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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wM1kfdyLipc
본문 사도행전 19:8-20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6-10

사도행전 19:8-20 에베소 선교(1)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방문한 때는 2차 전도 여행을 거의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였습니다.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행 18:21)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던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에서 에베소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에베소에서 바울은 3년의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3년 기간 중에서 3개월 사역했던 회당에서의 사역과, 이어서 2년 간 사역한 누란노 서원에서 사역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그 두 곳의 사역을 깊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회당에서 사역

8절-9절 상반 절을 먼저 보십시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먼저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에서 들어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까?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어떤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대부분 성도들은 자신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듣고 싶어 합니다. 물론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 중에나, 성경공부 중에 들어야 할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고자 했던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고자 한 말씀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고자 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제가 2014년 7월부터 8월까지 다섯 주에 걸쳐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시작된 나라

②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한 나라

③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나라

④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된 나라

⑤ 교회와 제자로 이끄는 나라

예수님이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다섯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셨고, 결국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이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나라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도 에베소 회당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문제는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지만 반대의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9절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

마음이 굳어 → 불순종하고 → 복음을 비방하였습니다.

지금 새벽기도 시간에 제가 출애굽기를 강해하고 있는데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이 바로 이런 유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통해 행하신 기적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이 굳어 말씀을 듣고 순종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경험하고야 무조건 항복하는 것을 봅니다.

 

신약으로 오면 이런 유형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에서 나오는 밭 중에 <길 가>와 같습니다. 말씀은 뿌려지는데 말씀이 떨어지자 새들(사단)이 와서 말씀을 먹어버립니다.

 

에베소 회당에 있었던 유대인인 가운데는 바로의 마음처럼, 길 가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말씀을 믿기는커녕 오히려 불순종하고 복음을 비방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에베소회당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타납니다. 제가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분은 말씀이 들리고, 말씀이 은혜가 되고, 이 말씀이 이런 뜻이었는가? 새롭게 알게 되는 기쁨도 있고, 말씀에 은혜에 깊이 빠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런 유형이라면 하나님께 귀한 복을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이 중에 몇 분의 성도들은 마음이 길 가 같이 굳어지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말씀 듣는 시간이 지겹고, 말씀을 전하는 자를 비방하고 싶어 하는 유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만약 계시다면 하나님께 진솔한 마음으로 “내 마음 밭을 갈아엎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예배하는 모든 자들이 ‘옥토’와 같은 마음이 되어 매 시간 마다 말씀에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두란노 서원에서 사역

바울은 말씀을 잘 듣는 성도들과, 마음이 굳어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비방하는 사람들을 따로 구분하였습니다.

9절에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라는 말은 사실 중요합니다. 교회나 선교기관에 보면 <부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둘을 지도자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절대로 부정적이고, 믿음 없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부정적이고 믿음 없는 사람이 교회를 이끌어 가면 그 기관이나, 그 교회는 한 순간에 와해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회당에서 3개월 정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머지 책임은 하나님께 돌리고 먼지를 털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순수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데리고 장소를 옮깁니다.

거기가 <두란노 서원>입니다.

기독교 출판사 가운데 <두란노 서원>이 있기에 여러분들에게 익숙할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 드리면

‘두란노’는 사람 이름입니다. 헬라어로 “티란노스”라고 합니다. 이 ‘티란노스’는 유명한 철학자였고, 유명한 강사였습니다. 이 분이 강의를 하면 강사료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1년에 몇 차례 인문학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유명한 강사님들을 모십니다. 그분들을 교섭하기 위해서 먼저 비서들에게 전화를 하면 <강사료는 얼마 정도 책정합니까? 물어옵니다.> 그러면 제가 우리교회 형편을 이야기해 드리고 이 정도 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슬쩍 떠 봅니다. 그러면 일반 사회에서 강사님이 강의를 하면 얼마 정도 받습니까? 물었더니 모인 인원수 × 1시간 당 1만원이라는 것입니다. 200명이 한 시간 강의 들으면 200만원, 1000명이 강의 들으면 1,000만 원 정도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게 귀한 분들이 우리교회 그동안 오셨다는 것입니다.

 

“티란노스”역시 유명 철학자요 강사였기에, 그렇게 돈을 벌어서 자신의 소유의 서원을 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건물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 장소를 바울이 빌린 것입니다. 어느 시간대를 빌렸을까요?

