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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주소 https://youtu.be/WQh_5AwdT38
본문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행 23:12-35)
설교자 권오진 목사
설교일 2018-08-26

사도행전 23:12-35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오늘 설교제목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는 성 어거스틴이 한 말씀 중에 들어있는 말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겨라” 했습니다.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가 모두 예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명을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면 생명을 아끼지 않겠다.”(행 20:24)고 결단했기에 예루살렘으로 담대히 올라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와 보니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로 잡혀 오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죽이려고 산헤드린 공회가 열렸습니다. 다행히 바울의 순간적인 지혜로 공회를 어지럽게 함으로 자신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밤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위로와 사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난주일 생각한 11절 말씀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으로 자신은 반드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든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세력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세력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2-15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여러분,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직장에서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힘들어 합니다. 가족 중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힘듭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교회생활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지금 예루살렘에 바울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40명이나 있었습니다. 12절 말씀처럼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독한 사람이지요. 지금의 이슬람극단주의자 같은 사람들이 40명이 똘똘 뭉쳤습니다.

 

이들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천부장에게 요청해서 제6차 산헤드린 공회를 연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 북쪽에 위치한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바울이 나와 성전 남쪽에 있는 산헤드린 공회까지 오게 될 것이고, 그 중간쯤 좁은 길에 그들이 잠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 6장에도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을 때, 그 성을 재건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적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산발랏, 도비야, 게셈>이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인즉 “우리가 할 말이 있으니 오노 평지 한 촌으로 나와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바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바쁘고 막중하기에, 지금은 성 밖으로 나갈 겨를이 없습니다.”하면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의 요청과, 다섯 번의 거절로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성벽은 52만에 완공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의 주동자는 엄밀히 따지면<산헤드린 공회 의장이었던 대제사장이었고, 그 하수인은 산헤드린 공회 의원과 극단적인 우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일 때도 그러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무마시킬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5차에 걸친 산헤드린 공회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 생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10-12 말씀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박해를 받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박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 신약의 베드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도바울 ... 그들 모두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 나에게도 박해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면>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물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존경해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장담하건데 최소한 20%의 사람들은 여러분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여러분을 이런 저런 이유로 박해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보통사람은 낙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 그런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들도 그러했기에 박해를 당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시다가 박해를 받아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모두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성도, 중직자, 목회자를 박해하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을 죽이려고 결단한 40명 같이 살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있으므로 교회가 살고, 성도들을 살리는 신앙의 덕이 충만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본문으로 다시 들어가 보십시다.

이제 바울은 영락없이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바울을 죽도록 그냥 두지 않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겨라”는 말처럼, 위기 속에 있던 바울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16절을 보세요.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사도행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울의 생질>이 등장합니다. 요즈음 학생들은 생질이 누구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생질은 = 누이의 아들>입니다.

그가 안토니아 요새로 들어와서 바울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로마 통치하에 있었던 3종류의 감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① 공중 감옥 – 일반 죄수를 가두고, 최악의 시설로 만들어진 감옥(캄캄한 지하실) - 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이 감옥에 갇혔다고 봅니다.

② 자유 감옥 – 상류층 신분의 죄수를 가두고, 공중 감옥에 비해 훨씬 자유로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③ 군영 감옥(영창) - 군사의 왼 손, 죄수의 오른손을 같이 결박해 놓았으며, 주로 군영이나 개인의 집을 감옥으로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으니 <군영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 군영 감옥에 바울의 생질이 찾아갔고, 바울을 암살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자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생질로 통해 암살소식을 들은 바울은 백부장을 불러서 생질을 천부장에게 인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것을 알았기에 백부장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생질은 천부장을 만나서 암살소식을 전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말을 듣고, 머리를 돌렸을 것입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 예루살렘 안에서 암살된다. 그러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예루살렘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나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고, 바울이 암살당하지 않도록 조취를 취하게 됩니다.

