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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noY1aoraInk
본문 사도행전 21:37-22:29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8-12

사도행전 21:37-22:29 위대한 전도자, 위대한 사도의 모습

 

오늘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는 헤롯이 지은 성전의 모습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림1, 예루살렘 성전과 안토니아 요새>

 

이방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성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시선을 성전 우측 북쪽으로 가 보십시다. 우측 북쪽으로 가면 성전과 붙은 한 건물이 하나 보일 것입니다. 이 건물이 <안토니아 요새(성)>입니다. 그럼 안토니아 요새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두 번째 그림으로 옮겨가 보십시다.

<그림 2, 안토니아 요새>

 

안토니아 요새는 주전 37년 헤롯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자신의 후원자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아 요새>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후에 로마 총독이 업무를 보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총독은 평소에 가이사랴에 머물다가, 유대인이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의뢰하면 안토니아 요새로 달려와 골치 아픈 아픈 유대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시면 예수님이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채찍을 맞은 곳이 이 건물 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건물이 특별한 건물이구나! 생각될 것입니다.

 

안토니아 요새는 50미터 높이의 암석 위에 세웠습니다. 천연 요새가 되는 것입니다. 요새의 내부의 폭은 약 120 × 45m 이었습니다. 군사용 부속 건물로 사용했고, 뿐만 아니라 호화스러운 주거지와 목욕탕도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장엄함이 마치 왕궁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 장엄한 안토니아 요새는 주후 66년 유다 전쟁 때 전소, 파괴되었고,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황제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복원한 그림을 보시는 것입니다.

 

안토니아 요새에서 여러분이 꼭 보셔야 할 것은 네 모퉁이에 세워 놓은 망대를 보셔야 합니다. 망대의 높이가 50미터가 됩니다. 왜 그렇게 높이 세웠을까요?

예루살렘을 통제하고 감시하게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올라가면 옆에 붙어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쉽게 감시할 수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요새에 있는 군인들을 보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본문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십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지난주일 생각한대로 <환영받고, 상세한 선교 보고를 하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수만 명의 성도들이 사도바울을 오해하였고,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바울은 <서원의 규례를 행했고, 4명분의 감사헌금까지 지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자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오순절을 지키려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던 바울을 잡고서는 ‘이 사람이 율법과 성전을 훼방했다’,‘헬라인을 데리고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갔다’고 모함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군중들은 그 순간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군중들에게 의해서 수 없이 맞았을 것입니다.

 

이런 성전 상황을 안토니아 요새에서 망을 보던 군인들이 보고 천부장에게 보고를 하자, 천부장은 백부장과 군인들을 데리고 바울이 맞고 있는 그 자리에 왔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리고는 군중들에게 <이 사람이 누구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죽이려고 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한 마디씩 했지만 천부장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안토니아 요새로 데려가라고 합니다. 군사들은 군중들 때문에 바울을 들고 안토니아 요새로 가게 됩니다.

 

<그림 3, 정면에서 본 안토니아 요새>

바울이 잡혀간 안토니아 요새를 정면에서 보십시다.

바울은 군사들에게 들려서 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군중들은 이 아래에서 소리치며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생각할 말씀은 <이 계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은 이 계단에서 로마군대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은 당신이 얼마 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반로마적인 혁명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일당들은 다 체포되고, 주동자인 애굽 사람은 광야로 도망친 적 이 있는데 나는 네가 그 애굽 사람인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고, 지금 여기에서 저 아래에 있는 군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허락을 해 줍니다.

바울은 이 계단에 서서 조용하라고 손짓을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말한 내용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간증>이었습니다.

지난 7월 달에 남선교회 신앙포럼을 하면서 몇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만,

간증에는 이점이 많습니다. 간증은 전하는 자가 강한 확신으로 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이 역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작용을 합니다.

 

간증은 누가 하든지 3가지 요소(간증의 3요소)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

둘째, 예수 믿게 된 동기

셋째, 예수 믿은 후의 변화

이 세 가지 요소만 알면 누구나 짧은 시간에 간증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안토니아 요새에 들어가면서 말하기를 허락받아 간증을 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까? 제가 소리 내어 천천히 말해보니 3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간증을 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

/ 예수 믿게 된 동기 / 예수 믿은 후의 변화>로 정리해서 말한다면 5분이면 가능한 것입니다.

 

자 그럼 바울의 간증을 나눠서 생각해 보십시다.

