다.

39대의 태형 // 우리는 쉽게 생각하지만 그 고통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매로 때린 후에, 바울은 깊은 감옥에 넣습니다.

<그림 자료 1. 바울이 갇힌 빌립보 감옥>

 

사진은 지금 빌립보에 남아 있는 바울의 감옥입니다.

이런 곳에 바울과 실라가 갇힙니다. 그것도 자유의 몸으로 갇힌 것이 아니라

24절 하반절에 있는 대로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워” 가두었습니다.

<그림 자료 2. 차꼬에 채여 감옥에 있는 바울과 실라>

 

여러분이 보는 것은 이 그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실제로는 널빤지에 뚫은 다섯 개의 구멍에 <목> <두 팔목> <두 발목>이 끼워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로 감옥에 있게 했다고 봅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여종의 주인들이 고발할 때, 상관들이 옷을 벗기고 매로 치라고 할 때, 실제로 39대의 매를 맞을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을 때, 왜 때리느냐?, 좀 알아보고 때려라, 예기 좀 해보자, 재판장을 만나자, 빌립보 시장을 만나자 하고 따질만한데 그냥 매를 맞습니다.

재판도 받지 않고 맞는대도 한 마디의 변명도 없습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피력 하려고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온유함과 겸손한 가운데 매를 맞습니다.

 

베드로전서 2:19 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참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대제사장이 고발하고, 총독 빌라도가 사형언도를 내렸습니다. 39대의 태형을 맞으셨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실 때까지 예수님은 아무런 항변을 하지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부당하게 오는 고통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하다보면,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분들은 그 원인을 찾아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려고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처신은 오늘 본문의 바울과 실라처럼 예수님을 위한 고난이라면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결과는 아름답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럼 피투성이가 된 채 <목>과 <두 팔목>, 그리고 <두 발목>이 널빤지에 끼워져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신라에게로 가 보십시다. 그 상태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한 밤 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바울과 실라는 39대를 매를 맞고 나서 차꼬에 차여 감옥 안으로 들어온 순간 의식을 잃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밥을 주었겠습니까? 저녁도 먹지 못했겠지요. 감옥 안은 냉랭한 기운으로 음산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체력이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한 밤중>이었던 것입니다.

의식을 회복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인의 찬양은 우리가 가진 찬송가와 같지 않고 시편을 읊조리는 것이 찬양이었으니 시편을 가지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바울과 신라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손해를 보았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배신을 당했을 때, 너무나 충격이 커서 제정신이 아니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절망의 환경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한 사람 예를 들면, 욥이 들 수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으로 많았던 재산 다 잃고, 열 명의 자녀를 한 순간 잃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마 미쳐버렸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형편에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 1:21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손양원목사님도 그런 분입니다.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 손동인, 손동신이를 잃고, 장례식을 치르며

-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삼남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9가지 감사로 답사를 합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님이 쓰신 책에 보니 일본에도 바울과 실라처럼 절망의 시간에 기도하고 찬양한 한 여인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 여인은 일본의 가난한 목사의 아내였던 <하라자끼 모모꼬 여사>로 44세에 세상을 떠난 부인입니다.

그녀는 악성 폐암의 선고를 받았지만, 남편은 나중에야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남편을 통해 자신이 악성 폐암으로 얼마 살지 못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노트 두 권을 사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녀는 그날부터 시작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생명이 붙어있는 44일 동안, 죽기 이틀 전까지 글을 썼습니다. 사실은 죽기 하루 전날도 자기 남편에게 구술로 일기를 부탁해서 썼습니다.

 

남편에게 악성 폐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그날 일기입니다.
“내 마음은 주께 경배하며, 내 영혼은 내 구원이 되신 하나님을 기뻐하노라.

오늘이라는 날, 1978년 6월 28일을 나는 분명히 적어 놓아야 하겠다.

오늘은 내 길지 않는 생애에 있어서 획기적인 날이 되었다.

나의 생애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삶이다 ....”

7월 30일은 주일이었는데, 그녀는 교회를 갈 수 없을 만큼 기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녀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성도들과 그 광경을 생각하며 병상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남겼습니다.

“내 신음이여, 내 찬미의 노래가 되어라.

내 괴로운 숨결이여, 내 신앙의 고백이 되어라.

내 눈물이여, 내 노래가 되어라.

주님을 찬양하는 내 노래가 되어라.

