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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Y4KlLVPsrco
본문 사도행전 21:17-36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8-05

사도행전 21:17-36 예루살렘에 입성하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그동안 많은 성도들과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루살렘 행을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결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문은 말씀합니다.

먼저 17-20절 상반절까지 읽어보십시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바울과, 바울과 함께 온 이방인 교회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로 부터 기쁨으로 영접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그렇게 오려고 애썼던 이유 중에는 이방 교회가 모은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이방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과 이방교회 지도자를 영접하는 것은 교회는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인의 교회나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환영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상세한 선교보고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그동안 이방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보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이 .............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선교 보고를 자세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해외 여러 나라에 선교사님을 후원합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님은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분기별 한 번씩 선교보고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읽어보고 성도님들이 알면 좋을 내용을 홈페이지와 게시판에, 그리고 헌금하신 분들께 전달해 드립니다.

반면 어떤 선교사님은 보고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사실 이런 분들은 선교의 기본을 모르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같이 위대한 종도 선교지에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보고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하는 점입니다.

 

셋째, 선교보고를 받고 난 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20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렇습니다. 성도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가처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온 맘과 뜻 다해 주 사모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 바랍니다.

 

이렇게 뜨겁게 영접하고, 자세한 선교보고를 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사역이 마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를 이어서 말씀합니다.

20-21절을 계속 보십시다.

“…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예루살렘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 되었는데, 그들이 바울에 대한 거짓 소문을 듣고 바울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아 1, 2,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이 고생했습니까? 그런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아시아에서 유럽에까지 확장시켰는데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오해하는 내용은 바울이 전도할 때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유대인의 관습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진짜로 이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바울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서 바울을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바울과 예루살렘 수만 명의 성도 중간에서 힘들게 된 것입니다.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하고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쓴 바울 편을 들자니, 수만 명의 예루살렘의 성도가 걸리고, 그렇다고 수만 명의 성도들 편을 들자니 사도바울이 걸렸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한 예루살렘교인들의 오해를 풀 좋은 묘한 하나를 생각하고 바울에게 제안합니다.

 

그 제안 내용이 22-24절에 나옵니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초기교회 안에 있었던 <서원제도>에 대해 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병을 앓다가 나음을 입었다든지,

아니면 죽을 고비에서 구원을 받았다든지,

아니면 어떤 큰 손해를 볼 만한 위험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 고비를 넘기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특별히 서원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 이는 구약의 나실인 의식을 본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나실인에게는 세 가지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첫째,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 것

둘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 것

셋째, 부정한 것(시신)에 손을 대지 말 것

 

그럼 초기교회에서는 서원을 하면 어떤 조항을 지켜야 했을까요?

첫째, 30일 동안은 술과 고기를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둘째, 처음 시작할 때 7일과, 마지막 끝낼 때 7일은 머리를 깎아야 했습니다.

셋째, 8일째는 번제와 화목제와 소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는데, 이 제사 드리는데 드는 비용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 번째 규정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헌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서 드립니다. 목회자로서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감사헌금을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는 형편인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루살렘 교인 중에도 서원을 했지만, 서원을 마칠 때 제사를 드리는 비용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돈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돈을 대신 내어 주는 사례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지불해 주게 되면, 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제안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안에 있는 수만 명의 성도들이 바울을 율법을 지키는 않는 자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바울 자신도 서원을 해서 규례대로 행하고,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해서 감사헌금이 없어서 서원을 지키지 못하는

4명분의 비용을 바울이 부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을 오해했던 이들이 바울도 <율법을 지키고 뿐만 아니라 4사람 비용을 부담했다는 것을 알고> 바울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에서 →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이 제안을 따르겠습니까?>

사실 이 제안은 바울이 받아들기기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에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이방교회의 지도자들도 함께 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와서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기에 이방인은 할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다고> 가르쳤는데, 지금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당신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이 온 이방지도자들 앞에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민 끝에 그들의 권면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26절을 보세요.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이 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권면>을 받아들였는지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예루살렘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온 이방교회 장로들 앞에서 약간 오해를 받을망정, 예루살렘에 있는 수만 명의 양떼가 어려움을 겪고, 교회가 시험에 빠지고 교회지도자들이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바울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을 하실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중직자들은 교회생활을 할 때에 철칙같이 여겨야 할 사항이 바로 이점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목회를 해보면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회의하다가 밖으로 나가 버리고, 심지어는 교회를 이탈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물론 그들의 열정 부분만 보면 대단하다고 칭찬할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일(사역) →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뜻을 굽혀서 교회의 평화가 이루어지면 자신의 뜻을 굽힌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우들이 바울처럼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유대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고린도전서 9:19-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다.

이 말씀에 바울의 목회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의 목회철학은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남들이 자신을 어떤 취급을 하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혼 구원의 정신이 있었기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의 권면>을 따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바울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한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머리도 깎고, 대신 비용도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이런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 편리대로 주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하여 배려하는 자세

예배드릴 때도 내 지정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내가 불편한 자리에 앉으려는 자세

식당에서도 새 가족을 위해서 자리를 순서를 양보하는 자세 등 // 나의 작은 수고와 헌신으로 한 영혼을 세운다고 하면 바울처럼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바울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27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건 터트린 이는 예루살렘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에서부터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27-28절 보세요.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지금 이들은(유대인들은) 아시아에서 선교할 때부터 따라다니며, 핍박하고 바울을 쫓아내고, 나중에는 바울을 돌로 쳐서 실신 상태에 빠뜨리기도 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자들입니다. 이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바울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해서 두 가지 거짓말을 합니다.

첫째, 바울이 율법과 성전을 훼방했다는 것 –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바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둘째,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전은 <이스라엘의 뜰로, 이스라엘 남자만 들어가는 번제 단이 있는 마당>을 말합니다. 그곳에 이방인을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당시 이방인의 뜰 경계에는 팻말이 하나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이방인도 이 경계를 넘어 성소와 현관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만약 어기는 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채임을 져야 한다.”

이런 팻말이 붙어있을 정도로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뜰에 간다는 것은 상상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방인의 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였는데 아마 유대인들이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함께 온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예루살렘 시내에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29절 참조) 왜곡해서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거짓말을 듣고 속은 군중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스데반을 죽일 때처럼 흥분하면서 바울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선동했고,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이 동참했습니다.

 

이때 바울을 살리려 등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치안 책임자 로마 군대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 였습니다. 성전에서 일어난 소동소식이 천부장에게 전해지자 그는 급히 군대를 보내 사건을 수습합니다. 그래서 죽기 일보직전의 바울을 구출해 내었습니다.

그 이후 내용은 다음 주일 생각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의 바울의 영접> <교회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는 바울>의 모습에서 내가 고쳐야 할 일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고, 여러분으로 인해 교회가 평안하고, 교회가 계속 부흥되어 갈 수 있도록 작은 한 부분부터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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