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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z5O0iA91pZI
본문 사도행전 18:12-23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5-27

사도행전 18:12-23  지도자 바울의 진면목

 

  4주 만에 다시 사도행전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1-11절 말씀으로 <전도 여행의 꽃을 피운 고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요약해드리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낮아짐>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아진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였습니다.
  목회자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완전히 침체된 바울을 위해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미리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이 부부는 고린도에서, 에베소에서, 로마에서도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철저히 헌신하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도 복이 많은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도 지금까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분이 많았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여러 가정에서 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시는데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늘 힘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실라와 디모데>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형편을 알아보라고 한 디모데는 –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훌륭한 신앙의 모습을 보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로 선교 헌금 때문에 보낸 실라는 – 성도들의 정성어린 선교헌금을 들고 왔습니다. 두 동역자의 보고를 듣고 바울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선물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바울이 힘들고 지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밤중에 환상 가운데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9-10절에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

바울은 이 세 가지 선물을 받고 1년 6개월 고린도에 머물면서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이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이렇게 전도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다는 말씀으로 고린도전도이야기가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고린도에서도 어김없이 핍박의 세력이 등장합니다. 

6절에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하는 말씀이 나왔는데
오늘 본문 박해의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12-13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고린도에서 공식적인 박해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 있었다고 합니다. 갈리오는 주후 51년 7월 1일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한지 8, 9개월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나라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있습니다만, 선거철만 대면 후보자들이 선거공략을 합니다. 내가 대구시장이 되면 이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수성구청장이 되면 이렇게 해 드리겠습니다하면서, 자신의 선거구를 방문해서 지역민심을 살피고 어떻게든 한 표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당선이 되면 지역의 현황을  해결하려고 민원사항을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마찬가지로 <갈리오 총독>도 부임하여 지역민심을 더 듣고 싶어 했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못된 유대인들은 이 점을 노리고 바울을 고발한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을 권하고 있는데 / 이 사람   을 처리 좀 해 주십시오.”(13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갈리오 총독은 유대인들의 계략에 말리지 않았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갈리오는 대단한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고,
형은 당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인 세네카로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습니다.
양 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수사학의 대가였습니다.
이런 집안에 태어나고, 공부하고 성장해 지금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을 했기에 그는 <정치적 문제인지, 아니면 각 지방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종교적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갈리오는 – 유대인이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을 듣고 판단을 내립니다.
15절 말씀대로 이것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고 결론내립니다.
이런 단어는 행정관이 채택하거나 인용할 수 없는 아주 격이 높은 학자들의 용어였습니다. 일개 지방 총독이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갈리오는 뛰어난 학문의 배경을 가졌기에 그런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언어(로고스) 말씀 <예수님>, 명칭(오노마), 법(노모스) 즉 율법> 문제라는 것입니다. 갈리오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너희들은 신앙이야기, 종교이야기로 찾아왔는데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법정에서 쫓아 내버립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새로운 총독이 부임해서 그들의 눈에 가시같이 보였던 바울을 고발했는데 새로운 총독이 그것은 자신이 거론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무시하였고 법정에서 쫓겨났으니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습니까?
그러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 한다는 말”처럼 바울 대신 바울을 변호하려고 법정에 와 있던 “회당장 소스데네”(17절)를 법정 앞에서 때립니다.
자, 정리해 보십시다.
바울이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선물을 받고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는데, 박해 역시 만만찮게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비방했습니다.(6절)
<8-9개월 지났을 때>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자 공식적으로 소송을
                     걸어 박해했습니다.(14-16)
이렇게 고린도 선교도 쉽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바울은 계속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8절 상반절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전도했으니, 갈리오총독 부임 후에도 9-10개월을 더 전도했다고 봅니다.

이 면에서 <지도자 바울의 진면목> 하나를 발견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두려울 때, 양들을 두고 사역을 접고 훌쩍 떠나버린다든지, 그 상황을 피하거나 그대로 주저 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이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도 생깁니다. 괴로운 일도 생깁니다. 그때 가벼운 사람들은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참 지도자는 그런 경우에 떠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것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장신대에서 목회학을 가르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교회에 부임하여 100년 이상 된 목사님은 무조건 존경해라”
제가 목회를 해 보니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10년 쯤 목회를 하면 그 교회의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겪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0년 정도 목회했다는 말은 그 목사님의 <성품도 좋고, 인내심도 있고, 교인들에게 인정도 받았기에> 그런 것이니 무조건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구에 있는 교회 정서를 보면 몇 개 교회에서 20년 동안 훌륭하게 사역하고, 교회 부흥시키기 위해 애쓴 목사님을 이런 저런 이유로 사임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풍조입니다.

