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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pGGI-GU9TMg
본문 사무엘상 1:1-3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5-06

사무엘상 1:1-3  한나와 엘리, 누구의 자녀입니까?

 

오늘은 어린이주일이고, 다음주일은 어버이주일입니다. 그리고 5월 셋째주일은 기독교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3주 동안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멈추고 그 주일에 해당되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한나와 엘리, 누구의 자녀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무엘상 1장부터 4장까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알려고 하면 사무엘상 16장 13절, 사무엘의 은퇴이야기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편리상 사무엘을 시작하는 세절을 본문으로 선택해서

(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어떤 신앙인이었는지?

(2)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 엘리는 어떤 신앙인이었는지?

(3) 사무엘과,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떤 인물로 성장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도님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한나와 엘리 중에 어떤 부모 쪽에 해당되는지?> <나는 사무엘과 홉니와 비느하스 중에 어떤 자녀에 해당되는지?> 생각하고 답하면서 말씀을 경청해주셨으면 합니다.

 

1. 한나와 엘리의 <기도생활>을 살펴보십시다.

(1)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나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낳은 아들 <사무엘>의 이름의 뜻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 ... 히브리어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무야 .. 엘>입니다.

세무아 ☞ 쉐마 (듣다)는 말이고, 엘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 기도하니–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이름은 <①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②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사무엘을 얻기 위해 어떤 자세로 기두했는가? 입니다. 한나의 기도자세는 한 마디로 <미친 듯이>입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실까요? <하나는 미친 듯이 기도했다>

사무엘서의 시작은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았던 엘가나와 그의 두 부인 <한나와 브닌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언뜻 보면 에브라임지파처럼 보이지만, 레위지파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남편 한 사람에 두 부인을 두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결혼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나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환경에서 한나는 기도의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한나의 기도가 어떠했는가? 알려면 이 두 절 말씀만 보면 됩니다. 그는 아들을 얻기 위해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저 십분, 이십분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절망의 환경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2:6-8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한나가 고백한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며 / 스올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며 /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 가난한 자를 영광의 자리에 올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나가 고백한 하나님이 우리들도 똑 같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하나님은 쉽게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들을 달라고 오랜 시간동안 미친 듯이 기도했고, 결국은 그 기도가 응답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 구하니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무엘”로 지었던 것입니다.

 

(2) 반면, 엘리제사장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여호와는 존귀하시다”는 뜻을 가진 멋진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엘리의 가계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역사가 요세푸스는 엘리를 <아론의 자손 중 이다말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엘리의 직분은 <사사 및 대제사장>이었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다고 말합니다.

 

엘리가 사사요 대제사장의 직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엘리가 기도했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자신이 기도하지 않으니 지금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한나,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술 취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자신이 기도하지 않으니.... 사무엘상 3장에 가면 엘리의 육신의 눈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영적인 눈도> 함께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엘리를 포기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무엘에게 음성을 들려줍니다.

 

저는 사무엘상 3장에 나오는 영적인 눈이 어두운 상태임에도 <실로 성소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제사장을 보면서 섬뜩한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목사도, 하나님의 음성이 듣지 못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적용) 자, 이렇게 한나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엘리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한나와 엘리 중에 어떤 부모의 유형입니까?

저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부모님만 생각하면 감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기도하시는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시골교회에 가끔 가면 아버지, 어머니가 기도했던 자리를 가 봅니다.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셨던 아버지, 한나처럼 입술만 움직이면서 조용히 기도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한나와 엘리 중> 어떤 유형이었고,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유형입니까?

 

2. 한나와 엘리가 <귀중히 여긴 것>을 비교해보십시다.

(1) 한나는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귀중히 여겼습니다.

여러분, 한나에게 사무엘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나실 인으로 바칩니다.

보통 사람은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처럼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실 인으로 드린다고 약속은 했지만, 아들을 얻고 보니 너무 귀하여서 <하나님 죄송합니다.>하면서 드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을 땔 때까지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젖을 땔 때까지의 기간은 중요합니다. 유대인은 세 살 혹은 네 살까지 젖을 먹여 키웠는데, 이 기간 동안 어머니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낭송해 주면서 신앙 교육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젖을 먹으면서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젖을 땔 때까지 사무엘을 교육시킨 후, 젖을 떼자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실로 성소>에 올려 보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합니다. 사무엘보다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이 더 존귀하신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00세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은 지 25년이 지나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보기만 해도 흐뭇했을 것이고, 같이 길을 가도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시험하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번제로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은 아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순종합니다.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올라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브라함도, 한나도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귀중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마태복음 10:37 말씀에 합격한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로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7)

 

(2) 반면, 엘리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엘리와 한나의 첫 번째 비교한 것이, 한나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엘리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엘리가 기도하지 않으니 영적인 식별력이 약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아들에 대한 통제력도 약해져서 아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의 직분을 3절 하반절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엘리가 대제사장이었기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연적 실로 성소에서 제사장의 일을 했습니다. 문제는 제사장인 그들이 하는 짓이 하나님께 바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한 것을 두 가지 지적합니다.

