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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Z1N_8LRotd0
본문 사도행전 18:24-19:7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6-03

사도행전 18:24-19:7  세 가지 모델의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의 고향은 한국도 아니고, 선교지도 고향이 아닙니다. 선교사님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그렇게 고백합니다.

선교지에 있으면 한국에 오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안식년이나 업무차 한국에 오게 되면 선교지로 빨리 가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약 3년 동안 4,500-5,600km의 거리를 다리면서 그렇게 힘든 2차 선교여행을 하고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짧게는 4, 5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안디옥에 머물다가 다시 선교의 길을 떠납니다.

 

그 내용이 지난 주일에 생각한 23절에 나옵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지금 터기 북부지방을 돌아서 터기 남부지방 에베소로 내려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사역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 에베소에서 살고 있었던 <세 가지 모델의 그리스도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 학습교인

② 미완성교인 혹은 불완전교인

③ 성령 받은 교인

 

자, 그럼 이 세 가지 모델을 하나씩 생각해 보십시다.

1. 학습교인.

학습교인 예는 18:24-28절에 나오는 <아볼로>입니다.

24-26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 말씀에서 소개하는 아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십시다.

① 알렉산드리아 출신 헬라파 유대인

2천 년 전 당시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는 로마였고, 두 번째가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 인구가 100만 명이었다고 하니 상상이 가시지요? 대단한 도시입니다.

알렉산드리아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였기 때문입니다. 그 헬라어 성경을 우리는 70인 역이라고 합니다. 아볼로가 이곳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② 언변이 좋았습니다.

언변이 좋다는 ‘로고이아’는 <설득력이 있고 조직적이며 달변가>라는 말입니다.

③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④ 주의‘도’를 배웠습니다. - 여기에서 “도”를 배웠다는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사용했던 독특한 용어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⑤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볼로는 참 멋있는 사람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교만해질까 염려하여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재능을 잘 주지 않습니다. 말을 잘 하면 머리가 좀 모자라고, 머리가 좋으면 말이 조금 서툴러서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도 자신은 지식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말에는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0: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고린도후서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며 지식에는 자신 있으나, 말은 잘 못한다고 인정했습니다.

 

아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식도 최고였고, 언변도 최고였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에베소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설교도 유창하게 잘 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설교를 듣는 회중 가운데 바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도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오자, 그들도 함께 와서 에베소에서 텐트를 만들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시 에베소로 오면 바울의 사역을 도울 준비를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 부부가 아볼로가 하는 설교를 듣는데 ......... “뭔가 부족한데! 5%, 10%, 30%인지 모르지만, 이 설교, 이 가르침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유인즉 설교하는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례요한의 사역의 목적은 예수님이 사역할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세례요한의 뒤를 이어서 예수님이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사역이었습니다. 그 메시아 사역의 완성이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정통해고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정작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알고 믿고 있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입장에서 그 설교는 핵심이 빠진 설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를 정중하게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면서 아볼로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굴라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게 배울 사람이 아닙니다. 학력 수준이 아볼로가 훨씬 높았습니다. 성경과 모든 일에 대하여 대학자였습니다. 반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천막 치는 서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아굴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배웁니다. 이를 통해서 아굴라는 <겸손의 미덕까지> 가진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도 아굴라의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목회를 해 보면 성도 중, 어떤 사람은 배우려고 힘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성도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알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구역장인데 ... 내가 항존직인데.. 심지어는 내가 목사인데 ... 하면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역장, 항존직, 저를 포함한 교역자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지금 하시면서 성경과 신앙, 영성에 대해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교회에서 그동안 <크로스웨이, 신앙양성반, 제자훈련, 사역훈련, 성경심화반>이 열렸고, 현재 <구약성경일독학교>를 하고 있는데 그런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한 번도 공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솔직하십시다. 그리고 겸손하십시다. 자신의 부족함은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우리 모두 아볼로처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리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볼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모른 채 알고 배운 것으로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기에, 항존직이 되었기에 남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볼로>형의 교인이 교회지도자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다행히 아볼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배운 후에 다음 사역지 고린도에 가서 힘차게 사역을 합니다. 그 내용이 27-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2. 미완성교인 혹은 불완전교인

미완성 교인에 대해서는 19장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아 고린도로 갔고,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드디어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어떤 제자들을 만나 한 가지를 질문합니다.