 

22-24절 보십시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먼저, 바울의 생질에– 나에게 말한 것을 비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백부장 둘을 불러서 바울을 안전하게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까지 이동시키기 위해서 군사를 준비시키는데 <보병 200명, 창병(짧은 투창, 긴 창) 200명, 기병 70명> 도합 470명을 준비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발시각은 오늘 밤 삼시(우리시각으로 밤 9시)라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말을 타고 가이사랴로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멋쟁이신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암살당한 위기에 있는 바울을 살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있던 바울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데 쓰시기 위하여, 안토니아 요새에 있는 600명의 군인 중에 <무려 470명의 군인을 동원했습니다. 바울이 타고갈 말까지 말입니다.>

 

만약 돈을 들여서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하려면 얼마면 될까요?

470명×일당 10만원, 하루면 4,700만원/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거리가 약 90-100km 이라면 편도 이일, 왕복 4일이 걸립니다. 그러면 최소 2억의 비용이 들 것입니다. 먹고 자는 비용 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천부장을 통해 바울을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천부장은 470명의 군사를 동원하면서 거기에 하나 더 해 주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썼을까요?

26-30절이 편지의 내용입니다. 함께 읽어보십시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천부장은 자기가 본 사실을 총독에게 그대로 보고를 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잘못은 살짝 덮으면서 말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암살단이 40명이나 있지만, 천부장 자신이 판단했을 때에는 <바울을 체포할 이유, 감금할 이유, 죽일 이유가 전혀 없으니 이 사람을 총독께서 재판을 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입니다. 바울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산헤드린 공회와 유대인들은 바울을 어떻게든 죄인이라면서 죽이려고 하는데, 오히려 로마 군대 천부장(글라우디오 루시아)은 바울을 살리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실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는다.>

왜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을 죽이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셔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과, 우리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꿈을 가진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다.

천부장의 지시대로 바울을 호송하는 부대가 꾸려지고 470명의 부대의 호위 속에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 내용이 31-35절에 나옵니다.

먼저 31-32절을 보십시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이 말씀에서 <안디바드리>란 지명을 조금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 자료 : 바울의 가이사랴 호송 경로>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 중간쯤 있는 곳입니다. 말씀에는 보병 200명, 창병 200명 기병 70명이 바울을 호위해서 이곳까지 왔다가 .... 이제는 유대 암살단의 위험으로 완전히 벗어났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안디바드리에서 400명의 군인은 예루살렘 안토니아 요새로 되돌라오고 70명의 기병만으로 가이사랴까지 호위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안디바드리>는 구약시대에는 <아벡>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략을 받아 아벡에서 4,000명의 군인지 죽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장로들과 엘리제사장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전쟁터에 법궤를 가지고 가서 승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겼고, 3만 명의 이스라엘이 죽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곳이 <아벡>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깁니다. 주전 1102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아픔의 장소가 <아벡 – 안디바드리>인데, 그 장소에 지금 <바울>이 와 있습니다. 왜 바울이 거기 와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 장로, 공회의원, 유대인들>이 바울을 거부했고,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예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을 거부했다는 것은 은, 결국 바울의 중심에 있는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아벡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처럼, 이제 예수님이 함께 한 사람 바울을 유대인에게서 – 이방인으로 빼앗기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본문은 우리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5 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예수님의 임재의 상징인 촛대는 ...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 열성적으로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예수님은 그들과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소망을 잃어버리면,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떠나서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옮기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울의 발걸음에서 그 복음의 촛대가 옮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동안 가는 곳곳마다 복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열정으로 가득 찬 바울에게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그 옛날 1,000년 전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던 <안드바드리(아벡)>을 통해서 가이사랴로 ... 그리고 로마 이방인에게로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 우리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 임재의 상징인 촛대>가 나에게 머물러 있는지? 우리교회에 그 촛대가 머물러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신앙생활은 항상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말씀처럼/ 지금 ..... 오늘 .... 바로 이 시간 ... 복음의 촛대가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잘 모시고, 바르게 순종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현재> “나는 성령 충만합니다. 은혜 충만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고백하면서 예수님의 은혜가운데 믿음 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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