에베소는 지금의 터키입니다. 터키 지역의 낮 시간은 무척이나 덥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소아시아 지역은 아침 7시나 9시부터 11시까지 수업을 하고,

11시부터는 휴식시간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1시쯤 되면 모두 낮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일이 바로 손에 안 잡히니까 결국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놓고 볼 때 누란도 서원 역시 오전 11시 이후에는 비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렇게 동일한 주장을 합니다.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원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 이전, 이 후 시간은 무엇을 했을까요? 쉬다가 와서 말씀을 가르쳤고, 말씀을 가르치고 돌아가서 쉬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남들처럼 똑같이 일을 하다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하고, 그 다음 좀 쉬다가 밤 시간대에 또 다시 일터로 돌아가 텐트를 만들며 생활한 것 같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바울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 새삼 다시 우러러 보입니다. 그런데 범위를 넓혀서 두란노 서원을 찾아와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역시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합니다. 처음 믿은 사람들이 자신들만 믿은 것이 아니라, 소아시야 지역으로 복음을 전해서 유대인 헬라인 가릴 것 없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말씀 듣는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입니다.

덥고, 졸리고, 피곤하고, 가장 능률이 오르지 않는 시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쉬는 시간, 세상 사람들이 꺼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말씀을 배우려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가르쳤던 바울이나, 말씀을 들으려고 오는 성도들이나> 모두 대단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분들로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기독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우리에게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더운 시간, 가장 피곤한 시간, 남들처럼 쉬고 싶지만 그것을 이기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한 믿음의 선배들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은 어떤지 잠시 점검해 보십시오.

주일 1,2부 예배, 찬양예배 / 새벽기도회 시간, 수요성령기도회 시간도 역시 이런 시간이지요. 특히 오늘 중직 자들까지도 힘들어 하고 부담을 느끼지도 않게 된 새벽기도회, 수요성령기도회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시고

바울처럼, 에베소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힘든 그 시간을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힘든 시간에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배운 결과를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교회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도 사람의 방법이나, 사람의 소리 대신 <주의 말씀의 파워>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힘이었다는 증거>를 찾아보십시다.

①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11-12절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라는 말입니다. 능력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도구가 바울이고, 바울이 사용한 손수건, 앞치마였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재미난 상상을 해 보게 됩니다.

바울이 사용한 손수건이나 텐트를 만들 때 사용했던 앞치마에 어떤 냄새가 났을까요?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남들은 더워서 쉬고 있고 자고 있는 그 시간 바울은 복음을 전했으니 엄청난 땀이 났을 것이 뻔합니다. 땀이 나니 손수건으로 계속 닦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손수건에 나는 냄새? 상상이 되시지요.

아침저녁으로 장막을 만들 때 사용한 <앞치마>의 냄새?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열정적으로 복음을 위해서 사역한 흔적을 가진 <손수건, 앞치마>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었고, 귀신이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자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 한 마디로, 이론 하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고, 땀과 눈물을 흘리는 자로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요, 이것이 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음은 <바울과 같은 그런 처절한 투쟁하는 성도와 목회자>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내가 가진 물건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흔적들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② 거짓과 진짜가 드러났습니다.

13-16절을 보십시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2018년을 살아가는 지금도 주변을 돌아보면 <부적을 가지고 다니고, 집에 붙여 놓은 집이 많습니다. 결혼식을 하면 어디에 가서 좋은 날이 언제인지 물어봅니다.> 지금도 이러니 2,000년 전에야 오죽했겠습니까? 그 시대에는 <마술사, 주술사, 부적을 만든 사람들의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바울이 에베소에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특히 그런 업종에 종사한 사람들에게는 충격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은 채, 귀신들린 자에게 바울이 하던 방식을 흉내를 냅니다.

 

그 중에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니 귀신아 떠나가라” 그럼 귀신이 떠나가야 하는데 귀신이 말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그러면서 제사장 아들에게 뛰어 올라 눌러버립니다. 그러자 혼 줄이 난 제사장의 아들은 살려고 버둥버둥하면 억지로 위기에서 탈출해 벗은 몸으로 집으로 36계 줄행랑칩니다.

진짜 복음의 힘에 비해, <마술사, 부적, 주술, 주문>이 힘이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들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마술사들이 자신이 그동안 행한 마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행위를 합니다.

19절 보세요.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지금이야 인쇄술이 발달되어 책을 쉽게 대량으로 찍어 낼 때이지만, 당시에는 가죽이나 파피루스에 한 자 한 자 필사했을 시절입니다. 그 시절에 책 한 권 값은 엄청나게 비쌌을 때입니다. 마술사들의 비방을 적은 책이 복음 안에서 무가치함을 알고 그 책을 모아 태웠는데 책값이 <은 5만>이었다고 합니다.

은 오만을 어떤 사람은 1만 달러 약 1,100만원 / 어떤 사람은 50억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역사하자, <우상과 불신앙적인이 불태워졌고 그들이 복음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미신적, 우상적, 불 신앙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는데 복음이 확장됨으로 그것들이 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③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7-18절을 보세요.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믿는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고 에베소 시민들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3개월에 걸친 회당에서 사역, 그리고 이어진 2년에 걸친 두란노서원의 사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우리가 고쳐야 할 것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교회에 본문의 두란노 서원 사역과, 결과가 나타나도록 믿음생활에 더욱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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