1. 바울이 예수 믿기 전 삶

22:3-5에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예수 믿기 전 바울은

① 출생 –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3절) - 대도시 출신

② 학문 배경 - “가말리엘 문하생” 당대 최고의 두 학파 중 하나로, 최고의 지성 인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 나 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③ 종교배경 – 예수 믿는 자를 핍박했던 자였다고 합니다. 스데반을 죽였고, 대 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까지 원정 갈 정도로 지독한 핍박 자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가 지금 군중들보다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성인이었고, 예수를 싫어했고, 예수 믿는 자들을 싫어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2. 예수 믿게 된 동기

22:6-16절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우리는 바울의 회심한 내용을 이미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회심의 내용을 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부분만 보십시다.

6절 하반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 정오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을 비췄습니다.

7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 하느냐”

8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밝은 빛은 일행 모두가 경험했으나, 예수님의 음성은 바울만 들었습니다.

10절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아나니아가 왔고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고, 그래서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장면에서 우리가 보서야 할 것은 바울이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바울을 찾아오셨고,

예수님이 음성으로 말씀해 주셨고,

예수님이 선지자 아나니아를 준비시켜 주셨고,

예수님이 눈 먼 바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전적인 은혜>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났기에 이 시간 함께 예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셨고, 느끼게 해 주셨고, 듣게 해 주셨고, 믿게 해 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잘 정리한 말씀이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먼저 택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만난 확신>을 가지지 못한 분들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은 내 마음 속에 계시는데, 나에게 주님을 만날 간절한 마음이 없어서 확신이 없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이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3. 예수 믿은 후의 변화

이 부분은 22:17-21을 읽어 보시면 알게 됩니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에 온 바울은 환상을 통해 예수님을 또 만납니다. 환상 중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는 바울의 말을 들을 사람이 없으니, 예루살렘을 떠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바울은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을 향하여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바울의 간증의 내용을 보고, 또 간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간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증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모태신앙이라서 자신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 / 예수 믿게 된 동기 / 예수 믿은 후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증할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성도들은 믿는 자들 앞에서나 혹여 불신자 앞에서 담대하게 <나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고, 나는 이렇게 예수 믿고 변화되었다>고 간증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렇게 바울은 간증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 / 예수 믿게 된 동기 / 예수 믿은 후의 변화>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 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듣는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전하면서 – 예수님이 메시아이기에 그분을 믿으라고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22:21절 말씀 때문입니다.

“나더러 또 이르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이 받은 사명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22절 말씀처럼 ....... 군중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립니다. 조용하게 바울의 간증을 듣던 군중들이 한 순간 미치광이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만큼은 견딜 수 없이 싫어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메시야가 어찌 이방인의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철저한 <유대인 중심주의>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부서만, 우리 기관만, 우리 교회만, 우리 교파만, 이런 우리끼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넓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이 구원받기 원하시고,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은 우리교회 모든 부서가 부흥되기를 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다시 본문으로 가 보십시다.

안토니아 요새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얻어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위기의 순간에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바울의 신앙정신입니다.

이 모습을 저는 설교제목처럼 <위대한 전도자, 위대한 사도의 모습>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이런 열정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군중들이 소리를 치자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낫는지 22:24-29 말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천부장은 아무 생각 없이 군인들에게 바울을 채찍질 하여 심문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바울을 가죽 줄로 매니>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가죽 줄로 맨다는 말은 예수님이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언도를 받고, 39대의 태형을 받기 위해서 매인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엄청난 태형을 가하기 위해서 가죽 줄로 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자신의 신분을 말합니다. <나 .. 로마 시민이야!>

이 말에 ... 백부장도, 천부장도 깜짝 놀랍니다. <나 로마 시민이야!> 이 한 마디에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로마 시민>이면 도대체 어떤 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로마 시민권>

① 로마 시민을 증명하는 것으로 투표권, 참정권, 재산소유권, 군인이 될수 있는 권리를 가짐

② 로마에 충성하는 외국인에게도 줌, 여성에게는 주지 않음

③ 로마 시민의 권리 – 재판 없이 고문하거나 채찍질할 수 없음

④ 로마 시민은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할 수 있음

 

대단하지요. 그러니 천부장이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했을 때 두려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매 맞고 감옥에 갇힐 때는 로마시민임을 말하지 않고, 안토니아 요새에서 맞으려고 하니 로마시민임을 밝혔는가? 궁금해집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전도와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는 매 맞고 감옥에 갔기에 간수와 그 가정을 전도했고, 예루살렘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활용해야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도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했다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부 <전도와 연관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다음 주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안토니아 요새 층계에서 그 짧은 시간에도 군중을 향해 간증하고 전도하고 싶어 하는 <위대한 전도자, 위대한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도 바울이 가진 신앙의 열정, 전도의 열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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