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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uZk3LpXe18
본문 사도행전 20:1-12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6-24

사도행전 20:1-12 생명의 발자취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전북지역 기독교 역사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월요일에는 익산지역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 황등교회 – 종으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미국에서 종을 구입해서 설치했는데 그 종이 우리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1884년에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종을 예배시간마다 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종지기로 봉사한 성도의 자손들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② 남전교회 – 익산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로 1897년에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교단이 분열되면서 남전교회도 통합과 합동측 두 교회로 나눠져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교회는 우리교단 남전교회입니다.

 

③ 두동교회(3컷) – 유교문화와 기독교의 절묘한 조화로 만들어진 독득한 교회로서 ㄱ자 교회의 모습입니다. 강단부분 4평을 빼고는 남녀 좌석의 크기가 똑 같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교회가 남아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④ 나바위성당 – 천주교 성당인데,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 발을 내 디딘 땅에 세워진 성당이라서 가 보았습니다.

 

화요일에는 군산지역과 전주지역을 답사했는데

<군산지역>

⑤ 군산 3.1 운동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했고 관람했습니다.

⑥ 구암교회 역사관을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구암교회 새 예배당에는 군산지역에서 사역한 7명의 선교사를 기념하면서 기둥을 7개로 만들어서 한 분 한 분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전주지역>

⑦ 예수병원 박물관을 돌아보았습니다.

⑧ 그리고 병원 가장 높은 동산에 위치한 <선교사 묘원>을 방문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묘역이 <전 킨 선교사님 묘역 / 한국명 : 전 위렴>이었습니다. 전 킨 선교사는 한국 선교 중 세 아들을 잃었습니다.(첫째 아들은 두 살 살았고, 둘째 아들은 2달 살았고, 셋째 아들은 20일을 살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장티푸스에 걸려서 전주에서 죽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의 묘비 앞에는 그의 세 아들의 죽음을 기리는 비석이 작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 사모 <메리 레이번>은 남편과 세 아들을 잃고 딸 하나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국이 보기 싫을 것인데 미국교회의 도움을 요청해서 그 이후에도 한국교회를 위해서 많은 사역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수요일에는

⑨ 전주 서문교회를 방문해서 전주지역이 선교이야기를 85세 되신 장로님의 해설 을 잘 들었습니다.

⑩ 전주 산돌교회에서 우리교단 증경 총회장이셨던 <정복량목사>의 설교로

폐회예배를 드림으로 일정을 마쳤습니다.

 

저는 이번 기독교역사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선교사님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까?>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해 준 것이 무엇입니까? 묻는 다면 여러분은 최소한 세 가지는 말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었다.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우리는 에베소에 사는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파해 주심으로 우리가 세상의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둘째, 교육을 받게 되었다.

선교사님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후에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글을 읽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건축해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가르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만들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셋째, 육신의 병을 치료해주었다.

선교사들 중에는 의사들도 있었습니다. 의사가 부족할 경우에는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에다 의사와 간호사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우리 선조들의 병을 고쳐주었던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도 똑똑하게 알고 있으면, 요즘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폄하하고, 기독교를 우습게 여기는데> 그들에게 만약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없었다면 오늘의 교회, 학교, 병원들이 없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힘들게 살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교사님의 생명을 건 헌신 때문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100년 전,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지나간 곳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선교 사역을 했던 바울의 발자취 뒤에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바울의 전도여행 중 가장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에베소> 사역을 살펴보았습니다. 3년에 걸친 에베소 사역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 놀라운 사역으로 인해 바울에는 다시 핍박이 일어났다고, 서기장의 중재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지난 시간 생각했습니다.

 

그 후의 일을 오늘 본문에 이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어보십시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지금 읽은 3절이 시간으로 계산하면 <10개월의 전도 여행>을 압축한 것입니다. 이미 이곳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바울이 다녔던 지방이기에 누가가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마게도냐 지방 안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가 있고,

헬라는 아가야 지방으로 <아덴, 고린도>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자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고린도에 석 달 있었다는 것입니다.>

3절 상반 절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바울이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있으면서 사역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고린도에서 3개월 동안 있으며 <로마서를 기록하고, 그것을 겐그레아 여 집사 뵈뵈 편에 로마로 보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성경 66권이 다 중요하지만 로마서의 가치는 더욱 빛납니다.

루터는 로마서의 말씀으로 회심했고, 후에 로마서 주석 서문에 로마서에 대해

“이 서신은 신약성경의 진정한 핵심이며 가장 순수한 복음이다.”고 했습니다.

 

칼뱅도 로마서를 말하기를 '신약성경의 핵심'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귀한 로마서가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사역자의 쉼을 시간을 통해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물며 로마서를 쓰고 뵈뵈 편으로 로마로 보낸 후에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유대인 중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육로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3절에 말씀합니다.

 

4-6절 말씀은 <바울의 동역자 일곱 명을 소개하고 그들이 드로아에 먼저 가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브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드로비모라 ○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4절에서 소개된 7명의 사람들은 당시 예루살렘이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각 교회에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정성껏 모은 구제금을 전달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 바울과 동행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은 2가지입니다.