항존직도 그렇습니다. 항존 직분도 감당하다보면 빨리 손 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을 것입니다. 교회가 내 뜻을 따라 주지 않으면 교회를 옮기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바울처럼 하나님이 머물라고 할 때까지 한 자리에서 머물며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항존직과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고 고린도를 떠난 바울의 특별한 행동 하나를 살펴보십시다.
18절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진자료, 겐그레아 사진>   
이곳이 겐그레아 해변입니다. 고린도 운하가 생기면서 대부분 과거 겐그레아는 물에 잠겼습니다. 지금 성지순례를 가면 이 정도가 바울이 머리를 깎은 장소일 것이라고 해 놓은 표지판만 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겐그레아>에서 바울이 머리를 깎았는데 <일찍이 서원이 있었기 때문(18절)> 이라고 말합니다.
서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구약성경 민수기 6장으로 가서 봐야 합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 중에 서약할 일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 약속을 하고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면 지켜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나실 인의 법>이라고 합니다.
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② 부정한 것(시체)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③ 서약 기간 동안 머리에 삭도(머리털을 깎는 데 쓰는 칼)를 대서는 안 됩니다.

이 서원규례를 알고 있는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했고, 이제 서원의 기간이 끝났다는 의미로 머리를 깎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고린도에서 어떤 서원을 했을까요?
성경에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정은 해 볼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울을 비방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책임이 너희들에게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옷의 먼지를 털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죄 값은 너희들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제부터 나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온 것입니다.

만약 이 서원대로라면, 바울은 다른 도시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 서원이 끝났다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도착한 에베소에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럼 다음 말씀을 보십시다.
19-22절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이 말씀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로를 참고하시면서 보시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도행전 15:36절부터 진행된 바울의 2차 전도여행경로를 한 눈에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중간 중간 지도로 보여주었기에 이해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만 생각하면, 바울은 에베소에 들려 잠시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에베소를 떠나 약 800Km를 항해하여 유대의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성경은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바울은 명절을 지키는 동시에 그동안 있었던 <선교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내려와 선교여행의 출발지였던 안디옥으로 돌아옵니다. 이로서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이 마무리됩니다.

여러분은 22절-23절 사이에 줄을 하나치시고
<2차 전도여행 마침 / 3차 전도여행 시작>이라고 적어 놓으십시오.
단락을 나눠놓지 않았지만, 22, 23절 사이에는 2차 선교여행 끝과, 3차 선교여행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3차 전도여행의 문을 여는 23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3차 전도여행은 그동안 선교한 지역을 돌아보며 제자를 굳건하게 하는 <양육여행>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는 이 장면에서  참으로 훌륭하다 싶은 것이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째 <바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 <지도자 바울의 진면목>을 여기에서 하나 더 발견합니다. 그것은 지치지 않고 사역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바울은 약 3년 동안, 4,500-5,600km 를 다니며 전도하고 돌아왔습니다.
5월 첫 주간 우리교회 5명이 인도네시아 월요일 갔다가 토요일 돌아와도 며칠 동안은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떠했을까요? 좀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런 표정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복음을 전한 양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다시 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싶은 열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목사의 마음, 항존직의 마음, 구역장의 마음이 이런 바울을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을 생각하면서 그 양을 어떻게든 풍성한 꼴로 인도하고 싶어서 자기의 쉼은 생각하지 않는 그런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안디옥교회>입니다.
여러분 안디옥교회의 원래 담임목사가 누구였습니까? 바나바였습니다. 부목사가 바울이었습니다. 보통 교회 같으면 담임목사, 부목사를 선교사로 보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담임목사, 부목사가 우리를 돌보지 않고 교회를 비울 수 있어 이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내일부터 중국에 또 갑니다만, 지난번 인도네시아에 가서 다른 교회 장로님에게 저는 두 주 지나면 또 중국에 성전봉헌을 하려고 갑니다. 했더니 그 장로님이 “교회를 그렇게 자주 비워서 되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을 그 장로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머리 속에 저 교회는 목회하기가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담임목사가 상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해서는 때로 자리를 비우고 국내든, 해외든 사역하려고 가고, 교회는 마땅히 보내줘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더 널리 확장되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담임목사 부목사가 나가서 선교했습니다. 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잠시 뒤고 다시 선교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선교여행을 가는 그들에게 안디옥교회는 넉넉한 선교비까지 지원해서 보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도 바울 같은 열정으로 가진 지도자가 있고, 우리교회도 안디옥교회처럼 선교라면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를 통해 복음이 대구뿐만 아니라 세계로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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