첫째는, 제사를 드린 후 여호와께 드려야 할 고기의 몫을 미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요구에 제사를 드리는 자가 기름을 태우고 난 뒤에 주겠다고 했지만, 강제 로 빼앗아 원하는 부위를 빼앗아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합니다.(삼상 2:13-16)

둘째는, 제사장인 그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범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에 대한 평가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여러분! 자식이 나쁜 짓을 하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옛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다리몽둥이가 부러지도록 때려서라도 바르게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어떻게 교육했는지 아십니까? 한 번 들어보세요.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한 후 엘리가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삼상 2:23-2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엘리는 지금 아들이 이런 짓을 하는 대도 아들을 걱정보다 소문걱정, 체면 걱정을 먼저 합니다.

 

엘리는 왜? 아들들의 악행을 제어하지 못하고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삼상 2:29 “....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제물을 탈취해도,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는데도 아버지가 한다는 소리가 “내 아들아 그리하지 말라.....” 정도였습니다.

 

(적용)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존중히 여기는 한나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긴 엘리, 두 유형 중에 여러분은 어떤 부모의 유형입니까?

 

오늘 한국교회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 <자식>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고 있으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지만 자식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하나님과 거리가 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하나님보다 귀해서 자식에게 신앙적인 충고한마디 따끔하게 못한다면, 우리 역시 엘리와 같은 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이라면 자식을 자랑할 때, 자식의 신앙적인 면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자랑은 이 세상에서 끝이 납니다. 주님 없는 삶은 그 결국이 심판이요, 지옥일 뿐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7남매 중 막내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7남매가 크게 성공했다고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신앙적으로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4형제가 위로 둘은 장로로 아래로 둘은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누님 두 분은 권사로, 매형은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저희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저희를 반듯하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한나와, 엘리 중에 어떤 유형으로 자녀를 양육하십니까?

 

3. 한나의 아들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십시다.

(1) 사무엘 먼저 생각해 보십시다.

사무엘은 젖을 땐 후부터 실로 성소에서 생활합니다.

어린 시절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신 것처럼(눅 2:52), 사무엘의 어린 시절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많은 사람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26에 보면 “이에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장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 / 선지자 / 제사장>으로 세 가지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신정정치에서 → 왕정정치로 옮겨지는 가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사무엘선지자가 한 가장 유명한 말씀 중 하나를 꼽는다면 사무엘상 15:22 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사무엘의 선언>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일평생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그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평가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좇아 내보내라”(렘 15:1)

시편기자의 평가 -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시 99:6)

이 말씀들을 보면, 사무엘에 대한 평가를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와 견 줄만 한 인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무엘은 이스라엘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적인 눈이 멀고,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삶을 산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끝이 납니다.(삼상 4장 참조)

블레셋과 전투에서 법궤를 빼앗깁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합니다.

98세였던 엘리는 법궤를 빼앗겼고, 두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의자가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려져 죽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해서 해산할 때가 가까웠는데, 법궤를 빼앗겼고, 시숙과 남편이 전사했고,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배가 아파왔습니다. 결국 아이를 아들을 하나 낳고 해산하다가 죽었습니다. 아이를 받던 여인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 영광이 없음>이라고 지어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엘리의 집안에 머물지 않고 떠가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한나와 엘리 중 어떤 유형의 부모입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사무엘과 홉니와 비느하스 중 어떤 유형입니까?

여러분, 사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누가 자식의 신앙교육을 놓고 큰 소리 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나처럼 자식을 갖기 위해서도 기도하고, 자식이 젖을 땐 후에는 하나님께 맡기며, 자식이 아무리 귀해도 하나님이 자식보다 더 귀함을 알고 신앙으로 양육해서 우리 모든 성도님의 가정이 <한나와 사무엘>로 이어지는 신앙의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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