질문 내용을 생각하기 전에 <제자란> 말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 말하는 <제자는 : 12사도들>을 말하고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제자는 : 기독교인을 모두>를 지칭합니다.

그러니 본문에서 바울이 궁금해서 질문한 제자는, 에베소에 있던 기독교인들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으냐?”(2절)

사실 이 질문은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장로님! 성령 받으셨습니까?> <안수집사님 성령 받으셨습니까? / 권사님 성령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저를 보면서 나를 무시한다고, 뭐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바울은 목회자의 직감으로 그들의 신앙상태를 파악하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으냐?”(2절)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2절)

바울이 또 질문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3절)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3절)

 

여러분! 에베소에 있었던 성도들은 <성령이 계심도 왜 몰랐을까요? 요한이 주는 세례 밖에 몰랐을까요?> 이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이 훨씬 지났을 때(성령강림은 주후 30년, 3차 여행은 53년 시작함) 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성령님이 계심을 몰랐습니다.

 

이유는 지도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을 가르친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아볼로였습니다.>

아볼로가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그 이후의 예수님의 사역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아볼로를 통해서 배운 교인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인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은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배웠는가? 어느 교회를 다니는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예수님을 만났고, 지도자가 성령체험을 했고, 지도자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자라야 성도들에게 그대로 알려줄 수 있습니다. 교회역시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인 지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서운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신앙상태에 교인의 수준이 결정되니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주님께 어떤 평가를 받을지 겁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담임목사인 저를 위해 기도할 때 주로 <영력, 지력, 체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3가지로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서있음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성도 중에도 <미완성 교인, 불완전 교인>이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님이 계시는 줄 모릅니다. 이런 교인이 <미완성 교인, 불완전 교인>입니다.

 

3. 성령 받은 교인

바울은 미완성교인들을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도 베풀었습니다. 안수기도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했고, 성령이 임하자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수가 열 두 사람쯤 되었다고 합니다.

 

4-7절을 읽어보십시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바울이 미완성교인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금처럼 삼위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세례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있었던 세례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05년 평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목사님이고, 우리나라 목사님은 없었을 때입니다.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 목사는 1907년에 7명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시절 세례를 받으려면 세례 문답을 통과해야 하는데, 세례문답이 굉장히 까다로웠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많이 했는데 거기에 답하고 합격을 해야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때 칠십이 넘은 노인장 한 분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려 하는데,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선교사는 할 수 없이 그 어르신에게는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만 외우면 세례를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노인은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사 앞에 와서 외우려고 하면 <갑자기 깜깜해 지는 것입니다.> 2년 줄곧 낙제했습니다.

 

3년째 되는 해 노인이 또 세례 받으려고 문답하러 갔는데, 보나마나 또 떨어질 것 같아서 인지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왜요” “유아세례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른 세례는 그만 두고 유아세례를 주시지요.”

그 말에 선교사는 감동을 받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는 나의 모든 것이 죽는 예식입니다. 우리교단은 약식으로 머리에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합니다만, 사실은 온 몸을 물에 잠그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옛 자아를 수장시키고,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임하셨는데, 지금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 세례를 받고 안수기도를 받자 성령님이 임하셨고, 성령님의 임재의 현상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말할 때 임하는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물세례 받을 때, 성령세례를 함께 받는 경우

② 성령 세례를 먼저 받고, 물세례를 나중에 받는 경우

③ 물세례를 먼저 받고, 성령세례를 나중에 받는 경우

사도행전의 기록과, 지금 성도님들도 세 종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물세례도 받고, 성령세례를 받아야 제대로 된 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세례 받고,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만 확인해 보시면 대충 알게 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하나님인데 육체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고 그를 영 접하고 있다.

②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분의 변화(마귀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본질적 변화(진노의 자식→ 의의 자녀)로 변화됨을 믿는다.

③ 나는 기도를 시작하면 5분 이상 할 수 있다.

④ 나는 찬송이 즐겁고 힘차게 춤추며 찬양하고 싶다.

⑤ 나는 선교와 전도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⑥ 나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기쁘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천편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지 못하다면 성령님이 나에게 충만히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13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믿고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에베소교회에 있었던 3가지 모델 중 어떤 유형입니까?

① 학습교인

② 미완성교인 혹은 불완전교인

③ 성령 받은 교인

우리 성도님들은 성령 받은 교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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