내 병든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숨결이여,

호흡의 곤란이여, 기침이여,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열이여, 땀이여, 내 숨결이여, 최후까지 내 구원의 주를 찬송하라.”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이 임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한 분들이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삶의 최악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을 “죄수들이 듣더라”(25절)고 합니다. 여기에서 “듣더라”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주목하여 경청하다”라는 뜻입니다.

건성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집중하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을 죄수들만 <주목하여 경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주목하고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기 시작하셨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도행전 12장에서 이와 비슷한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야고보사도의 순교 이후 베드로도 죽이고자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날 밤 천사를 감옥으로 보냅니다. 천사가 자고 있는 베드로를 깨우자, 베드로의 손에 매였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렸습니다. 천사를 따라 나오자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거기에서 요즈음 자동문(오토매틱 도어)을 발명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빌립보 감옥에는 천사 대신, <지진>을 일으킴으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이 나게 했습니다. 지진이 나자 옥터가 움직였습니다. 감옥 문도 열렸습니다. 죄수들을 매어놓은 차꼬도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역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죄수를 지키고 있던 간수>입니다.

간수는 피투성이 된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송을 하자 “특별한 사람이네” 하며 그 소리를 듣다가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감옥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주지진, 포항지진으로 — 우리는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흔들림의 느낌이 어떤지? 겪어보았기에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잠에서 깬 간수는, 옥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순간, 아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갔구나! 판단하고 –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죄수가 탈옥하면 그 대신 간수가 그 죄수를 대신해 책임을 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도망갔으면 죽음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결하려는 간수를 향해 바울은 큰 소리를 지르며 막았습니다.

우리가 다 여기 다 있으니 –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정신을 차린 간수는 등불을 들고 감옥을 살펴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 가운데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경건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온 후에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리까?(30절)

간수의 질문에 바울은 답변을 해 줍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사용하는 유명한 말, 전도지에 인쇄되어 있는 유명한 말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

 

본문의 흐름을 통해서 보면 이 말씀의 의미는 이런 뜻을 것입니다.

<네가 지금까지는 간수로 로마 황제를 섬겨왔다. 세속적으로 로마 황제를 향하여 충성을 다하고 있지마는, 이제 생각을 바꾸라, 이제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그를 왕으로 영접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우상을 섬겼고, 돈을 섬겼고, 명예를 섬겼고, 세상 권세를 섬겼지만, 이제 네 양심 깊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라 – 이것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만 충성을 맹세해라. 주 예수, 왕이신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하면서 이어서 복음도 간수와 간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합니다.

 

간수는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들 영접합니다.

영접한 후 –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줍니다.

그리고 간수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34절에) 루디아가 바울 일행에게 자기 집을 제공한 것처럼

간수의 집으로 모셔가 <음식을 대접하고> 바울과 실라에게 <기쁨>을 선물로 줍니다. 선교사에게 기쁨은 선교의 열매이지요, 간수의 가정이 구원받은 것이 바울에게는 그 자체가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니, 하룻밤 사이에 그것도 절망의 밤에,

간수의 가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밤이 지나고 새 날이 왔습니다. 아마 밤에 지진으로 인해서 놀란 상관들이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부하를 보내어서 간수에게 <바울과 실라>를 석방한다는 명령을 내립니다.

밤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평안히 가십시오. 석방 되었습니다”라고 하자, 그때서야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힙니다.

애매하게 맞을 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다가,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싶을 때 자신이 그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로마시민권자 임을 밝힙니다.
<로마시민권>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바울이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힌 이유를 3가지 정도 생각해 보면

1) 간수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2) 행정관을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

3) 빌립보교회를 그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든든히 서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이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혀지자. 사도바울을 때리라고 한 상관들이 직접 와서 공식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성을 떠나달라는 부탁을 받고 빌립보를 떠납니다.

빌립보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 사역을 4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40절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 하고 가니라”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교회라고 했지요, 교회에 들려서 성도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서 있으라고 권고하였다는 말입니다.

 

자 정리해 보십시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3가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① 루디아 가정 구원 ② 귀신들인 여종 고침 ③ 빌립보 감옥의 간수 가정 구원

 

이 세 사람은 세상 적으로 대단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로 통해서 빌립보교회를 세워갑니다.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교회가 됩니다.

간수의 집이 빌립보교회가 됩니다.

강가 기도처가 빌립보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3개의 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이 빌립보교회에서 후에 바울을 위해서 선교비를 보내주고,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있을 때에도 선교비를 보내주게 됩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빌립보에 있었던, 루디아 가정, 간수의 가정>처럼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 우리 정동교회가 든든히 서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과 가정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놀라운 흔적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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