ⓛ 하나님의 일은 동역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서 하려는 분이 있습니다. 굉장히 위험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위대한 사역자들은 항상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 / 여호수아에게는 갈렙 /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 / 선교사들도 항상 동역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고 동역자를 잘 만들어서 함께 일하여야 합니다.

 

② 남에게 도움을 받을 줄도 알고, 남을 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받은 아시아와 유럽의 교회가 예루살렘교회가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구제헌금을 모금해서 보내는 것을 통해 우리도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교회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성도들과 우리교회가 은혜를 받았고, 복을 받았기에 어려운 교우들, 어려운 교회와 선교사들을 도와주는 넉넉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드로아에서 사역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다.

<드로아>하면 여러분은 무슨 사건이 생각납니까?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바울이 가려는 길을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막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 싶었는데 –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고,

비두니아로 가고가 했는데 –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드로아>이었습니다.

드로아에 도착한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럽에 선교하기를 원하는 줄 깨닫고 유럽 선교를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바울이 도착한 <드로아>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환상을 보았던 그 <드로아>였습니다. 여기에 7일을 머물게 된 것입니다.

그 칠일 중에 마지막 날 있었던 사건을 7-12절에 소개합니다.

 

내용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문에 걸터앉았다가, 바울이 설교를 오래 하게 되자 졸게 되고 결국은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의사가 누가이기에, 분명히 죽음을 확인했지만

바울은 그 속에는 생명이 있다고 말했고, 죽은 유두고를 살린 후 계속 예배를 드렸고 날이 새자 드로아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시는 내용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보충해드리겠습니다.

7절 “그 주간의 첫 날에”에 대한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 주일을 말할 때 달력에 표기된 대로 <일,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주를 말할 때 <안식 후 첫 날, 안식 후 둘째 날, 안식 후 셋째 날> 하면서 항상 안식일을 기준으로 말합니다. 안식일만 정해 주고, 나머지는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7절 “그 주간의 첫 날에”는 — 지금의 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대인의 하루 계산 법>과 <로마 인의 하루 계산 법>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하루 계산법은 = 일몰에서부터 그 다음날 일몰까지이고,

로마인의 하루 계산법은 =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입니다.

 

그러니 7절 “그 주간의 첫 날” 은 지금으로 말하면 토요일 저녁 6시 이후를 말합니다. 이때 이미 주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무렵 주일예배는 어떻게 드렸을까요?

학자들마다, 시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충 추정해 보면 이렇습니다.

① 저녁 6시쯤 되면 모여서 – 먼저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두 시간 정도 했을 것으로 봅니다. <목소리로, 악기 소고, 수금 북을 치면서 찬양합니다.> 손 벽도 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면서 <때론 동그란 원을 만들면서 춤을 춥니다.>

 

② 찬양이 끝나면 <아가페>라는 애찬이 시작됩니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왔기에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러니 큰 빵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큰 잔에다 포도주도 준비해서 나눴을 것입니다. 애찬 속에 <성찬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녁 식사 겸 성찬식을 한 것입니다.

 

③ 애찬 중에 – 성도들은 돌아가면서 한 주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간증을 하고, 이때 성경 암송도 했습니다.

 

④ 애찬이 마친 후에 – 사도들이 전해준 편지를 읽거나 <성경을 낭독학고>, 그 말씀에 대한 한 설명 요즈음 말하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하면 저녁 6시에 시작한 예배가가 보통 자정 정도에 끝났습니다. 이렇게 늦게 끝나도 되는 것은 다음 날 저녁까지 푹 쉬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본문의 예배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누구집인지 모르지만 가정집(3층까지 있는 집이니 부유한 집을 예배처소로 제공했음)에 성도들이 예배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찬양을 하고, 애찬과 성찬을 나누고, 간증을 하고 나서 드디어 사도바울이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설교하는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드로아사람들에게 하는 설교는 마지막 설교인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정적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반면 설교를 듣는 회중들은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예배에 참석했기에 바울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유두고>였습니다. 뜻은 “행복한, 복되다”입니다.

9절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라고 합니다.

유두고가 깊이 졸게 된 이유는 세 가지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① 바울의 유언적 설교라는 심각성을 몰랐기 때문이고

②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알지 못했기 때문에

③ 육신적으로 피곤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걸리면 <설교시간에 졸게 되어 있습니다.>

 

조는 교인, 조는 믿음, 조는 신앙은 = 언제든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열심히 설교했지만, 말씀을 듣는 유두고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설교를 듣다가 3층에서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바울은 그를 살렸고 예배는 계속 날이 새기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조건 유두고의 잘못만 따질 것이 아니라,

예배로 통해서 죽은 자도 살아났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피곤한 삶을 살다가 주일에 예배하려고 오셨을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지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설교 시간에 졸음이 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는 시간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임하고, 육신의 소생하고,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서> 다가오는 한 주일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어 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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